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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데이비드 레터맨 (David Letterman) |
본명 | 데이비드 마이클 레터맨 (David Michael Letterman) |
국적 | 미국 |
출생 | 1947년 4월 12일, 인디애나 주 인디애나폴리스 |
직업 | 코미디언 |
활동 | 1970년 – 2015년 |
학력 | 볼주립대학교 학사 |
신장 | 188cm |
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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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前 심야 토크쇼 호스트.
NBC의 지미 팰런, ABC의 지미 키멜, TBS의 코난 오브라이언과 함께 현시대 미국을 대표하는 쇼호스트. 정확히는 1980년부터 쇼를 시작했고 80년대 후반에 이미 NBC에서 2인자격 호스트였으므로 90년대에 와서야 쇼를 시작한 코난이나 지미 키멜과는 세대가 다르다고 보는게 맞다.[1][2] 1982년 이후 무려 33년동안 미국 공중파 Late Night 토크쇼 호스트로 활동한 초장수 MC이다. 하지만 은퇴할때 쯤에 문서가 등재되는 안습한
1947년 생으로 전설적인 쇼호스트 조니 카슨의 다음 세대를 대표한다. 1969년 기상 캐스터로 방송에 입문하여 1975년 LA로 이주해 서부지역에서 활동하다가 1980년 NBC에 입사해 아침 토크쇼 The David Letterman Show를 진행하면서 명성을 올렸다. 2년 뒤인 1982년 레터맨의 인기가 괜찮다고 여긴 NBC는 당시 조니 카슨이 진행하던 자사의 프랜차이즈 토크 프로그램인 NBC 투나잇 쇼의 뒷 차례인 레이트 쇼를 그에게 맡기면서 사실상 넘버2로 밀어주었다. 이때부터 레터맨이 CBS로 이적할 때까지 레이트 쇼는 'Late Show with David Letterman'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코난 오브라이언 항목에도 나와있는 조니 카슨의 은퇴를 계기로 발생한 1차 투나잇 쇼 전쟁으로 인해 데이비드 레터맨이 아닌 카슨의 사이드킥 제이 레노가 투나잇 쇼 호스트자리를 잇자, 뒤통수를 맞았다고 간주한 데이비드 레터맨은 자기 스태프를 이끌고 CBS로 이적한다. 그리고 1993년부터 투나잇 쇼의 시간대에 그의 대표프로인 Late Show with David Letterman를 런칭했고 이후 투나잇 쇼와 쌍벽을 이루는 미국의 대표적 토크쇼로 자리매김했다.그리고 CBS에게 떼돈을 안겨줬다
근데 이건 뭐죠[3]
이 쇼는 TV가이드가 선정한 위대한 50가지 텔레비전 프로그램 7위에 랭크됐다.
레터맨은 레이트쇼를 진행하기 시작한 82년 부터 지금까지 총 6028회 방송을 통해 1만9932명의 게스트를 맞았다.
2014년 4월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2015년 5월 20일에 마지막 쇼를 진행했고,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2015년 9월부터 새로운 Late Show가 진행되는데, 후임 진행자는 콜베어 리포트로 유명한 스티븐 콜베어.
1.1 레이트 쇼 위드 데이비드 레터맨
1993년 8월 30일 시작되었고, 레터맨의 제작사인 월드와이드 팬츠 인코퍼레이티드(Worldwide Pants Incorporated)가 제작한다. 폴 셰이퍼(Paul Shaffer)가 음악 감독 겸 하우스 밴드인 CBS 오케스트라[4]의 리더를 맡고 있으며, 메인 작가는 저스틴 스탠젤(Justin Stangel)과 에릭 스탠젤(Eric Stangel)이다. 1995년부터 성우 빌 웬델(Bill Wendell)이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하고 앨런 칼터(Alan Kalter)가 후임으로 교체돼 마지막 방송까지 레터맨과 함께했다.
레터맨 쇼는 레터맨의 영원한 동반자라 불리는 폴 셰이퍼가 토크 보조를 맡고 앨런 칼터는 프로그램 소개 및 진행보조를 담당한다.
