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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8월 2일 통킹만 일대에서 미합중국 해군 구축함 USS 매독스 함과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해군 어뢰정 3척 간에 교전이 벌어졌다. 미 해군은 이틀 뒤인 4일 북베트남의 2차 공격이 이어졌다고 주장하고 나섰고, 8월 7일 의회의 승인을 받아 린든 존슨 당시 미국 대통령은 마침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다.
문제는, 미국이 이 사건에 없던 사실을 날조해서 끼워넣었고, 그걸 베트남 전쟁의 구실로 삼았다는 것이다. 1994년엔 당시 CIA국장이 '과장이 있었음'을 인정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미국과 미군에 관련된 음모론이 등장할때 가끔 유사사례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 사건은 1971년 뉴욕타임스가 미 국방부 관련 보고서(펜타곤 페이퍼스)를 입수하여 공개하면서 윤곽을 드러냈다. 뉴욕타임스는 당시 '펜타곤 페이퍼스'를 인용해 미국이 베트남전쟁에 개입하기 위해 통킹만 사건을 조작했다고 폭로하여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그 당시 미국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1964년 8월 2일, 북베트남 해군의 어뢰정들이 북베트남 해역에 접근한 미 해군 구축함 USS 매독스 함을 공격했고, 미 해군 측은 경미한 피해를 입었으나 USS 매독스 함과 함께 작전하던 동급 구축함 USS 터너 조이 함이 반격을 가해 1척을 격침하고 2척을 파손시켰다(1차 공격). 그리고 이틀 뒤인 8월 4일에 다시 북베트남 해역에 접근한 매독스 함이 2차 공격을 받고 반격했다(2차). 이 2차 피격은 아예 없었던 일로, 미국에 의해 날조된 것이다. 당시 2차 공격에 대한 보고를 받은 존슨 대통령은 'XX들, 수병 XX들이 날치를 보고 쏜거야'라고 했다. 즉 레이더에 비추는 잔상과 긴장으로 인한 발포를 '실제 공격처럼 날조하고' 판을 키운 것이다. 한 베트남 전쟁을 다룬 영화에선 아예 1차 교전조차 조작으로 간주, 인근을 초계 비행하던 미 해군의 A-4 스카이호크 공격기에게 USS 매독스가 "공격받고 있는 중이니 XX에 공습 지원을 부탁"한다는 무전을 보내나, 스카이호크 조종사는 레이더에 잡히는 게 없는데 뭔 헛소리냐고 하지만, USS 매독스는 계속 공격받는 거 맞다고 우기고, 스카이호크 조종사는 결국 몇 차례의 공격을 공해상에 퍼붓고 항공모함으로 귀환, 이후 통킹만 사건 뉴스를 TV로 보고 말도 안된다는 반응을 하는 장면을 넣기도 했다.
이 2차 공격 후에 미국 정부는 의회에서 일명 통킹만 결의안을 얻어내고 이를 근거로 북베트남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공격을 단행한다. [1] 이를 시작으로 베트남전은 북베트남vs남베트남의 내전에서, 북베트남(+소련+중국+북한[2]+...) vs 미국(+남베트남+한국+태국+...)의 국제전으로 비화된다.
다만, 1차 공격은 실제로 벌어진 일이 맞다. 1차 공격은 북베트남 측도 사실로 인정하고 있다. 2008년 베트남전 당시 베트남군 총사령관 보응우옌잡 장군과 당시 미국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의 만남을 CNN에서 주선한 적이 있다. 거기에서 보응우옌잡 장군은 1차공격은 인정했지만 2차공격은 없었다고 주장했다.[3] 북베트남의 발표에 의하면 "매독스 함을 베트남 공화국 해군 함선으로 오인했다."고 한다. 펜타곤 기밀문서에 의하면 이때 미국에서는 속칭 34-A 작전으로 비밀작전을 지원하고 있었고 이 작전의 일환으로 남베트남 특공대가 비밀작전으로 북베트남 연안에 대한 습격행위를 하고 있었으니, 미군이라는 것을 알고 일부러 공격했을 가능성도 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196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이미 양측은 서로의 후방에서 게릴라 침투공작을 진행 중이었다. 먼저 시작한 것은 이른바 '호치민 루트'를 통해 남하한 베트콩(북베트남 남파부대 출신)들로, 이들은 사이공 정부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외곽 농촌지역에 침투해 이를 장악하는 이른바 '촌락전쟁'을 진행 중이었다. 이 와중에서 베트콩에 협조하지 않는 민족주의, 우익인사들이 대거 학살되었고, 외곽지역의 마을들이 하나하나 베트콩에게 넘어갔다.
미국과 월남은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월남인을 무장훈련시켜 북베트남에 파견, 게릴라 아지트를 만들고 반 호치민 전선을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 공중낙하, 해상침투가 있었는데... 34-A작전은 CIA가 제공하는 쾌속정에 편승한 기습부대가 해안선으로 침투해 파괴공작을 벌이는 작전이었다.
흡사, 한국전쟁 당시 다수의 한국인 첩보부대가 북한 지역에 침투한 것과 매우 흡사하다. 이른바 북파공작원의 아이디어는 이들 월남전선에서도 그대로 공유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결과론적으로 말하면 북쪽의 작전은 대성공, 남쪽의 작전은 대실패였다. 남쪽에서 북파된 공작원들은 촘촘하게 짜여진 공산주의 국가의 통제망 내부로 침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대부분이 침투 직후 체포되었고, 더러는 전향해 이중간첩이 됐다.
반면, 느슨하고 통제불능에 혼란스러웠던 남베트남의 경우, 북베트남 남파공작원들의 폭력을 수반한 강제와 남베트남 정부의 실정, 그리고 치안부재 덕택에 북쪽의 정책은 비교적 손쉽게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