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 시즌별 성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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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롯데 자이언츠의 2000 시즌을 정리한 항목이다.
2 시즌 전
2.1 선수협 사태
선수협 파동이 터지자 구단은 문동환, 마해영, 박정태 등의 선수협에 연관된 선수들의 훈련을 금지시켰다.[1]
2.2 선수이동
좌완투수 성준이 현역에서 은퇴했다.
3 시즌 중
3.1 시즌 초반
시즌 초반에는 성적이 그렇게 좋다고 볼수없었다.호세의 공백을 매워줄것이라고 생각하던 용병 테드 우드는 완전히 후루꾸였으며 마해영은 99년의 대활약을 잊은듯 그냥 선풍기 스윙을 붕붕휘둘렀다(...)그나마 타격에서 해주던 선수가 김대익,박정태 정도밖에 없었다.
그리고 故임수혁 선수가 쓰러진해가 바로 이해다.4월 18일 잠실구장 엘지전에서 김응국의 1-2루간 빠지는 안타에 2루로 진루한후 쓰러진것.그리고 의식불명 상태에 있다가 2010년 사망했다.
기대했던 투수진에서도 약간의 리스크가 있었는데 바로 문동환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못한것.선수협 사태에 의해 훈련을 제대로 하지못한 탓이 컸다. 그나마 부상으로 이탈하기 전까지 7승을 거뒀다. 에이스 주형광은 건재했으나 승운이 따르지 않아 8승에 그쳤다.
한편으론 손민한과 기론, 박석진이 호투하며 투수진을 이끌었다.
3.2 시즌 중반
5월 7일에 우완투수 박보현과 두산 베어스의 좌완투수인 김영수의 트레이드가 이루어졌다.
용병으로 부진했던 우드가 방출되고 데릭 화이트를 대리고왔는데, 쏠쏠한 모습을 보여주였으나 시즌 막판 팔꿈치 부상으로 포스트시즌에는 나오지 못했다. 사실 9월 미국으로 간 후 복귀를 하지 않아 팀 분위기를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3.3 시즌 후반
1999년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팔꿈치 수술을 받은 투수 염종석이 복귀에 성공했다.
다만 불펜투수로 6경기 남짓 등판한 것이 전부였다.
3.4 포스트 시즌
매직리그 3위를 했지만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며 준플레이오프를 치루게되었다.삼성과 2년연속으로 치루게 됐는데,1차전부터 꼬이더니 2차전엔 이겼으나 3차전에서 손민한의 부진으로 결국 플레이오프 진출이 무산되고 만다.
그리고 롯데는 8년동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으며 포스트시즌에서 첫승을 2009년 준플레이오프에서 거두기까지 3272일을 기다려야 했다(...)더 무서운것은 다음해인 2001년부터 8888577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4 의의
- 롯데 자이언츠의 첫 외국인 10승 투수가 배출되었다. 정작 기론이후로 10승 투수는 10여년간 없었다가 라이언 사도스키가 오랜만에 외국인 10승을 거둔다.
- 중심타선이 전년도에 비해서 상당히 약해졌다. 이는 호세의 해외진출과 선수협과 관련된 박정태와 마해영이 훈련부족으로 전년대비 성적이 떨어졌기에에 생긴 일이다. 거기에 상위타선과 하위타선도 전년도에 비해서 부진했기에 풀타임 3할타자는 롯데에서 없었다.
- 투수진은 그래도 괜찮았다. 마무리 강상수는 50게임에 나와서 6승8패 23세이브 1점대 방어율을 찍었고 핵심 불펜인 박석진도 2.48의 방어율과 7승 6패 8세이브 6홀드로 괜찮은 성적을 냈다. 시즌 중에 박보현과의 트레이드로 온 김영수도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7승 4패 1세이브 1홀드로 커리어하이를 찍었으니 투수진이 잘 굴러갔다고 볼 수 있다.
- 그리고 손민한의 포텐이 드디어 터져서 12승을 거두며 에이스 역할을 해주었다. 주형광이 타선덕분에 10승을 못하고 박지철, 기론이 부진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손민한의 활약은 롯데가 가을야구를 하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 참고로 이 해에 롯데는 5위를 했으나 가을야구는 했다. 이는 양대리그의 허점덕분에 생긴 일인데 매직리그 2위인 롯데가 드림리그 3위인 삼성보다 승률이 낮아서 생긴 일이다. 결국 이 때문인지 그 이듬해부터는 단일리그로 통합되었고 롯데는 2001~2007시즌 동안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 ↑ 이 여파로 세 선수 모두 지난해보다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고, 특히 문동환의 경우 시즌 중반에 합류했지만 12경기 등판 후 팔꿈치 부상을 당하며 전력에서 이탈, 그 후로 롯데에서는 다시는 좋은 공을 던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