레터맨 특유의 비꼬는 듯 예의차리는 토크가 이 쇼의 특징.[5] 간혹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한 출연자들과 의견이 안맞으면 말싸움도 불사한다. 나이가 들면서 말하기 보단 들어주는 쪽으로 토크쇼를 진행하며 간혹 폴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질문을 하거나 추임새를 넣어준다. 특히 밴드가 대화 상황에 따른 감정을 악기 소리로 표현해주기도 한다.[6]
유명 배우나 캐릭터(심슨이나 패밀리가이 같은)들이 관객에게 10가지 메시지를 전하는 파트가 있는데 마지막 방송에서는 레터맨의 가장 절친한 게스트인 빌 머레이와 크리스 락, 짐 캐리 등 인상깊었던 게스트 10명이 나와서 하나씩 남겼다. 또 스튜디오 건물과 주변은 전부 레터맨의 놀이터로 활용되는데 이렇게 스튜디오 밖에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행위는 다른 쇼들에도 여럿 영향을 끼쳤다. 퍼포먼스들 중 옥상에서 각종 물건을 떨어뜨리는 것이 가장 유명하며 똑같이 옥상에서 불꽃놀이를 하고, 입구 위의 테라스에서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스튜디오 바로 옆에 인도가 있어서 밖에 나가 각종 스포츠를 하거나 퍼포먼스를 하면 주변 사람들이 잔뜩 몰려든다. 심지어 길가에서 시빌워캐논을 쏜 적도 있다.
시청률은 95년 부터 시종일관 제이 레노의 투나잇 쇼에 밀렸지만 광고 수입만큼은 대등하거나 우위를 점했다. 특히 2009년의 광고 수입은 자그마치 2억7100만 달러로 평가돼 경쟁자 제이 레노를 1억 달러 앞서기도 했다.[7]
은퇴 방송 도입부에서 전대 대통령들[8] 과 현직 대통령인 오바마가 "길었던 국가적 악몽이 끝났습니다(A long national nightmare is over)."라고 소개했다.[9] 그리고 옆에 있던 레터맨은 시무룩 마지막 방송에 온 방청객들이 아쉬워하거나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자 레터맨 본인은 “부탁 좀 할게요. 제 장례식 몫으로도 좀 남겨둬야 하지 않겠나요?”라며 쿨하게 마무리 지었다.
2 기타
미국의 유명 배우이자 연출자 겸 코미디언인 루이스 C.K.가 젊었을 적, 그의 쇼에서 스텐드업을 하고 싶어서 면접을 봤지만 끝내 쇼에 올라가지 못했다. 대신 작가로 활동했다고 한다.[10]
걸그룹 소녀시대가 출연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레터맨 쇼의 최초 한국인 출연자는 소녀시대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배우 김윤진이 앞서 6년 전에 출연했다.
2014년 10월 8일에는 뉴욕에서 열렸던 '하츠네 미쿠 엑스포' 홍보차 하츠네 미쿠가 미국 방송 데뷔겸 직접 출연했다.
- ↑ 제이 레노 역시 정식 진행자를 맡은 것은 90년대에 들어서다.
- ↑ 가끔 토크 중에 지미 팰론의 이름을 기억 못하는 척 농담을 하는데 실제로 둘의 연배차이는 카슨과 레터맨의 차이 이상이다.
- ↑ 2010년 수퍼볼 레이트 쇼 광고영상. 나중에 레터맨이 쇼에서 해명(?)하기를 이때 원래는 투나잇 쇼 사태로 인해 nbc와 바이아웃한 코난을 부르려 했지만 코난이 거절했다고 한다
근데 결론이 왜 이렇게 되는거죠. - ↑ NBC에 있을 당시 원래 이름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밴드(World's Most Dangerous band)'였다.
- ↑ 코난이 방문해서 일상 얘기나 하고 가려는데 레터맨이 그가 NBC에서 쫓겨난 일을 잘됐다고 비꼬면서 코난을 계속 자극해 기어코 레노를 까게 만들었다. 그리고 레터맨은 희열에 차서 "그래 바로 이런 말을 듣고 싶었어!"라고 외쳤다.
- ↑ 이건 자니 카슨쇼 같은 고전 프로부터 유명했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레터맨 쇼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었다.
- ↑ 공교롭게도 2차 투나잇쇼 전쟁이 발생하기 바로 전으로 2009년 후반에 투나잇쇼와 레노의 쇼가 부진하고 있었다.
- ↑ 순서대로 제럴드 포드, 지미 카터,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빌 클린턴, 조지 워커 부시
- ↑ 이 대사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리처드 닉슨이 불명예퇴진하고 그를 대신해 대통령에 오른 제럴드 포드가 취임사에서 말한 명언이다.
- ↑ 후에 루이스가 회고하길 당시 오디션을 보러 가기 전에 레터맨이 겁을 엄청 줬다고 한다. 하도 겁을 먹은 그는 코난을 대동해서 면접을 보러갔고 결과는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