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올 옴므

1 개요


크리스 반 아쉐 시기의 디올 옴므(좌, 2007~현재)와 에디 슬리먼 시기의 디올 옴므(우, 2000~2007)

돈있어도 작아서 못입는 옷
옷에 몸을 맞추는 신개념의 옷
잘못 입으면 딱 나이트 삐끼 옷 된다
Dior Homme. 패션 하우스 디올남성복라인.
디올 옴므는 유독 다른 패션 하우스의 남성복보다 유명한데, 그 이유는 디올 옴므가 2005년경 남성복계에 일으켰던 일종의 '컬쳐 쇼크'에서 기인한다.

2 특징


사진의 모델은 안드레 페직.

당시 디올 옴므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에디 슬리먼은, 부임과 함께 그 전까지의 남성복에 대한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는 시도를 하게 된다.

1. 상, 하의 모두 극단적으로 슬림한 핏의 옷
2. 이전까지의 남성복 모델과는 다른 핏기없고 기아상태의 마른 모델의 사용

이 새롭고 과감한 시도가 이전까지의 남성복계에 죽빵을 날린 셈이 되었으며, 이러한 새로운 스타일은 뭇 남성들의 폭발적 지지를 이끌어 내게 된다. 전설의 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에디 슬리먼의 디올 옴므를 입기 위해 다이어트를 할 정도.

단순히 마르기만 했다고 어울리는 게 아니라 몸통이 극단적으로 슬림한데 비해 팔 다리의 기장은 상당히 길기 때문에, 매우 말랐으면서도 팔다리가 길쭉한 스타일인 사람이 아니라면 옷태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절대 머리가 크면 안 어울린다. 사실 (머리가 작은 사람에 비해서) 머리가 큰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옷은...

디올 옴므 패션쇼 최초의 아시아 모델인 김영광의 신체사이즈는 키 187센티에 70킬로이다.

이것 때문에 비아냥을 듣기도 하는데 대체로 "옷이야 예쁘지, 근데 그걸 누가 입을거야?" 하는 점.
그나마 그 옷 소화가능한 경우는 10대~20대 초반,끽해야 20대 중반인데...갸들은 돈이 딸려
참고로 휴고보스의 S사이즈 재킷이 디올옴므의 L사이즈 재킷보다 크게 나온다.

3 누구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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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이 동영상(2004년 경)이 찍힌 2년 후에 강동원(2005~2006)이 정확히 같은 스타일로 한국에 소개하였다고 보면 된다.

피트 도허티의 공이 지대하다.

에디 슬리먼은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에 환장했던 디자이너로[1], 당시 스트록스리버틴즈 등 2000년대 초 런던 인디씬을 흠모하였다. 그 중에서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가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헤로인 시크의 대명사 피트 도허티였다. 당시 키 189cm에 70kg였다.

이 사람이 공연할 때마다 입는 옷이 쫙 달라붙는 가죽 재킷에 까만 청바지, 하얀 티셔츠가 기본 조합이다. 그리고 수트빨 정말 잘 받는다.[2] 그러니 에디 슬리먼이 환장 안 할 수가 없는 노릇.

근데 사실 원래는 이렇게 마른 몸이 아니다. 본의 아니게 에디 슬리먼의 뮤즈가 된 셈. 자세한 사항은 항목 참고.

최근엔 디올의 디자이너의 교체로 인해 그렇게 극단적인 핏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리 디올이 작다 하더라도 xs, s, m, l, xl 모든 사이즈가 있기 때문에 그냥 원하는 사람은 자기 몸에 맞춰 입으면 된다. 유명 랩퍼 Jay-Z도 그 큰 체구에 디올을 즐겨 입는다.

모든 패션이 그렇지만 디올 옴므 또한 자신의 몸이 이 디자인에 어울리는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호날두도 디올 옴므풍으로 입었다가 그 터질듯한 광배근과 두툼한 허벅지와 슬림핏의 완벽한 부조화로 욕을 엄청 드셨다.

4 영향

현재 유행하는 스키니핏, 슬림핏의 진이나 달라붙는 스타일의 옷들은 모두 2005년의 에디 슬리먼의 디올 옴므에서 비롯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이전에도 남성복에 라인이 있기는 하였으나, 지금처럼 극단적으로 허리가 쏙 들어간 남성복은 디올 옴므의 영향이다.

그 결과 "남성복은 에디 슬리먼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라고 설명해도 될 만큼 남성복계에 큰 족적을 남겼으며 그 영향은 당연히 지금까지 이어져서 현재는 다른 어떠한 패션 하우스에서도 쫒아올수 없는 남성복계의 원탑이 되었다.

다만 여전히 건장한 체격의 근육질 마초남이 환영받는 서구권에서는 동아시아만큼이나 열성적인 인기를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모든 컬처 쇼크의 주인공인 에디 슬리먼은 이 모든 사태 이후 얼마 안가 패션계에서의 은퇴를 선언하여 '박수칠 때 떠나라'라는 말을 몸소 실천하였다. 이후 이브 생 로랑으로 복귀하기 전까지 개인 작업을 하며 패션계를 떠나 있었다.

