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역대 황제 | ||||
내전기 | ← | 내전기 | → | 세베루스 왕조 |
18대 페르티낙스 | ← | 19대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 → | 20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
Marcus Didius Julianus
1 소개
서기 193년의 혼란기에 페르티낙스 다음으로 제위에 오른 로마 제국의 황제. 황제의 자리를 돈으로 산 것으로도 알려져 있는 인물[1]로, 선대 황제 페르티낙스를 살해한 친위대에게 막대한 하사금을 지불하고 제위에 올랐다고 한다.
2 황제를 칭하다
황제를 죽인 병사들은 로마 시민들의 반응이 두려워 페르티낙스의 머리를 장대에 높이 매단 채 진지로 돌아와 병영의 문을 걸어 닫았다. 명백한 후계자가 없는 상황에서 다음 황제를 결정할 열쇠를 쥔 실세는 다름 아닌 병사들이였다 이것은 로마 제국 역사상 가장 괴상하고 수치스러운 사건이 일어나게 된 계기였다. 한 명이 아닌 두 명의 황제 후보자가 근위대 진지에 나타나 일종의 경매 방식으로 군사들의 지지를 얻는 대가로 입찰하는 절차가 진행되었다. 근위대는 이를 굳이 숨기지 않은 채 제위 경매에 관한 공고문을 벽에 붙여 놓았다. 두 명의 경쟁 후보 가운데 첫 번째는 페르티낙스의 장인인 티투스 플라우비스 술피키아누스였고, 두번째 후보는 유력한 전직 집정관이자 상당한 재력가로 널리 알려진 마르쿠스 디디우스 율리아누스였다, 결국 군인들은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를 선택했다
그가 더 높은 가격을 제시했을 뿐 아니라 디디아나 율리아누스가 만약 술피키아누스를 뽑는다면 자기 손으로 페르티낙스 모살에 대한 복수를 하겠다고 그들에게 경고했기 때문이였다.순순히 황제로 인정한다면 유혈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디디우스 율리아누스가 제위에 오른 것은 순전히 근위대의 지지 때문이였고 이러한 취약한 입지와 페르티낙스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알고 있던 그는 그가 말한 대로 "운명에 대한 불안감으로 첫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뜬 눈으로 지샜다"고 한다. 그는 공공연히 그를 반대하는 로마 시민들에게도 원로원에게도 인기가 없었다. 그는 곧 근위대에게 했던 무절제한 선심성 공약을 지키지 못하면서 그들의 지지마저 잃어버렸다. 페르티낙스의 죽음은 국경 지역 주둔군을 휘하에 거느린 세명의 경쟁자 간의 제위 쟁탈전으로 이어졌고. 첫 번째로 시리아의 총독 가이우스 페스켄니우스 니게르(Gaius Pescennius niger) 총독이 4월 중순에 시리아의 4개 군단에 의해 황제로 추대받고 안티오키아를 임시수도로 선포하여 스스로 황제라고 자처했다. 그러나 이미 좀 더 강력한 후보자가 나왔는데 그가 바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였다. 냉혹하고 영리한 정치가인 그는 곧 무려 16개 군단을 비롯한 라인 강과 도나우 강 주둔군 전체의 지지를 얻었다.
3 죽음
페르티낙스가 죽은 지 2주가 채 되지 않은 4월 19일, 세베루스는 지금의 빈 근처에 있는 카르눈툼에서 자신의 본부에 주둔 중인 군단으로 하여금 자신을 황제로 선포하게 했다. 그는 즉시 로마를 향해 진군을 준비했지만 우선은 클로디우스 알비누스와 협정을 맺고 그의 지원을 얻기 위해 그에게 카이사르 칭호를 주었다. 세베루스의 군대가 로마를 향해 남쪽으로 진군하는 동안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는 그를 저지하기 위해 별에 별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다, 그는 근위대를 시켜 로마 주변의 땅을 파서 요새를 만들게 했다[2]
그러나 이러한 작업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은 그 일을 회피하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써서 그 일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세베루스를 살해하기 위해 암살범들을 보내기도 했지만 밀착 경호를 받고 있는 세베루스의 보안을 뚫지 못했고 율리아누스는 마지막 절망적인 조치로 원로원에게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를 공동 통치자로 임명할 것을 요청했지만, 로마 가까이 오고 있던 세베루스로서는 권력을 나눠 가질 필요가 조금도 없었다.
193년 6월 1일 원로원은 율리아누스에게 사형을 내리고, 세베루스를 황제로 임명했으며, 페르티낙스에게 신성한 영예들을 수여했다. 관리가 형을 집행하러 갔을 때 율리아누스는 모든 이에게 버림받아 홀로 된 채, 울고 불고 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처형되었다. 디오 카시우스에 따르면 율리아누스는 죽기 직전에 "그런데 내가 무슨 나쁜 짓을 했단 말인가? 내가 누굴 죽였단 말인가?"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한다. 그렇게 불과 2개월 만에 병력을 이끌고 쳐들어온 판노이아(도나우) 사령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에 의해 그의 66일의 짧은 치세는 막을 내리고, 곧이어 시작된 세베루스 왕조에 의해 로마는 얼마간 안정을 되찾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