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록스

The Strok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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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록스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내 음악관을 형성시킨 밴드다.

알렉스 터너

1 멤버

두 번째 사진 왼쪽부터
리드기타 닉 발렌시 (Nick Valensi)
보컬 줄리안 카사블랑카스 (Julian Casablancas)
드럼 파브리치오 모레티 (Fabrizio Moretti)
베이스 니콜라이 프레이처 (Nikolai Fraiture)
리듬기타 앨버트 해먼드 주니어 (Albert Hammond, Jr.)

2 역사

훤칠한 키와 멋진 외모, 그리고 뛰어난 패션센스 덕에 록밴드 치고는 여성팬들이 무척 많은 편이며 그들로부터 각각 줄스, 닉, 알비김경식, 니콜라이, 팹 등의 애칭으로 불린다. 1998년에 데뷔한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밴드.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밴드.

2001년 출시한 데뷔앨범 Is This It은 전세계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2000년대 음악계에 끼친 이 앨범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엄청나서 2000년대 최고의 명반을 뽑을 때 NME에서는 1위, Q매거진과 롤링스톤지에서는 2위로 선정되었다. 링크 링크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거냐면 2000년대 상업적으로 제일 성공한 밴드들 중 하나인 콜드플레이도 롤링스톤지의 2000년대 최고의 앨범 리스트에서 최고 순위가 21위다... 그만큼 Is This It의 음악적 가치와 파급력이 넘사벽이라는 것. 무엇보다도 이 앨범을 통해 2000년대 초중반의 록 씬을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로 지배했다. 이후 오히려 영국쪽에선 개러지록을 표방하는 아류 밴드들이 무척 많이 생겨났다. 또한 영국에서 더 많이 사랑 받았던 뉴욕밴드.[1] 악틱 몽키즈가 스트록스 빠였고 그들을 보며 밴드를 시작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NME같은 곳에서 정리하면 더 이상 할 것이 없어 힙합같은 장르와의 융합을 통해 꺼져가는 생명력을 유지하던 음악의 판도를[2] 단숨에 초기 리셋시킨 앨범으로 평가한다. 게다가 그 어느 누구도 "이제 이런 음악의 유행이 올 것이다..." 라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시기에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3] 영국 록음악의 판도에 대단한 영향을 끼쳤다.

영국 음악계에 지나칠정도의 하이프[4]로 스트록스가 과대평가 된면이 상당히 크다. 6~70년대 미국 펑크씬에 영향을 받아 쿨한 음악을 만드는 미국 락 밴드를 락의 구세주같은 칭호를 붙여 논란이 컸다. 정작 당사자들은 그러한 평가들에 대해 무관심한 편이다.

1997년에, 최초의 모델 매니지먼트사를 설립하였던 존 카사블랑카스의 아들[5] 인 줄리앙 카사블랑카스를 중심으로 뉴욕에서 친구 닉, 니콜라이, 팹을 만나 4인조 밴드를 결성하였던 것이 시초. 이후에 앨버트 해먼드 주니어[6][7]가 영입되어 현재의 라인업이 완성되었다. Is This It이 데뷔 앨범치고는 너무 큰 하이프와 인기를 받아 마치 스트록스가 갑자기 짠 하고 탄생한 밴드 같아 보이겠지만 말이 부유층 자제들이지 실제로 밴드 생활에서 그들의 부모들이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는 일은 전무했기에 초기의 데모송들은 카세트테이프 형태로 밖에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었고 수많은 기획사들로부터 거절당하는 무명생활을 보내야 했다. 더군다나 미국의 기획사는 좀 더 트렌디한 음악을 하라고 압박을 계속 넣었다고...

위에서 언급되었든 자국인 미국, 뉴욕보다 오히려 영국인디씬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었는데 미국에선 별 반응없던 3곡 짜리 데모테이프를 듣고 영국에서는 곧바로 스트록스를 불러들여 NME 표지 모델로 바로 써버렸다.[8] 이후 NME가 사생팬을 자처할 정도...

