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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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종파
칼케돈파비 칼케돈파 기타 종파
서방교회동방교회
가톨릭 (Ecclesia Catholica) 개신교(Ecclesia Reformata) 정교회(Ecclesia Orthodoxa) 오리엔트 정교회


언어별 명칭
그리스어Ἠ Ὀρθόδοξη Ἐκκλησία
(I Orthódoxi Ekklisía)
라틴어Ecclesiae Orthodoxae
러시아어Православие Церковь
(Pravoslávnaye Tsérkov')
루마니아어Biserica Ortodoxă
벨라루스어Праваслаўная Царква
(Pravaslaŭnaja Carkva)
불가리아어Православна Църква
(Pravoslavna Tsărkova)
세르비아어Православна црква
(Pravoslavna crkva)
아랍어الْمَسِيحِيِّة الْأرْثُوذُكْسِيِّة
(al-masīḥiyyah al-’urthūdhuksiyyah)
우크라이나어Православна Церква
(Pravoslávna Tsérkva)
조지아어მართლმადიდებელ ეკლესია
(Mart'lmadidebel Eklesia)
터키어Ortodoks Kilisesi
영어Orthodox Church
한자正敎會
일본어正教会(せいきょうかい)
에스페란토Ortodoksa Preĝe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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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종파 중 하나. 가톨릭과 함께 양대 보편교회를 이루며 이 두 종파는 서로를 그리스도교 초대교회의 유이한 직계후손으로 공인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힐때 머리 위의 '유다인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썼던 명패와 발을 고정시키기 위한 발판을 추가한 십자가를 쓴다.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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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함께 양대 보편교회를 이루며, 11세기의 동서대분열과 그후 종교개혁 등으로 가톨릭, 개신교 등의 서방 교회가 많은 변화를 겪자 이들에 비해 자신들은 변치 않는 정통성을 지키고 있다는 뜻으로 정교회라 한다.[1] 정교회의 전례는 초대교회와 비잔티움 제국 시대로부터 거의 변화가 없다. 다만 제국 양식의 화려한 전례는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 시기에 더 이상 유지할 수가 없어 사멸하였고, 수도원에서 이루어지던 상대적으로 간소한 전례만이 남았다.[2][3] 정교회와 가톨릭은 서로 간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로 인정하는데, 정교회는 정통성을 더 강조하고 가톨릭은 보편성을 더 강조할 뿐이다.[4]

이 두 보편교회들은 자기들 외의 다른 기독교 교단은 모두 분열되어 나간 교회라는 뜻의 '열교' 또는 '교회적 공동체'로만 언급하고 있다. 삼성직의 성직체계를 갖춘 보편교회와 달리 만인사제설을 주장하여 사도전승의 주교제와 그에 딸린 하위 2성직을 거부하는 개신교들은 완전한 교회의 구조를 이루고 있지 못하다고 보기 때문에 한 지붕 아래의 그리스도인이긴 하되,교회로는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단, 가톨릭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개신교에 대해 '열교'라는 명칭을 자제하고 '갈라진 형제'라는 표현으로 포용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정교회 신자들은 자신들이 서구의 가톨릭이나 개신교보다 이슬람과 맞서 싸우거나, 이슬람 지배 아래에 있었으면서도 신앙을 지켰다는 자부심이 있고, 서방 교회는 동방 교회가 자신들을 이슬람의 칼날과 정면대치 하는 것을 막아준 것을 인정한다.[5]

옛 교회의 본산인 콘스탄티노폴리스(현재의 이스탄불)나 다른 총대교구들은 비잔티움 제국이 오스만 제국에게 멸망하면서 전부 이슬람권에 넘어갔다. 현실적 교세로는 가톨릭에 밀리는 편이나[6], 형식적으로는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최소한 서방에서는) 정교회가 스스로를 칭할 때 Orthodox(Ορθοδοξία)라고 하기 보다 Ecumenical Church(ΗΟικουμενική Εκκλησία)라고 칭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정교회는 엄밀히 말해 교회가 아니라 그냥 교회다.[7] 정교회는 초대 교회의 교회 개념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며, 그 개념이란 η οικουμενική εκκλησία[8]이란 말 그대로 '세상 만국의, 불러모인 신자들의 공동체', 즉 교회다. 본디 가톨릭과 정교회는 한 몸이었고, 동서대분열 이전에는 세계에 단 하나의 교회만이 있었다. 동서 대분열이 없었다면 (Ορθοδοξία)교회란 말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자신들이야말로 기독교의 정통이라고 확신하기에 가질 수 있는 자부심 넘치는 간판이다.[9][10]

총대주교는 그리스어로는 πατριάρχης(파트리아르히스), 영어로는 Patriarch라고 하며, 뜻은 파트로네스(아버지와 같은 지도자)다. 가톨릭의 교황(라틴어로는 Papa[11])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란 뜻이며, 로마 제국에 있었던 파트로네스 개념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총대주교란 표현은 원어와 좀 많이 동 떨어젔다. 가톨릭의 주교와는 달리, 정교회는 초대교회에서 생성된 개념을 그대로 달아두었기 때문에 한국어로 번역하면 뜻이 좀 많이 빠져버린다. 마찬가지로 세계 총대주교도 에큐메니컬의 다소 모호한 뜻이 빠져버리기 때문에 완전하게 번역할 수는 없다. 세계 총대주교는 대략 세상 만국에서 불러모여진 신자들의 아버지(겸 파트로네스[12])인 것이다.

실시간으로 쉴 새 없이 지성의 발전에 따라 두들겨 맞은 가톨릭이나, 그 사이 올라와서 나름의 포지션을 잡은 개신교와 다르게 현대 서구 문명의 영향권을 벗어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저 두 종교에 비하면 해당 사회 내에서는 종교적 영향력이 더 강하다.[13] 사회 발전 대신 치고받은 이슬람교와 비슷한 정도. 정교회가 이토록 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강한 이유는 가톨릭의 부패를 비판하며 시작된 개신교와의 분쟁 등 서방의 가톨릭 교회에 비하여 정교회권에선 교회에 대한 비판이 적고, 정치적으로 세속 군주하고 다툴 일이 별로 없으며,[14] 무엇보다도 정교회 특유의 "독립 교회"(Αυτοκεφαλία, Autocephaly) 구조의 영향이 크다.

정교회는 여러 교회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규모가 커진 교회는 각 나라별로 "독립"된 교회로 위치가 승격하게 되어 있다. 옛날 초대 교회의 구조를 꽤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지금은 문화권을 따라서 독립 교회들이 있는 경향이 크지만, 옛날에는 아예 나라마다 교회가 따로따로 있었다. 따라서 각 지역들이 가톨릭에 비해 훨씬 적은 통제하에 알아서 교회를 꾸려나가기 때문에 각 지역의 문화 그 자체인 것이 정교회다.[15] 이 영향력은 중세 때 서방세계에서 가톨릭이 가지는 입지의 그것을 방불케 할 정도다. 러시아 정교회는 러시아 문화 그 자체이며, 그리스 정교회도 그리스 문화 그 자체이고, 기타 비 칼케돈파 정교회 계열 교회들도 마찬가지다.[16]

그 외 콥트 정교회시리아 정교회 등 단성론적 교리를 가진 오리엔트 정교회아시리아 동방교회네스토리우스파 교회들도 위치관계상 정교회의 영향을 받는 구조라서, 로마 가톨릭보다는 정교회와 모습이 유사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네스토리우스파 및 단성론 교리를 유지하는 오리엔트 정교회와는 다르다. 이들 초기 분리교회는 공의회에서 의견차로 갈려 나갔기 때문에 정교회라는 명칭을 쓸 수 없지만, 자신들이 정통이라는 논지로 정교회를 자처한다. 간혹 이들의 이름 때문에 정교회에서 갈라져나왔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엄밀한 의미에서는 '초대교회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하는 것이 옳다. 물론 초대교회는 가톨릭의 역사이면서 정교회의 역사이므로 이렇게 표현해도 틀린 건 아니지만(...)[17]

2 역사

2.1 분리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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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가톨릭과 하나의 교회였지만, 초대 교회의 다섯 총대주교구(로마, 콘스탄티노폴리스,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들 중 동방의 세 총대주교구(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가 이슬람의 세력권하에 들어감으로써 콘스탄티노폴리스가 2강으로 부상했다.

이때부터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는 '세계 총대주교'를 자칭했고, 그것을 본 로마 교황은 '하느님의 종들의 종'을 자처했다. 그 이후로 계속 뭔가 거창한 타이틀이 계속 덕지덕지 붙어가기 시작하는데,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아무튼, 이 두 총대주교들이 관할하는 교회들이 지금의 정교회와 가톨릭의 시초다.

두 교회는 중세 초의 혼란기에는 서로 협력하고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시대가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그리스적인 동방과 라틴-게르만적 서방의 이질적인 정체성과 국제 정치 알력 등으로 점점 사이가 멀어졌다. 또한 로마 교황은 서열 1위에 전 서방을 모두 관할하는 만큼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서로마의 몰락 이후 지중해 세계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는 그리스-오리엔트였기에 원래는 4위였던 콘스탄티노플 교구가 2위로 올라선데다 로마와 경쟁하는 양대 교회로 성장한 사태가 발생해버린 것.[18] 그 이후 성상파괴설과 삼위일체론 등 신학적 문제, 그리고 현실적인 세력권 문제로 격하게 치고받고 싸웠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가 허수아비로 전락한 다른 세 총대주교들의[19] 서명을 받아 로마 교황에게 파문장을 날리거나, 교황이 로마 교구 휘하의 주교들만이 참석한 시노드를 열어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를 파문하거나. 물론 파문당한 장본인들은 서로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 이후 러시아는 '제3의 로마'를 자처하였다. 같은 시기 오스만의 통치를 받는 그리스와 발칸 반도에서는 제한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누렸다.

오스만 제국 내에서는 19세기 중반부터 교회의 독립 운동이 시작되는데, 1833년 그리스 정교회가 독립한 것을 시작으로 1879년 세르비아, 1885년 루마니아, 1860년 불가리아 정교회가 독립 교회가 되었다. 이러한 국가별 독립 정교회의 형성은 20세기로 이어져 1917년 조지아 정교회가 독립 교회가 되었다.

2.2 분열과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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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그러다 결국 1054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미카엘 체룰라리우스와 로마의 사절단의 상호 파문으로 최종적으로 두 교회가 분열되었다. 이는 비잔티움 제국의 특이한 상황과 남부 이탈리아에서의 엇갈리는 이권에서 기인하였다. 전통적으로 비잔티움 황제는 너무나 거대하고 강력한 자국의 교회를 견제하기 위해 항상 로마와 제휴하곤 했다. 11세기 비잔티움 제국은 내부의 세력 다툼으로 약해져 있는 상태였고, 황제의 권력 또한 매우 약해져 총대주교의 권력이 황제를 압도할 정도로 강해져 가고 있었다. 따라서 당시 황제였던 미카일 7세는 로마 교황에게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를 찍어눌러달라는 의미의 서한을 보냈다. 당시의 교황 레오 3세는 즉각 황제의 요구에 부임하여 로마 교회에서 가장 완고하며 호전적인 세 추기경을 사절로 보내 공의회를 개최하도록 했다.

그러나 당시 총대주교였던 미카일 케룰라리오스 또한 만만치 않은 인물로, 황제를 구워삶아 황제로 하여금 로마 추기경들을 오히려 적대하게 했다. 11세기에 노르만인들은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를 정복하여 이곳의 정교 교구를 강제로 교황에게 복속시켰는데, 이를 구실로 삼아 오히려 교황을 비난하게 한 것이다. 이 기간 중 내내 격렬한 논쟁이 오갔으며 양자간 합의는 없었다. 결국 열이 단단히 뻗친 3명의 추기경들은 어느날 밤 성 소피아 대성당의 제단 위에 총대주교에 대한 파문장을 올려놓고 로마로 떠나버렸다. 다음날 아침 이것을 보고 격노한 총대주교는 그 세명을 파문하고 로마 교황의 이름을 제단에서 지워버렸다. 당시 동서 교회간의 파문 사건들은 위에 말했듯 무척이나 빈번했지만, 이번 사건은 꽤나 양측이 격노할 만한 일이었기에 학자들은 이 날 이후로 동서 교회가 최종적으로 분열되었다고 본다. 재밌는 점은, 당대인들은 이 사건들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동서교회 간의 불화와 분리가 놀랍지 않은 일이었다.

