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 본즈

이름배리 라마 본즈
(Barry Lamar Bonds*)
생년월일1964년 7월 24일
국적미국
출신지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
신체 조건188cm
포지션좌익수
투타좌투좌타[1]
프로입단1985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6순위
소속팀피츠버그 파이어리츠(1986~1992)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1993~2007)
지도자마이애미 말린스 타격 코치 (2016)
1990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MVP
케빈 미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배리 본즈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
테리 펜들턴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1992~1993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MVP
테리 펜들턴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배리 본즈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제프 배그웰
(휴스턴 애스트로스)
2001~2004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MVP
제프 켄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알버트 푸홀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96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홈런 더비 우승자
프랭크 토마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티노 마르티네스
(뉴욕 양키스)
2002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타격왕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알버트 푸홀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2004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타격왕
알버트 푸홀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데릭 리
(시카고 컵스)
2001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홈런왕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등번호 7번
밥 로버트슨(1970~1976)배리 본즈(1986)앤디 반 슬라이크[2](1987)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등번호 24번
대니 곤잘레스(1985)배리 본즈(1986~1992)대니스 몰러(1993)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번호 25번
마이크 펠더(1991~1992)배리 본즈(1993~2007)공석[3]
보유 기록
단일 시즌 최다 홈런73개
통산 최다 홈런762개
단일 시즌 최다 볼넷232개
통산 최다 볼넷2558개
단일 시즌 최다 고의사구120개
통산 최다 고의사구688개
단일 시즌 최고 출루율0.609
단일 시즌 최고 OPS1.422
최다 MVP 수상7회
최다 30-30 달성5회[4]
500-500 클럽메이저리그 역대 유일[5]

1 개요

완벽한 재능과 노력으로 불멸의 전설로 남을 수 있었던 5툴 플레이어. 약물 의혹이 공개되기 전까지 야구 역사상 최고의 5툴 플레이어로 불리운던 윌리 메이스에게 직접 인정받은 후계자로도 유명했다.

이후 약물 논란에 휩싸인 시기에는 그야말로 야구의 신으로 군림하였다.

그 끝이 없는 논란 때문에 케빈 번즈의 야구 다큐멘터리 1994~2009편에서도 주인공 격 인물로 등장했다. 1990년대 야구, 스테로이드 시대로 대표되는 흑역사를 모두 상징하는 선수. 쿠퍼스타운 입성 여부 별개로 후대까지 계속 회자될 수 밖에 없는 인물. 타 야구선수들에 비해 본즈 문서만 1년에 몇 차례 씩 수정되는 것만 봐도...

충격과 공포의 역대 커리어 스탯

이건 베이스볼 레퍼런스 페이지. 베이스볼 레퍼런스에서는 선수마다 시즌별로 스탯을 구분하면서 각 부문 최고/최다/최소 등의 최우수 스탯에는 진한 글씨를 표시하는데, 본즈의 페이지에서 비율스탯 쪽을 보면 과장 좀 섞어서 전부 다 새까맣다. 그리고 나무위키에 등재된 MLB 선수들 중 가장 많은 분량을 자랑하는 인물로 가치는 충분하다.

2 본즈의 지인

메이저리그 올스타였던 바비 본즈의 아들이자, 명예의 전당 멤버이자 외야수 최다 골드글러브 수상 기록자이면서 메이저리그 통산 홈런 4위의 전설적인 선수인 윌리 메이스[6]와 대부-대자 관계이며, "10월의 사나이" 뉴욕 양키스레지 잭슨과는 이종사촌 관계이다.

이는 아버지인 바비 본즈가 자기 아들을 키우기 위해 배리가 어릴 적부터 지인들과 꾸준히 만나고 그들에게 가르침을 받게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꿈은 자신의 아들이 아버지를 능가하는 대스타[7]가 되는 것이라서 어릴 적부터 그렇게 길러왔다고 한다.

바비는 아들 배리를 애지중지 업고 다니며 키웠다. 한시도 아들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철저히 좌투좌타 기초부터 시작해서 야구의 모든 것을 전수한다. 아들의 모든 시합을 관람하는 것은 기본이다. 심지어 어린 아이인 배리에게 사람들이 사인을 받게 하고 대부인 윌리 메이스를 멘토로 그의 모든 것을 배우라고 교육시킨다.[8] 메이스와 본즈는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본즈의 샌프란시스코 입단식에 본즈가 메이스에 대한 존경을 표출하고 756호 홈런 신기록 경기에서도 함께 했다.

3 선수 시절

배리 본즈/선수 경력 참조.

하지만, 뒤에 후술할 약물 논란으로 인해 그의 명예는 상당히 실추되었으며, 명예의 전당 입성 역시 상당히 어려워졌다.

4 약물 의혹

2004년 10월 16일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랭스 윌리엄스와 마크 페이나루 와다 기자는 “배리 본즈가 2003년에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다”고 특종 보도했다. 이른바 ‘BALCO 스캔들’이 터진 것이다.

캘리포니아 검찰당국은 전해인 2003년 빅터 콘티가 운영하는 베이만연구소(BALCO)가 기존 도핑 검사에 적발되지 않는 신종 스테로이드 제품을 운동선수들에게 불법 제공한다는 제보를 받고 수사를 개시했다. 약품 제조에 관여한 본즈의 개인 트레이너 그레그 앤더슨의 집에서는 스테로이드와 함께 선수 명단과 전화 번호가 발견됐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의 두 기자는 앤더슨의 증언이 녹취된 테이프를 근거로 이같이 주장했다. 두 달 뒤 이 신문은 “본즈가 연방대배심에서 ‘스테로이드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약을 복용했다’고 증언했다”고 보도했다. 본즈는 이에 대해 “모른다”로 일관했지만 그에게는 ‘약물로 성적을 끌어올린 선수’라는 딱지가 영구히 붙게 됐다. 물론 약 빤다고 맘대로 성적 끌어올릴 수 있는게 아니긴 하지만... 그리고 두 기자는 미공개 법정 증언을 입수해 보도했다는 이유로 기소됐지만 2009년 2월 기소가 취소됐다.