어쨌든 여러모로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씬의 시작이자 마지막인 밴드인 셈.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류 밴드들이 다 그렇지만 예전만하지 못하다는 평을 듣지만 이 씬의 시작을 장대히 열었던 Is This It 앨범의 주인공이란 사실만으로 록 음악 역사에 길이 남을 밴드인 것만은 확실하다. 앞으로 2000년대를 이야기할때 그 시작을 열 밴드중 하나라는 것만으로도 스트록스의 존재가치는 충분하다는 것.[9]

멤버들에 따르면 직접적으로 미국 인디 록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고, 어느 줄리안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냥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따라했다고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들의 음악은 6~70년대 미국 펑크 록 밴드들의 영향을 골고루 받았는데 스트록스의 기타 운용방식[10]텔레비젼의 방식을 그대로 가져온 것[11]이고, 6~70년대 미국 펑크 록씬의 미니멀리즘 성향에 영향을 받아 상당히 매우 단순하며, 거친 질감은 스투지스의 영향을 받고, 줄리안의 나른하고 톤이 낮은 보컬은 루 리드를 연상시킨다.[12] 다만 전위적이었던 뉴욕 펑크 록에 비해 난해 하거나 그렇지는 않다. 현재는 줄리안의 신스팝이나 일렉트로닉 같은 음악적인 관심의 변화로 많이 변했다.[13]

대부분의 곡은 보컬 줄리안 카사블랑카스에 의해 만들어지며 전반적으로 그의 독재적인 조율 아래 곡이 연주된다. 닉 발렌시와 앨버트 해먼드 주니어의 유려한 기타 리프 등은 모두 줄리안이 만들어준 대로 친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14] 다만, 멤버들의 개인 솔로 활동과 다른 일정으로 미뤄진 끝에 마침내 2011년 출시된 4집 Angles는 모든 곡작업이 밴드 멤버 5명의 적절한 참여 아래 이루어졌다. 연주파트 멤버들이 반주를 만들면 그 위로 줄리안이 보컬을 입히고 그 줄리안의 보컬에 대해 멤버들이 이런저런 조언과 수정을 가하고 각자 주어진 구역의 리프라든지 전체 분위기, 믹싱들을 조율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줄리안과 나머지 멤버들이 메일로 서로의 녹음 작업을 주고 받으며 만든 것이라고... 이 Angles의 결과물에 대하여 줄리안은 "만약 그 전처럼 내가 모든 것을 통제했다면 들어가지 않을 요소들이 많지만 이것이 스트록스가 생존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라며 다소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15] 앨범 제작 시기 전의 인터뷰를 보면 줄리안의 독재체재에 불만을 표하는 멤버들을 볼 수 있다.[16]

2013년 3월 26일에 5집 Comedown Machine을 발매하였다. One way trigger라는 곡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선공개하였는데 마치 A-Ha를 연상시키는 신디사이저 리프와 팔세토 창법으로 노래하는 줄리안의 보이스 때문에 대부분의 팬들은 뻑킹테크노! 등을 외치며 멘붕에 빠졌었던 상태.[17] 이후 첫 싱글로 내어놓은 All the time으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떡밥을 던지며 본격적인 팬들과의 밀땅 시작... [18]

앨범이 나오자마자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편. 1,2집때의 B급 스튜디오 앨범을 컨셉으로 한 레트로한 사운드와 80년대 신스팝의 작곡론을 결합시킨 작품이며 1-2-3-4 트랙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수려하다는 평. 4집부터 시작된 멤버들의 참여도 인상적이다. 특히 솔로 커리어도 꽤 있는 알버트의 적극적인 참여가 눈에 띠는데 알버트의 참여로 음악이 전체적으로 팝에 가까워 졌다. 이번 앨범이 현재 레이블 RCA에서 내놓는 마지막 앨범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그냥 나름의 전략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 앨범의 경우는 성의없다고 느껴질 싶을 정도로 대외적인 홍보나 투어를 자제하고 있다. 사실 인터뷰에서 상업적인 면에만 끝없이 파고드는 RCA에 이골과 화가 나 마지막 계약인 이번 앨범에는 홍보나 투어를 안했다고 한다. 이 앨범 후 줄리안의 솔로 활동때의 레이블로 옮겨갈 것이라는 것도 밝혔다. 또한 이때 줄리안의 아버지가 거의 오늘 내일 하는 지경이라 투어를 돌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한다. 결국 2013년 여름 어느 날, 운명함.