이후 교회 분열은 십자군 전쟁 시기에 더욱 심화되었다. 비잔티움 제국은 1차 십자군 때부터 십자군들과 갈등을 빚었다. 1차 십자군은 체계적인 통제가 안되는 집단이었기 때문에, 비잔티움 제국 내에서 약탈을 벌이는 집단들이 있었으며, 이들과 전투를 벌인 것은 사실이다. 이 외에 정치적 문제, 예를 들면 수복한 지역의 영유권 문제 등에 의해 십자군 지도자들과 긴장관계에 있기는 했다. 물론 대체로 비잔티움 황제와 십자군 지도자들과는 충성서약을 맺는 등 적대관계는 아니었다.

하지만 비잔티움 제국은 십자군이 기대했던 전폭적인 지원(병력과 물자지원)을 제공하지 않았고 좀 심하게 말하면 제국은 십자군을 장기판의 말로 취급했다. 결국 제국군이 위기에 빠진 십자군을 돕지 않고, 십자군이 제국에 반환하기로 한 영토를 반환하지 않으면서 양측은 적대적인 관계가 되었다. 이 때문에 십자군과 비잔티움 제국 간의 사이에는 깊은 골이 파이게 되었다. 이 불신은 제4차 십자군 전쟁 중 일어난 1204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으로 이어졌고, 이후 동방과 서방은 돌이킬 수 없는 불화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리스의 한 역사가는 서방에서 온 십자가 든 악마보다는 차라리 동방에서 온 초승달 괴물이 훨씬 낫다고 기록할 정도였다.

십자군 이후로도 많은 신학적 차이들이 발생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14세기의 수도자 그레고리오스 팔라마스가 주창한 헤시카즘이다. 헤시카즘은 인간의 이성으로 신을 이해하자는 골자의 당시 서방 신학 주류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이론이다. 이는 간단히 말해 인간의 인지능력으로는 하느님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전제 아래에 논리적인 생각을 거부하고, 단순한 기도와 묵상을 통해 하느님을 영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평신도들에게는 호응을 얻었으나, 당연하게도 당대의 지식인들과 신학자들에게 큰 반발을 샀다. 헤시카즘은 고대 그리스부터 이어진 학문적 전통상 받아들이기에 매우 불쾌한 것이었고, 결국 팔라마스는 교회에 의해 파문되었다. 하지만 그의 사상은 당시 비잔티움 제국 내부의 정치적 투쟁에 이용되었고, 결국에는 세력의 방향추가 돌아가 교회가 팔라마스의 파문을 철회하고 헤시카즘을 정식 교리로 인정하게 되었다. 이로써 삼위일체론 이외에도 서방과 동방의 신학에 큰 괴리가 생겨났다.

15세기 초반에는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들이 멸망 직전의 국가를 구하기 위해 교황에 굴복하였다. 당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는 피렌체 공의회 이후로 교황의 수위권을 따를 것을 선언하였으나, 전체 정교 세계에서 극심한 반발이 있었고 이를 인정하는 국가는 도시국가 수준으로 전락한 비잔티움 제국 뿐이었다. 하지만 동방교회 내에서도 반발이 대단해서 황제 따라간 통합 찬성파 일부는 돌아가면 맞아죽을까봐 이탈리아에 눌러앉았다. 이들 성직자들과 학자들은 르네상스의 촉진제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예컨대 그리스 출신의 베사리온 추기경이 베네치아에 기증한 장서가 교황청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던 장서의 수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어쨌든 결국 정교에서는 당시의 총대주교가 사임하고 10년도 되지 않아 피렌체 공의회의 결정을 무효화하였다.

비잔티움 제국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는 외교적 목적으로 다시 교회 통합을 선언했지만 교회 통합은 말뿐이었고, 실질적으로는 제국을 친통합파와 반통합파로 분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21]. 거기에 동유럽의 정교권이 반발하여 정교 측에서도 각 교회 간 연결이 크게 약해지게 되었다.

2.3 근세의 정교회

1589년, 러시아 정교회는 모스크바 총대주교좌를 설립하고 , 1922년 알바니아 정교회가 독립 교회가 되었다. 이러한 독립 교회의 형성은 근세의 민족주의 바람과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어 그리스는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한 후 정교회 신앙을 바탕으로 민족 국가를 세웠다.

20세기 초, 러시아에서는 공산주의 혁명 이후 정교회 신앙이 탄압받았다. 러시아 정교회의 역사는 아래 문단에 별도로 서술한다.

2.4 현대의 정교회: 일치를 향해


20세기 후반, 가톨릭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열어 동방교회와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 기독교 세계의 양대 보편교회인 가톨릭과 정교회의 관계 개선이 크게 진전되었다. 1965년에 교회 분열 이후 911년 만에 교황 바오로 6세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아테나고라스가 예루살렘의 올리브 산에서 역사적인 만남을 이루었으며 1054년의 상호 파문을 철회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끝난 후 바오로 6세는 1967년 7월 터키를 방문, 이스탄불에서 아테나고라스와 다시 만났고, 그해 12월에는 아테나고라스가 처음으로 바티칸을 방문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특히 정교회와의 대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79년에는 이스탄불을 방문, 디미트리오스 1세 총대주교를 만난 것을 계기로 가톨릭-정교회 합동 위원회가 구성됐다. 교황은 또 1987년에는 디미트리오스 1세를 바티칸으로 초청한 데 이어 1995년 그 후임자인 바르톨로메오스 1세 총대주교를 초청했다. 교황이 루마니아(1999)를 비롯해 우크라이나와 아르메니아(2001)를 방문했을 때나 2000년 대희년을 맞아 시나이, 예루살렘, 시리아, 그리스를 순례했을 때 정교회와 고대 동방교회들과 일치가 주요 사안이었다. 특히 1995년에 발표한 회칙 「하나되게 하소서」는 교회 일치를 위한 교황의 염원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 문헌이다.

가톨릭교회와 정교회는 1978년 이후 해마다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에는 가톨릭 대표단이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좌가 있는 이스탄불을 방문하고,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에는 정교회 대표단이 로마를 방문하고 있다.

결국 2016년 2월에 러시아 정교회 키릴 총대주교와 프란치스코 교황이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회동(3시간 개별 면담)하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서로 포옹하면서 "마침내 (만났다)"라는 감탄사와 함께 "우리는 형제다"라며 서로의 볼에 세 차례 입맞춤하고서, 키릴 총대주교는 통역을 통해 "이제 상황이 잘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 성명에는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박해당하는 기독교인들의 어려움과 관련한 내용이 포함되었다.

3 러시아 정교회

3.1 개종

러시아 정교회의 경우 10세기에 키예프 대공국이 국교로 받아들였고 11세기 러시아 전역에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초기에는 비잔티움 제국에서 파견된 그리스인 수도대주교의 지도를 받았으나,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한 15세기를 기점으로 독자적인 대주교구를 가지게 되었다. 이후 로마노프 왕조 시대에 모스크바 대주교구가 총대주교구로 격상되었으며, 지금까지도 러시아인의 70% 가량이 믿고 있다.

키예프 러시아[22]에서 국교를 정할 당시 블라디미르[23] 공은[24] 정교회, 가톨릭, 이슬람교, 유대교 4개 중에서 선택하려고 했는데, 이슬람교는 돼지고기를 못 먹게 하니 아웃, 유대교는 블라디미르 공이 "왜 유대인이 선택받았다는데 당신네는 나라 없이 떠돌아 다닙니까?"라는 질문에 랍비가 아무 말 못해서 아웃[25]. 그래서 두 그리스도교가 남아서 두 쪽 다 사절을 보냈는데, 가톨릭 측 사절이 갔던 독일은 거의 암흑시대로서 야만족과 다름없는 안습이었기 때문에 아웃되었다. 반면 정교회 측에서는 휘황찬란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하기아 소피아에 데려가서 그 화려함에 당장 정교회를 선택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사실 그보다는 접근성과 당시 권력의 차이 문제가 있었다. 유대교로 개종했던(!) 하자르 칸국은 이 시절이면 쇠퇴하고 있었고, 러시아는 로마보다는 비잔티움과 훨씬 가까우며 당장 직접적인 무역루트나 영향력 면에서 여러모로 정교회를 택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예를 들어, 당대 러시아의 중심지였던 키예프에서 드네프르 강을 타고 내려와 흑해에 이르면 비잔티움 제국의 크림 반도 거점이던 케르손에 도착할 수 있고, 다시 거기서 배를 타고 흑해를 건너면 콘스탄티노플에 이르게 된다. 반면 당시 가톨릭의 중심지인 독일 지방이나 이탈리아 및 이슬람 중동권은 거리도 멀고 육상교통로에 의존해야 했다. 수상 운송이 육상 운송보다 훨씬 효율적임을 생각하면 어느 쪽이 더 우수한 교역 파트너인지는 뻔한 것.

게다가 러시아의 개종 당시 지지리도 가난하고 분열되어 있던 서유럽에 비해 비잔티움 제국은 강력한 통일 국가로써 사절들이 와서 구경한 뒤 "그리스 애들이 하느님을 섬기는 데에 가봤는데요...엄청 멋있어서 이 세상 같지 않았어요! 그렇게 대단한 데니까 분명히 하느님이 사실 거에요!"라고 보고할 정도로 엄청난 성당을 지을 정도로 부유하기까지 했다.

..다음으로 우리는 그리스로 가서, 그리스인들이 하느님을 예배하는 곳으로 안내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이 지상인지 천국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상에는 그러한 장려함이, 그러한 아름다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그 광경을 도대체 어떻게 형용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단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은 그곳에 하느님이 존재하며
그들의 예배가 다른 나라들의 의식보다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그 아름다움을 잊을 수 없습니다.
- 키예프 공국의 블라디미르 대공이 파견한 사절단이 하기아 소피아에 대해 남긴 기록.

당시의 종교는 정치와 사회 전 영역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었고, 특정 종교를 선택한다는 것은 곧 그 종교를 믿는 국가와 우호적 교류관계를 맺는 것이었음을 생각하면, 당시 러시아의 입장에서 어느 쪽이 더 매력적이었을지는 뻔한 것.

3.2 현대

정교회의 수장이었던 동로마가 무슬림에게 멸망한 뒤에는 식민지로 전락한 그리스 대신 남은 정교회 국가 중 가장 국력이 강한 나라로서 정교회의 수호자를 자처하기도 했다. 러시아라는 나라의 크기만큼 신자 수도 많지만, 소비에트 연방 당시 극심한 탄압을 받기도 하였다. 공산당은 정교회의 권위를 깨부수기 위해서 정교회 성인들의 무덤을 파헤치기도 했다. 정교회에선 일부 성인들의 유해가 썩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는데[26] 썩은 성인들의 시체를 보여주어 대중의 믿음을 공격하려 한 것이다. 근데 수백년 전에 죽은 시신들을 파냈는데도 전혀 썩지 않아 공산당원들이 하얗게 질리고 흥분한 군중들이 공산당원들을 돌림빵ang?하는 사태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대전스탈린나치 독일의 침략을 막는 데에 종교적 열의를 이용하기 위해[27] 다시 정교회 신앙을 부활시켰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위험한 곳에는 이콘을 갖다놓을 정도. 러시아의 도시전설에 의하면 스탈린이 꿈을 꾸다가 정교회가 부활되면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사실 스탈린은 남몰래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었다고 경호원들과 손녀가 증언했다.퍽이나 애초에 신학생 출신이기도 했고.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스탈린 치하에서 어느정도 정교회가 복원되기는 하지만, 다음에 집권하는 흐루쇼프의 탄압을 받았다. 그래도 소련 붕괴 시까지 민중들은 물론 공산당원조차도 정교회 신앙을 비밀리에 이어갔다. 대표적인 예가 소련 붕괴 후 교밍아웃을 한 정교인임을 드러낸 블라디미르 푸틴. 이 사람은 소련 비밀경찰기관인 KGB의 간부 출신이다! 그 외 수많은 소련 공산당원 출신 정치인들이 러시아 연방 독립후 자신들이 정교인임을 어필했다. 골수 무신론자는 극소수였다고 볼수 있다. 단 슬라브 3국(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와 달리 발트3국리투아니아를 제외한 나라들은 무신론자가 더 많다. 특히 에스토니아는 교회가 붕괴되어 버렸고 이웃 라트비아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두 나라는 정교회권이 아니라 개신교권이었던 나라이기도 하고.

