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레들리 킹(Ledley Brenton King) |
생년월일 | 1980년 10월 12일 |
국적 | 잉글랜드 |
출신지 | 런던 |
포지션 | 센터백 |
신체조건 | 188cm / 85kg |
유소년 경력 | 토트넘 핫스퍼(1996~1999) |
선수 경력 | 토트넘 핫스퍼(1999~2012) |
스태프 커리어 | 토트넘 핫스퍼 U-18 코치(2014~ ) |
국가대표 | 21경기 / 2골 |
유리왕.
유스 때부터 토트넘과 함께 해 온 수비수
실력으로는 세계 최고의 수비수 다만 유리몸이 발목을 잡는다
리버풀에 제라드, 첼시에 테리가 있다면, 토트넘에는 킹이 있다.[1]
목차
1 개요 및 커리어
잉글랜드의 수비수. 신장도 좋고 체격도 좋은 수비수로서 딱 알맞은 선수이며, 수비 지능도 높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야말로 그 누구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세계 최상급의 유리몸 수비수라는 사실이다.
1998년에 토트넘 핫스퍼에 입단하여 2012년까지 뛰었다. 출장 경기 수가 264경기밖에 되지 않는다. 한 시즌에 보통 30~40경기를 뛴다고 가정하면 최소한 100경기 이상을 결장했다는 소리인데, 수비수치고는 엄청난 결장수가 그가 얼마나 최정상급의 유리몸인지를 증명한다. 하지만 본격적인 데뷔시즌이 00-01 시즌부터인데 10-11시즌까지는 꾸준하게 25~40경기 이상 뛰었다. 04-05 시즌은 총 47경기에 출장해 유리몸 선수로서는 엄청난 투혼을 과시. 그러나 꽤 괜찮은 출장수에도 불구하고 유리몸이라 불리는 이유는 토트넘이 꼭 필요한 순간마다 부상으로 출전할 수가 없다는 데에 있었다. 아스날과 챔스진출권을 두고 피말리는 경기를 펼칠때마다 레들리 킹의 이름 보기는 하늘의 별따기...
사실 그가 유리몸인 이유는 고질적인 무릎 부상 때문인데, 그에게 무릎 연골이 아예 존재치 않기 때문이다.[2] 덕분에 뛸 때마다 무릎 뼈끼리 부딪혀 한 경기를 뛰면 부어올라 걷기도 힘들 정도가 돼버린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팀에서 쫓겨나지 않고 주장 완장까지 꿰차고 있으니 실력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한때 토트넘의 센터백 자원이 적었고 킹이 부상당한 시절에 토트넘은 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부진을 겪었다.
덕분에 10-11시즌 토트넘의 센터백 자원은 6명이었다. 10-11시즌에도 부상으로 거의 출전하지 못하고 있으며 팀 동료인 나무문우드게이트와 함께 주장 완장과 부주장 완장을 차고 FC 호스피탈병원에서 드러누었다(...).[3]
한편, 킹의 무릎이 이지경이 되게 된 원인은 1999년 10월 더비 카운티와의 경기였는데 이 경기는 킹의 1군 데뷔전 무대였다. 경기 도중 로리 델랍 [4]의 태클을 당한 이후로 현역에서 은퇴할 때까지 그의 무릎은 계속해서 말썽을 일으켰다. 이후 계속된 부상과 그에 따른 무릎 수술으로 킹의 무릎은 더 이상 남아나지 못하고 연골이 닳아 없어지게 되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케이스.
그런데 유리몸만 문제인 것이 아니라 사고도 은근히 잘 치는 선수다. 수술을 받으러 해외로 나가야 하는데 여권을 분실하여 수술 날짜를 놓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으며, 폭행 혐의를 받고 경찰에 체포된 적도 있다.
이런 부상 투성이 선수가 토트넘의 주장을 맡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경기가 끝나면 다리가 부어올라 다음 경기 출전까지 제대로 된 훈련조차 소화하지 못하는데도 출전을 할 때마다 리그 최상위권의 수비감각을 보여주기 때문. 당시 감독인 해리 래드넵도 대체 어떻게 훈련을 하지 않고도 폼을 유지하는지 신기하다고 말할 지경이다.