2014년 여름을 목표로 새 앨범 작업에 들어가있다는 트윗이 있었다.

줄리안 카사블랑카스는 미국에서 신(Shin)이라는 이름의 갈비집을 배우 제라드 버틀러, 유명 프로듀서 마크 론슨, DJ 스티브 아오키 등과 함께 운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근데 이 집 망한지 오래됐다. 또한 2006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을 위해 첫 내한 했을 때는 삼겹살 집에 들러 불판 위에 김치를 굽거나 상추쌈을 싸서 멤버들에게 주는 등 한국친화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때문에 주인 집 할머니 어디서 그렇게 먹는걸 배웠냐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는 후문이 있다...[19] 대학 시절 룸메이트가 한국인이라 평소에 한국 노래를 많이 들어왔다 하며 내한 공연 당시 쉬는 타임에 서태지의 우리들만의 추억을 잠시 불러 수많은 한국팬들을 설레게 하기도 했었다.

여성팬들이 많은 밴드임에도 불구하고, 프론트맨[20]이자 보컬인 줄리안은 여자와 관련된 큰 스캔들이 하나도 없으며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등 건전한 생활을 하고 있다.[21] 반대로 다른 멤버들이 여성들과 만남과 헤어짐을 하고있다.

줄리안은 주변 뮤지션과의 교류도 활발한데 론리 아일랜드 Boombox 피처링이나, 다프트 펑크Random Access Memories 앨범의 수록곡 Instant Crush에 피쳐링으로 참가하고 뮤직비디오도 찍었는데, 유튜브 조회수가 스트록스 노래 최고의 조회수를 자랑하는 Reptilia보다 더 높다. 더 보이즈 인터뷰에 의하면 다프트 펑크와 교류는 계속되고 있고, 새로운 곡들을 작업하고 있다고 한다.[22]

2014년 6월 2일, 뉴욕에서 근 3년만의 라이브를 재개했다. 전성기 때의 활력을 되찾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4년 9월 23일, 줄리안이 그의 프로젝트 그룹 Julian Casablancas + The Voidz로 새로운 앨범 Tyranny를 발매했다. 스트록스는 점점 더 미궁속으로 사실상 줄리안의 독재체재가 끝난 스트록스에서 하기 힘들 실험적인 곡 들이 많다.[23]중독적인 기타 리프에 신시자이어음이 첨가되어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Nintendo blood, Johan Von Bronx, Business dog등 좋은곡들이 많다. 특히 Human sadness는 호불호가 갈리나 대부분 줄리안이 만들어낸 걸작으로 평가받고있으나 앨범이 너무 쓸데없이 난해하다[24]라는 평이 많다. 그래도 Human sadness같은 좋은 곡들이 있어 평론 점수의 차이가 크다. 후에 인터뷰에 따르면 줄리안은 더 보이즈 활동을 일회성이 아닌 스트록스 처럼 장기적으로 가고 싶은 맘이 있는 듯 하다. 즉 더 보이즈 2집이 나올 수 있다는 소리.스트록스는 점점 더 더 미궁속으로

2015년 니콜라이 프레이처가 Summer Moon이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스트록스는 점점 더 더 더 미궁속으로
2016년 8월 닉 발렌시도 CRX 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2016년 6월 3일 Future Present Past를 발매했다.만세 링크 국내 음원 사이트에서도 들어볼 수 있다.
총 4곡에 리믹스 1곡[25]으로 트랙순서대로 Drag Queen: 미래, Oblivious: 현재, Threat Of Joy: 과거를 보여주고 있다. 1,2집 초기 시절 좋아하는 사람들은 3번 트랙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26], 다프트 펑크로 인해 알게 되거나 5집 시절도 좋아하던 사람들은 2번트랙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더 보이즈에서 줄리안이 시도하던 것들이 보이는 1번트랙이 있다. 전체적으로 곡들이 좋다는 반응이 많으나, 팬들은 Undercover of Darkness이나 All The Time에서 반전을 보여줬던 것 처럼 대부분 정규앨범이 나오기 전까진 안심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본격 팬들과 밀땅하는 밴드

3 디스코그래피

Discography

Is This It (2001)
Room on Fire (2003)
First Impressions of Earth (2006)
Angles (2011)
Comedown Machine (2013)