소련이 붕괴된 이후에는 거의 국교화 되어, 보리스 옐친이나 블라디미르 푸틴은 성찬예배에도 자주 참여했다. 심지어 소련 공산당 후신인 러시아 연방 공산당 당수인 겐나디 쥬가노프도 교회에 예배 보러다니며 정교회 성직자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공산당 붕괴 이후 러시아에서는 아노미 상태에 빠진 국민들이 사이비 종교에 홀리는 예도 적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비로서 정교회를 밀어주는 정책이 강화되었다. 실제로 옴진리교가 한 때 러시아에서 크게 세력을 떨쳤으며 러시아인 신자들은 아사하라 쇼코 교주가 체포되자 무력으로 아사하라 교주를 탈환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소비에트 연방 몰락 이후 각 국가별 교회문제 때문에 대판 다투기도 하였다. 우크라이나 등 구 소련 영토 내의 교회는 각 국가의 교회이나 그 교회 건물의 소유권을 러시아 정교회가 소유하고 있었는데, 각 국가들의 독립 이후 러시아 정교회가 이를 바탕으로 수위권을 주장하면서 독립교회를 인정하지 않아 갈등을 빚고 있다.

러시아 정교회도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고 캄보디아에서 러시아 정교회의 사원이 열린데에 이어서 프랑스에서도 러시아 정교회의 사원이 열렸다.[#]

3.3 특징

러시아에서는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시점이 늦었기에 몇몇 이단적인 가르침들도 있었고 이것이 러시아의 민속 신앙과 어우러져서 상당히 미신적인 성향을 많이 보인다. 예를 들자면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은 전통적인 슬라브 신앙의 대지모신과 결합되었고, 이런 경향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에서도 나올만큼 대중적이다. 17세기의 대주교 니콘이 이를 바로잡기 위해 가톨릭과 그리스 정교회의 전례를 도입하여 교정 운동을 펼친 적도 있었지만, 오히려 교회가 심각하게 분열된 데다가 정치적 논리 때문에 만 잔뜩 보고 교회가 국가에 완전히 종속되는 결과를 빚었다. 심지어 황제가 총대주교를 임명하지 않아서 러시아 제국이 몰락할 때까지 약 250년 간 총대주교좌가 공석이었다. 이 구도는 러시아 제국이 해체되고 소련 시기까지도 계속되었다.

정교회에 소속된 교회중에는 제일 현지화가 많이 진행되었기에 차이점이 상당히 많다. 애초에 초대교회가 동서로 찢어진 사건 때문에 정교회 성직자들은 러시아 지역에 선교할때는 '닥치고 콘스탄티노폴리스와 일치!'를 외쳤으나, 이번엔 이 동네가 당시 서유럽보다 더한 깡촌이라서 망했어요. 결국 원조(?)와 좀 많이 달라지는 걸 피할 수 없었다. 슬라브 토속 신앙과의 융합을 피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으나 망했어요. 게다가 표트르 대제 때 러시아가 서유럽의 문화를 많이 받아들이면서 러시아 정교회에 가톨릭적 색체가 가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도 분쟁이 일어난 이유가 없었고, 또 이 지역 사람들의 신앙이 깊기도 한데다가 딱히 핵심 교리에서 변질되거나 한 것도 아니라서 교회가 분열해 버리는 사태는 다행히도 일어나지 않았다.


4 정교회의 총대주교구와 독립 교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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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달리 완전한 중앙통제가 아니라 그리스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 식으로 지역별로 분산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원래 독립 교구는 서열 상으로 로마, 콘스탄티노폴리스,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의 다섯 총대주교구 뿐이었으나 이후 다른 교구들이 독립적인 위치를 획득하면서 몇몇 교구가 총대주교좌로 격상되었다. 이 중 대표적인 경우가 모스크바 총대주교좌.

현재 정교회의 각 국가별 독립적 위치는 비잔티움 제국 시대에서 유래하였다. 슬라브족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는 과정에서 비잔티움 제국 정부가 불가리아, 러시아 등의 슬라브족 교구들에 독립적인 지위를 보장해 준 것이 독립수장교회의 시초이다. 이후 비잔티움이 몰락하면서 총본산인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구가 마비되었기 때문에 정교회 각 교구들은 각각 독자적인 행보를 걷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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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교구 목록들은 모두 정교회에서 공인받는 교회들로 전례 중 이 순서대로[28] 주교들에 대한 축복을 기원하는 '딥디크(Diptych)'딥 다크 판타지라는 기도문을 읊을 때 나온다. 하지만 첫 타자인 로마 교회는 1054년의 교회 동서분열 이후 삭제되어 버렸다.하극상

4.1 초대교회로부터 이어져온 총대주교구

전성기의 관할구역은 전 발칸 반도와 소아시아,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 그리고 조지아와 러시아였다. 본래 서열은 4위로 안티오키아 다음이었으나 중세 초에 2위로 격상되었다.
초기 명칭은 전 동방의 총대주교였으나, 아시아가 워낙 넓은 대륙인데다[29] 당시의 로마 제국 국경 밖에서는 관할권을 행사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중근동으로 격하수정되었다.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이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성지 중의 성지이기 때문에 총대주교구가 되었으나 관할범위가 가장 작다.

주의해야 할 점은, 칼케돈 공의회에 따른 비칼케돈파[30] 교회가 분열되어 나갔을 때, 비칼케돈파가 우세했던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총대주교구의 대다수 교회 공동체들은 자기네들의 비칼케돈파 교계제도를 계속 유지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설명하고 있는 정교회의 세 총대주교좌 중 두 곳은[31] 엄밀히 말하면 비칼케돈파 성직자들이 해임된 이후 콘스탄티노플에서 후임으로 임명한 성직자들의 후계인 것이다. 즉, 위의 두 총대주교좌는 해당 지역의 그리스도인 중에서도 극소수인 칼케돈파 교회만의 총대주교좌라는 것이다. 예컨대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좌는 시리아 그리스도인들의 다수를 차지하는 비칼케돈파 시리아 정교의 총대주교좌와, 극소수인 칼케돈파 정교의 총대주교좌가 따로 있다. 물론 가톨릭 교회의 일부인 마론파[32]는 덤. 덤으로 바빌론 총대주교좌[33]도...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좌는 그리스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수복 실패(...)로 여전히 제대로 복원되어있지 않고,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는 칼케돈-비칼케돈파로 분열되어 역시 멀쩡한 상태라고 보기 어렵다. 사실상 정교의 4대 총대주교구 중 멀쩡한 상태의 총대주교구가 없는 안습한 상태. 그래도 아예 4대 총대주교좌 중 4개가 공석이었던 중세보다는 나은 상황이지만(...)

4.2 독립 총대주교구

이하는 따로 서열이 존재하지 않는다.

  • 러시아 정교회 - 모스크바와 전 러시아의 총대주교. 후술 참조 바람.
  • 세르비아 정교회 - 세르비아의 총대주교이자 베오그라드와 카를로비치의 수도대주교.
  • 루마니아 정교회 - 왈라키아의 수도대주교이자 루마니아의 총대주교.
  • 불가리아 정교회 - 소피아와 불가리아의 총대주교
  • 조지아 정교회 - 트빌리시와 므츠헤타의 대주교이자 조지아의 총대주교. 카톨리코스(Catholicos)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4.3 독립 대주교구

  • 그리스 정교회 - 아테네와 전 그리스의 대주교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구의 몰락 이후 오스만 제국의 지배 시절에도 그리스도교 신앙을 유지하여 정교의 신앙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 사회 및 전체 정교회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 게다가 냉전 시기에는 그리스와 키프로스를 제외한 다른 정교회권 나라들이 모두 공산권이었기 때문에, 한때 정교회를 '그리스 정교회' 또는 '희랍 정교회'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스 정교회의 수장이 왜 총대주교가 아닌가 하면, 본래는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구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그리스가 독립한 뒤에도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은 계속 오스만 제국의 영내에 있었으므로 그러니까 아나톨리아까지 왜 들어가서 정치적인 문제로 아테네에 대주교구를 설치하여 분리한 것이다. 단, 1912년 이후 그리스 영토로 편입된 구 오스만 제국령인 '아토스 산'의 수도 공동체, 그리고 테살로니키를 비롯한 마케도니아 지방, 크레타섬과 도데카네스 제도는 오늘날에도 총대주교구 직할이다.
  • 폴란드 정교회 - 바르샤바와 전 폴란드의 수도대주교
  • 체코슬로바키아의 정교회 - 체코-슬로바키아의 관구장주교
  • 알바니아 정교회 - 티라나와 전 알바니아의 대주교
  • 키프로스 정교회 - 신 유스티아니아와 키프로스의 대주교

미국을 비롯한 북미의 경우, 각 민족들의 이민으로 인해 각 국가별로 별개의 정교회 교파가 형성되었다.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독립 교회로 인정을 받은 '미국 정교회'가 있지만, 별개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산하의 미국 교구들도 있다. 이들은 '[북중미 정교회 주교회의]'를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다.

4.4 자치교회

  •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구 산하
    • 핀란드 정교회 - 수장은 카렐리야와 전 핀란드의 대주교.
    • 에스토니아 정교회 - 수장은 탈린과 전 에스토니아의 수도대주교.
  • 안티오키아 총대주교구 산하
    • 북아메리카 안티오키아 정교회
  • 예루살렘 총대주교구 산하
    • 시나이 정교회 - 수장은 시나이와 라이트의 대주교이자 성 카타리나 수도원의 대수도원장 겸임.
  • 모스크바 총대주교구 산하
    • 우크라이나 정교회 - 현재 키예프 총대주교구와 키예프 수도대주교구로 분열 상태로 모스크바 총대주교구 소속의 우크라이나 자치교회가 공인되고 있다.
    • 벨라루스 정교회
    • 라트비아 정교회
    • 몰도바 정교회
    • 해외 러시아 정교회 - 소련 시절 소련에 협력하는 러시아 정교회에 반발하여 독립한 정교회.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 정교회와 재결합하였다.
    • 중국 정교회 - 과 러시아가 수교할 때 중국에 전래되었다. 베이징 대교구, 상하이 대교구가 존재했고 1956년 모스크바 총대주교구에서 자치권을 얻었으나 문화대혁명으로 작살났다. 안습 현재 홍콩에서 명맥이 이어지고 있으며 하얼빈지린 성 등 러시아 인접 지역에 잔존해 있고 현재 소련 붕괴와 중러 우호관계로 회복 중이다.
    • 일본 정교회 - 수장은 도쿄의 대주교이자 전 일본의 수도대주교. 대주교좌가 설치되어 있는 도쿄의 부활대성당(ニコライ堂) 이외에도, 전국에 20여 곳 이상의 성당이 존재한다.
  • 세르비아 정교회 산하
    • 오흐리드 정교회
  • 루마니아 정교회 산하
    • 베사라비아 관구
    • 아메리카의 루마니아 정교회

한국 정교회는 현재 자치권을 가지지 않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구 소속의 대교구일 뿐이다. 자세한 사항은 후술.

4.5 일치를 이루지 않은 교회

가톨릭에서 여러 이유로 복고 가톨릭교회와 같이 가톨릭 교회와 일치를 이루지 않는 분파가 생겨났듯이, 정교회에도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구, 또는 다른 정교회 교회들과 일치를 이루지 않는 교회들이 있다.

