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래리 케네스 로버트 워커 (Larry Kenneth Robert Walker) |
생년월일 | 1966년 12월 1일 |
국적 | 캐나다 |
출신지 |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 |
포지션 | 우익수 |
투타 | 우투좌타 |
프로입단 | 1984년 몬트리올 엑스포스 자유계약 |
소속팀 | 몬트리올 엑스포스(1989~1994) 콜로라도 로키스(1995~2004)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2004~2005) |
1997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MVP | |||||
켄 캐미니티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 → |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 → |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
1998~1999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타격왕 | |||||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 → |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 → | 토드 헬튼 (콜로라도 로키스) | |
2001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타격왕 | |||||
토드 헬튼 (콜로라도 로키스) | → |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 → |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1997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홈런왕 | |||||
안드레스 갈라라가 (콜로라도 로키스) | → |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 → | 마크 맥과이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목차
1 소개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던 전 야구 선수. 콜로라도 로키스의 대표적인 스타이자, 조이 보토 이전까지 캐나다를 대표하는 강타자였다. 콜로라도에서 생활을 한 탓에 저평가되었고, 약쟁이들에게 가려졌던 강타자들 중 하나.
통산 성적은 17시즌 동안 타율 .313, 출루율 .400, 장타율 .565, OPS .965, 순장타율 .252, 2160안타, 383홈런, BB/K 0.74, wRC+ 140, 1311타점, 230도루를 기록했다.
2 선수생활
2.1 몬트리올 엑스포스 시절
고교 시절에는 아이스하키 선수를 지망했지만 프로팀에 들어가지는 못했고, 결국 야구 선수로 진로를 변경해 1984년 몬트리올 엑스포스에 입단했다. 초창기에는 3루와 1루를 오가는 내야수였지만, 팀에서는 그의 강력한 어깨와 빠른 발을 살리기 위해 외야수로 포지션을 바꾸게 한다. 마이너에서 착실히 경험을 쌓은 워커는 1989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했고, 이듬해인 1990년부터 팀의 주전 우익수로 자리를 잡으며 0.241 19홈런 51타점 21도루의 신인 치고는 괜찮은 활약을 한다.
그리고 1992년에는 0.301 23홈런 93타점으로 올스타, 실버슬러거, 골드글러브를 모두 차지하며 주목받는 선수로 떠올랐고 1993년에도 0.265 22홈런 86타점으로 꾸준한 성적을 내며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
1994년에는 리그 1위인 44개의 2루타를 뽑아내는 등 0.322 19홈런 86타점의 맹활약을 펼치는데, 팀도 모처럼 지구 1위를 질주하며 약 10여년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이 눈앞에 다가왔지만 파업 때문에 시즌이 조기에 마감되면서 무산된다.(...)
2.2 콜로라도 로키스 시절
1994시즌 후 FA로 풀린 그는 창단 3년째를 맞는 신생팀 콜로라도 로키스에 입단한다. 물이 오른 기량에다가 쿠어스필드 버프까지 받은 워커는 입단 첫 해 0.301 36홈런 101타점의 맹활약을 펼치며 단테 비셰트, 안드레스 갈라라가, 비니 카스티야와 함께 공포의 타선을 구축했고, 창단 2년간 5할 승률을 넘긴 적이 없던 콜로라도는 이들의 맹활약에 힘입어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1996시즌에는 부상 때문에 83경기 출장에 그쳤지만 이듬해인 1997시즌, 워커는 타율 .366, 49홈런, 130타점, 33도루라는 괴물 같은 성적을 찍으며[1] .362에 40홈런을 때린 마이크 피아자를 제치고 내셔널리그 MVP[2]를 차지, 거기에 골드글러브와 실버슬러거까지 싹쓸이한다.
이듬해인 1998시즌에는 .363, 23홈런, 67타점으로 생애 첫 타격왕과 더불어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 1999시즌에는 .379, 37홈런, 115타점으로 2년 연속 타격왕에 올랐고, 다시 한반 골드글러브와 실버슬러거를 동시에 수상했다.
이후 예전부터 고질적으로 그를 괴롭혔던 무릎 부상이 크게 번지면서 2000시즌에는 87경기를 출장해 .309, 9홈런, 51타점이라는 그답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이듬해인 2001시즌에 0.350, 38홈런, 123타점으로 타격왕과 골드글러브를 차지하면서 건재함을 과시한다.
2002시즌에서도 .338, 26홈런, 104타점에 7번째 골드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토드 헬튼과 함께 팀을 이끌었지만, 이듬해인 2003년 .284, 16홈런, 79타점에 그치며 이름값을 해내지 못한다. 그리고 10년이 다 되어가도록 포스트시즌 진출을 하지 못하고 있던 로키스는 워커를 트레이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2004년 6월, 콜로라도는 마이너리그 3명을 받는 조건에 부상에서 뒤늦게 복귀해 38경기에서 .324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던 워커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트레이드한다.
