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비오 카펠로

이름파비오 카펠로 (Fabio Capello)
생년월일1946년 6월 18일
국적이탈리아
출신지산칸치안디존초
포지션미드필더
신체178cm
소속팀SPAL (1964 - 1967)
AS 로마 (1967 - 1970)
유벤투스 FC (1970 - 1976)
AC 밀란 (1976 - 1980)
지도자AC밀란 스카우트 (1985 - 1991)
AC 밀란 감독대행 (1987)
AC 밀란 감독 (1991 - 1996)
레알 마드리드 CF 감독 (1996 - 1997)
AC 밀란 감독 (1997 - 1998)
AS 로마 감독 (1999 - 2004)
유벤투스 FC 감독 (2004 - 2006)
레알 마드리드 CF 감독 (2006 - 2007)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7 - 2012)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2 - 2015)
국가대표32경기 8골
AC 밀란 역대 감독
닐스 리드홀름
(1984~1987)
파비오 카펠로
(1987)
아리고 사키
(1987~1991)
아리고 사키
(1987~1991)
파비오 카펠로
(1991~1996)
오스카 타바레스, 조르지오 모리니
(1996)
아리고 사키
(1996~1997)
파비오 카펠로
(1997~1998)
알베르토 자케로니
(1998~2001)
레알 마드리드 CF 역대 감독
비센테 델 보스케
(1996)
파비오 카펠로
(1996~1997)
유프 하인케스
(1997~1998)
후안 라몬 로페스 카로
(2005~2006)
파비오 카펠로
(2006~2007)
베른트 슈스터
(2007~2008)
AS 로마 역대 감독
즈데넥 제만
(1997~1999)
파비오 카펠로
(1999~2004)
체사레 프란델리
(2004)
유벤투스 FC 역대 감독
마르첼로 리피
(2001~2004)
파비오 카펠로
(2004~2006)
디디에 데샹
(2006~2007)
지안카를로 코라디니
(2007)

우승청부사

알렉스 퍼거슨과 비교할 수 있었던 명장[1][2]

1 경력

선수 시절 미드필더로 1964년 SPAL 구단에서 데뷔했다. 그 후 AC 밀란, 유벤투스, AS 로마 등 명문 팀에서 활동하였고 세리에 A 우승 3회, 준우승 2회 , FA컵 우승 1회,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UEFA컵 우승, 준우승 각각 1회씩 하며 성공적인 선수생활을 했다.

은퇴 후 TV 해설가를 맡기도 하였던 카펠로는 1987년 AC 밀란의 감독 대행을 맡았다. 그러다 1991-92 시즌 자신의 후임이었던 아리고 사키 감독 후임으로 밀란 정식 감독직에 부임한다.[3]

감독 데뷔 첫 시즌인 1991-92 시즌 22승 12무로 데뷔 시즌을 우승으로, 그것도 무패로 우승을 시키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현실 FM 그 다음시즌인 1992-93 시즌도 리그 우승을 하고 챔스까지 진출했지만 프랑스의 마르세유에게 패배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 당시 마르세유는 독일 선수 한명을 제외하고는 약을 빨았던 것이 밝혀지고 리그에서는 승부 조작으로 강등당하는 최악의 지저분한 팀이었다.약드세유 1993-94 시즌 역시 리그 우승을 하며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했고 당시 결승 상대는 FC 바르셀로나에 감독은 요한 크루이프. 요한 크루이프의 성격상 카펠로를 좋아할 리가 없었고 "밀란은 공을 제대로 다룰 줄도 모르는 드사이같이 형편없는 놈을 가장 중요한 자리에 놓는 끔찍하게 멍청한 팀이다. 내일은 우리들이 축구 레슨을 시켜주겠다." 라면서 강력한 자신감을 가졌지만 정작 마르셀 드사이의 결승골로 카펠로의 AC 밀란에게 0:4로 완패를 당하며 오히려 축구 레슨을 받는 망신을 당하게 되고 카펠로는 처음으로 유럽챔피언스 리그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4]

1994-95 시즌에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하며 3시즌 연속 결승에 진출했지만 아약스에게 패배하며 준우승에 머무르고 리그에서도 4위를 기록하며 주춤한 카펠로는 1995-96 시즌 다시 AC 밀란을 세리에 A 우승팀으로 복귀시키는데 성공했다.