5 한국에서의 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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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교회 대교구 홈페이지]

한국의 정교회는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구 산하의 대교구다. 대한민국에서는 성공회보다도 교세가 훨씬 더 마이너한 기독교 종파로, 9곳의 성당과 2곳의 수도원이 있다.[한국 정교회 성당 소재지] 위 링크의 리스트를 보면 주로 러시아나 그리스와 관계가 깊은 지역에 주로 세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정교회와 한국인의 만남은 약 8백년 전 고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세시대에 몽골 제국에 파견되었던 교황의 사절이 남긴 기록을 보면, 몽골 황실은 비교적 그리스도교에 호의적이어서 러시아에서 온 대공(大公)을 후하게 대접했으며 그 때 고려의 왕자들과도 접촉하게 했는데, 당시 볼모로 잡혀가 있던 고려 왕실 왕전(王佺) 등과도 화친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보다 직접적인 관계로 보면 러시아 정교회와의 만남은 260년 전 조선 영조 시대로 소급된다. 청나라 북경 사신 길에 올랐던 이윤신의 문견사건(聞見事件)에는 '큰 코 오랑캐'라는 의미의 대비달자(大鼻獺子)를 만났다고 하는데, 그가 곧 청나라에 파견된 "코 큰" 러시아 정교회의 선교사였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조선 사신단은 그들과 교분을 이루며 공어포와 인삼을 선물하였고, 러시아 정교회의 선교사들은 조선 사신들에게 거울과 주화를 주었다고 한다.

한국의 본격적인 정교회 역사는 구한말 고종 황제가 당시 러시아 공사관에 성당 부지(지금의 경향신문 자리)를 수여한 것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후 1900년에 입국한 러시아 정교회 소속 흐리산프 솃콥스키(Хрисанф Щетковский) 신부의 주도로 이해 2월부터 선교가 시작되었고 1903년에는 성당을 건립했으나, 러일전쟁으로 선교사가 모두 추방되는 바람에 1906년 재입국이 허용될 때까지 제동이 걸렸다. 게다가 1910년에는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래도 1912년에는 첫 한국인 사제인 강탁 신부를 배출했고 이어 자체교육기관인 보정학교를 세우기도 했지만, 러시아 본국에서 1917년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공산화가 되면서 외국 선교부가 폐쇄되는 등 복잡한 사정으로 인해 한국을 신경 쓸 수가 없게 되었다.

한국 정교회는 강탁·김희준·김의한 신부 등 3명의 사제를 배출하면서 러시아인 선교사와 교인이 간신히 명맥을 이어나갔고 1946년에는 교구도 개설했다. 하지만 1947년에 서품을 받은 한국인 김의한 신부가 한국전쟁 중 납북되어 처형되고 성당도 파괴되고 말았다.

교회 공동체의 핵이 되어야 할 성직자의 부재로 인해 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했던 한국 정교회는 한국전쟁 당시 그리스군의 종군 신부로 입국했던 안드레아스 할키오풀로스(Ανδρέας Χαλκιόπουλος) 신부가 선교에 힘쓰고 한국인 문이춘 신부가 일본에서 신부 서품을 받도록 도와주면서 점점 교세가 확장되었다. 참전한 그리스 병사들이 월급에서 1달러씩 갹출하여 성당 재건 기금으로 보태기도 했다. 현재 성당에 걸려 있는 5개 중 2개는 러시아 정교회가 전파되던 시절부터 남아있는 종이고 3개는 한국전쟁 후에 제작한 것인데, 이 종 제작에도 그리스 참전 군인들의 성금이 들어갔다고 한다.

이로 인해 한동안 괴멸 상태나 마찬가지였던 한국 정교회의 소속은 러시아 정교회 관할에서 무소속 상태로 지내다가, 1956년부터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구 소속의 그리스 정교회 관할로 들어가 지금에 이르렀다. 당연한 것이 러시아 정교회의 종주국인 러시아는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으로 전락해 한국의 적국이 되어 버렸지만, 그리스는 그냥 우방도 아닌 한국전쟁에 참전한 혈맹국가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적국인 소련과 관련된 정교회는 한동안 씨가 말랐다.

규모가 작은 한국 정교회는 한동안 다른 나라 정교회의 교구에 속했다. 1956년에서 1970년까지는 미국 대교구, 1970년부터 2004년까지는 뉴질랜드 대교구 소속으로 뉴질랜드 정교회를 통해야만 콘스탄티노플과 소통할 수 있었다. 그나마 교구로 지위가 격상이 된 것도 1993년의 일이다. 하지만 교회 규모의 확대를 인정받아 2004년 6월 20일부로 총대주교좌 직속의 대교구가 되어 콘스탄티노플과 직접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바르톨로메오스 세계 총대주교2005년에 방한, 직접 정교 한국대교구 총대주교청 관할 50주년 기념 대영광식을 집례하기도 했다. 1995년2000년에도 방한한 적이 있으며 2005년에는 환갑을 맞이한 바르톨로메오스 총대주교는 그리스계 터키인이다. 정확한 칭호는 새 로마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대주교[34] 및 세계 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스 1세 성하이지만 터키 정부에서는 '이스탄불의 그리스 정교 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스 1세'로만 인정한다.

현재 한국 내의 신자 수는 대략 2~3천명 (최대 4천명 예상) 정도이며, 한국 정교회의 중심지인 성 니콜라스 성당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소재한다. 이 성당은 양식으로 건축되어 있으며, 그리스 정부에서 건물을 지어주었다. [한국 정교회 대교구] 다만 이 건물이 지어진 부지를 과거 러시아 정교회가 있던 바로 그 자리를 팔아서 마련한 돈으로 구입했던 탓에, 한러 수교 이후 러시아 정교회 측에서 자기들 거니 돌려달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들어줄 리가 없는 소원이라, 성 니콜라스 주교좌 성당 바로 아래에 성 막심 성당이 있고, 러시아인들이 아쉬우나마 여기서 러시아어 성찬예배를 할 수 있게 했다. 한국 정부에다가도 옛 부지에 대한 보상 요구를 한 모양인데 한국 정부가 들어줄 기미는 없는 듯하다.

5.1 한국 정교회 대주교

116년 역사의 한국 정교회에는 현재까지 두 명의 주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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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부로 현재까지 그리스 출신의 암브로시오스 아리스토텔리스 조그라포스 대주교가 제2대 한국 대교구 교구장으로 재임하고 있으며, 그 전에는 초대 교구장인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가 첫 그리스 출신 주임 사제로서 1975년 12월 1일부터 2008년 7월 20일까지 30여 년 이상 한국에서 재임하였다. 한국에서 선박 제작 주문을 많이 한 그리스인[35]들이 한국에서 선박을 만들고 진수식을 할 때는 그리스 정교 사제가 축복을 해주는데, 특히 돈이 많은 그리스 부자들은 아무래도 체면상 한국에서 모실 수 있는 최고위 사제이신 트람바스 대주교를 많이 모셔와서 배에 축복을 내렸다. 조선소 근처에서 살았거나 근무한 사람들이라면 볼 기회가 있었을 수 있는데, 검은 라손[36]]을 입고 검은 길다란 사각형 모자인 칼리마브히온에 이콘 목걸이를 착용한 백인 노인이 나뭇가지에 물을 적셔 새로 제작된 배에 뿌리면서, 저울 같은 것에 향을 태우는 걸 봤다면 트람바스 대주교였을 가능성이 높다.묘사가 이상해

5.2 한국 러시아 정교회

한국 러시아 정교회라는 정교회가 있는데, 말 그대로 한국의 러시아 정교회라는 뜻이다. 현재 강원도 삼척시에 성 안나 성당이라는 성당이 하나 있다. 하지만 이는 한국 내 정교회 신자들에게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해외 러시아 정교회에서 세운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러시아 정교회 내에서 러시아 정교회와 해외 러시아 정교회를 구분하는 것인데, 전자는 러시아 본토의 정교회이고 후자는 소비에트 당시 공산정권에 협력하던 정교회에 반발해 몇몇 주교들과 신부들이 미국으로 망명해 세운 교구다. 이 두 교회는 소련 붕괴 후 현재 통합되었으나 운영은 따로 하고 있다.

5.3 북한에서의 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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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지역은 엄밀히 말하면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구와 모스크바 총대주교구가 미묘하게 겹친다. 우선 콘스탄티노폴리스 측 정교회 한국대교구의 관할권은 대한민국 전체가 정식이다. 그러나 평양에 세워진 최초의 정교회 성당인 '성 삼위일체 성당', 일명 정백사원은 모스크바 총대주교구에서 세워준 성당이므로 사실상 북한 지역은 모스크바 총대주교구가 관할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무래도 소련 시절 혈맹이었고 현재도 정치적으로 친한 나라이기 때문에 가능한 점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같은 보편교회이자 북한 선교로는 훨씬 오래되고 융성했던 가톨릭이 사제조차 없어서 평양 장충성당에서 공소예절로 겨우 버티는 와중에 이쪽은 신부가 한 명도 아니고 둘, 그것도 북한인 신부로 상주하면서 성사를 집전한다. 역시나 러시아와의 교류가 활발하다는 점에서 기인한 듯, 국가 차원에서 조작조직한 '정교회조선신도연맹위원회'라는 신자 단체가 존재한다.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조선가톨릭교연맹과 비슷한 집단이지만, 진짜 북한인 신자 수는... 아무도 모를걸.

6 기타

6.1 교회명에 관하여

흔히 '동방 정교회'라고도 불리지만 그냥 '정교회'라고 해야 옳다.[37] 동방 정교회라는 호칭은 서로마 지역에 있던 교회, 즉 로마 가톨릭에 대응한 호칭일 뿐이다. 정교회를 그리스 정교회니 러시아 정교회니 하기도 하는데, 이는 한국 천주교회라는 종파가 따로 있지 않는 것처럼 해당 정교회가 속한 교구명을 붙인 호칭일 뿐으로 독립된 분파가 아니다. 예를 들어 '불가리아에 있는 그리스 정교회' 같은 말이 나오는데 역시 있을 수 없는 말. 마찬가지로 정교회의 한국교구는 한국 정교회라고 부른다. 한국 그리스 정교회 이렇게 부르지 않는다[38].

다만, 정교회란 정확히는 각 지역들의 독립된 교회들을 세계만민의 하나된 공동체로 묶어둔 것이며, 따라서 개별 교회들이 있다. 이런 구조를 Autocephaly라 한다. 그리스 정교회나 러시아 정교회처럼, 총대주교구별로 교회가 분리되어 있으며, 이 모든 교회들을 묶은 Ecumenical Church가 바로 정교회다. 모든 교회들의 총대주교인 Ecumenical Patriarch를 통해 이 독립 교회들이 묶여있는 것이다. 각 교회들은 기본적으로 스스로 교회를 꾸려나가야 한다. 그리고 옛날엔 각 나라마다 총대주교를 두고, 5개의 옛 교회들을 제외하면 각국이 알아서 총대주교를 선출해야 했으며 물론 이건 왕이 해야 할 일이었다.[39] 가톨릭 왕국들이 주교 서임권을 가지고 교황과 꽤나 자주 싸운 걸 생각하면 왕이 입맛대로(?) 선출에 관여할 수 있는 정교회가 더 유리했을 텐데?[40][41]

따라서, 대부분의 정교회들은 그냥 Ecumenical Church라고 하지만, 개별 정교회에 소속된 신도들을 위해 해외에 설립된 교회의 경우에는 지역명을 정교회 앞에 붙여서 표현하기도 한다. 주로 이민자들이 중심이 된 미국의 정교회들이 이렇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미국의 정교회의 경우 이민자들의 출신 지역의 정교회에서 파견된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각각의 독립 교회들과 총대주교구들은 신앙의 큰 틀에서는 같지만 전례나 의식 등에서 다소의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42], 각각의 독립 교회들의 해외 신자들을 위한 교회를 설립하게 되어 이러한 형식이 된 것이다. 위의 한국 러시아 정교회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미국에 지어진 교회들도 그냥 Ecumenical Church라고 하고 딱히 독립 교회 이름을 안 붙이는 일도 많다. 이게 더 에큐메니컬하기도 하다.(...)