Future Present Past EP (2016)
  1. 미국에선 Last Nite가 빌보드모던락 차트 5위에 오른 것이 최고의 성공
  2. NME의 성향을 감안하고 걸러 들을것. 이 당시 락의 쇠락이 눈에 띄긴 했었지만 그래도 여러 많은 좋은 밴드들이 있었다.
  3. 이런 하이프는 스트록스 본인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했다.
  4. 특히 NME
  5. 아들이긴 하지만 실질적인 아버지나 영향을 많이 준건 새 아빠인 Sam Adoquei이다. 흑인이며 미술가로 줄리안에게 벨벳 언더그라운드같은 음악을 소개해줬다고 한다. 줄리안은 The Unseen Beauty라는 그에 대한 단편영화의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
  6. 아버지 앨버트 해먼드는 영국출생인 70년대 활동한 싱어송라이터 겸 프로듀서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으며 대표곡은 For the Peace of All Mankind이고, When I Need You라는 곡을 작곡해주기도 했다. 라디오헤드 Creep의 공동작곡가이기도 하다. 왜 공동작곡가 인지는 Pablo Honey 항목참조.
  7. 아버지의 영향으로 아름답고 대중적인 멜로디를 잘 만든다.
  8. 주변 관계자들의 말(출처 추가바람)로는 NME 표지 사진을 처음 그들의 카메라 앞에 서던 그때만큼 그들이 즐거워 보인 적이 없었다고 한다. 마치 밴드의 최종목표가 어느 잡지 표지 모델 한 번 해보는 것이 다였다는 것처럼...
  9. 신보들 나올때마다 제발 Is This It 처럼 만들어줘 라는 리플들이 괜히 나오는 것은 아니다만...
  10. 리드기타와 리듬기타로 나눠서 연주하는 방식
  11. 이러한 연주 방식은 스트록스가 대중화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2. 둘다 전체적으로 나른하고 성량이나 기교가 뛰어나지는 않으나 특유의 분위기와 톤으로 노래를 부른다.
  13. 루 리드 사망시 SNS에 올린 글을 보면 그래도 루 리드가 가장 많은 영향을 준 뮤지션임은 틀림없다.
  14. 대부분 키보드 같은걸로 데모를 찍은 다음에 멤버들에게 들려주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15. 이때 그리고 기타리스트 앨버트의 약물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16. 적극적인 표현은 아니고 아쉽다는 반응 정도
  17. 사실 솔로 1집이나 스트록스 4집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는 했다.
  18. 근데 이건 4집 Angles 때도 있었던 일이다. 선공개 한 노래 Undercover of Darkness 는 완전히 스트록스 사운드를 표방해 평론가들과 팬들을 설레게 만들었으나, 본 앨범이 나오자 호불호가 갈렸다.
  19. 줄리안은 친아들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만족했다고 한다.
  20. 여성팬들이 많은 밴드의 경우 대부분 프론트맨이 많은 여성들과 스캔들이 있다.
  21. 존 카사블랑카스의 인터뷰에서 인터뷰어가 "아버지나 아들이나 여자들을 끼고 사시네요"라는 얘기를 했으나 존 카사블랑카스는 "맞아요! 근데 걔는 나와는 달리 한 여자만 바라보던데요"라고 얘기 했다.
  22. 하지만 제이지가 트론 OST에 참여했다가 빠진 것과 다프트 펑크의 앨범 작업 속도를 봤을때, 줄리안과 다프트 펑크와의 작업이 앨범으로 나올지는 미지수이다.
  23. 독재체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시기에 솔로 1집을 내고 인터뷰에서 세션 멤버와 스트록스의 차이점에서 "그들은 내가 무슨 곡을 쓰는 연주해준다 그것은 편한 관계다"라는 언급을 봤을떄 솔로 2집이나 새로운 밴드의 결성은 어느정도 예견된 일이었다고 볼 수 있다.
  24. 어떠한 실험정신 없이 단순히 노이즈가 강하고 난해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가 없다.
  25. Oblivious의 곡을 드럼인 파브리지오가 리믹스했다.
  26. 과거 팬들은 4, 5집처럼 1,2번 트랙은 매우 부정적인 반응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