연도별로 본즈의 체중 변화다. 의혹 전과 후가 생김새부터 극명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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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시즌인 1986년 체중 86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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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이 지나 93kg가 된 1997~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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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kg가 늘어난 103kg인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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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은퇴까지 103kg를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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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월드시리즈를 기념한 2012년 샌프란시스코 행사. 같은 사람 맞아?

사실 약물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을때 웬만한 야구팬들이 가장 먼저 떠올렸던 선수이긴 하다. 왜냐면 1년사이 생김새가 너무 달라져서.
1998년까지만해도 그야말로 호타준족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법한 날씬하고 날렵한 몸매였지만 1년새 완전 보름달 얼굴을 한 헐크가 돼서 나타났다. 2000년 스프링캠프에 무려 근육으로 9kg이상 벌크업 해 등장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선수는 2003년 이전까지도 이미 아버지를 넘어서서 전세계적인 스타가 되어 있었다.

4.1 그때는 금지약물이 아니었다?

일각에서는 MLB에서 스테로이드가 금지약물로 지정된건 2005년이 되어서이니, 본즈는 약은 빨았다고 해도 문제가 될 건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러나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때부터 이미 올림픽 금지약물이었으며, 따라서 그게 나쁜건줄 모르고 빨았다는 식의 주장은 성립이 될 수 없다. 더군다나 알려진것과는 달리 스테로이드는 2005년에 MLB 금지약물로 지정된게 아니다. 스테로이드를 비롯한 대부분의 약물들은 1991년에 금지 약물로 지정되었고, 그 당시 MLB 커미셔너였던 페이 빈센트(Fay Vincent)는 '스테로이드를 비롯한 불법적인 약물의 사용과 거래를 금한다.' 라는 문구가 포함된 문서를 모든 메이저리그 구단에 배포했다. 6년 후인 1997년에는 빈센트 커미셔너의 후임이었던 버드 셀릭(Bud Selig) 커미셔너 대행 또한 그와 같은 말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스테로이드에 대한 본격적인 처벌이 시작된건 그보다 훨씬 지나고나서지만, 스테로이드는 본즈가 빨던시절에도 명백한 금지약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까지는 본격적인 처벌이 없었다고 쉴드치는것은 말이 안된다. 까고말해 시험장에서 컨닝하다가 걸렸는데 감독관보고 "왜 이때까지 다른 놈들은 안 잡아갔으면서, 이제서야 ㅈㄹ하세요?"라고 변명하는것과 다를바가 없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과 메이저리그는 금지약물 규정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직접 비교는 무리가 있다. 아울러 페이 빈센트의 공식서한 및 버드 셀릭의 주장 역시 조항(policy)화 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 페이 빈센트 당시 커미셔너는 메이저리그에서 약물 문제가 어느정도인지 현황은 알지 못했으며, 단지 약물문제가 불거지는 타종목과 달리 야구계에는 약물 문제가 없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5 본즈의 약물 복용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그는 왜 스테로이드에 손을 댔는가?

본즈가 스테로이드에 손을 댄 이유에 대해선 스포트라이트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낳은 결과라는 분석이 있다. 본즈는 이미 96년에는 40-40 클럽에 가입하고, 98년에는 400-400이라는 대기록을 세운다. 400홈런-400도루라는 엄청난 기록으로 메이저리그 역사상 이런 기록을 세운 선수가 없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98년 시즌에 메이저리그 팬들의 모든 시선은 마크 맥과이어새미 소사의 홈런 레이스에 쏠려있었다. 최고라고 자부하던 본즈는 베이브 루스와 로저 매리스만이 기록했던 단일시즌 60홈런을 훨씬 상회하는 기록을 남긴 이들에게 질투를 느꼈음이 분명하다. 400-400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고도 마크 맥과이어의 시즌 최다 홈런기록 경신이 더 주목을 받자 배리 본즈는 호타준족이고 뭐고 다 필요없다. 무조건 홈런 많이 치는게 장땡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결국 홈런 개수를 늘리기 위해 약물에 손을 대게 되었다는 것이다.

<Game of Shadows>는 본즈의 약물 복용동기를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즉, 98년 마크 맥과이어의 열광적 인기에 질투하고 분노한 본즈가 스테로이드 전문가를 찾기 시작하면서 약물을 복용하였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건강식품 구입말고 약물에 손도 대지 않은 사람이었다고 기술되어 있었고, 오히려 맥과이어, 소사가 분명한 약쟁이임을 알고 있고 그래서 분노했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맥과이어의 인기를 AT&T 파크에서 직접 목격하고 광분했다 기술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다.

본즈에게 있어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본즈는 맥과이어가 약쟁이임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맥과이어와는 달리 본즈는 건강식품 가게에서 기껏해야 단백질 세이크를 살 뿐이었다. 하지만 1998년 시즌 중, 본즈는 맥과이어가 자신이 마땅히 받았어야 할 경의와 인기를 모조리 빨아들이는 걸 보고 결심을 굳혔다. 지금까지 말 그대로 개똥 취급해 온 그것, 약물을 복용하기로.

사실 논란의 시기 이전만으로 명예의 전당행은 이미 따놓은 당상이라는 평가가 대세다. 약을 안 먹었더라면 통산 커리어는 최종 스탯보다 (특히 홈런 면에서) 조금 모자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약 먹기 전인 90년대에 이미 완성한 400-400은 전인미답의 대기록이었다. 게다가 오히려 약물 사용으로 인해 불어난 체중과 상식을 초월한 고의 사구 개수로 인해서 도루 개수, 안타 개수 등에서 손해를 봤던 것을 생각하면 500-500을 넘어서 600-600도 가능했을 것이고, 3000안타도 달성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약물 스캔들로 인해 매우 힘들어 졌다.