한국은 각 이민자들의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아, 외국인 신자들과 한국인 신자들이 모두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으며, 오리엔트 정교회 신자들이 일부 참석하기도 한다. 이 중에는 에티오피아인들도 가끔 있었으며, 콥트 정교회 교인들도 있었으나 신촌에 새로이 그들의 성당을 만든 이후엔 나오지 않게 되었다. 또한 조금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모습을 보이는 러시아인 교인들을[43] 위해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에서 고려인 신부를 파견하여 러시아어 전례를 실시하기도 했었다. 이 신부가 2011년까지 봉직하다가 러시아의 투바 공화국의 주교로 서품되어 한국 정교회를 떠난 이후, 러시아인들을 위한 성직자는 공석이었다가 우크라이나인 신부가 파견되어 이르고 있다.

한국러시아정교회는 해외러시아정교회 소속인데 이 해외러시아정교회의 위치가 다른 교회들과의 관계 속에서 꽤 애매하게 처리되었기 때문에 사실 보편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공동체였다. 다만 해외러시아정교회와 본토러시아정교회의 통합이 이뤄졌기 때문에 향후 이 공동체에 대한 위치는 변동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정교회에서는 이른바 '살아있는 교회'라 일컬어진 본토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을 비록 공산당에 공식적으로 순종한다고 해도 적법한 공동체로 인정해주었다. 일단 남아있는 대다수 러시아인들을 위해 갖은 수난을 당하는 공동체라는 점을 높이 샀다고 한다.

6.2 가톨릭과의 관계

정교회의 초기 역사는 곧 가톨릭과의 대립과 분열의 역사이다.[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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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와 가톨릭이 갈라지게 된 것은 정확히는 똑같이 강력한 두 중심지 사이의 연결이 끊어진 것이지, 한 쪽에서 한 쪽이 떨어져 나왔다고 하기에는 명확한 계기가 되는 사건도 시기도 찾기 어렵다. 상호파문도 한두 번 한 게 아니고. 애초에 교회의 동서분열은 어디까지나 '분열'이지 종교개혁이나 독립이 아니다. 정교회와 가톨릭 모두가 초기 그리스도교 때부터 있던 그 교회이고, 초기 그리스도교는 가톨릭의 역사인 동시에 정교회의 역사다. 로마와 콘스탄티노폴리스는 고대 로마 제국 이래로 그리스도교 세계의 두 중심지로 기능해 오고 있었으며, 상호간의 위계는 세속권과 성직권이 서로 얽혀 복잡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처음에 세속권은 비잔티움 황제가 우위에 있었으나, 9세기 초반 동방 제국 황제 미카일 1세가 샤를마뉴를 프랑크인의 황제로 인정하여 형식적으로는 두 황제가 존재하게 되었다. 교회 서열로는 교회법상 교황이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보다 우위에 있었으나, 이 우위를 전체 교회에 대한 지배력인지 아니면 그저 같은 총대주교들 중 첫 번째의 지위인지에 대해서는 전 세기를 막론하고 의견이 팽팽히 갈리고 있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5세기 말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동방과 서방 교회가 서로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고 관할 교구들에 대해 영향력을 유지했다는 사실이다.[45] 이렇게 보았을 때 어느 한 쪽에서 다른 한 쪽이 떨어져 나갔다고 볼 수 없다.

이 당시 황제가 교황의 직위까지 대신하는 황제교황주의가 있었다고 여겨지고 있으나, 사실 황제교황주의란 개념은 없었다. 황제교황주의라는 말은 당대 비잔티움 황제의 전제권력을 비유해서 나타내는 단어이지, 황제가 교회까지 장악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46]. 어째선지 한국에선 황제가 교황까지 겸한다고 왜곡되어 있는데, 아마 먼나라 이웃나라 탓이 클 것이다. 그런데 수능 교과에서도 황제교황주의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과학교과서도 그렇고 대체 왜 이 모양이야. 비잔티움 황제는 그리스도교 세계의 보호자이며 총대주교 선출 동의권이 있었으나, 결국은 평신도였다. 황제는 교회의 수호자이며 사도들과 동격으로 여겨지긴 했으나, 교회 내부에 관련된 것은 건드릴 수 없었다. 물론 13세기까지는 황제가 총대주교에 비해 우위에 있었고, 교회가 대체적으로 황제의 입김을 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총대주교들 또한 콘스탄티누스의 기증[47]을 토대로 열심히 황제들을 꺾어누르려고 시도했으며, 어떤 때는 총대주교가 황제를 폐위시키기도 했다. 결국 황제는 교회에 대해서 일정한 권한과 한계를 원칙적으로 가지며, 개별 황제와 총대주교의 영향력 차이에 따라 강력한 황제가 총대주교를 찍어누르기도 하고, 강력한 총대주교가 황제의 간섭을 막아내기도 했던 것일 뿐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때그때 달라요

가톨릭에서 부제(Deacon)라고 하는 직위를 정교회에서는 보제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어 번역상의 문제로 '받들다'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디아코노스(Διάκονος)'에서 나온 것은 같다. 결혼한 이가 사제가 되는 건 가능하나 주교는 결혼하지 않은 이에서만 뽑고[48], 서품 뒤의 사제는 결혼, 재혼이 불가능하다.

성체성사성체(빵)만을 주로 모시는 가톨릭과 달리 양형 영성체(빵+포도주)를 주로 한다. 가톨릭의 양형 영성체는 빵을 포도주에 적셔 입에 넣어주지만, 정교회의 양형 영성체는 포도주가 담긴 성작에 빵을 넣어 수저떠먹이는 방식을 취한다. 성찬예배의 예식은 가톨릭의 미사와 비교해도 무척 화려하다. 가톨릭에서는 부득이한 경우 정교회에서 예배를 볼 수 있게 하고 있으며, 이론상 정교의 성찬례는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의 적법한 성사이므로 여기에 참석하여도 미사참례의 의무를 충족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톨릭에서 공심제 전통을 성찬례 당일에서 성찬례 1시간 전으로 완화하였고, 현실적으로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단식 및 금육 등의 의무를 소홀히 하고 있기 때문에[49] 가톨릭 신자가 정교회의 성체성사를 하면 정교회의 입장에서 독성이 될 위험이 매우 높다. 결국 신자 개인이 정교회 성당에 찾아가서 성찬 전례까지 포함하여 예배에 참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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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의 여신도는 가톨릭처럼 미사보를 쓰는 대신 머리에 스카프를 두른다. 특히 러시아를 비롯한 슬라브권 정교회에서 많이 볼 수 있으며, 한국 정교회의 경우 간혹 외국인 여신도가 스카프를 두르고 성찬예배에 참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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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깔끔하게 면도하는 가톨릭의 성직자/수도자와는 달리 정교회의 성직자/수도자는 수염을 풍성하게 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방교회는 세상을 버린다는 의미로 삭발과 면도를 한데 반해 동방교회는 판관기에 나오는 나지르인으로서의 사상 속에서 머리를 기르고 수염을 기른다. 더불어 서로마는 라틴 문화의 영향으로 수염을 자르는 것이 풍습이었고, 동로마는 그리스 문화의 영향으로 수염을 기르는 것이 풍습이었다. 그래서 그게 종교에도 전통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동방과 서방 교회간의 쟁점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가장 중요한 것만 뽑자면 대략 셋 정도다.

6.2.1 교황실질적 수위권

로마 제국 시절에 다섯 총대주교좌에는 서열이 매겨졌는데, 이는 순서대로 로마, 콘스탄티노폴리스,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이었다. 이 서열에 관해 동방과 서방에서는 격한 논쟁이 오고갔다. 로마에서는 서열을 근거로 로마 교황이 모든 교구를 실질적으로 지배할 권리가 있다고 보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는 로마의 교황이 으뜸 사도인 베드로부터 교황직을 이어온 교회의 명예상으로 교회의 수장이라는 점은 인정하나, 다섯 총대주교 중 1명이며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주장했다. 교황의 서열이 단지 명예에 해당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한 예로, 가톨릭에서는 주교를 교황이 임명하지만, 정교회에서는 시노드(대의원회의)에서 선출한다. 가톨릭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주교시노드를 만들어 전 세계 주교들 간의 공동 합의성을 보완했지만, 시노드는 어디까지나 교황에게 건의할 권한만 있어서 정교회의 시노드와는 큰 차이가 있다. 어쨌든 교황의 수위권 논쟁은 신학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쟁점으로,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가장 중요한 갈등이었다.

동유럽이나 중동의 가톨릭 교회 중에서는 외견이 정교회 같은 종류도 있는데, 이는 동방 가톨릭 교회로써 로마 교황의 수위권 아래로 들어간 옛 정교회 소속 교회들이다.인용 오류: <ref></code> 태그를 닫는 <code></ref> 태그가 없습니다그러나 비잔티움이 멸망한 된 지금에 와서는 갈등의 이유가 많이 사라졌다. 다만, 하도 오래 연결이 끊어져있다 보니 서로 모습이 너무 달라져서 다시 연결될 수가 없다는 것일 뿐. 또한 역설적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완전히 아작난 상태라서 좀 다른 의미의 수위권 분쟁이 유발되므로, 더욱 합처질 수가 없다. (...) 모스크바라던가</ref>

6.2.2 성상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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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 논쟁 시기에 비잔티움 제국에서 제작된 성경시편 사본의 삽화. 성상파괴주의자들이 교회에서 물에 적신 해면으로 예수의 성상(벽화)을 지우는 것을, 병사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고 장대에 꽂은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셔 예수에게 갖다 댄 것[51]에 대비시키고 있다.

성상논쟁에 관해, 과거에는 가톨릭 교회적 관점[52]의 영향으로, 서유럽 중심적 역사서술에 따라 성상 논쟁이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사이의 논쟁이라는 관점의 역사서술이 횡행했으나, 실제에 있어서 성상논쟁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대립이기 이전에, 동방교회 내부의 대규모 이단 내지는 이교 활동이었다. 서방교회와의 논쟁은 그 와중에 있었던 곁가지에 가깝다. 성상파괴파는 사실 동방교회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비주류의 분파였으나, 이것이 비잔티움 제국 황제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되면서 비잔티움 판 문화대혁명 꼴이 났을 뿐이며, 동서방 교회가 성상공경과 성상파괴로 입장이 나뉘어 대립한 것도 이렇게 동방교회가 성상파괴파 황제의 영향하에 있었던 잠시동안 뿐이었다. 그러므로 원칙적으로는 이것이 동서 대분열로 직결된 바도 없다. 단지 서방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는, 잘 써오던 성상을 놓고 갑자기 동방교회(의 일부)가 괜한 시비를 건 것이며, 이때문에 서방 교회가 동방과 사이가 멀어진 원인 중 하나이긴 하다.

이슬람교에서는 자신들과 접촉하는 그리스도교를, 특히 성상 공경과 관련하여 우상숭배로 매도하는 경향이 있었고, 이의 영향을 받은 소아시아 지역에서는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성상을 우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싹텄다. 이후 8세기에 권력을 잡은 소아시아 출신의 레오 3세가 성상을 거부하면서 성상파괴주의가 시작되었고, 그 아들 콘스탄티누스 5세가 신학적인 사유를 동원하여 나름대로 논리적으로 기존의 전통적인 성상 공경을 열심히 까댔으나, 신학적 지반은 이슬람과 단성론의 논지를 거의 그대로 따온지라 매우 빈약했다. 이러한 성상파괴주의 황제들은 성상 파괴에 저항하는 기존의 정통 정교 총대주교들을 쫓아내고, 성상파괴를 지지하는 성직자들을 그 자리에 앉혔다. 이후 비잔티움 제국 내부에서는 성상 파괴파와 정통파 간의 투쟁이 일어나 정통파는 무수한 박해를 받으며 동시에 수많은 문화재가 파괴되었다. 성상파괴주의는 내적으로는 유럽 및 소아시아 해안지대 속주들과 대립하는 소아시아 내륙 속주 간의 알력, 비잔티움 제국의 세속 권력과 교회 권력 간의 내부 투쟁이 얽혀들어 전개되었다. 이는 결국 한세기 반에 걸친 내전으로 치달았으며, 대외적으로는 콘스탄티노폴리스 교구 및 비잔티움 황제와 알력관계에 있던 로마 교황의 세력까지도 논쟁에 합세하였다.

