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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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의 취소? 인정할 수 없어![1]

LG 트윈스 No.89
박석진(朴石鎭 / Suk-jin Park)
생년월일1972년 7월 19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부산광역시 수영구
출신학교수영초-부산대천중-경남고-단국대
포지션투수
투타우투[2]우타
프로입단1995년 삼성 라이온즈 신고선수 입단
소속팀삼성 라이온즈(1995~1997)
롯데 자이언츠(1997~2003)
삼성 라이온즈(2004~2006)
롯데 자이언츠(2007)
LG 트윈스(2007~2008)
지도자 경력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2군 투수코치(2010~2011.8.)
LG 트윈스 2군 투수코치(2012~2013)
LG 트윈스 1군 불펜코치(2014~2015)
LG 트윈스 2군 투수코치(2015~ )
1999년 한국프로야구 플레이오프 MVP
유지현(LG 트윈스)박석진(롯데 자이언츠)
송진우(한화 이글스)
정민태(현대 유니콘스)
심정수(두산 베어스)
2001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평균 자책점
구대성(한화 이글스)박석진(롯데 자이언츠)나르시소 엘비라(삼성 라이온즈)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59번
박석진(1995 ~ 1997)최부락(1998)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39번
김종훈(1994~1997)박석진(1997~2004)노장진(2004)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8번
노장진(2000 ~ 2004)박석진(2004)김진웅(200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9번
김덕윤(2003 ~ 2004)박석진(2005 ~ 2006)강현성(2007)

1 소개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 LG 트윈스에서 활동했던 사이드암 투수. 등번호는 59번(삼성) - 39번(롯데) - 18번(삼성) - 39번(삼성) - 39번(롯데) - 20번(LG) - 39번(LG)다.

2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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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초기에 입단했던 삼성 라이온즈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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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고향 팀으로 돌아온 롯데 자이언츠 선수시절, 한창 전성기때의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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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친정 팀으로 돌아온 삼성 라이온즈 선수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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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푸대접받고 세 번 다시 오지 못할 롯데 자이언츠 선수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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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LG 트윈스 선수 시절 이 후 코치생활로 이어지고 있다.

경남고등학교단국대학교를 졸업하고 삼성 라이온즈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연습생이었지만 입단 첫 해인 1995년 6월 1군에 등록되어 활약했을 정도로 유망주였다. 그러다가 1997년 6월 이동수와 함께 김종훈, 박동희를 상대로 고향 팀인 롯데 자이언츠트레이드되었다.[3][4] 이후 롯데에서 불펜투수로 활약하며 1999년 11승으로 최전성기를 누릴 정도였다.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승부 중 하나로 꼽히는 1999년 플레이오프에서 MVP로 선정되기도 했다. 특히 플레이오프 6차전의 선발 등판이 발군이었는데, 7회 1사까지 퍼펙트게임을 이어 나가다가 [5] 김종훈에게 볼넷 하나를 내주고 교체되었다.

1999년의 활약을 바탕으로 2000 시드니 올림픽 야구 대표팀에 선발되어 활약했다. 미국과의 4강전에서 덕 민케비츠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은 주인공. 그래도 다행히 일본을 꺾고 동메달은 받았다.

2001년 구원 투수로 방어율왕에 올랐다. 근데 프야매에선 선발 133이닝 44자책 2.98. 하지만 4승 10패 14세이브라는, 이 당시 야구를 못 본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스탯을 기록했다. 팀이 꼴찌라도 이건 좀 심하잖아 이 여파로 부상을 당해 다음 2년 동안 1군에서 2.2이닝밖에 던지지 못했다.[6]

2004년 시즌 도중 김대익과 함께 김승관, 노장진을 상대로 친정 팀인 삼성 라이온즈에 트레이드되어 복귀하였다. 그 뒤, 김현욱의 노쇠와 임창용이 부진하자, 1군에 서 권오준과 같이 사이드암 불펜으로 활약하며, 2005년 8승 1세이브로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어 냈다.

이후 2006년에 한 번 더 삼성의 우승에 기여했지만, 시즌 후 삼성에서 방출되고 2007년 롯데에 자유계약선수로 입단했다. 연봉은 1억 5천만원. 그렇게 삼성과 롯데를 오가면서 선수 생활을 했던 그는 2007 시즌 중 최길성, 최만호를 상대로 손인호와 함께 LG 트윈스트레이드되었다.[7][8] 하지만 예전의 기량을 회복하지 못한 채 2008년에는 평균자책점 36.00을 찍은 후 웨이버 공시되어 현역에서 은퇴했다.

3 지도자 시절

은퇴 후 삼성 라이온즈에서 함께했던 임창용의 도움을 받아 일본으로 건너가 2008년 말부터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고, 연수를 마친 후 2009년 말 야쿠르트의 2군 투수코치로 부임해 활동했다. 야쿠르트에서 활동한 후 귀국하여 2011년 8월 10일 친정 팀 삼성 라이온즈스카우트를 맡았다.관련기사

2011 시즌 후 현역 마지막 팀인 LG 트윈스의 2군 투수코치를 맡게 됐으며, 2013 시즌 후 기존 1군 불펜코치를 맡던 강상수차명석의 자리를 승계함에 따라 LG의 1군 불펜코치로 보직 이동했다. 2012년 차명석 투수코치가 당시 2군 투수코치였던 박석진을 두고 "선수들을 잘 만들어서 구리(2군)에서 1군으로 올려 주고 있다" 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평이 나쁘지는 않은 듯.