게다가 수준급 피지컬을 굉장히 잘 활용하다 보니 테크닉과 스피드가 있는 스트라이커를 매우 효과적으로 잡아낸다. 아스날 시절 티에리 앙리도 자신의 치달이 먹히지 않는 유일한 선수라며 혀를 내둘렀고 리버풀의 루이스 수아레스도 킹과 조우하면 그 경기에서 탈탈 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런던 라이벌들을 제외한 타팀의 스탭들도 부상이 아니라면 잉글랜드 국대 중앙수비 자리를 놓고 경쟁했을 거라고 평하는 선수. 토트넘 팬들은 킹이 출전하는 경기는 반드시 승점을 딸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신뢰한다.
11-12시즌, 토트넘에서 부상당하기 → 복귀 후 경기 를 반복하며 뛰었는데 2010년 8월 부터 2011년 12월까지 참여한 경기 16경기중 14승 1무 1패,, 참여하지 않은 경기 37경기 14승 13무 10패 를 거두는 사실은 그가 왜 토트넘 수비의 핵심인지 알려주고 있다. 심지어 2011년 12월까지 참여한 최근 10경기에서 9승 1무[5]를 거두며 토트넘 수비의 핵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실이다.아스날팬들은 반페르시가 깨지지 않길 바라는것 처럼 토트넘팬들은 레들리킹이 깨지질 않길 바랬었다. 지금은 한명은 은퇴 한명은 통수...
2012년 6월, 결국 이른 나이에 은퇴를 선언하였다. 토트넘 홍보 대사로 일하고 있다가 2014년 7월 23일 토트넘의 u-18 파트 타임 코치에 선임되었다.
최근 스포츠기자 이성모와 레들리 킹의 근황과 선수본인에 대한 이야기, 이영표, 손흥민에 대한 의견을 밝힌 인터뷰를 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고하자
2015/2016 시즌, 그 어느 때보다 리그 우승에 근접한 토트넘이었지만 팀을 단결짓는 베테랑 선수의 부재로 스스로 무너지면서 3위에 그치고 말았다. 특히 리그 막판 첼시전의 손흥민과 위고 로리스를 제외한 토트넘의 모든 선수가 난폭한 행위로 경고를 받으며 자멸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압권. 말 그대로 토트넘의 15/16 시즌에는 레들리 킹이 있었더라면의 상황들뿐이었다.
2 국가대표
실력 덕분에 국가대표에도 자주 뽑혔지만 역시 출장 경기 수는 별로 많지 않다. 2002년 3월 이탈리아와의 친선 경기에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뤘지만 국가대표 통산 기록은 21경기 2골로 정말 지극히 낮다. 게다가 국가대표팀에는 최정상급의 라인이라 불리우는 퍼디난드-테리 라인이 버티고 서 있었기 때문에 출전 빈도는 높지 않았다. [6]
커리어 내내 부상으로 인해 꾸준히 뽑히지 못해 유로 2004에는 출전했지만 그 이후 2006년 월드컵은 부상때문에 최종 명단에도 제외되었다. 그러나 파비오 카펠로 당시 잉글랜드 감독은 2010년 월드컵을 앞두고 제한된 출전만 할 수 있는 킹을 국가대표로 선발해 잉글랜드 최종 명단에 발탁시켰고 미국과의 조별리그 경기에도 출전하였다.- ↑ 상징성은 더 뛰어난데, 제라드는 현재 미국에서 뛰고 있으며, 테리는 사생활 문제가 있는 반면, 킹은 훌륭한 프로정신으로 토트넘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 ↑ 연골이 없으면
그 빡세다는한국 군대에서도 5급, 면제 대상이다. - ↑ 우드게이트는 10-11 챔피언스리그 16강 AC 밀란과의 1차전에 부상 회복 후 출전했으나 또 부상당해 FC 호스피탈로 돌아왔다(...).
- ↑ 스토크 시티 FC 시절 인간 투석기로 불렸던 롱스로인의 달인인 그 선수 맞다.
- ↑ 1무의 이유는 부상으로 교체.
- ↑ 물론 그렇다고 해서 킹<테리,퍼디낸드인건 아니고 부상이 잦았고 비단 킹을 넣기보단 둘만으로도 충분히 통곡의 벽이었기 때문에 굳이 킹으로 갈아끼울 필요가 없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