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러스 베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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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glas Bader. 1910~1982
이름과 사진을 보고 어둠의 기운이 느껴진다면 기분탓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활약한 영국 공군에이스. 일명 '나무다리 에이스'로 유명하다. 공인 격추수는 31기.

나중에 절친한 친구가 되는 아돌프 갈란트[1]와는 달리, "탈출하는 독일놈도 쏴버려라."고 외쳤을 정도의 싸움꾼이기도 하다.

많은 공군 조종사들이 그랬듯이, 그 역시 하늘을 동경해서 공군에 입대했다. 그러나 조종사로 임관된 뒤에, 비행 도중 사고를 당해서 양 다리를 잘라내야했고, 결국 공군에서 의병 제대를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비행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던 베이더는 불리한 신체 조건에도 불구라고 근성과 각고의 노력 끝에 2차 대전이 벌어지자 사람 수가 절대적으로 모자랐던 공군의 상황과 동기들의 도움으로 제12전투비행단의 한 비행 중대의 중대장으로 현역에 복귀한다.

그러나 그를 맞이한 중대원들은 연일 독일 공군한테 깨지고 있었던데다가 새 지휘관이라는 사람이 양 다리에 의족을 달고 있는 걸 보고서는 '보나마나 책상 앞에서 잔소리나 늘어놓겠구만…….'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 부하들을 본 베이더는 부대에 도착하자마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허리케인 하나를 끌고는 30분동안 곡예비행을 펼쳐보였다고 한다. 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광경을 본 중대원들은 그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굳은 신뢰를 보였다고 한다.

베이더의 부대는 일명 '덕스포드 비행단'으로 불렸는데, 그 유명한 대편대 전술을 제안한 사람도 베이더였다. 그는 압도적인 숫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적군을 상대로 10여기도 안되는 전투기로 요격해야한다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충분한 숫자를 모은 뒤에 요격에 나서면 훨씬 많은 전과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 말을 들은 트래퍼드 리맬러리 중장은 옳다구나 해서 그 전술을 채택하지만…, 문제는 12전투비행단의 임무는 적 전투기 요격이 아니라 11전투비행단의 본진을 지킨다는 점에서 문제가 속출하게 된다. 그러나 윈스턴 처칠의 도발에 넘어간 헤르만 괴링의 대삽질로 인해서 대편대 전술은 엄청난 전과를 거두게 되고, 훗날 독일 공군의 몰락에 상당한 기여를 하게된다.

그러나 단순히 대편대전술을 비판할수 없는건 12전투비행단은 대부분의 전투기가 허리케인이면 좋은편이고 후방포탑달린 디파이언트나 2인승 전투/공격/정찰기 파이어 플라이 같은 요상한 놈들이 주력인 비행단이라 동수로는 독일 전투기에 상대가 되질 않아서 대편대 전술을 쓸수밖에 없기도 했다. 물론 덕분에 계속 본진이 털리고 있었던 11 비행단 입장에서는 충분히 짜증날 상황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영국 본토 항공전이 끝난 뒤에 독일 영토에서 벌어진 공중전에서 베이더는 적기에 격추당했고, 당연히 포로가 되었다. 이때 베이더를 격추시킨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2] 그는 자신이 어느 이름없는 조종사한테 격추당했다는 생각에 상당히 침울해져 있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아돌프 갈란트는 베이더에게 다가가서 "귀관을 격추시킨 사람은 납니다."라고 말했다.[3]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두 사람은 "Bf109를 한번만이라도 몰게 해주면 원이 없겠네." "그걸 타고 뭘 하게? 영국으로 날아가려고 그러지? 내가 자네를 또 쏴야 되겠나?" 하는 농담까지 주고받는 친구가 되었다.

또한 격추될 때 탈출하다가 의족이 부서지자 "님, 난 영국제 의족 말고는 달 수가 없음."하자[4] 갈란트가 상부에 요청해 괴링이 특별히 허가해서 영국측에서 의족을 보내주기로 했다. 독일군은 이 의족을 싣고 오는 모스키토를 절대 격추하지 말 것을 명령받았으나 정작 저 모스키토의 조종사들은 의족을 투하하자 마자 활주로에 폭탄을 뿌려놓고 도망가 버렸다고.[5] 그리고 베이더 자신도 의족을 받자마자 며칠만에 탈옥을 시도하고 몇 번이고 탈옥을 시도해서 의족을 뺏길 뻔 하기도 했단다(....)

이런 그의 투사 기질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자신이 갇혀있던 수용소(위에서 말했듯이 하도 탈옥시도가 많아서 오래된 성을 개조한 탈출하기 힘든 수용소에 갇혀 있었다고 한다)가 연합군에 의해서 해방되자마자, "나한테 스핏파이어를 주시오!"라고 외쳤던 일화에서도 드러나있다. 하지만 이미 전쟁이 다 끝나가는 마당이었기 때문에 영국 공군은 그를 후방의 비행교관이자 홍보 인사로 발령했고, 후방에서 종전을 맞았다.

하지만 이 화끈한 투사 양반도 결국에는 모에선을 맞아 스트라이크 위치스 외전에서는 성격도 비슷한 "돌로레스 베이더"가 되셨다.이름이 왜 하필 저따위냐

  1. 독일군 에이스 파일럿
  2. 아군 오사로 격추되었다는게 유력하다.
  3. 책에 따라서는 "자네를 격추한 자는 숙련된 고참장교로 확인됐다." 라고 위로했다는 설도 있다.
  4.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의 "Air Ace"에선 독일 파일럿의 입으로 당시 독일엔 제대로 된 의족만드는 곳이 없었다는 말도 한다. 확인바람
  5. 이 소식을 들은 갈란트는 '이런 신사협정도 안 통하는 친구들 같으니라고.' 라고 투덜거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