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출산율

1 시대별 구분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일제강점기 이전 시기와 일제시대때는 대체로 4-5명대의 출산율을 보이고 높으면 6명대 정도의 출산율을 기록한걸로 추측된다. 다만 이 시기에는 영유아 사망률이 위낙에 높았기에 인구증가세는 그리 크지는 못하다. 그리고 1940년대 전반기에 일제의 착취가 심해지며 출산율이 전반적으로 감소되는 추세를 보였다.

1940년대 중반에 해방되면서 출생아수가 급증하였고 해외로 이주했던 교포들도 대거 귀향하여 연 4%대의 인구증가율을 보였다. 그러나 1950년대 전반기에는 6.25 전쟁의 여파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피난가거나 부상당하는 등 정신이 없었을때이기 때문에 출산율이 감소하였고 인구증가세도 대폭 감소하였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한창 베이비붐 현상이 일었으며[1] 이때는 출산율이 연간 평균 6명대를 기록했고, 출생아수도 80-100만선을 기록하며 인구증가율도 연 3%를 기록한다. 덕택에 이 시기에 출생한 사람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형제자매가 서넛정도있는건 당연한 일이었으며[2] 당대엔 자녀수가 10명을 넘는것도 이상한일로 여겨지지 않았다. 이 말은 곧 검정고무신에 나오는 이기철-이기영-이오억의 부모님은 당시 기준으로 힘을 못쓴축(?)에 속한다는 것이다그러다가 1960년대에는 산아제한의 시행으로 출산율이 점차 감소되기 시작하고 1970년대 중후반 들어 산아제한 정책이 오일쇼크와 겹쳐 강력한 효력을 발휘하면서 출산율이 2명대로 빠른 속도로 진입했으며 이 시기에 출생한 사람은 대체적으로 형제수가 2명에서 3명정도로 줄어들었고 출생아수도 100만에서 80만선까지 줄어들었다.[3]

그러다 1979년부터 1982년까지 베이비붐 세대가 한창 아이를 낳을 시점이 되어 출생아수가 계속 80만선을 넘어서자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 초만원이라는 캠페인으로 대변되는 산아제한 정책이 대폭 강화되어 물론 지금보면 29만원 최대의 삽질 중 하나 1984년부터 신생아수가 6-70만선으로 줄고 출산율이 1명대로 진입한 이래 현재까지도 2명대를 회복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인구증가율이 1%아래로 떨어진다. 실제로 1984년생부터 1990년생들은 대체적으로 형제가 1명정도 있는게 대다수이며 대도시 지역과 그 근교지역은 꾸준히 인구가 증가했기에 출산율이 낮아진다해도 부정적인 여파가 (아직까지는)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지방 중소도시들과 농촌지역에서 이농현상과 석탄산업합리화에 따른 탄광산업 구조조정의 여파까지 겹치면서 인구 고령화의 부정적인 여파가 나타났으며 이 시기를 기점으로 폐교되는 학교가 급속히 증가한다.[4]

1991년이 되자 산아제한 정책이 다소 완화되어 셋째를 가지는 가정이 잠시 늘어났으며 인구증가율도 다시 1%를 넘어서기도 하였지만 이것도 1997년까지였고 1998년부터 1명만 낳은 가정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출생아수도 2001년 이후 40만선으로 떨어졌다. 덕택에 광복 이후인 1950년대 중반~80년대 초반생들은 무지막지한 인구를 자랑한다. 교실 한 반에 60명씩 있던 때가 바로 이 연대[5] 출생자들이 학교 다닐때다. (제5공화국 때까지 이러한 현상이 비일비재하였다. 응답하라 1988만 봐도 1989년 기준 3학년이 1400명이 넘는것은 서울에선 비일비재한 일이였다!)[6]

1955년부터 1974년까지 20년동안 연간 90만명 이상의 출생아수를 기록했다. 그리고 1978년1970년대에서 유일하게 출생아수 70만명대를 기록했다.[7]

그리고 2016년은 연초부터 출생아가 최저를 갱신하더니 7월까지 누적 출생아수가 24만 9000여명이라고 한다.[8]
하반기에 출생아가 보통 1만 안팎 가량 적은 점을 고려한다면 올해 출생아가 42만에도 미달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의 출생아수 급감을 80년대 세대가 출산 세대에 진입한 것을 원인으로 보고, 90년대 초반 세대가 출산에 참여하고 결혼이주여성이 늘어나면 저출산대책이 현재 수준에서 유지되더라도 출생인구가 50만까지는 회복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90년대 초반 세대는 성비가 불균형한 세대인데 국제결혼 대신 결혼포기를 하는 남성들이 많아지고 있어서 앞으로는 40만둥이들이 애들 낳기전까지인 2030년정도까지는 42만선에서 고착화될 듯 하다.에이 설마, 40만 붕괴가 눈앞인 거 같은데??