6 약물 파동, 그 이후

2010 월드시리즈 관람 후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타격코치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역시 스테로이드 복용 의혹을 강하게 받은 마크 맥과이어가 현역 타격코치로 일하고 있기도 하니까.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은 맥과이어는 타격코치 임명전에 자신의 스테로이드 복용에 관해서 다 밝혔지만, 본즈는 그럴수가 없다는거다. 왜냐면 모든것을 밝힐 경우 2010년 3월에 예정되어있는, 2003년 연방대배심에서 스테로이드 복용을 하지 않았다고 위증한 죄에 대한 재판에서 백프로 지게 되니까.

2010년 3월에 열린 연방 대배심에서는 위증한 죄에 대해서는 무죄 평결이 났으나, 애매한 증언으로 재판을 방해한 죄가 인정되었다. 이에 따라 본즈의 의도적 스테로이드 복용은 법적으로 영원히 무혐의로 남게 되었다. 물론 최종심에서 확정판결이 난 사건이라 하더라도, 재판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새로운 증거가 발견된다면, 재심청구를 거쳐 한 번 더 재판을 받을 수는 있기에, '영원히'라는 표현은 아주 엄밀히 법적으로 말해 적절하지 못할 수 있다.

2011년 12월 17일에 열린 재판방해죄 재판에서 30일의 가택구금과 250시간의 사회봉사, 4천달러의 벌금과 함께 2년간의 보호관찰이 결정됐다. 2012년 02 월시 진출 기념한 레전드 초청에 제프 켄트와 더불어 모습을 드러내고 백수 모드를 유지 중.

이후에 스프링캠프에 간간히 샌프란시스코의 타격 인스트럭터로 참여하고 있었는데, 2015년 2월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측에서 본즈를 정식으로 타격 코치로 영입할 가능성을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본즈에 대한 시선이 영 좋지 않아서 구단 측에서는 이러한 입장을 밝히면서도 조심스러운 분위기. 당연하지. 그러나 이러한 비난들을 무릅쓰면서도 샌프란시스코가 본즈를 코치로 영입하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데, 잠깐이지만 스프링캠프에서 본즈가 건드렸던 선수들은 성적이 상승했다. 때문에 본즈의 코칭 능력 자체는 기대해볼 수 있겠다.

2015년 11월 말부터 마이애미 말린스가 본즈를 타격 코치로 영입하기 위해 접촉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12월 4일 말린스가 본즈를 타격 코치로 공식적으로 선임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약맥의 선례에서 보듯 선수 시절엔 논란의 시기 이전부터 무시무시한 타격성적을 뽑아내던 괴물이었던 만큼, 스탠튼을 포함한 말린스 타선을 자신만의 메카니즘으로 개조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성격으로 충돌만 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3월 시범경기 도중에 말린스 타자들과 장난으로 홈런더비를 하더니 지안카를로 스탠튼과 크리스천 옐리치를 발라버리고 우승했다. #약물이 반영구적으로 지속된다는 증거

7 선수로서의 평가

약물 논란이 벌어지는 2000년 이전을 기준으로 커리어가 구분된다.

7.1 데뷔부터 99년까지

요약 : 역대 최고의 5툴 플레이어 중 하나, 도루하는 푸홀스[9]
1986~1998 평균 성적 : 타율 .290 출루율 .411 장타율 .556 32홈런 94타점 34도루 fWAR 7.6

본격적인 전성기는 1990년 첫 MVP 이후 2001년 각성 이전까지. 이 시대에 이미 미키 맨틀, 윌리 메이스와 함께 역사상 최고의 5툴 플레이어, 역대급의 괴물로 평가받았다. 날렵한 몸매로 30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하면서 1993년엔 46홈런으로 홈런왕도 기록할만큼 파워 또한 출중했고 따라서 90년대 본즈는 매년 +30홈런과 +30도루를 기록했다. 본즈의 천재성을 알려주는 일화 몇개를 소개하자면....

사례1
본즈는 2회 만루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돌며 상대팀 콜로라도 2루수 에릭 영에게 "다시 올게"라는 말을 했다. 다음 타석에서 2루타를 치고 영에게 정말 다시 와서 "볼넷을 얻어낼게"라 말했고 정말 다음 타석에서 해냈다.

사례2
본즈는 상대투수가 어떤 공을 던질지 귀신같이 예측했다. 한번은 대기타석에 준비하고 있는 투수 제프 쥬든에게 "처음에 몸쪽 직구, 2구는 체인지업을 던지고 나는 그걸 골라낼 것이고 다음으로 던질 직구를 쳐서 좌익수쪽에 보낼 것이다". 라고 예측했다. 그리고 상대투수 스티브 민츠는 본즈의 예언대로 직구, 체인지업을 던졌고 본즈는 3구로 날아온 직구를 받아쳐 440피트짜리 대형 홈런을 날려버렸다. #

1996년 42홈런 - 40도루로 역사상 2번째로 40-40 클럽에 가입했으며, 1997년에는 40홈런 - 37도루로 또다시 40-40에 근접한 기록을 보여주었다.[10]

거기에 1990년부터 1998년까지 9년간 .305의 타율을 기록할 정도로 정교함도 보유했고, 매년 .400 이상의 출루율을 찍으며 선구안 또한 단연 발군이었다. 거기에 홈런왕을 기록할 정도의 장타력까지 갖추었으니 이 무슨.... 이런 괴물과 상대하고 싶지 않은 상대팀 투수와 감독들은 본즈를 연신 고의사구로 출루시켰고, 결국 고의사구 기록 또한 경신하게 된다.