이 논쟁은 서기 787년 레온 4세의 부인으로서 아들 눈알 뽑고 여제가 된 아테네의 이레네가 니케아 공의회에서 성상파괴파를 이단으로 간주하였다. 이후 레오 5세가 성상파괴주의를 부흥시켜 제2차 성상파괴가 일어났으나, 서기 843년 섭정 황후 테오도라에 의해 논쟁이 종식되고 성상이 다시 인정받게 되었다. 그렇다 해도 성상파괴파에 대한 양보로 정교권에서는 되도록이면 성상 중 성화(聖畵)만을 사용하도록 권고하였고,[53] 정교권에서는 이 날을 '정교주일'이라는 축일[54]로 기념하였다.

이 시기동안 많은 성유물과 이콘제작자들이 박해를 피해 비잔티움 제국을 떠나 서유럽으로 옮겨왔으며, 이들은 중세 초기 서유럽 종교미술의 수준을 제고하였다.

6.2.3 삼위일체론

7~8세기 경 톨레도 대주교구에서는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에 수정을 가했다. 기존에는 성령성부에게서 발현한다고 되어 있었으나, 톨레도에서는 성자의 위격 또한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래 '성령께서는 성부에게서 발하시니'라고 되어있던 것을 '성령께서는 성부와 또한 성자에게서 발하시니'라고 수정하였다. 라틴어 신경에서 '또한 성자에게서'를 뜻하는 것이 'filioque('filio(아들에게서)'+'que(또한)')'라는 단어이기 때문에, 이것을 [필리오퀘 문제]라고도 부른다. 한 세기가 지나자 전체 서방교회가 이를 받아들였으나, 동방교회에서는 당연하게도 이 수정을 서방 교회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여겨 크게 분노했다. 서로의 입장이 팽팽히 갈리는 가운데 타협안은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고, 두 교회간의 사이에는 불화만이 오갔다.

그나마 현재는 화해 일치의 시도를 보이고 있다. 다만 이미 가톨릭이랑 정교회랑 너무 차이가 커져서 데면데면한 관계이다.

6.3 이슬람교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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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종교전쟁 하면 가톨릭과 이슬람 간의 십자군 전쟁을 생각하기 쉽지만, 정교회 역시 헤라클리우스(헤라클레이오스) 황제 시절에 “참십자가를 되찾자”는 명분으로 동로마 제국이 사산 왕조 페르시아에 성전을 선포한 적이 있었다.[55] 참십자가를 되찾자는 종교적 명분으로 전쟁이 합리화된 것이다. 비록 실질적 이유는 당시 제국의 국가적 위기에서 찾아야 하지만, 명분은 종교에서 찾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56]

가톨릭과 달리 이슬람교의 공세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었다. 물론 가톨릭 역시 이베리아 반도 측에서 공격을 받았지만, 프랑크의 샤를마뉴 이후 공세가 적어지고 결정적으로 레콩키스타를 통해 최종적으로 이슬람을 몰아낸 이후 1453년 방패막이 역할을 해왔던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기 전까지 직접적인 충돌을 피한 반면, 정교회 측은 이슬람의 중심권인 오스만 제국과 중동 지역과 바로 가까웠기에 이슬람으로부터 훨씬 엄청난 공세를 받았다. 아예 정교권이었던 발칸국가들이 오스만 제국에게 지배를 수백년간 받아온 것도 덤. 그래서 이슬람교와 유대교의 영향을 받았는데, 그 중 하나가 성상파괴주의. (그러나 결국 이 성상파괴는 동로마 제국 내부의 교도권과 황제권 간의 투쟁에서 나온 것이고, 두 세력이 합의함에 따라 폐기되었다.) 다만 성상 파괴주의자들에 대한 양보로 정교회권에서는 가톨릭에서 볼 수 있는 3D 스타일의 성화상을 멀리하고 이콘 스타일의 성화만 쓰고 있다. 그 때문에 지금은 그리스도교 종파 중에서도 가장 많이 정형화된 이콘(성화)을 이용한다. 이콘은 아무렇게나 그려지는 게 아니라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규범이 있다.

위치가 위치인 만큼 이슬람교와의 사이가 매우 나쁘지만, 가톨릭과의 접경지는 가톨릭하고 사이가 나쁜 편. 대표적인 예가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로서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크로아티아는 독일의 위세를 등에 업고 악랄하게 정교회 신자를 잡았고, 세르비아는 보복으로 더 강하게 가톨릭을 공격했다. 이 사이에 끼인 보스니아의 이슬람 교도들은 양측 모두에게 학살당했다(...). 교집합의 안 좋은 예..

더불어 아랍권에선, 과거 십자군 전쟁 같이 전쟁 규모가 컸던 가톨릭이나 지금 가장 미워하는 나라인 미국하면 떠오를 개신교에 비하면 그나마 이미지가 나쁜 편은 아니다. 그러나 카프카즈 지방이나 체첸의 이슬람교 신자들은 이곳을 정복했던 러시아 제국의 국교가 정교회였고, 정복의 이유도 정교회를 퍼트리기 위함이라고 공식적으로 천명했기 때문에 정교회라면 치를 떤다.

최근 유럽 난민 사태에서 불가리아마케도니아, 세르비아 같은 발칸 반도의 정교권 국가들이 시리아등 중동 이슬람권 국가들의 전쟁 난민들을 수용하라는 독일등 EU 강대국들의 난민 할당제에 반대한 것도 이들 국가들이 오스만 제국등 이슬람 세력에게 지배를 당한 트라우마 때문이란 이야기도 있다.


6.4 개신교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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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일단 개신교가톨릭 사이보다 개신교와 정교회 간의 신학적 거리가 더 멀다. 왜냐하면 개신교는 가톨릭교회에서 갈라져 나왔기 때문에 동-서 교회 신학적 갈등 이슈에 대해선 거의 같은 서방 교회에 속한 가톨릭교회와 입장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교회와 개신교는 근본적으로 사도전승이나 성상, 성인과의 통공, 전례적인 면 등에서 가톨릭 이상으로 대화가 어려운 종교이다.

한국의 개신교교회일치운동을 싫어하는 보수적인 교단이 상당수라 일부 신도들은 정교회에 대해 잘 알지도 못 하고 간혹 이단이나 신생 종교로 오해하기도 한다.(...) 이뭐병 뻔데기 앞에서 주름잡네 물론 이 경우는 매우 극단적인 경우로, 당연히 일반 신자들 사이에서 신생종교(...)라고 까지 생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진보적인 교단에 속해 있는 신자라도 별반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일단 카톨릭의 경우 국내에서의 영향력과 교세가 상당하기 때문에,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어느 정도의 관심은 갖게 되기 마련인데, 정교회는 워낙에 교세가 마이너한지라(...). 또,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입장은 신자 개개인마다 천차만별이다. 가톨릭과 유사하게 보는 사람도 있고, 그나마 가톨릭보다는 호의적으로 보는사람도 존재하긴 한다.

일단 한국에서는 1996년 한국 정교회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회원으로 가입했다. 물론 KNCC 회원 교단 전부가 개신교 교단들이긴 하지만, 이 KNCC가 교회일치운동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므로 정교회도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었다.

이 문제 때문에 정교회와 반교회일치운동 개신교 교단들 사이는 선교 문제 때문에 불편하다.결국 밥그릇싸움 왜냐하면 WCC에서는 회원교단의 나라 중 특정 교파가 교세가 강한 곳에서는 공격적 선교를 자제하기로 결의했는데, 일부 개신교에서는 WCC 문제로 같은 교단 내에서도 입장 차이로 분열이 되어있는데다가 반WCC 교파에선 정교회 세력이 강한 러시아 등 동유럽과 중동 등지에 개신교 선교사를 파송하고 정교회에서는 이를 저지 탄압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선 어느 정도 양측 입장에 논리가 있긴 하다. 정교회 측에선 동유럽과 중동에는 이미 정교회가 고유의 신앙으로 뿌리내렸고 서로를 이교로 보지 않는 기독교 여러 교파에서 존중해 주기를 바라는 반면, 개신교 입장에선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반박하는데 첫째 개신교와 가톨릭 문명인 유럽, 미국에도 한국 개신교 선교사가 이주민과 유학생, 교포들을 위해 파송하고 있는 점과, 둘째 러시아와 동구권은 공산정권을 거치며 비종교화가 이뤄져서 [러시아의 경우 정교회 신자가 40%]에 불과하며 이 정도의 숫자도 상당수가 형식적 신자이고 러시아의 경우 유럽 지역에 편중된 터라 아시아 지역은 무종교나 타종교도 상당히 많고, 이곳 지역은 러시아 정교회도 수백년간 선교에도 거의 실패한 점을 든다. 특히 시베리아 오지 지역에서는 원시 전통신앙이 아직도 많은데 서양인보다 얼굴 모양 비슷(?)하고 한글과 노래 알려주고 말벗 되어주는 개신교 선교사들을 환영한다는 점을 든다.

교회일치운동에 동참하는 개신교 교단들은 이 문제에 대해 딱히 통일된 입장을 내놓지는 않는데, 정교회 교세가 워낙 한국에서 세가 적은 데다가 차라리 가톨릭을 경쟁 관계로 생각하지, 정교회에는 별 생각도 관심도 없다.(...)

정교회 측에서는 당연히 동유럽과 중동에는 역사적으로 정교회가 고유의 신앙으로 뿌리내렸기 때문에 개신교에서 이를 존중해주기를 바란다. 이 점은 다른 기독교의 동유럽 선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개신교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정교회는 [가톨릭 교회의 러시아 선교에도 역시 비슷한 입장을 취한다] 한국 정교회 제2대 대교구장인 암브로시오스 대주교는 “한 학생의 아버지가 (개신교) 목사인데, 사도 요한요한묵시록을 썼던 파트모스 섬에 선교를 하기 위해 갔다고 했다. 그래서 물었다. ‘그곳 주민들이 사도 요한 당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는 것을 네 아버지는 모르느냐’고.”라는 일화를 소개하면서, "개신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사람들조차 전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면 개신교에서는 정교회에 대해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무의미한 교회의 전통 숭배와 미신을 믿는 것과 다름없는 신적 대상(천사들과 성인들)을 통해 복을 받으려고 하는, 복음이 변절된 교회 내지는 근본주의자는 아예 이단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들에게 참 기독교인 자신들의 신앙을 전파하는 것은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최근 한국인들의 동유럽이나 러시아 여행이 잦아지면서 성지순례나 단기선교여행을 빙자한 한국의 개신교 신자들의 추태들이 생기면서 이로 인해 정교회와 현지 주민들 사이에서는 개신교에 대한 반감이 갈수록 솟아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정교회 측에서도 여러 수단을 동원하여 개신교의 전도행위를 방해하고 차단하는 한편 개종한 개신교 신도들을 압박하고 이에 맞서서 개신교 선교사들 역시 프리즌 브레이크(...)를 감행함으로써 정교랑 개신교 간의 종교적 갈등이 증폭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대표적인 정교회 국가인 러시아에서는 정교회와 개신교의 사이가 영 좋지 않다. 러시아 제국 시절에는 '독일 교회'[58][59][60]로, 현대에는 미국, 혹은 서방 교회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소련 시절에는 개신교 신도들이 굴라그로 끌려갔고[61]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현대 러시아에서도 개신교에 대한 인식은 이방의 교파로 부정적인 편이다.[62]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정부와 정교회의 관계가 밀접해졌고, 개신교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정교회의 입김이 세졌는데 이는 정책으로 연결되었다. 옐친 대통령의 재임 때는 개신교와 가톨릭의 선교를 제한하는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되었으며, 비자 문제로 추방되는 개신교 선교사들의 수도 적지 않은 편.

