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로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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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 Aerial Toll-Houses
러시아어 : Мытарства
우크라이나어 : Митарства

1 개요

이 문서는 정교회의 일부 교회들과 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 사후의 상태에 관한 믿음에 대해 다룬다. 이러한 내용이 전체 정교회에서 교리로 굳어진 것은 아니며 하물며 '델로니아'(방벽)라는 이름 역시 설명을 위한 단어일 뿐 어떠한 교리의 이름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

사실 정교회에서 보편적인 믿을 교리로 지정한 것은 정말 기초적 교리 외에는 그다지 없다. 단지 많은 정교회 신자들 사이에서 초대 교회 시절부터 전해져 내려와 널리 믿어진 믿음일 뿐. 사실 정교회 뿐만 아니라 가톨릭을 포함한 사도전승 교회들은 교회 내에 널리 퍼진 믿음이라고 해서 굳이 교리로 삼기보다는, 여기에 대해 이단 시비가 걸리거나 신학적 분쟁 또는 다른 사정이 발생했을 때 비로소 이를 긍정/부정하여 확정하는 것이 기본이다. 가톨릭에서 아무리 짧게 잡아도 수백년 전부터 존재한 성모승천 같은 믿음이 1945년에서야 비로소 확정적으로 교리로 선포한 것도 이런 사정에 의한 것.

2 이름

델로니아의 정의는 히브리 민족의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며 오늘날에는 하늘로 올라가기 위한 영혼을 방해하는 방벽들을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되어 사용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이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을때에 도시 중앙길에 델로니아가 있어 그 곳을 지나가는 유대인들은 통행료를 내야만 했었다. 마치 오늘날 고속도로를 가려고 할 때 요금을 내는 징수소 같은 곳이었다.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는 "죽은 이후 영혼이 만나는 대기권에 있는 고통의 장소"로 표현하고 있다. 그 밖에 이집트의 성 마카리오와 그리고 성 요한 클리마코 등 많은 성인들이 여기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다. 사람이 죽음을 당한 직후 죽은 이의 영혼을 위하여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과 장례식 그리고 미사/성찬예배는 영혼이 델로니아를 지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는 "사람이 죽은 뒤 육체로부터 분리된 영혼은 그의 앞에 그를 데려가기 위한 하느님의 천사들과 그의 행적에 대해 비난하는 악마들이 서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을 본 영혼은 악마들이 무섭고 두려워 하느님의 천사들에게 보호를 요청한다. 그러면 천사들은 영혼을 그들의 보호 속에 높은 곳으로 데리고 올라간다. 그러나 영혼은 대기권을 지나면서 하늘로 가기 위한 길을 방해하는 델로니아를 만나게 된다. 각 델로니아는 영혼에게 죄에 대한 댓가를 요구한다. 그러므로 델로니아를 지나기 위하여 교회는 그리스도인이 죽은 후 매우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3 노자성체와 델로니아

죽음 직전에 성체성혈을 영하며 죽은 이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는 어떤 사건을 통해서 알 수가 있다. 그 사건은 라부라에 위치한 성 세르기오스와 성삼위의 수도원장인 안토니오스 신부의 삶에서 있었다.

안토니오스 신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가 라부라에 있는 성 세르지오와 성삼위의 수도원에 왔을때 약간의 수도자들이 있었고 부제는 한 명도 없었다. 수도원장으로 부임한 얼마 후에 어떤 교구에서 부제 한명이 왔고 그는 다른 수사들과 잘 어울렸다. 그는 좋은 목소리를 갖고 있었고 수도원에서 보조자로서 봉사하였다. 수도원의 축일이 있기 몇일 전 부제는 수도원장 안토니오에게 집에 일이 있어 갔다올 수 있도록 요청하였다.

그 요청을 들은 수도원장은 갔다 오라고 허락하며 다시 말하였다.

"그러나 축일에 맞추어 도착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누구와 같이 성찬예배를 집전할 수 있는가?" 그러자 부제는 "축일에 맞추어 도착하겠습니다. 빨리 돌아 오도록 하겠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축일 아침까지도 부제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수도원장은 매우 초조하였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미사가 시작되어 얼마가 지나자 부제가 도착하였고 그를 본 수도원장은 그에게 준비가 되었으면 성찬예배를 같이 집전하자고 말하였다.