가장 충격스러운 일은 9회말 2아웃 만루에서 고의사구를 얻어냈던 사건. 얻어맞는 것보다 한점만 주자는 극한의 전략으로 1998년 5월 28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벅 쇼월터 감독이 마무리 투수 그렉 올슨에게 8:6의 상황에서 본즈를 고의사구하라 지시. 1점을 내주고 다음 타자인 브랜트 메인을 범타로 잡아내며 승리를 쟁취했다. 이전까지 없었던 충격적인 일이자 본즈가 어떤 레벨인지를 증명하는 사건이다. #

뛰어난 주루에 더불어 외야수로서 통산8번이나 골드글러브(본즈는 좌익수다!!! 골드글러브를 대부분 가져가는 수비 괴물들이 포진해있는 중견수도 제친거다) 를 수상할 정도의 수비까지 더해졌으니 90년대 최고의 선수라는 말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명예의 전당이야 당연한 일이었고...

거기에 1998년 역사상 최초로 400홈런-400도루 고지를 점령하고, 98년까지 거의 2000개에 육박하는 안타를 쳤기 때문에 이미 정점을 찍은 상태였다. 미국의 야구 전문가들은 본즈가 논란의 이전 시기와 같은 스타일을 유지했을 시, 600홈런 이상에 전무후무한 600-600 클럽을 달성했을 거라는 게 중론이다.
전무후무는 400-400도 마찬가지야 애초에 350-350도 없는게 메이저리그의 현실

사실 1999년의 부상과 부진은 약물로 인한 무리한 벌크업의 부작용이라는것이 정설이라는것을 감안하면 논란은 더욱 아쉬울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약빨이 빠진 2007년에도 .276-.480-.565[11]-1.045 28홈런을 기록하는모습을 보았으니 더더욱 아쉬울 수 밖에 없다.

7.2 2000년부터 은퇴까지

야구의 신
1999~2007 평균 성적 : 타율 .316 출루율 .505 장타율 .712 39홈런 87타점 8도루 fWAR 7.2[12]

간단히 스탯으로 말한다. 당시 본즈는 타격 3할이 기본에 맘만 먹으면 볼넷이 많이 줄었을지는 몰라도 4할에도 도전할 수 있었다. 근데 4할 도전했어도 주목 엄청 받았을거라는 생각은 못했던 듯. 흔히 4할 출루율이라고, 출루율이 타율보다 1할쯤 높으면 뛰어난 선구안을 가졌다거나 위압감이 강력한 타자라 칭하지만, 본즈는 그 갭이 2할을 넘나들었다.[13] 흔히 절대장타율이 2할이고 컨택도 괜찮아서 장타율이 5할을 찍으면 수준급의 슬러거라 하지만, 본즈는 절대장타율이 5할이었다. 3-4-5 타자는 OPS가 못해도 0.900을 찍는 법이고 3-4-5가 아니더라도 흔히 강타자를 평가할 때 OPS 8할을 기준으로 삼는데, 본즈는 장타율만 7~8할이었다. 리그 평균 OPS가 7~8할 사이를 오가는데, 본즈의 커리어 하이 OPS는 2004시즌의 1.422였다.[14] 참고로 2004시즌 메이저리그 전체 OPS 2위가 토드 헬튼의 1.088였고 전체 100위는 칼 크로포드의 0.781이었다.(메이저리그 평균 OPS는 0.763) 즉 1위와 2위의 격차가 2위와 100위의 격차보다 더 컸다.(...)

여기서 본즈와 NL 리그를 비롯한 주요 투수들의 상대 전적은 다음과 같다.

톰 글래빈 85타수 28안타 4홈런 14타점 ops 1.031
팀 허드슨 27타수 11안타 5홈런 7타점 ops 1.5
커트 실링 80타수 21안타 8홈런 21타점 ops 1.048
그렉 매덕스 130타수 34안타 8홈런 18타점 ops .855
로저 클레멘스 2타수 무안타 6볼넷 ops .750
페드로 마르티네즈 34타수 11안타 1홈런 3타점 ops 1.064
랜디 존슨 49타수 15안타 3홈런 12타점 ops 1.003
존 스몰츠 67타수 19안타 8홈런 14타점 ops 1.168
박찬호 47타수 13안타 8홈런 14타점 ops 1.283
김병현 11타수 2안타 1홈런 2타점 ops .925

1). 본즈 vs 랜디 존슨

좌투수와 좌타자의 대결이니만큼 존슨이 유리한 것이 정설이다. 시야 확보와 공의 회전 등의 이유 때문이다. 랜디 존슨은 좌타자 상대로 살인적인 피안타율(1할대)을 기록하며 홈런도 잘 맞지 않는다. 2000년 본즈가 신(神)으로 군림하기 전에 랜디 존슨은 본즈를 상대하여 4타수 무안타로 가볍게 마무리 지었다. 2000년의 주인공은 단연 랜디 존슨이었다. 그러나 이후는 다르다.

2001년에 본즈는 73개의 홈런을 경신하였고 존슨 역시 막강 성적을 거두며 3년 연속 사이영상을 수상하였다. 본즈는 존슨과 4게임을 치렀고 10타수 2안타(2루타1개), 2타점, 3볼넷을 얻어냈다. 삼진은 3개. 존슨의 피안타율은 2할이지만 본즈의 출루율은 0.385였다. 최고선수 간의 격돌은 그런대로 잘 어우러진 셈이다.

2002년에 또 다시 4게임에서 만난 두 괴물. 본즈는 9타수 4안타(2루타 1개, 2홈런), 5타점, 4볼넷을 얻어내며 +4할 타율과 +6할 출루율 및 +12할 장타율을 기록하며 랜디 존슨을 KO 시켰다. 삼진은 불과 1개. 놀라운 사실은 2002년은 랜디 존슨의 4년 연속 사이영상 시즌이자 내셔널리그(NL) 트리플 크라운 시즌(24승, 334K, 2.32방어율)이었다는 것.

2003년은 존슨이 부상과 부진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해이다. 본즈는 존슨을 상대로 2타수 2안타(1홈런) 1볼넷을 얻어냈다. 3번의 대결에서 타율, 출루율 100%, 장타율은 25할. 말하자면 감기에 걸린 존슨을 상대로 본즈가 핵 주먹을 날린 셈이다. 인간 본즈도 무서운데 신(神)이 되어버렸으니 아픈 존슨은 더더욱 어찌할 수 없던 것 같다.