게다가 정교회가 전반적으로 신학적 성향이 전통적이고 보수적이며, 사도전승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사도전승이 이어지지 않은 개신교를 서방의 권력과 돈빨만 등에 업고 설치는 근본없는 이단(...)들로 인식하고 있다. 정교회 교회들 대부분이 스스로 이슬람교 및 공산주의와 치열한 싸움을 벌이면서도 초대 교회 때부터 내려오는 신앙을 간직하고 있다는 역사적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나마 가톨릭에서는 형식적으로 개신교를 '갈라진 형제'로 부르면서 대놓고 자극은 안 하려고 하는 것과는 달리, 정교회 측은 가톨릭은 오랜 숙적이지만 그래도 같은 자매 교회로는 대우하는 반면, 개신교에 대해서는 아예 이단 사이비나 이교 정도로 그리스도교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하다. 애초에 가톨릭과 더불어 전례 의식과 성사 중에서도 제병(빵)과 제주(포도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시는 순간성체성사를 중심으로 한 전례, 의식, 신앙적 공동체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정교회 측에서는 개신교 신학의 '마음만 있으면 된다'라는 식의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적 접근법 자체를 굉장히 백안시하는 편이다. 또한 정교회에서는 개신교의 예배를 보면서 시장통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행위로 불경건하며 하느님을 저급한 신으로 표현한다고 비판하고 있다.[63]

비단 러시아나 그리스 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정교회 신앙이 뿌리 깊이 내린 중동 및 유럽 국가들 대부분에서는 현지의 역사나 문화와 전혀 연고도 없으면서 돈은 많은 미국과 한국 등지의 복음주의 계통 개신교도들이 갑자기 찾아와 사회적으로 소외되기 싶고, 사회에 원한이 많은 빈민, 노동자, 병자 등을 상대로 금전적 지원과 봉사 등으로 도움을 주면서 집중적으로 포교하며 세력을 늘려나고 끝내는 현지 종교를 압도하는 경향이 있다.[64] 심지어 특히 근본주의 교회를 중심으로 한 개신교 일각에서는 자신들의 잣대로 정교회를 함부로 그릇되고 이단적인 교회라고 평가하며 돈과 물질적으로 현지인들을 빼내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어 이러한 양측의 태도는 그리스도교 교파 간 화해에 굉장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결국 정교회에서 바라봤을 때, 개신교의 이러한 선교 행동은 당연히 서로 다른 교단의 신자들을 쟁탈전 내지 자기 교단의 교리를 심어주는 그야말로 밥그릇 뺏기라는 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 정교회의 암브로시오스 대주교는 개신교인들의 타종교를 폄하하고 공격하는 식의 선교 방식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과 같은 그런 짓은 그리스도를 거스르는 행위다. 그런 선전포고가 그리스도의 참모습이라면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뭐? 하느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강압적으로 개종을 재촉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정교회는 초대 교회 때부터 신자 수를 늘리기 위해 남의 집 문을 두드리는 식의 전도를 금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스스로 원치 않는 이를 강압하지 않고 자유의지를 존중하며 기다리시는 분이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미국에서는 개신교 복음주의에서 정교회로 단체 개종하는 사례가 있었다. 1979년 설립된 복음주의 정통교회([Evangelical Orthodox Church])가 그것. 대학생선교회에서 선교사로 사역하던 피터 길퀴스트(Peter E. Gillquist)를 비롯한 동료들은 교회사와 초기 교부들의 저작을 공부한 끝에 고교회적 전례를 회복할 필요성을 느끼고 1979년 EOC를 설립하였다. 이들은 이스탄불로 가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데메트리오스 1세를 만나는 한편,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였던 이그나티오스 4세가 로스앤젤레스에 왔을 때 접촉하기도 하였다.

결국 사도전승의 필요성을 느낀 2,000명의 신도들은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좌 산하의 북미 대교구로 교적을 옮겼다. 이 개종을 이끈 길퀴스트는 정교회 수석사제로 복무하며 정교회에 관한 저작을 쓰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2012년 타계하였다. 북미에는 여러 총대주교좌 산하의 여러 정교회 교파가 있는데, 이때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좌 산하로 옮기지 않은 나머지 신도들은 모스크바 총대주교좌에서 자치 교회로 인정하는 미국 정교회(OCA)로 이적하였다.

6.5 서브컬처의 정교회

아시아권에서는 가톨릭에 비해 마이너라서 그런지 서브컬처계에서는 별로 주목받지 않는 편이다. 서구 쪽에서도 그다지 주목 받지 않는 느낌. 다만 가톨릭의 이미지를 따온 것이 너무 흔하다보니까 신선함을 위해서 대안 스킨(?)으로 취급되는 듯하다.

악마성 시리즈사이파 베르난데스가 정교회의 헌터라는 설정. 월하의 야상곡에 등장하는 몹인 블러디 좀비는 악마성에 원정갔던 정교 병사들의 시신이다. 랄프 벨몬드 역시 정교 신자일 가능성이 높다.

성흔의 퀘이사라는 만화에서 러시아 정교회가 높은 비중으로 등장하지만, 사실상 기존의 일본 만화에 흔히 등장하는 왜곡된 이미지의 가톨릭계 조직이랑 별로 다를 바는 없다. 그저 스킨만 바꾼 느낌?

월야환담 시리즈에서는 실베스테르가 정교회의 보물인 '아르젠트 하르페시언'을 사용하며 창월야에서는 정교 소속의 흡혈귀 사냥꾼인 유스틴이 나온다.

하프 라이프2최종병기그리고리 신부도 이쪽인 것으로 보인다.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에 나오는 '러시아 성교(成敎)'[65]뭐?는 러시아 정교회를 모티브로 한 것 같다.

동방프로젝트와 아무런 관련은 없지만 발매될 것 같은 이름이다. TH24 동방정교회 ~ the Eastern Orthodox Church

러브라이브!의 캐릭터인 아야세 에리가 러시아 정교회에 신앙을 두고 있다고 SID에 밝힌 바 있다. 아무래도 어렸을 때부터 러시아에 살았다 보니 몸에 배인 것으로 보인다.

중세 유럽 배경의 역사 대전략 게임 크루세이더 킹즈 시리즈에서는 아직 비잔티움 제국이 건재하고 개신교가 탄생하지 않은 시기가 배경인 만큼 가톨릭과 함께 기독교의 쌍벽을 이룬다. 2편 기준으로 보면 게임 내 스텟과 컨텐츠 자체는 가톨릭보다 좀 초라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나,비잔티움 제국의 고유 컨텐츠와 결합되면 실로 비범한 위엄이 폭발한다! 예를 들어, 상실했던 총대주교좌를 하나씩 수복할 때마다 고유 이벤트가 뜬다거나... 5대 총대주교좌를 모두 복구하면 동서 대분열 종식을 선언할수도 있다! 대분열이 종식되면 가톨릭은 정교회의 이단으로 간주되고, 모든 가톨릭 교도들은 정교회의 전례를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이단자의 낙인이 찍힐 것인지에 대한 양자택일을 요구받게 된다. 이 외에도 교황의 수위권이 구현된 가톨릭에 비해 5대 총대주교좌의 관할범위와 그 외 왕국의 독립 총대주교들이 구현되어 있다거나, 700년대 시나리오에는 성상파괴주의 분쟁이 구현되어 있는 등, 깨알같이 재미있는 고증이 많으니 역사 매니아라면 꼭 해볼만한 게임. 사실 열번에 아홉번은 비잔티움 영역이 가톨릭으로 물들어서 정교회가 멸망하기 일쑤다


