大集成(? ~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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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시대의 무장. 태집성(太集成)이라고도 불렸다. 고려에 귀부한 옛 발해 왕족의 후손으로 협계 대씨의 시조다. 고려 고종때 낭장(郞將)을 지내고 1218년에 차장군(借將軍), 1228년에 대장군(大將軍) 겸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를 지내기도 했다. 후에 수 사공(守司空)까지 올랐다고 한다.
사실 위의 내용들까지만 보면 그저 그런 장수 정도로 볼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애초에 이 나무위키에 등재되지도 않았을 거다.
대집성은 무신정권 당시 아첨 + 무능력을 두루두루 겸비한 꼴통이었다. 고려사에 남아있는 기록을 보게 되면 빽을 믿고 날뛰다 자기 말 안 들으면 일단 없애고 보는 전형적인 간신배. 이런 놈이 벼슬아치인 걸 보면 당시 고려가 얼마나 개판이었는지 알 수가 있다. 아울러 조상을 욕되게 만들었다.
드라마 무신에도 노영국이 배역을 맡아 등장하지만, 별 비중 없이 넘어갔다. 일단 스토리 전개 상 그다지 집중 될 이우도 없고 배우의 연기 스타일과도 찌질함과는 거리가 있고...
2 그와 관련된 기록들
- 1218년 4월, 최충헌이 무인들에게 인심을 사기 위해 벼슬을 뿌렸고 이 덕에 낭장이었던 대집성이 차장군에 임명되었다.[1] 기분이 한껏 좋아진 대집성이었지만 곧 자기 휘하에 이끌 수 있는 부대가 없다는 걸 알자 승려와 노예를 안 가리고 자기 부대로 모두 징발하는 바람에 노예가 없어진 개경에 나무를 자르거나 짐승 기르는 사람까지 없어져 개판이 되어버렸다. 그 소식을 들은 최충헌이 "이 자는 답이 없다"며 잘라버렸다.
- 1228년 8월, 중이 자혜원(慈惠院)을 지으려고 강음현[2]에서 나무를 베었는데 강음현 감무(監務) 박봉시(朴奉時)가 이를 금지하고 그 베어버린 나무를 관가에 바치게 했다. 그래서 화가 난 중이 대집성에게 아부를 하며 "박봉시가 나무를 빼앗아갔는데 돌려달라고 말해주시면 안되겠느냐"고 부탁했고 기분이 한껏 좋아진 우리의 대집성은 박봉서에게 "그러지 말고 돌려달라"는 서신을 보냈지만 박봉시는 이를 무시했다.
- 이 소식을 들은 대집성이 자신을 무시했다며 분노, 최우에게 서신을 요청하니 최우가 교정소(敎定所)의 서신을 보냈다. 하지만 이도 무시하자 대집성이 최우에게 박봉시를 유배 보내야 한다고 말해 결국 박봉시는 유배를 갔다. 이를보고 사람들이 대집성을 비난했다고.(...)
- 1231년 제1차 자모산성 전투에서 최춘명이 항복을 거부하자 최이에게 "최춘명을 죽여야 몽고가 우릴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해 나라를 지킨 충신을 죽이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마침 지나가던 몽고 관리가 "이 사람이 우리에게는 비록 명령을 어긴 사람이나 너희로 보아서는 충신이니 나는 죽이지 않을 것이다. 그대들이 이미 우리와 화친을 약속하였으니 성을 지킨 충신을 죽이는 것이 옳겠는가?"라며 살려주라고 해서 살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최준명은 이후 전공을 논할 때 첫 번째로 거론되었고, 이후 추밀원부사로 발탁되었다. 그의 아들 최념도 관직이 위위경에 이러렀다.
- 몽고의 2차침입 당시 최이가 강화도로 천도하려고 재상들을 자신의 집으로 소환했다. 모든 이들이 그의 비위를 맞추느라 반대하지 않았는데 오직 야별초지휘(夜別抄指揮) 김세충(金世冲)만이 "개성은 200년 넘게 우리의 수도이며 성도 튼튼하고 식량도 많은데 왜 막을 생각 않느냐고 반대를 했다.
- 이에 최이가 "그럼 방어할 방법이 있느냐?"고 묻자, 김세충이 우물쭈물 했다. 이 모습을 본 대집성은 "국가의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 대책없이 말하는 저런 자가 더이상 나오지 않도록 죽여버립시다."라며 최이에게 아부를 떨었다. 옆에 있던 김현보(金鉉甫)도 대집성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같은 발언을 했고 결국 김세충은 그 자리에서 끌려나와 처형당했다.
- 이건 대집성 사후에 벌어진 일이지만, 대집성의 딸 대씨가 김약선의 아들 김미를 후계자로 밀면서 최항과 갈등을 빚는데 대집성이 죽고나서 그의 딸은 독살되고 대씨와 전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오승적(吳承績)도 같이 죽었다. 여기까진 괜찮은데 오승적의 친척 중에 김약선의 동생이자 귀주성 전투의 영웅인 김경손이 연루되어 덩달아 김경손도 죽었다.
하여튼 도움이 안돼요 도움이
- ↑ 앞에 借(빌릴 차)가 붙는 건 지금으로 따지면 비정규직 자리다. 윗사람이 그냥 포상용으로 던져주는 직책. 직책명부터가 "장군이라는 직책을 잠깐 빌려준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자기가 이끌수 있는 병력이 없는 것도 당연하지만 이 멍청이는 그걸 몰랐던 거다.
- ↑ 江陰縣, 현재의 황해북도 금천군
- ↑ 갓 과부가 된 대집성의 딸이 예쁘다는 말을 들은 최이가 그 딸을 데려다가 후실로 삼았다. 당시 대집성은 후군(後軍)의 지휘관으로 있으면서 비록 전투에서 패배하는 일이 있더라도 최이를 믿고 전혀 겁을 내지 않았다. - 《고려사》최이 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