하지만, 2015 시즌 LG가 부진하면서 노찬엽, 최태원과 같이 2군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반대급부로 2군에서 경헌호가 올라왔다.

4 기타

프로 입단 초기에는 노안의 이미지여서 본인에게 안습이었지만, 세월이 지난 현재까지 미중년의 외모로 유지해 왔다.

삼성에서 몸담았을 적에 하필이면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과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을 잇는 낙동강의 교량 중에 박석진교[9]가 존재한 탓인지, 박석진교의 유래가 본인의 이름으로 명명할줄 알고 삼성 팬들에 적지 않아 웃지 못할 오해가 있었다고. 하지만 박석진교는 본인과 전혀 무관하다. 그런데 한자 표기가 엄연히 틀린데, 전혀 연관이 있을 리가 없지. 하긴 삼성 라이온즈는 대구가 연고지인 만큼 그런 오해가 없을 수 있나?

5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1995삼성 라이온즈2772⅔460-4.71852630
19962357⅔222-4.68712626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1997삼성 / 롯데1542⅓140-7.02641424
1998롯데 자이언츠1830⅔010-6.46411518
199933148⅓1132-3.5812358101
20004094⅓76862.48793465
20014713341014
(5위)
12.98
(1위)
1275381
20021군 기록 없음
200352⅔00003.38702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2004롯데 / 삼성4862⅔44162.30471633
2005삼성 라이온즈70
(4위)
62⅓80115
(2위)
3.47591524
20062622⅓31024.8437711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2007롯데 / LG273111004.3532127
2008LG 트윈스21000036.00800
통산381761453828303.83780227422
  1. 2014년 10월 20일 NC와의 준 플레이오프 때 뜻하지 않게 기상악화로 인하여 경기가 취소되었다는 것을 심판진들로부터 전달받고 선수들에게 제스쳐를 보내고 있다.
  2. 사이드암
  3. 당시 트레이드의 메인은 이승엽, 김한수에게 밀려 백업이 된 이동수, 그리고 부상으로 몰락한 한때 롯데의 에이스였던 박동희였는데, 정작 이동수는 롯데에서도 실패해 쌍방울로 갔고, 박동희는 노쇠화+부상의 여파로 불만지르다가 2002년 쓸쓸히 은퇴했다.
  4. 그리고 이런 네임벨류가 있는 선수들과 묶여서 이적한 박석진은 롯데의 필승조로 1999~2001년에 좋은 활약을 했고, 김종훈은 2007년까지 주전과 백업을 오가며 전천후 외야수로 잘 해주었다.
  5. 재밌게도 볼넷을 내준 김종훈은 박석진이 롯데로 갈 무렵 트레이드 상대가 되어 삼성에 갔다.
  6. 양상문이 롯데 감독으로 복귀하기 전인 이 시기의 롯데 투수진은 말그대로 처참했는데, 주형광은 지바 롯데로 진출을 시도했으나, 2001년 중반에 부상으로 시즌아웃됐고, 2002시즌을 날리고 2003년에 복귀했지만, 2007시즌 까지 불펜투수로 뛰며 가득염과 같이 불을 질렀다, 그리고 손민한도 다승왕 받고서 2002~2003년은 감독놈과의 불화로 폭망하나 싶었다. 그리고 박석진과 같이 필승조였던 기론도 혹사의 여파로 2001시즌중에 방출되어 롯데를 떠났으며, 강상수가 불상수로 전락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그나마 남은 박지철이나 염종석이 선발진을 지켰고, 가득염 ,김영수 같은 불펜 투수들은 방화를 일삼으며 팬들의 눈을 썩게했다. 그 와중에도 2002년 2차 1픽 투수인 고효준을 갖다버려 SK에게 조공한것은 덤이다.
  7. 당시 LG는 박용택,이대형,안치용과 같은 젊은 외야수들이 있어 최만호는 백업정도에 그쳤다. 그리고 최길성도, 같은 2군 본즈인 박병호,정의윤등의 거포 유망주들이 있었던 데다가 본인이 1군만 오면 조급증이라도 있는지 부진했던지라 LG에서는 터지지 않던 유망주였다.
  8. 당시 LG에서 손인호는 이승화나 정수근 등의 외야수들이 많아 자리를 잃었고, 박석진은 임경완,나승현,이왕기,배장호 등의 젊은 사이드암 투수들에게 밀려 크게 기회를 잡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9. 교량 완공 자체는 박석진이 입단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95년 중후반경. 고령군에서 달성산단이나 현풍읍으로 넘어갈 때 요긴하게 쓰이는 다리이긴 하지만 주변에 고속도로 나들목이 없어 존재감이 적다. 낙동강 자전거길이 연결되어 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