2004년은 랜디 존슨이 피안타율과 피출루율에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 시즌이다. 본즈는 이런 존슨을 상대로 11타수 3안타(0.273타율), 2볼넷, 2타점을 기록했다. 존슨이 홈런을 맞지는 않았지만 본즈도 삼진을 당하지 않았다. 출루율은 0.467다.

2). 본즈 vs 커트 실링

커트 실링은 이전에도 에이스 급이긴 했지만 2001~2002년은 확실히 뛰어난 해였다. 존슨이 아니었다면 사이영상을 수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성적. 2년(2001~2002) 동안 평균 22.5승과 304.5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2001년 실링과 본즈는 맞대결에서 12타수 3안타 1볼넷을 기록한다. 삼진은 2개. 본즈의 타율은 0.250이고 출루율은 0.308로서 겉으로 보기에는 실링이 존슨보다 더 나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3개의 안타는 모두 홈런이었고 타점은 6개.

2002년에 두 선수의 대결 결과는 10타수 2안타 2볼넷, 2삼진. 그러나 안타 2개는 홈런과 2루타였다. 본즈를 상대로 실링은 피안타율과 피출루율은 높지 않지만 장타 허용율이 매우 높다. 실링이 매덕스에 비해 WHIP과 피안타율이 낮음에도 방어율이 높은 예외적인 현상을 보인 원인으로 피장타율이 높았고 그 현상이 본즈와의 대결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실링의 배짱 두둑한 정면 승부 기질은 피안타율과 피출루율을 낮게 만들었지만 반대로 강타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장타를 허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실링의 자존심과 배짱도 대단하지만 역시 장타율 면에서 본즈의 압승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또한 본즈는 +250이닝 동안 33개의 볼넷만을 내 준 커트 실링으로부터 불과 12타석(즉 4이닝or 3.1이닝)에서 2개의 볼넷을 얻어냈다.

3). 본즈 vs 박찬호

박찬호는 2000~2001 2년간 당대 에이스들과 경쟁하던 선수였고, 탈삼진과 피안타율 및 퀄리티 스타트 횟수가 리그 2~3위였다. 한때 좌타자에게 호되게 당하기도 했지만 2000년부터는 몸 쪽으로 떨어지는 슬러브와 커브로 제법 재미를 보기도 했다.

2000년에 본즈는 박찬호를 상대로 3타수 2안타 1홈런, 2타점을 기록한다. 삼진도 없이. 그러나 박찬호도 볼넷을 주지는 않았다. 2001년에 본즈는 박찬호를 상대로 14타수 4안타(0.286타율), 3홈런, 3타점, 5볼넷 1삼진을 기록한다. 앞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박찬호는 허리 부상을 짊어진 마지막 경기에서 본즈에게 기념비적인 2개의 홈런(71호, 72호)을 헌납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뺀다면(즉 불필요한 마지막 등판이 없었다면) 본즈는 박찬호를 상대로 12타수 2안타(1홈런) 5볼넷 1삼진을 기록했을 것이다.

2001시즌 중에 박찬호는 성향 그대로 피안타율이 낮았지만 볼넷을 많이 내주었다. 전성기적 박찬호 조차 유인구가 먹히지 않는 본즈에게 볼넷을 무더기로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등판을 제외한 2001시즌 동안 박찬호도 10번이나 본즈를 잡아낸 만큼 위력을 뽐내던 시기이다.

4). 본즈 vs 에릭 가니에

에릭 가니에의 2003년은 특별하다. 마무리 투수로서 드물게 사이영상까지 수상했다. 블론 세이브가 하나도 없었고 2002시즌 중반부터 2004시즌 중반까지 “84 연속 세이브”를 기록하며 대기록을 작성했다. 2003년 가니에의 성적은 2승 3패 1.20의 방어율과 55세이브(성공율 100%)였다. 동점 상황에서 승리 혹은 패배를 당하긴 했지만 팀이 앞서고 있는 세이브 상황에서는 모두 승리를 지켜냈다는 것이다.

2003년 가니에의 WHIP(이닝당 피출루율)은 0.69다. 단일시즌 0.69의 WHIP은 마무리 투수 역대 2위(1위는 2008년 마리아노 리베라 0.67 “AL 사이영상의 향방” 05/9/2매니아 분석 참조)이며 9이닝당 삼진수(K/9)는 14.98개로 역대 최고였다. 39세이브를 올린 빌리 와그너의 14.95개를 능가했다. 가니에가 기록한 0.69의 WHIP은 마무리 투수의 기록이기는 하지만 역대 최고의 ‘선발 시즌’인 2000년 페드로의 0.74도 능가하는 대단한 기록이다.

가니에는 2002년과 2004년에도 12.46개의 K/9를 기록했다. 3년(2002~2004)간 에릭 가니에는 2 이닝을 책임지면 3명의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냈다는 것이다. 자 이렇게 구구절절 최고 기록을 남긴 가니에에 대한 칭찬을 마쳤다. 그렇다면 그 대결은 어떠할까? 가니에의 압승일까? 아니면 그래도 신(神)만큼은 예외?

마무리 투수이다 보니 같은 서부지구임에도 가니에가 본즈를 만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한방이 있는 본즈와 최고의 탈삼진율을 보여준 가니에와의 대결은 매 타석이 승부처가 되었을 것이다.

2002년에 가니에는 본즈와 3번 격돌했다. 본즈는 가니에를 상대로 1타수 1안타(2루타) 2볼넷을 기록했다. 그리고 1타점을 기록했다. 타율과 출루율 10할. 장타율 20할.

