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안룡

한자 : 獨眼龍
한자 훈음 : 홀로 독, 눈 안, 용 룡

본래는 애꾸눈이란 뜻으로 한 눈을 가지고도 용맹한 사람을 뜻하는 것이었으나, 후에는 애꾸눈이지만 덕이 많은 사람까지도 지칭하게 되었다.

일본 전국시대의 유명 다이묘 다테 마사무네, 중국 인민해방군의 10대 원수 중 한명인 류보청의 별명이기도 하며, 축구선수 김은중은 J리그 베갈타 센다이 시절 왼쪽 눈이 실명이라는 것을 알게 된 팬들에 의해 이 별명을 얻었다.[1]
간혹 한니발 바르카도 독안룡이라 불리기도 한다.

유래

나라 18대 황제인 희종때의 일이다. 산동 출신인 황소는 왕선지 등과 반란을 일으킨 지 5년 만에 10여만의 농민군을 이끌고 마침내 도읍인 장안에 입성했다. 그리고 스스로 제제(齊帝)라 일컫고 대제국(大齊國)을 세웠다.

한편, 성도로 몽진한 희종은 돌궐족 출신인 맹장 이극용(李克用 : 856~908)을 기용하여 황소 토벌을 명했다. 당시 4만 여에 이르는 이극용의 군사는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사정없이 맹공을 가했기 때문에 반란군은 '갈가마귀의 군사(鴉軍)가 왔다!'며 심히 두려워했다고 한다.

19대 황제인 소종이 즉위한 그 이듬해 마침내 반란군은 토벌되었고 황소도 패사하고 말았다. 이극용은 그 공에 의해서 농서(지금의 감숙성) 군왕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이극용은 숙적 주전충과 정권을 다투다 패하고 실의 속에 세상을 떠났다.

조정의 실권을 장악한 주전충은 20대 황제인 애종을 폐하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후량을 세웠으나 16년 후 이극용의 아들 이존욱에게 멸망했다. 맹장 이극용에 대해 오대사 당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이극용은 젊고 효용(사납고 날쌤)했는데 군중(軍中)에서는 이아아(李鴉兒)라고 일컬었다. 그의 눈은 애꾸눈이었다. 그가 귀한 자리에 오르자 일컬어 '독안룡'이라고 했다."

실제로 이극용은 태어날때부터 한쪽 눈이 작아서 마치 눈이 거의 감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1. 특히 센다이는 다테 마사무네가 활동하던 지방이어서 이런 별명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