1996-97 시즌에는 레알 마드리드로 팀을 옮겼다. 카펠로의 수비적이고 조심스러운 지도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당시 슈케르, 라울, 미야토비치를 앞세워 스리톱으로 전술을 구성했으며 팀을 옮기자마자 타이틀 획득에 성공했다. 하지만 한 시즌만에 레알 마드리드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1997-98 시즌 라치오의 구애를 물리치고 AC 밀란으로 한 시즌만에 복귀했다. 당시 AC 밀란은 많은 선수들이 떠난 상태로 리빌딩이 필요하였고 선수들이 대거 영입되었으나 아직 조직력이 구축되지 못한 상태였다. 라이벌인 유벤투스에게 완패를 당하는 등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며 11승 11무 12패 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리그 10위를 차지, AC 밀란을 떠나게 된다.

1999-00 시즌 AS 로마 감독으로 부임했다. 구단주였던 프랑코 센시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시직한 1999-00 시즌은 리그 6위로 마감했다. 당시 카펠로 감독은 스코어러인 몬텔라를 선호하지 않아 후보로 기용했고 대신 마르코 델 베키오를 주전으로 기용했다. 시즌이 끝난 후 카펠로 감독은 장신의 대형 스트라이커를 필요로 했고 PSV 아인트호벤에서 활약하던 루드 반 니스텔루이를 영입하려 했으나 반 니스텔루이의 장기 부상으로 인해 영입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지만 세계적인 스트라이커인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를 피오렌티나로부터 거액을 주고 영입했고 세계적인 수비수지만 당시엔 유망주였던 왈테르 사무엘을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3-4-1-2 포메이션으로 자구-사무엘-파누치의 스리백과 뱅상 캉델라-카푸의 양 윙백, 톰마시-에메르손의 강력한 중앙과 플레이 메이커 토티, 그리고 바티스투타와 델베키오를 투톱으로 내세운 AS 로마는 2000-01 시즌 리그 우승과 2001-02 시즌 리그 준우승을 하며 전성기를 이어가게 된다. 하지만 2002-03 시즌에는 리그 1,2라운드 모두 패배를 당하는 등 안 좋은 모습으로 시작하게 되는데 결국 리그 8위에 머물렀다. 2003-04 시즌에는 키부의 영입과 카사노의 각성 등 새롭게 분위기를 쇄신하여 21승 8무 5패라는 준수한 성적과 15실점이라는 극강의 수비를 자랑했으나 AC 밀란에게 밀려 리그 타이틀을 내줬다.

그 후, 카펠로는 2003-04 시즌 실패로 새롭게 구단을 꾸려갈만한 감독을 필요로 하는 유벤투스의 제의를 받고 이적했다. 카펠로는 애제자였던 에메르손과 제비나 등을 같이 데려가면서 AS 로마와 AS 로마 팬들과 마찰을 빚었다.

2004-05 시즌과 2005-06 시즌 카펠로는 강력한 지도력을 바탕으로 리그 2연패를 이끌었다. 성적은 각각 26승 8무 4패와 27승 10무 1패 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이었다. 다만 챔피언스리그와는 거리가 멀어 2시즌 연속 8강에 머물렀다. 2004-05 시즌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영입하면서 유벤투스의 상징이었던 델 피에로가 벤치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졌고 당시 전임 감독이었던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4-3-1-2 가 아닌 4-4-2 로 바뀌면서 전술의 중심이었던 파벨 네드베드가 윙으로 옮기는 대신 네드베드의 역할을 즐라탄이 이어받게 된다. 즐라탄의 '마법'같은 발재간과 공간 창출로 공격을 풀어나가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던 2004-05 시즌엔 공격이 활발해졌으나 2년차 징크스를 겪은 2005-06 시즌엔 즐라탄이 답답한 모습을 보여주며 공격 타이밍을 놓치는 등 하락세에 빠지게 되어 문제를 겪게 됐다. 또 에메르손의 파트너로 비에이라를 영입하며 강력한 중앙을 구성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비에이라도 하락세인지 초반 반짝 활약을 제외하면 계속 하락세를 보여줬다. 우여곡절끝에 리그 우승은 했지만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아스날에게 완패당했다.