그 후속 디자이너는 에디 슬리먼의 오른팔이였던 크리스 반 아쉐가 현재까지 맡고 있다.

5 현황

상기의 내용은 모두 에디 슬리먼이 디렉터를 맡을 시절의 이야기이며, 크리스 반 아쉐 체제의 현재 디올 옴므는 이전과 많이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다. 에디 슬리먼의 어시스턴트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크리스 반 아쉐의 디자인 철학은 그와 상당한 거리가 있기 때문. "돈있어도 작아서 못입는 옷", "나이트 삐끼 옷" 등의 이미지는 오히려 현재 에디 슬리먼이 디렉팅을 맡고 있는 생로랑이 고스란히 이어가고 있다.

그런지 룩, 록 시크 등으로 대표되는 에디 슬리먼과 달리 크리스 반 아쉐모더니즘, 미니멀리즘 계열의 디자인을 선보여왔으며 이는 그 자신의 개인 브랜드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특히 직선적인 재단과 실루엣이 특징.[3] 때문에 현재 디올 옴므는 에디 슬리먼 시절의 삐딱한 헤로인 시크가 아니라 말끔하게 정제된 세련미를 추구하는 쪽에 가깝다. 극단적인 스키니 핏 역시 지금과는 동떨어진 얘기다.

물론 에디 슬리먼이 당대에 끼친 영향이 막대했음은 부정할 수 없으나 엄연히 디올 하우스의 일부인 디올 옴므를 디렉터 개인의 업적에만 고착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심지어 크리스 반 아쉐(2007~현재)는 에디 슬리먼(2000~2007)보다 더 긴 기간을 디렉터로 지내오고 있는 상황. 창립자인 무슈 디올 생전에 남성복 라인이 없긴 했으나 그의 유산인 실루엣의 미학, 우아함 등을 착실히 계승하고 있는 쪽은 에디 슬리먼보다 크리스 반 아쉐라고 봐야 옳다.[4]

정리하자면 현재의 디올 옴므는 수트 중심의 정제된 실루엣, 고급스럽고 세련된 디자인을 선보이는 브랜드라 할 수 있으며 최근에는 스포티즘 유행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거나 더플 코트 등 프레피 룩의 요소를 첨가하며 다양한 변주를 보이고 있다.

6 트리비아

에디 슬리먼 이전엔 디올 무슈 라인이었으나 하도 안 팔리는 관계로 에디 슬리먼을 영입하며 새로 런칭했었다.

2003년 fw시즌 이후로는 대중화 전략으로 가격이 상당히 낮아졌으나 그와 비례해 품질도상대적으로 낮아졌다. 근데 낮아진 가격이 티 한장에 30만원(...)
2015년 fw 시즌 이후로 약간 더 가격이 내려갔다, 그전 시즌까지만 해도 가죽신발 주류였지만 요즘은 부분 캔버스로 만들거나 하는 신발도 많고 티셔츠도 미국기준으로 250~350달러 수준이었는데 요즘은 180달러 짜리도 간간히 보인다. 가디건도 대부분 1000달러 위였지만 간간히 700달러 하는것도 나온다. 대중화 전략인지는 모르겠지만 가격은 조금더 낮아지긴 했다.

프리미엄 청바지로 유명하며, 한국 한정으로 디스퀘어드, 돌체 앤 가바나와 함께 3D라고 불린다. 청바지의 포인트는 뒷주머니의 절개선. 특히나 아름다운 워싱진들로 유명한데 몇몇의 명작이라 불리는 워싱진들은 아직도 높은 가격에 중고 거래 되고 있다.

청바지의 기장이 미칠듯이 길다. 보통 120cm, 짧으면 115cm 정도. 바다 하리가 입어도 기장이 남는다. 요즘은 그렇게 길게 안나온다 지드래곤도 줄여입는데 뭐. 참고로 다리길이는 키 180에 90cm이면 매우 긴 편에 속한다. 다리길이가 1m가 넘어가는 사람은 비율 좋은 185 이상 정도.

기장이 긴 이유는 입었을때 밑단의 곱창이 생기게 하기 위함이다.(특유의 슬림핏으로 밑단이 좁아 곱창이 예쁘게 생긴다.) 실제로 런웨이의 모델들도 곱창이 나게 입거나, 모델에 맞춰 수선을 해서 입는다. (의외로 디올 모델중 키가 크지 않은 모델도 있다. 물론 머리는 작다)

추가바람
  1. 프란츠 퍼디난드의 팬이기도 해서, 무대 의상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2. 수트를 살리는 남자라고 평가 받는다. 수트가 도허티빨이라는 뜻이다.
  3. 그러나 2015년을 기점으로 크리스 반 아쉐는 개인 브랜드인 krisvanassche를 접는다고 발표했다. 디올 옴므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4. 애초에 디렉터로서 에디 슬리먼은 하우스의 유산을 계승하기보다는 파격적인 혁신을 거쳐 디자이너 본인의 취향으로 재정립하는 성향을 보인다. 그가 부임한 뒤 이름까지 바뀐 생로랑 역시 이브생로랑 시절의 오랜 팬들과 언론으로부터 한동안 뭇매를 맞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