  1. 서방 교회에 대비해서, 동쪽에 있다는 뜻에서 동방 정교회라고도 한다.
  2. 그 외에 굳이 달라진 게 있다면 주교관이 겁나 화려하게 바뀌었다는 점 정도다. 현 주교관인 미트라는 원래 비잔티움의 황제가 쓰던 왕관이었다.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이후부터 쓰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쓰고 있다. 예전에는 엄언히 기독교 세계의 수호자인 로마 황제가 있는데 감히 왕관스러운 주교관을 쓸 수 없었으니.
  3. 참고로 미트라는 비잔티움 후기에 쓰던 왕관이다. 초기에는 좀더 간결한 관이 황제의 관이었다. 궁금하다면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를 그린 프레스코의 제관을 살펴보면 된다. 깔끔하게 생긴 게 상당히 간지난다.
  4. 엄밀히 말하자면 정교회가 정통성, 가톨릭이 보편성을 더 강조한다는 분석도 정확하지는 않다. 양쪽 모두 스스로를(그리고 서로를) 정통적이고 보편적인 세계교회라고 주장하며, 정(통)교회, 보편교회라는 명칭은 분열 이후 어쨌건 둘 다 정당성을 가졌으니 양쪽을 구별하기 위해 원조 국밥, 정통 국밥이라는 식으로 붙여진 이름에 가깝다.(...) 그래서 그냥 쿨하게 "Ecumenical Church"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5. 이와는 별개로 에스파냐의 경우 서방교회의 후방을 지켰다는 자부심 때문에 한때는 가톨릭 문화권의 맹주 노릇을 했다.
  6. 총 신자수가 가톨릭의 1/5. 물론 개신교 한 교파보단 당연히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크다. 개신교 교단을 모두 합치면 정교보다 신자수는 많지만, 교단이 한두 개가 아닌지라(...).
  7. '에큐메니컬'(Οικουμενισμός, 교회 그리스어로는 이쿠메니즈모스)은 단순히 '세계의, 세계적인' 이란 뜻 외에도 상당히 복잡한 개념인데, 교회, 즉 에클레시아(Εκκλησία, Ecclesia)가 본디 어떤 뜻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에클레시아는 불러내어 만나다란 의미, 나아가 하느님 앞에 불러 모여진 신자들의 모임이란 뜻이다. 에큐메니컬(Οικουμενισμός)이라는 것은 '세계적인', '하나 됨', '하나 된 공동체', '하나 된 교회'를 모두 아우르는 말이다.
  8. 이 이쿠메니키 에클리시아, 이전 주석은 라틴어로 되어 있었지만 정교회는 기반이 비잔틴권에 있으므로 중세(교회) 그리스어로 바꿈 참고로 라틴어로 되어있던 이전 주석은 Ecclesiae oecumenicum이었다.
  9. 사실 자부심으로 따지면 가톨릭도 만만치가 않다. 로마 가톨릭 역시도 자신들이 기독교의 정통이라고 확신한다. 가톨릭은 스스로를 Ecclesia Catholica라고 하는데, 이를 해석하면 '모든 민족, 모든 지역, 모든 국가가 보편적으로 믿는 신자들의 모임' 즉 교회가 된다.
  10. 그런데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 두 종파는 둘 다 정통이고, 둘 다 보편되며, 둘 다 사도로부터 이어온다. 어차피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두 종파가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들로부터 이어져온 하나의 교회를 이룬다.
  11. 이 단어는 '아버지'라는 말에서 유래했으며 주교 등 고위 성직자에 대한 경칭이었으며, 나중에는 로마 총대주교나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콥트 교황) 등 최고위 성직자에게 쓰이는 경칭이 되었다.
  12. 파트로네스는 아버지란 뜻이 있지만, 파트로네스-클리엔테스 관계에서의 파트로네스의 뜻이 있다.
  13. 그리고 각 지역 교구들이 스스로 교회를 꾸려가는 구조 때문에 사실상 각 지역의 문화 그 자체를 이루기도 한다. 물론 이건 비잔티움 제국이 망해버린 탓이 더 크다고 봐야 겠지만.(...)
  14. 가톨릭의 경우 교황이 전세계의 신자들에게 영향력을 구사하는 구조다. 그렇기에 군주가 "왜 우리나라 신자들에게 이래라 저래라임?"이라면서 교황하고 싸우는 경우도 있는 등 의외로 세속군주하고 다투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걸핏하면 교황이 세계의 정치에 끼어들려고 해서 세속군주들 입장에선 결코 좋아할리가 없다. 다만, 정작 정교회의 본산인 비잔티움 제국에선 황제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간의 다툼이 정말 심해서 비잔티움 황제가 교황과 결탁하곤 했다. (...)
  15. 다만 만약 동서 대분열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서유럽권은 나라별로 나누기보다는 교황 휘하로 통합되었을 듯하다. 가톨릭이 로마 주교인 교황 하에 죄다 통합한 구조를 이룬 것은 결국 서로마가 망한 이후 난장판이 된 서유럽을 통합하기 위한 목적도 없지는 않으니까. 사실 교황이 카롤루스를 서로마 황제로 선포한 것도 이런 이유다. 물론 이걸 본 비잔티움은 피꺼솟해서 카롤루스를 공격했다
  16. 비 칼케돈파는 칼케돈 공의회의 결정을 거부한 김에, 아예 각 지역의 문화에 맞춰서 현지화를 해버린 것이 오리엔트 정교회의 지역 교회들이다. 콥트 정교회는 아예 완전히 가톨릭과 똑같다시피 한 사례로, 수위권 분쟁이 분리되어 나간 실질적인 이유였다. 다만, 가톨릭과 달리 칼케돈 공의회가 결의한 교의를 받아들이지 않아, 교리가 꽤 개조되었다. 이제 와서 따져 보니 교리 문제는 사소한 오해(...)가 수위권 문제와 결합되면서 터진 문제였지만... 참고로, 오리엔트 정교회도 정교회에서 교회 구조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 따라서 개신교 쪽에서는 오리엔트 정교회와 정교회를 동등하게 긍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크다. 그리고 오리엔트 정교회는 정말 옛날부터 지금까지 현재 이슬람 세력에서 벗어난 정교회보다 더더욱 이슬람 치하에서 처절하게 핍박받았기에 더더욱 자주 독립적이다.
  17. 정확하게 따진다면 7차례의 세계 공의회를 거치면서 공의회 결과에 불복한 교파들이 너 이단 독립하여 갈라져 나왔고, 나갈 만한 사람들이 다 나가고 마지막에 남은 교파가 정통 보편교회라는 이름을 얻었다가 문화적 차이와 세력 다툼으로 정통 교회와 보편 교회라는 나뉜 것...라고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18.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한반도가 분열해서 '서울을 따르는 세력'과 '평양을 따르는 세력'으로 나누어졌다고 상상해보면 얼추 비슷하다.
  19. 위치를 보면 알겠지만, 알렉산드리아-안티오크-예루살렘의 정통파 교구는 원래도 단성론/합성론 교회들의 강세로 실권이 거의 없었는데 그나마 있던 권위도 이슬람 침공 이후 유명무실해져 그저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예스맨에 불과했다. 왜 로마에 안 붙고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붙느냐 묻는다면... 황제가 있는 곳이니까. 그리고 거리상으로도 콘스탄티노플이 더 가깝고, 동서교회 분열 직후 서유럽의 혼란상까지 생각하면 그나마 자신들의 본래 영역을 되찾아 줄 희망이 있는 곳이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좌가 속한) 비잔티움 제국이었다.(비잔티움 제국은 12세기까지 안티오키아 탈환을 꾸준히 시도했고, 십자군 전쟁을 포함해서 몇번 성공하기도 했다.)
  20. 왼쪽은 가톨릭을 상징하는 성 베드로고, 오른쪽은 정교회를 상징하는 성 안드레아다.
  21. 오죽하면 1453년 당시 비잔틴 제국의 대표적인 철학자이자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게오르기오스 스콜라리오스가, '참된 신앙을 버리고 제국을 존속시키느니, 차라리 신앙을 지키고 제국의 운명은 하느님의 뜻에 맡기는 것이 낫다' 라는 식의 발언을 했을 정도. 참고로 이 인물은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어 비잔틴 제국이 멸망한 이후 오스만 제국의 황제 메메드 2세에 의해 콘스탄티노플 대주교가 된다. 제국은 망했지만 어쨌든 신앙은 지켜냈다
  22. 최초의 동슬라브인의 국가는 이 나라이며, 수도의 이름을 따서 이를 키예프 공국이라고도 한다. 이들이 훗날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의 조상이 된다.
  23. 블라디미르 1세
  24. 블라디미르는 형제들과 싸워 권력을 얻은 탓에 정치적 기반이 약했다. 그래서 권력을 키우고 키예프 공국을 강력하게 통치할 수 있는 사상이 필요했는데 그 사상이 바로 종교였다.
  25. 즉, 국가도 없는 민족의 종교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26. 이런 믿음은 가톨릭도 마찬가지로 가지고 있다.
  27. 러시아 정교회의 성인인 알렉산드르 넵스키는 러시아에 가톨릭을 무력으로 전파하려던 튜튼기사단을 작살낸 공으로 성인이 되었다. 그래서 러시아 정교는 독일에 대한 감정이 아주 안 좋다.
  28. 지역교회별로 살짝 다르기도 하다.
  29. 사실 그리스인들이 처음 사용한 아시아라는 개념은 (이후 소아시아라 불리게 된) 아나톨리아 반도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그리스의 동쪽, 에게해 너머에 있는 그 땅덩이를 아시아라고 부른것. 하지만 그 땅덩이 너머에도 땅덩이가 있고, 또 그 너머, 또또 그 너머... 끝이 안 나!
  30. 정교회 및 가톨릭에서는 단성론 이단으로 일컫는다. 하지만 단성론을 둘러싼 오해가 상당히 풀린 지금은, 이런 명칭은 자제하는 편. 특히 비 칼케돈파는 사실 합성론파지 단성론파가 아니다!
  31. 당시 예루살렘의 총대주교였던 유베날은 칼케돈파였기 때문에 해임되지는 않았다. 사제 및 신자들이 무지 반발해서 비잔티움 제국군의 호위를 받았을 뿐이다.
  32. 마론파의 수장의 직함도 안티오키아 총대주교다.
  33. 바빌로니아의 총대주교좌는 동방 가톨릭 교회 중 하나인 '칼데아 가톨릭 교회'를 관할하는 총대주교좌다. 바로 그 옛날 네스토리우스파였던 아시리아 동방교회에서 갈라져 나온, 아시리아-칼데아 계열 교회 중 하나다. 한편, 이에 속하지 않은 아시리아 동방교회를 관할하는 총대주교좌는 옛 페르시아의 수도인 '크테시폰과 셀레우키아의 총대주교좌'다.
  34. 참고로 정교에서 대주교의 영어 표기는 Arch-Bishop이 아니라 Metropolitan이다. 근대 주교는 Bishop인데?!
  35. 정주영회장이 조선소 세우려고 지폐의 거북선 그림으로 영국 은행을 설득했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사건에서, 성공에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대한민국 정부의 보증과 더불어 오나시스의 친척이 보증을 서 준 것이었다.
  36. 일종의 장삼으로, 가톨릭의 수단에 해당하는 옷
  37. 이는 가톨릭과 정교회 모두 초대교회의 정통적 계승자로 주장하기 때문이다. 흔히 가톨릭과 정교회라고 부르지만, 전자를 보편교회라고 부르는 것도 후자를 정통교회라고 부르는 것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38. '가톨릭'을 '로마 가톨릭'이라고 부르는 이유와 비슷하다. '가톨릭'이라는 말 자체는 '보편교회'를 뜻하므로 이 항목에서 설명하는 종파 역시 '가톨릭'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렇기에 '가톨릭'이라고 굳이 지역명을 붙여주는 것이다. 같은 원리로 '정교회'라는 말 자체는 천주교회 역시 해당하는 말이다. 그렇기에 '동방'이라는 말을 붙여서 구분시키는 것.
  39. 다만,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곧 세계 총대주교는 로마 황제가 임명 동의권만 가지고 있었지 직접 선출한 건 아니었다.
  40. 참고로 제정 러시아 때, 황실과 러시아 정교회 간의 불화가 터져 100년간 모스크바 총대주교좌가 공석 상태(!)가 이어진 적이 있다.
  41. 동등한 조건에서 정교회와 가톨릭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교황의 영향력이 강한 가톨릭보다는 총대주교를 임명할 수 있는 정교회를 더 매력적이라고 여기는 군주들이 더 많지 않았겠느냐는 상상에는 분명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가톨릭을 선택한 서유럽 국가들 기준으로는 로마의 교황은 가까운데 있지만 세계 총대주교가 있는 콘스탄티노플은 너무 멀었다. 결국 동서교회의 영향권은 지정학적 조건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것.
  42. 이게 바로 에큐메니컬의 개념이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모두 한몸이라는 것.
  43. 행여나, 정치적 분쟁이 발생해 러시아 교회들이 정교회 전체에 대한 수위권을 주장하게 된다면, 러시아 교회들은 바로 콥트 정교회처럼 돼버릴 것이다(...) 물론 러시아 정교회는 그 뿌리가 뿌리다보니 이런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적은 게 다행. 정교회와 가톨릭이 너! 이단! 거리던 시대를 지나 형식적으로 한 몸이라 하는 것과 달리 러시아 정교회는 모습이 많이 다르긴 해도, 신앙적으로 한몸이라는 점을 인정하기에 정교회인 것이다. 여담으로 가톨릭은 "총대주교 자리가 문제라면, 자리를 더 이상 안 만들면 되지라는 간단한 논리로 수위권 문제를 해결했다(...) 또한 현대 가톨릭의 총대주교 자리는 다른 주교들과 비교했을때, 실질적으로 큰 권력을 가지지는 않는다.
  44. 아직 완전한 통합은 이루지 못했지만 현재는 지상에 유일한 보편 교회의 일원들로써 서로를 인정한다. 위의 내용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그 어떤 다른 기독교 종파보다도 가톨릭과의 관계가 개선된 종파가 바로 정교회이다.
  45. 예외는 원래 서방교회에 속했으나 비잔티움 제국의 영토였던 일리리아(지금의 발칸 반도 서부)와 남부 이탈리아로, 나중에 일리리아는 콘스탄티노플의 관할에 들어가고 남부 이탈리아는 12세기 이후 노르만족에게 존나 쳐맞고 교황의 수위권 아래에 들어갔다.
  46. 굳이 말하자면 정교회의 수장인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가 황제의 신하였다는 점에서, 교회 역시 황제를 수장으로 한 국가와 정부의 일부였다는 의미로 써야 할 것이다
  47. 단, 현존하는 '콘스탄티누스의 기증 문서'는 후대에 위작된 사기다. 당대에 콘스탄티누스의 기증의 유효성을 믿었는지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48. 다만 성문법이 아닌 관습법에 의해서다.
  49. 정교회에서 이를 좀더 엄격히 요구하지만, 이는 가톨릭 신자들에게도 분명히 의무다.
  50. 물론 원론적으로 그렇다는 말이지 가톨릭 신자 개인이 그냥 찾아가서 참례하는 걸 막는 것은 아니다.
  51. 루카의 복음서 23,36 참조
  52. 더 정확히는 서유럽에서 뒤늦게 성상논쟁이 발생한 종교개혁적 관점
  53. 그림 이외의 성상을 금지한 것은 아니지만 가톨릭에 비교하면 잘 사용되지 않는 편이다.
  54. 사순기간 첫째 주일로, 성상논쟁에서 정통교리가 승리한것, 정통교회가 모든 이단에게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위해 성화를 들고 행렬을 한다.
  55. 황제의 의중이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등 종교계 인사의 의중이 아니라는 식으로 할 수도 있지만, 당시 정교회의 움직임에서 이 둘을 완전히 구분하는 것은 어렵다.
  56. 따지고 보면 가톨릭의 십자군 원정 또한 명분과 실질적 목표는 따로 놀았으니...
  57. 가톨릭: 교황 제도! / 정교회: 그 어떤 주교도 무오하지 않다! / 개신교: 사도 전승 거부! 오직 믿음! 오직 성서! / 정교회, 가톨릭: 꺼져.
  58. 러시아 소설들을 보면 알겠지만 제정 러시아 시대에는 독일인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자리매김 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작품이 스페이드의 여왕.
  59. 그리스에서도 개신교를 메르켈(...)과 엮어서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60. 하지만 똑같은 게르만계 개신교 국가라도 네덜란드와는 독일과 다르게 잠시나마 사이가 좋았던 적도 있었고, 아예 빌럼 2세의 왕비는 파벨 1세의 딸인 안나 파블로프나 여대공(Анна Павловна)이었다.
  61.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도 언급된다.
  62. 일례로 20세기 초반, 연해주로 파견된 장로회의 최관흘 선교사는 한국 개신교 최초의 외국 파견 선교사였으나 현지 정교회 및 러시아 정부와의 대립 끝에 정교회로 개종해 버렸다.
  63. 물론 이것도 교파 나름이긴 하다. 복음주의적 성향이 강한 교파에서는 이런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흔하지만, 루터회나 성공회 내 고교회파, 일부 장로교에서도 꽤나 엄숙한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64. 비단 정교회 국가만이 아니라 인도 공화국 같은 타종교권 국가에서도 비슷한 선교 양상을 보인다. 사실 이는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선교의 기본 정석이다(...)
  65. 역자가 오역임을 인정하고 수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