하지만 카펠로의 2004-05, 2005-06 시즌 리그 우승 타이틀은 칼치오폴리스캔들로 박탈당하고 말았다.

유벤투스가 칼치오폴리로 인해 세리에 B로 강등되고 난 후, 카펠로는 레알 마드리드의 러브콜을 받아 10년만에 복귀했다. 복귀 직후 지키는 축구라는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팀을 빠르게 재정비했고 인터뷰에서 공격적인 것보다 결과가 더 중요하다라고 하며 기존의 레알 마드리드 스타일을 버릴 것임을 공언했다. 분위기 쇄신이나 감독과의 마찰 등으로 호나우도, 데이비드 베컴 같은 톱스타들이 카펠로 감독에게 팽 당했으나 당시 레알 마드리드는 팀 내 분위기가 엉망이었고 애제자였던 카사노가 카펠로를 디스하다가 그게 기자들에게 녹화되는 바람에 방송에 타는 등 말이 아니었다. 또 리그 2연패를 하던 라이벌 FC 바르셀로나에게 상당이 뒤쳐지는 등 사면초가인 상태에서 자신이 내쳤던 베컴을 다시 불러들였으며 베컴의 맹활약으로 FC바르셀로나와의 승점차를 뒤집고 극적으로 우승하게 되었다.[5] 그렇지만 어수선한 팀 내 분위기와 레알 마드리드와 어울리지 않는 카펠로의 스타일로 인해 10년 전처럼 한 시즌만에 우승시키고도 해고당했다.

2008년 카펠로는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하며 과연 잉글랜드를 우승시킬 수 있을지 관심을 모았으나 정작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라이벌 독일에게 1:4로 관광당했다

그래도 2012 유로컵에 잉글랜드를 진출시키며 감독직을 유지했으나 2012년 2월 9일 존 테리의 주장 박탈에 대하여 잉글랜드 FA와 갈등 끝에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감독을 사임하기로 했다.

2012년 7월 16일 딕 아드보카트의 후임으로 러시아 대표팀 감독에 부임했다. 일단은 2년 계약.

그리고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지역예선(유럽)에서 러시아 대표팀은 포르투갈을 제치고 조 1위에 올라 12년만에 월드컵 본선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본선에서는 알제리랑 한국에게 1-1, 벨기에에게 0-1로 패하며 조3위로 탈락,연봉으로는 2014 월드컵 32개 참가국에서 최상위급으로 많이 받던 그의 이름으로 굴욕적인 결과였다.대회 종료후 대회 최악의 감독으로 꼽히기도....명성과 연봉에 비해 너무나도 초라한 결과를 얻은 지라 러시아 내에서도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어찌어찌해서 계약은 연장됐다.

레알 마드리드 감독까지는 절정의 폼을 자랑하며 우승청부사란 이름에 걸맞는 성적을 냈지만,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 부임 이후부터 폼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잉글랜드에 이어 러시아까지 최고연봉수령자였으나 잉글랜드 대표시절에는 월드컵 16강, 러시아 대표때는 월드컵 16강 진출실패로 2연속 먹튀로(...) 전락했다. 사실 강력한 중앙을 형성하여 선 압박/수비 후 속공 위주로 특히 '나도 공격 옵션 하나 줄일테니 너희들도 편하게 공격하지 못하겠다'는 식의 카펠로 전술은 장기적인 리그 보다 챔피언스리그나 월드컵같은 단기전에 더 어울리는 스타일이지만 클럽 시절부터 단기전에는 초창기 3연속 챔스 결승을 경험한 밀란 시절을 제외하곤 부진한 모습을 보여줬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 고집이 강해지고 전술적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으며 더블 볼란테 시스템에, 철저한 분업화를 추구하며 각자 위치를 고수하는 카펠로식 전술은 이제 현대축구에 따라가지 못한다는 의견이 많다. 상기했다시피 투 보란치를 중점으로 투박의 정점을 달리는 수비적인 전술로 유베시절이나 레알 시절에도 팀에 우승컵을 안겨줘도 수면제 축구라고 자팀 팬들에게조차 욕을 한사발로 얻어먹었다. 상술한 것처럼 2000년대 말부터 급격히 변한 세계 축구의 트렌드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중론. 리오 퍼디난드는 카펠로가 잉글랜드 지휘봉을 잡았을때 세계 최고의 명장에게 엄청난 가르침을 배울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생각외로 굉장히 전술적으로 경직되어있고 구시대의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감독이라 놀랐다고 한다. 오직 플랜 A만 고집하는 독불장군에, 선수들이 철저히 계획에 따라서만 움직이길 바라고 조금이라도 창의성을 발휘하면 불호령이 떨어졌다고.