2003년 세이브 성공률 100%와 최고의 탈삼진 및 최고의 WHIP을 남긴 가니에는 본즈와 4번 만났다. 가니에는 본즈를 상대로 2타수 무안타로 선방하였으나 볼넷을 두개 내줬다. 경악스러운 것은 두 번의 볼넷으로 인한 출루에서 본즈는 모두 도루를 성공했고 득점을 했다. 본즈는 가니에에게 단 한 번의 삼진도 당하지 않았다. 2003년 0.199의 피출루율을 남긴 가니에를 상대로 본즈는 출루율 5할. 2도루. 2득점을 기록했다. 2000년대 본즈가 90년대 본즈를 흉내 낸 것이나 다름없는 결과였다.

2004년에 본즈는 가니에와 4번 상대하여 2타수 2안타 2볼넷을 기록한다. 역시 삼진은 하나도 당하지 않았고 1홈런, 2타점을 기록했다. 타율과 출루율 모두 10할, 장타율 25할. 그야말로 가니에 킬러였다. 최고의 좌완 랜디 존슨마저 버거운 상대이기에 우완 가니에가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본즈는 3년간 11번 가니에와 상대하여 9번 출루하였고(3안타 6볼넷) 홈런을 하나 뽑아낸 반면 삼진은 한 번도 당하지 않았다. 가니에는 그 당시에 11타자를 상대한다면 5~6명을 삼진으로 잡아내고 2명의 출루만 허용해야 정상(평균)이었다.

극단적으로 당겨치는 타자들을 잡아내기 위해 수비 위치를 조정하는 시프트가 본즈 상대로 빈번히 행해졌다. 그러나 소용 없는 일이다. 아무리 잘 치는 타자라도 특정 구질이나 코스에 약점을 노출하면 좋은 타자가 되기 어렵다. 본즈 쉬프트나 윌리엄 쉬프트가 통했다면 그토록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음은 당연한 것.

제프 켄트는 (비록 나중에 싸우고 헤어졌지만) 본즈 덕분에 MVP를 수상하는 성적을 남길 수 있었고 안드레스 갈라라가, 리치 오릴리아, 노장이 된 산티아고 포수까지도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였을 만큼 본즈의 앞뒤 타자들이 누린 혜택 즉 '본즈 효과'도 대단했다.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압도적인 선수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특히 압권은 월드시리즈에서 본즈와 대결한 애너하임 에인절스 팬들의 반응으로 보통 강타자라도 "이타자만 잡으면"이지만, 본즈는 "아, 몇타석 다음이후 또 본즈다"라는 말이 나오게 했으니 그 압도성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8 통산 1위 기록

  • 통산 홈런 (762호)
  • 단일시즌 홈런 (2001, 73호)
  • 통산 볼넷 (2558개)
  • 시즌 볼넷 (2004, 232개)
  • 통산 고의볼넷 (688개)
  • 시즌 고의볼넷 (2004, 120개)
  • 시즌 장타율 (2001, .863)
  • 시즌 출루율 (2004, .609)

9 수상 기록

  • MVP 7회 (1990, 1992, 1993, 2001, 2002, 2003, 2004)
  • 500-500 클럽[15]
  • 13년 연속 30홈런 (1992~2004)
  • 시즌 40-40 클럽 (1996)
  • 18경기 연속 볼넷
  • 통산 446명을 상대로 홈런[16]
  • 메이저리그 올해의 선수 3회 (1990, 2001, 2004)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올해의 선수 5회 (1998, 2001, 2002, 2003, 2004)
  • 올스타 14회 (1990,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2000, 2001, 2002, 2003, 2004, 2007)
  • 골드글러브 8회 (1990, 1991, 1992, 1993, 1994, 1996, 1997, 1998)
  • 실버슬러거 12회 (1990, 1991, 1992, 1993, 1994, 1996, 1997,2000,2001, 2002, 2003, 2004)
  • 베이스볼 아메리카 올해의 선수 3회 (2001, 2003, 2004)
  • 베이스볼 아메리카 내셔널리그 올스타 7회 (1993, 1998, 2000, 2001, 2002, 2003, 2004)
  • 행크 아론 상 3회 (2001, 2002, 2004)
  • 메이저리그 홈런 1위 2회 (1993, 2001)
  • 메이저리그 장타율 1위 8회 (1990, 1992, 1993, 2001, 2002, 2003, 2004)
  • 메이저리그 장타 1위 3회 (1992, 1993, 2001)
  • 메이저리그 전체 출루율 1위 6회 (1992, 2001, 2002, 2003, 2004, 2007)
  • 메이저리그 타수당 홈런 1위 8회 (1992, 1993, 1996, 2000, 2001, 2002, 2003, 2004)
  • 내셔널리그 타율 1위 2회 (2002, 2004)
  • 내셔널리그 타점 1위 1회 (1993)
  • 내셔널리그 득점 1위 1회 (1992)
  • 내셔널리그 출루율 1위 10회 (1991, 1992, 1993, 1995, 2001, 2002, 2003, 2004, 2006, 2007)
  • 내셔널리그 볼넷 1위 12회 (1992, 1994, 1995, 1996, 1997, 2000, 2001, 2002, 2003, 2004, 2006, 2007)
  • 내셔널리그 고의볼넷 1위 12회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2002, 2003, 2004, 2006, 2007)

실로 악마같은 기록이다. 근데 악마도 이렇게 못할 걸 악마보고 스테로이드 주면서 저당시 기록 깨라고 하면 차라리 죽이라고 할껄

이런 무시무시한 위엄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구단은 그의 등번호 25번을 비공식 영구결번화하여 기리고 있다. 사실 공식 영구결번해도 상관없긴...개뿔 한데, 야구계의 비난이 쏟아질까 두려워서 쉽게 공식화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2013년 HOF 투표가 시작되면 뭔가 변화가 있을지도는 역시 개뿔.