성찬예배가 끝난 후 식사를 함께 하면서 어떤 수사가 부제의 목소리에 대해 "누군가가 집에 가서 그의 목소리를 두고 왔다." 하며 오늘은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고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 부제는 신경이 예민해졌고 그들 사이에는 다툼이 오고 갔다.

그러고 난 후 부제는 그의 거처로 돌아가 물통을 들고 물을 길러갔다. 그러나 그는 통에 물을 가득히 채우고 그의 거처로 돌아와 문을 열자마자 갑자기 땅에 쓰러져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이 소식을 들은 안토니오스 수도원장은 매우 당황하였다. 왜냐하면 그가 부제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부제가 축일 전에 도착하라는 명을 듣고 급히 와서 성찬예배에 참여하여 고생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수도원장은 죽은 부제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하였고 모든 지역에 이 소식을 전하여 성찬예배에서 그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글을 써서 보냈다.

그가 죽은 지 사십일째 되는 날 안토니오 수도원장이 그의 방에서 잠깐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그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그는 벌떡 일어나서 불을 켰고 그의 앞에 부제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당신께 감사드리러 왔습니다."하고 부제는 말하였다.

안토니오스 : "왜지?"

부제 : "당신이 나를 위해 기도해 주셨기 때문이지요."

안토니오스 : "나만 기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수사들이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너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모든 곳에 너의 이름을 적어 보냈다."

부제 : "내 이름은 어느 곳에도 기록되지 않았고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해 주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수도원장은 누군가의 실수로 인하여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안토니오스 : "델로니아'를 어떻게 통과했느냐?"

부제 : "마치 번개와 같이 통과하였습니다."번개같이 통과해도 40일, 그냥 통과해도 40일

안토니오스 : "어떻게 그렇게 통과할 수가 있었지?"

부제 : "왜냐하면 죽기 전에 성찬예배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영접하였기 때문입니다."

안토니오스 : "식사할 때에 다른 수도자와 다툰 것에 대하여는 어떻게 되었는가?"

부제 : "주님께서 그것에 대하여는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때에 다른 수녀원에서 수녀 한 명이 죽음을 당하였는데 수도원장은 부제에게 그녀는 어떤 상급을 받았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녀는 저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습니다."하며 부제는 대답하였고 수도원장의 환시는 여기에서 끝났다.

4 가톨릭의 연옥과의 비교

일부 정교회 신자들은 가톨릭의 연옥은 성경에도 안 나오고, 거룩한 전승에도 의거하지 않은 지극한 합리를 추구하는 전형적인 로마적 사고에 의해 만들어진 거짓 교리라는 주장을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애초에 이 둘 다 서로가 자신의 교리를 구약의 마카베오서에서 증거한다고 한다. 사실상 이 두 교리의 차이는 연옥은 심하면 최후의 심판 때까지[1] 연옥에 갇혀 있을 수도 있다는 것과 델로니아는 길고 짧고 그런 거 없이 머무는 기간이 무조건 40일이라는 점이다. 기간 때문에 연옥이 훨씬 더 가혹해 보인다 이 점만 제외하고는 연미사(죽은 이들을 위한 미사)와 산 이들이 바치는 기도가 죽은 이에게 크게 도움이 된다는 점 그리고 둘 다 생전의 용서받지 못한 벌 때문에 존재한다는 점에서는 교리가 같다.

동서 대분열 이전부터 동서방 양대 교회에서 죽음 이후 천국 또는 지옥에 다다르기 전에 일종의 '정화'를 위한 중간 상태가 있다는 믿음은 널리 퍼져 있었다. 서방 교회가 갈라지고 난 이후인 12세기부터 서방 교회가 독자적으로 연옥이라는 이름으로 이 믿음을 발전시켜 교리화한 것일 뿐.

정교회에서는 죽은 이를 위한 기도가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말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기권의 통행세 같은 믿음은 믿음일 뿐, 교리가 아니다.[2]

5 관련항목

  1. 중요한 사실은 최후의 심판이 언제 올지는 하느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른다. 빠르면 지금 당장 올 수도 있고, 늦으면 수억만 년 후에야 올 수도 있다는 것.
  2. 이런 식의 곡해가 있어서 다시금 강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