특히 브라질 월드컵에서 광탈했을땐 분노한 러시아 팬들이 콘돔을 투척하기도.... 엿은 양반이었네.

여담으로, 이번 월드컵에서 최악의 모습을 보여준 홍명보호를 상대로 유일하게 승점 3점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국내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카명보 '줘도 못먹는 병X' 취급을 받는 모양이다(...). 실제로 카펠로의 수비축구는 벨기에를 상대로 매우 효과적이었지만 졌다으나 로열젤리한국을 상대로 다득점을 노리기에 부적합했으며 아킨페프의 기름손을 감안해도 패착이었다. 4경기 모두 다른 전략을 준비해 알제리의 맹활약을 이끈 할릴호지치 감독과 비교되며 한물갔다는 소리를 듣는 중.
11월 12일 BBC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축구협회가 재정난으로 6월 이후 카펠로 감독의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관련기사 이에 카펠로는 개의치 않는다고 말하며 쿨한 모습을 보여줬다. 실추된 자신의 명예를 되찾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듯 하다. [6]

2015년 6월 24일 러시아 감독직에서 경질됐다는 일부언론의 보도가 나왔으나 러시아 축구협회는 일단은 부인했다. 그러나 경질에 대해 내부 논의중인 것은 사실이며 조만간 결정이 내려질 것이라고 했고, 후임은 자국인 감독을 고려중이라고까지 한 것으로 보아 카펠로의 모가지는 시간문제에 불과한 듯.

그리고 7월 14일 러시아 감독직에서 물러나기로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유로 2016 G조 예선에서 오스트리아에게 2번 다 패하고 몰도바에게 비긴 게 원인으로 추정된다.

2 특이사항

1. AC 밀란 감독 시절 무패우승을 경험했고, 56경기 무패기록을 세웠다.

2. 카펠로의 양아들로 조나탕 제비나, 크리스티안 파누치, 에메르송이 있다. 이들은 카펠로가 팀을 옮길때 자주 데리고 다녔다.

3. 레알 마드리드와는 유독 질긴 인연인지, 1996-97, 2006-07 시즌에는 리그 우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질된 화려한 이력이 있다.

4. 베컴 프리 이적이라는 병크를 저질렀지만, 갈락티코도 이후 4년만에 차지한 우승이라, 레알 마드리드 팬들에겐 신급대접을 받고 있고, 후임 감독인 슈스터는 리그 연패는 달성했으나 재임 마지막 시즌 FC 바르셀로나에게 떡실신당하며 경질되었다.

5. 전술의 스타일은 견고한 수비벽과 투보란치를 바탕으로 한 수비축구이다. 덕분에 경기가 무진장 재미없고 호불호가 갈리긴하나, 그 업적으로 말 다했다.(...) 또한 선발선수마저 호불호가 갈리는데 그 이미지로 스타만 쓰는 감독으로 잘못 알려져 있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2006-07의 카사노, 호나우두, 베컴이 카펠로 감독에게 팽당한 이후 이적한 선수들이다.