2 상세 자료 (1949년~)

연도출생아수조 출생률(1000명당)합계 출산율
1949년687,768명35.8명5.05명 [9]
1951년728,175명37.7명5.31명
1952년775,630명39.6명5.56명
1953년830,330명41.6명5.82명
1954년892,236명43.4명6.07명
1955년961,055명45.4명6.33명[10]
1956년999,005명45.2명6.30명
1957년1,016,573명44.8명6.26명
1958년1,046,011명44.5명6.23명
1959년1,074,876명44.2명6.19명
1960년1,099,294명44.0명6.16명 [11]
1961년1,099,164명42.7명5.99명
1962년1,089,951명41.1명5.79명
1963년1,075,203명39.4명5.57명
1964년1,057,241명37.8명5.36명
1965년1,040,544명36.3명5.16명
1966년1,028,479명34.9명4.99명
1967년1,020,235명33.9명4.84명
1968년1,016,739명33.0명4.72명
1969년1,017,618명32.3명4.62명
1970년1,006,645명31.2명4.53명 [12]
1971년1,024,773명[13]31.2명4.54명
1972년952,780명28.4명4.12명
1973년965,521명28.3명4.07명
1974년922,823명[14]26.6명3.77명
1975년874,030명24.8명3.43명
1976년796,331명22.2명3.00명
1977년825,339명22.7명2.99명
1978년750,728명20.3명2.64명
1979년862,669명23.0명2.90명
1980년862,835명22.6명2.82명
1981년867,409명22.4명2.57명
1982년848,312명[15]21.6명2.39명
1983년769,155명19.3명2.06명[16]
1984년674,793명16.7명1.74명[17]
1985년655,489명16.1명1.66명
1986년636,019명15.4명1.58명
1987년623,831명15.0명1.53명[18]
1988년633,092명15.1명1.55명
1989년639,431명15.1명1.56명
1990년649,738명15.2명1.57명 [19]
1991년709,275명16.4명1.71명[20]
1992년730,678명16.7명1.76명[21]
1993년715,826명16.0명1.65명
1994년721,185명16.0명1.66명
1995년715,020명[22]15.7명1.63명
1996년691,226명15.0명1.57명 [23]
1997년668,344명14.4명1.52명
1998년634,790명13.6명1.45명
1999년614,233명13.0명1.41명
2000년634,501명[24]13.3명1.47명 [25]
2001년554,895명[26]11.6명1.30명[27]
2002년492,111명10.2명1.17명
2003년490,543명10.2명1.18명 [28]
2004년472,761명9.8명1.15명
2005년435,031명8.9명1.08명 [29]
2006년448,153명9.2명1.12명
2007년493,189명10.0명1.25명 [30]
2008년465,892명9.4명1.19명
2009년444,849명9.0명1.15명
2010년470,171명9.4명1.22명
2011년471,265명9.4명1.24명
2012년484,550명9.6명1.30명 [31]
2013년436,455명8.6명1.19명
2014년435,435명8.6명1.21명
2015년438,420명8.6명1.24명
2016년[32]
자료출처: 통계청, 세계은행, UN 2015년 인구전망