2.3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시절
당시 카디널스는 알버트 푸홀스, 짐 에드먼즈, 스캇 롤렌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타선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워커도 이적 후 11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팀이 월드시리즈에 올라가는 데 힘을 보탰다.
이듬해인 2005년, 워커는 부상 때문에 고전하는 와중에서도 100경기에 출장해 .280, 15홈런, 52타점을 기록한다. 아쉽게도 포스트시즌에서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그라운드를 떠나게 된다.
"메이저리그 첫 타석에서 마이크 라코스를 상대로 볼넷을 얻어냈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마지막 타석에서 댄 휠러에게 삼진을 당했다. 그 사이에 일어난 일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 은퇴 소감 중
3 이모저모
3.1 쿠어스 홈 보이 논란?
콜로라도의 홈 구장 쿠어스필드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타자친화적인 구장으로 이름이 높다. 이 때문에 콜로라도 출신 슬러거들은 그들의 성적에 대해 평가절하받기 일쑤였는데, 워커도 마찬가지였다. 콜로라도로 처음 이적한 1995년, 워커의 홈/원정 타율은 0.343/0.268으로 적지 않은 격차를 보였다. 이후 1997년 MVP를 수상했을 당시엔 0.384/0.346으로 어느 정도 격차를 줄이긴 했지만 1998년에는 0.418/0.302, 1999년에는 0.461/0.286으로 점점 극단적으로 벌어졌다. 콜로라도 이적 후 가장 부진한 시즌이었던 2003년에 워커는 홈에서는 0.338의 타율을 기록했지만, 원정에서는 2할 2푼대에 그쳤다.
이런 점에서 쿠어스필드의 덕을 본 대표적인 타자라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지만, 말년에 세인트루이스로 이적해서 2년 동안 보여준 장타력은(장타율 0.560, 0.502) 그가 마냥 구장의 힘만으로 커리어를 쌓은 선수가 아니라는 점도 보여주었다.[3]
3.2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
1번의 MVP를 비롯해 올스타 5회, 타격왕 3회, 홈런왕 1회, 골드글러브 7회, 실버슬러거 3회 등 타이틀은 적지 않게 가지고 있지만, 선수 생활 내내 이어졌던 부상 때문에 누적 스탯은 부족한 편이며 위에 언급한 대로 그가 커리어의 대부분을 쿠어스필드에서 뛰었다는 점도 다소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올해의 캐나다 야구선수 상'에 해당하는 팁 오닐 상을 9차례나 수상한 캐나다 역대 최고의 야구 선수 중 한 명이라는 점과, 스테로이드 시대를 거쳐왔음에도 약물 논란에서 자유롭다는 점은 플러스 요소가 될 것이다.
일단 2011년 BBWAA 첫투표에서 20.3%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일말의 가능성은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후 22.9%, 21.6% 로 사실상 제자리의 득표율을 보인데다, 2014년에는 다른 쟁쟁한 후보들에게 밀리면서 득표율이 10.2%로 거의 반토막났다. 이젠 유지를 걱정해야 할 판. 게다가 이후 레전드급 선수들이 줄줄이 후보로 올라오는 판이라...
2015년도 역시 작년과 별반 다르지 않은 11.8%의 득표율을 보였다. 2016년에는 15.5%를 기록했다. 사실상 등록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
3.3 기타
- 이미 언급했지만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아이스하키 선수를 꿈꿨을 정도로 아이스하키를 매우 좋아했다. 야구선수가 된 이후에도 야구보다 아이스하키를 더 사랑했다고 하는데, 이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2001년 6월 2일, 모처럼 5할 승률에 근접하며 선전하고 있던 로키스는 같은 지구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맞붙게 되었는데, 이 날은 콜로라도 애벌랜치와 뉴저지 데빌스가 맞붙는 NHL 결승전인 스탠리컵 경기가 있는 날이기도 했다. 로키스와 자이언츠는 9회까지 5-5로 팽팽히 맞서고 있었고, 스탠리컵은 곧 시작을 앞두고 있었다. 경기가 연장전에 접어들면 스탠리컵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애가 탄 워커는 9회말 타석에서 끝내기 투런 홈런을 날려버린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자마자 쏜살같이 라커룸 TV 앞으로 달려갔다고.(...) [4]
- 1997년 올스타전에서 랜디 존슨이 던진 강속구가 워커의 머리 위로 날아오는 위험천만한 일이 벌어지는데, 존슨이 다음 공을 던지려 할 때 워커는 헬멧을 거꾸로 쓰고 왼쪽 타석이 아닌 오른쪽 타석에서 타격 자세를 취하는 쇼맨십을 보여줬다.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캐나다 야구 국가대표팀의 타격코치를 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