6. 하지만 로마 감독 시절, 아퀼라니, 데 로씨등을 발굴하기도 했고, 밀란 시절에는 그전에 그야말로 황금 유스가 빵빵 터져주면서(대표적으로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파올로 말디니,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 알베리고 에바니가 있지만 이들은 아리고 사키 부임 전/후 1군으로 올라온 선수들이다.) 유망주 영입을 꽤 한편인데, 풋내기 시절의 클루이베르트, 다비즈, 비에이라, 옌스 레만 등이 AC 밀란을 걸쳤으나 당시 암흑기라 해도 쟁쟁한 선수들[7]에게 밀려 후보로 전락하고 결국 이적해서 포텐을 만개한다.

7. AC 밀란 감독 시절이던 1996년에 한국에 방한하여 한국 국가대표팀과 친선경기를 벌인 적이 있다. 결과는 3:2로 AC 밀란의 패배.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3번째 골은 선수 부상으로 걷어낸 볼을 가로채서 넣은 것이다. 월드컵 개최국으로서 신사적인 행동이 아니다"라며 독설을 하기도 했다.
사실 밀란은 양반이었다. 유벤투스는 4:0으로 졌다

8. 마찬가지로 성격이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유명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조차도 자서전을 통해 '눈도 마주치기 힘든 감독' 이라고 평할 정도로 강성 기질이 있는 독불장군 스타일의 감독이다. 물론 즐라탄은 감독 자체에 대해서는 '사나이답고 멋진 사람' 이라며 존경의 표현을 했다.

9. 본인의 국적은 이탈리아이지만 자국 국대 감독을 한 적이 없고 잉글랜드와 러시아의 국대 감독을 한 적이 있다.

3 기록

3.1 리그 기록

연도구단순위경기승점
1991-92AC 밀란13422120742156
1992-93AC 밀란13418142653250
1993-94AC 밀란13419123361550
1994-95AC 밀란4341798533260
1995-96AC 밀란13421103602473
1996-97레알 마드리드14227114853692
1997-98AC 밀란1034111112374344
1999-00AS 로마63414128573454
2000-01AS 로마1342293683375
2001-02AS 로마23419132582471
2002-03AS 로마834131011554649
2003-04AS 로마2342185681971
2004-05유벤투스-[8]382684672786
2005-06유벤투스20[9]382710171240
2006-07레알 마드리드1382378664076

3.2 국가대표 기록

연도국가경기
2007-2012잉글랜드422886
2012-러시아7520

3.3 대회 기록

3.3.1 선수

3.3.2 감독

  1. 카펠로가 클럽 감독을 역임한 91-92 시즌부터 06-07 시즌까지를 비교했을 때 카펠로는 우승 9회, 준우승 2회, 퍼거슨은 우승 9회, 준우승 4회를 기록했다. 차이라면 퍼거슨이 한 클럽만을 꾸준히 맡으면서 팀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매니저'였다면 카펠로는 여러 클럽을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우승을 일궈 낸 '우승청부사'였다는 점.
  2. 그러나 큰틀을 바꾸진 않으면서도 유럽 축구의 흐름을 잘 흡수해서 말년까지 유연하게 변화했던 퍼거슨과 달리 나이들어서 전술적 고집이 심해져 성적이 점점 신통찮아지고 있다.무엇보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홍명보호랑 비겼다...
  3. 아리고 사키의 제자라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나이도 동갑이며 심지어 밀란 감독은 카펠로가 대행이었지만 먼저 맡았기에 사실상 동시대의 인물이다. 참고로 사키와 카펠로는 견원지간 이상으로 사이가 매우 안 좋다. 단적인 예로 카펠로가 2006-07 시즌 전 레알 마드리드 감독직 루머가 뜨자 2004-05 시즌 레알의 기술이사를 겸임했던 사키가 극구 반대했을 정도.
  4. 이때의 완패 때문인지 요한 크루이프는 생전에 줄곧 이탈리아 축구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5. 그러나 계약 마지막해였던 베컴은 이미 LA 갤럭시와 계약한 상태였기에 카펠로 자신조차도 기왕 가는 베컴에게 하는 립서비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쉽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6. 참조.
  7.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조지 웨아, 로베르토 바지오, 세바스티앙 로시등.
  8. 칼치오폴리 판결에 의해 우승 취소
  9. 칼치오폴리 판결에 의해 20위로 순위조정 및 강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