10 명예의 전당 투표 결과

일단 2013년 명예의 전당 첫 투표에서는 백지표를 던진 기자들의 영향 때문인지 로저 클레멘스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클레멘스 37.6%, 본즈 36.2%) 세간에서는 똑같이 투타 역대급 레전드의 커리어를 가졌지만 약물 의혹이 있는 판이라 차별대우를 해선 안된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일단 첫 투표에서는 둘 다 적당한 선에서 높지도 낮지도 않은, 큰 차이가 없는 수의 표를 받았다.

2년차인 2014년 투표에서는 쟁쟁한 경쟁자들이 더해지면서 득표율이 34.7%로 오히려 하락했다(로저 클레멘스는 35.4%). 인터넷에서 선행공개된 수치에서 40%를 상회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로, 인터넷에서 공개하지 않는 보수적 기자들은 여전히 약물문제와 엮인 선수들에게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향후 5년은 명예의 전당 첫회 입성자들이 이어질 것으로보이고, 그로 인해서 입성이 밀리느니 크레익 비지오 같은 사례가 속출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약물 관련 인물들의 득표율 상승은 난항을 보일 것으로 추정된다.

2015년도 역시 전년도와 비슷한 36.8%의 득표율을 보였으나, 2016년에는 44.3%로 뚜렷한 상승곡선을 보였다. 하지만 이건 투표인단 숫자가 줄어든 영향이라는게 중론. 실제로 자세히 따져보면 투표율은 올랐다지만, 투표자 총수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본즈 자신은 스스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면서 기고만장한 모습이지만 현실은 시궁창.

11 여담

2012년에는 사이클에 맛을 들인 듯 하다. # 사이클 행사에서 팬들에게 자주 목격되고 있다고 한다. 아마 선수시절부터 겪어온 무릎 통증을 다스리는 수단인 듯. 지금 보면 선수시절 벌크업한 것이 다 빠져서 홀쭉해졌다.

그런데 랜스 암스트롱의 약물 스캔들에 대해서 암스트롱을 옹호하기도 했다고.


이 영상은 딱히 본 항목과 관계가 없을지도...[17]

  • 사우스파크 시즌 8 에피소드 3 Up the down steroid 에서 '모든 기록에서 제 이름을 없애주세요. 왜냐하면 전 존나 비열한 계집애 새끼이며, 스테로이드나 복용하는 병신이니까'라고 까였다.(...)
  • 더 팬의 주인공인 미치광이 야구팬인 길 레너드가 자신이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야구선수 바비 레이번에게 베리 본즈가 아니냐고 묻는 장면이 등장한다.
  • 유명한 야빠 만화가 최훈이 배리 본즈에 대해서 상당한 애정을 가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프로야구 카툰의 전신격인 MLB 카툰을 보면 배리본즈가 작중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사실 기록들만 보면 소재로 안쓰는 게 이상하다만(...). 여하튼 그가 은퇴한 2007년 이후 불과 1년만에 MLB 카툰을 관두고 프로야구 카툰으로 연재방향을 변경한 걸 보면 의미심장하긴 하다.
  • 블레스 증후군에 걸려 은퇴한걸로 유명한 릭 엔키엘에게는 약했는데 릭 엔키엘을 상대로 3타수 3삼진을 한경기에 서 당했다(.....)
  • 본즈가 2001년부터 2004년까지 기록했던 fWAR은 46.6인데 이는 같은기간의 뉴욕 메츠(46.6) 밀워키 브루어스(45.3) 캔자스시티 로열즈(31.5) 디트로이트 타이거즈(30.9) 몬트리올 엑스포스(29.5)보다 높다
  • 제레미 곤살레스라는 573이닝동안 방어율이 4.95를 기록한 투수가 본즈를 6번 상대해서 한번도(!!!)출루시킨적이 없었는데, 2008년에 번개를 맞아서 사망했다. RIP.
  • 윌리 메이스,베리 본즈,윌리 멕코이가 기록한 홈런수의 합은 1888년부터 기록된 샌프란시스코의 팀 전체홈런의 12.3%를 차지한다
  • 본즈는 1880개의 볼넷과 680개의 고의사구를 얻었는데 이는 거리상으로 42.3마일에 해당한다
  • 야구게임 MLB The Show 시리즈에서는 라이선스 문제로 레지 스토커(Reggie Stocker)라는 가명으로 등장했었다.

12 코치 활동

2016시즌 마이애미 말린스의 타격코치로 임명되었다. 은퇴한 이후 계속해서 지도자를 꿈꿔왔지만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는데 이번에 그 꿈을 이룬셈이다. 그리고 마이애미가 이번시즌 핵타선을 만들어 내면서 지도자로서 첫 걸음을 순조롭게 하고있다.

크리스티안 옐리치나 마르셀 오수나야 잠재력 있었다지만, 이전 세 시즌 2할8푼대로 내려갔던 올스타 출신 3루수 마틴 프라도의 타율을 다시 3할 위로 올려놓고, 데릭 디트리치가 3할에 가까운 타율을 유지하고 있는것을 보면 분명 코치로서 본즈의 능력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지안카를로 스탠튼 역시 전반기의 어려움을 극복해 내는데 본즈의 역할이 컸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법적으로 본즈는 분명 약물과 무관하다. 그러나 설령 정말 그가 약을 했다고 가정해도, 누구나 약물을 복용했다고 해서 본즈처럼 한 시즌 73개의 홈런을 때려낸다던지 120개의 고의사구를 얻어낼 수는 없다. 나아가 논란의 시기 이전만으로 본즈는 이미 MVP 3회를 수상하고 역대 유일의 400-400을 기록하는 등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인 위대한 선수로 평가할 수 밖에 없다. 이런 부분에서 분명 본즈는 괴물같은 타격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코치로서 자신의 재능을 활용하여 선수들이 이번시즌 큰 도움을 받으며 팀에 보탬이 되고있다. 후에 본즈가 감독이 된다면 어떤 일이 생겨날지도 궁금한 부분이다.