3 관련 항목

  1. 같은시기 북한도 마찬가지였다.
  2. 다만 그 만큼 일찍 죽는 경우도 많았다. 1960년대 당시에는 10명 낳으면 1-2명은 일찍죽는 수준. 이것도 일제 강점기때에 비하면 많이 준 수치기는 했지만. 덕택에 1970-80년대 당시에 당시 아들 1명만 있을 경우에는 그 아들이 6개월만 군복무하면 되었었다.
  3. 물론 그 이전의 출산율이 높다보니 형제수가 많은 경우도 제법 있었기는 했다.
  4. 사실 산아제한정책 철폐와 출산장려정책이 늦게 도입된것도 인구정책이 서울위주로 정책이 짜여져서 그런게 아닌가라는 얘기도 있다. 아무리 지방의 인구가 급속히 줄고 농어촌 지역의 고령화가 날이 갈수록 심화되어도 서울과 그 근교지역의 인구는 1년에 수십만은 기본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고위급 관료들과 상위급 인구정책 당담자들이 그걸 잘 못느꼈기에 그런게 아닌가하는 썰이다.
  5. 이때는 학교시설이 열악하거나 부족한점이 많았기 때문에 오전반/오후반 수업은 물론이고 3교대 수업까지 있었다.
  6. 게다가 당시에는 서울 인구가 계속 증가하던 추세였다.
  7. 그러나 1970년, 1971년에 합쳐서 200만이 넘는 출생아가 있었다.. (ㄷㄷ)
  8. 실제로 네이버 기사로도 5월 출생률6월 출생률이 몹시 낮다고 기사가 나왔었다.
  9. 1950년 자료는 한국전쟁 발발 첫 해라서 그런지 통계를 내지 못했다.
  10. 합계출산율로는 사상최고점을 찍었다. 하지만 아직 일제시대 때 출생한 적은 인구의 여성들이 가임기대에 있었기 떄문에 출생아수 자체는 합계출산율이 55년도보다 낮은 57~71년생보다 적다
  11. 일제시기 후반~해방 전후 혼란기 시기에 출생한 여성들의 출산이 절정에 달했다.
  12. 1958년 다음 개띠였는데, 58개띠 다음으로 많다. 70년생 연예인도 많은편.
  13. 출생아가 100만명 이상인 마지막 해이자 해방 이후로 50년대 초반 코호트까지 가임기에 접어들자 가임기인구 자체가 급증세를 타기 시작하자 합계출산율이 5,60년대보다 낮음에도 불구하고 출생아수는 다시 피크를 찍었다.
  14. 출생아가 90만명 이상인 마지막 해
  15. 출생아가 80만명 이상인 마지막 해
  16. 인구대체수준을 처음으로 밑돌았다. 그리고 30년 넘도록 다시는 넘기지 못하고 있다.
  17. 처음으로 2.0명 아래로 떨어졌다. 문제는 지금까지도 출산율이 2.0명을 못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캠페인을 펼친걸 보면 희대의 삽질이다
  18. 1980년대 사상최저치 기록. 이 기록은 약 10년이 지나서 깨지게 된다.
  19. 태어난 출생아들의 성비불균형이 가장 극심했던 해다.(남아 116.5:여아 100) 백말띠 여자는 남편 잡아먹는다라는 일본의 속설이 당시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20. 91-95년까지가 베이비붐 2세들이 태어난 세대다.
  21. 90년대생 베이비붐 세대들의 출산이 정점에 이른 해이다. 그 이유는 남자 30세, 여자 25세 기준으로 하면 62년생은 86만 명의 절반이 조금 넘는 43~44만 명, 67년생은 99만 명의 절반이 조금 안되는 48~49만 명 정도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22. 출생아가 70만명 이상인 마지막 해
  23. 산아제한 정책을 공식적으로 폐지한 해다.[1] 출산율을 1.7에서 2.1명 사이로 유지하겠다고 전제였지만, 문제는 경제위기로 인해... 다시 망했어요, 그리고 1985년부터 이어져 온 남초 광풍의 마지막 해다. 1995년생의 성비는 113.2:100, 1996년생의 성비는 111.5:100으로 역시 비정상이다. 1997년이 되어서야 108.3:100으로 110:100 밑으로 내려왔다.
  24. 현재까지는 출생아가 60만명 이상인 마지막 해
  25. 일명 밀레니엄 베이비. 2000년이라는 임팩트 때문에 일시적으로 신생아 수가 급증했다. 그렇지만 당초 예상인 70만에 비하면 낮은편
  26. 현재까지는 출생아가 50만명 이상인 마지막 해,이 해 다음부터는 보다시피 50만명 이상으로 애를 낳지 않고 있다.
  27. 이때부터 출산율이 1.3명미만이 되면서, 초저출산 국가로 진입했다. 정확한 출산율은 1.297명이다.
  28. 본격적으로 출산장려 정책을 펴기 시작한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29. 광복 이후 역사상 최저치 일명 1.08세대, 공교롭게도 일본도 2005년에 1.26명으로 역대최저치를 기록했다(...) 2005년에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던 거냐
  30. 황금돼지해에 태어난 출생아들은 "재물복을 타고난다"는 근거없는 속설이 나돌아서 출산율이 급상승했다. [2]
  31. 8년만에 초 저출산 라인을 탈출했지만, 이것도 잠깐이었고 이듬해인 2013년에 초 저출산 라인으로 다시 진입했다.
  32. 7월까지의 출생아 수가 위에도 링크로 걸려있지만 24만 9천여명이었는데, 아마도 올해 출생아수가 40만선이 위협받거나 2005년보다도 낮은 출생아수가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