하지만 결국 1시즌만에 해임되었다. 그러나 현지팬들의 반응은 좋지 못한데, 팀 타율이 메이저 전체에서 4위(NL 2위)였기 때문. 팀 OPS+도 15년 전체 23위(NL 9위)에서 16년 전체 18위(NL 6위)로 상승하였다. 해고 이유는 다름아닌 팀 득점인데, 전체 27위에 그쳤다고 한다. 참고로 말린스는 15년에도 팀 득점이 전체 29위로 최하위권이었다.[18] 현지 반응은 팀 타율이 4등인데 득점이 저 모양인건 타격코치보다는 감독의 작전문제가 더 큰거 아니냐는 의견도 존재한다.[19]
  1. 실제로는 "야구만" 왼손으로 하는 오른손잡이다. 후술하겠지만 아버지인 바비 본즈가 야구를 시킬때부터 왼손으로 가르쳤다고 한다.
  2. LA 다저스 스캇 반 슬라이크의 아버지
  3. 구단 내 자체 영구결번.
  4. 아버지 바비 본즈와 함께 메이저리그 역대 유이한 기록
  5. 후술하겠지만 400-400 클럽 역시 본즈가 유일하다.
  6. 2015년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넘어섰다.
  7. 아버지인 바비 본즈는 14년동안 호타준족의 상징인 20-20을 10시즌, 그리고 30-30을 5번이나 기록했다. MVP투표에서 2번 5위안에 들었고, 골드글러브도 3차례 받았다. 통산 성적은 타율 .268, OPS .824, 302홈런, 461도루로 HoF급까지는 아니어도 대스타급 선수임엔 충분하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바비 본즈는 술을 너무 좋아해서 심지어 술 마시고 경기에 출장한 일까지 있었다. 그래서 바비는 부족한 자신이 아닌 윌리 메이스를 배리의 대부로 부탁해서 아들의 멘토가 되도록 했다. 바비의 마음을 배리는 충실히 따라 야구에 대한 자문은 아버지가 아닌 메이스를 먼저 찾아갔다. 부자가 자주 언급했던 유명한 이야기. 배리는 그 아버지보다도 더 괴물같은 성적을 냈다. 아예 본즈 일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8. 본즈는 7세부터 메이스의 등번호 24번을 달고 뛰었고, 24번이 영구결번인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25번으로 바꿔 달았다. 본즈의 24번 집착은 대단해서, 피츠버그 입단하고 벤치워머인 대니 곤잘레스의 24번을 반강제로 스틸해갔다(...).
  9. 논란의 시기 이전기록만 봐도 알겠지만 이미 레전드급 타자다.
  10. 다만 이시즌에는 본즈가 이미 40-40을 기록한 이후인지라 상당히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무리해서 달리면 40-40을 달성할 수 있었지만 결국 37도루 8도루실패 도루성공율 82%라는 엄청난 성공률로 시즌을 끝냈다. 가진자의 여유
  11. 나이가 들어서 장타력나이 들어 떨어진 장타력이라 해도 순장타율이 거의 3할(...)이 떨어진건 그렇다 쳐도 저 상식 밖의 출루율은 선구안도 선구안이지만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상대 투수들이 계속 피해다녔다는 것이다. 사람이 아니무니다 게다가 그 총각 분의 스탯을 매우 초라하게 만드는 저런 극악의 비율스탯은 야구의 상식을 파괴하는 스탯이다. 현실의 밸런스를 파괴하는 존재, 그야말로 먼치킨.
  12. fWAR 기준 그 전에 비해 줄어든게 경악스러울 정도
  13. 투수들이 그야말로 공포에 떨었던 것. 다만 주루 툴이 감소한 탓에 볼넷 내준다고 크게 위협이 되는 주자는 아니었기에 고의(성) 볼넷을 많이 얻어낸 영향이 크다.
  14. 얼마나 무서운 수준인지 예를 들어보자면 이승엽의 커리어 하이 OPS가 1.190(1999년 타율 .323 54홈런)이고 타격 7관왕을 차지한 2010년의 이대호의 OPS가 1.111 더 나아가서 베이브 루스도 커리어 하이가 1.379이니 대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성적인지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다.
  15. 솔직히 클럽이라는 말도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그 클럽 가입자가 배리 본즈 단 한명뿐이기 때문이다. 500-500은 커녕 심지어 메이저리그를 포함한 전세계 어떤 프로야구 리그에서도 아직 400-400을 기록한 선수가 없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기록이다.
  16. 배리 본즈 상대로 피홈런이 가장 많은 투수들은 8개의 피홈런를 기록하고 있다. (그렉 매덕스, 존 스몰츠, 커트 실링, 테리 멀홀랜드, 박찬호)
  17. 영화 슈퍼 히어로 중 한장면. X-MEN, 스파이더맨 등 온갖 영화들을 패러디한 패러디 무비이다.
  18. 애초에 한 시즌만에 팀의 타격성적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키는 비법은, FA나 트레이드로 올스타급 선수를 한 번에 몇 명 지르지 않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MLB는 단장 중심의 야구를 하는 곳이며, 선수의 원래 수준이 B급인데 갑자기 A급으로 탈바꿈시키는건 사실상 불가능. 16년 말린스의 경우 15년 말린스에 비해 타격성적이 소폭이나마 상승세에 있었기 때문에, 1시즌만에 해임하는 것에 대해 그다지 좋지 못한 반응들이 있었다. 어차피 이 팀은 로리아가 구단주인 이상 영원히 안 된다
  19. 소수의 의견이긴 하지만, 말린스가 스타트를 끊어준 이상 본즈의 타격코칭 커리어가 뚫렸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본즈는 원래 자이언츠의 코치를 맡고 싶어했고, 반대로 자이언츠는 물론이요 본즈를 코치로 앉히고 싶어했던 팀들은 꽤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본즈의 약물 의혹때문에 찜찜해서 고용하지 못 했던 것이었고, 이제 말린스가 한 번 욕을 먹어줬으니(?)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본즈를 고용할 수 있다는 것. 정말 이와같이 흘러갈지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