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 관련 인물(KBO), 개신교/인물
- 삼성 라이온즈 소속 투수 박정태는 박근홍(야구선수) 참조.
프로야구 30주년 Legend All-Star BEST 10 in 2011. KBO-NAVER | ||||
장효조 OF / 삼성 | 이순철 OF / 해태 | 양준혁 OF / 삼성 | ||
김재박 SS / MBC | 박정태 2B / 롯데 | |||
한대화 3B / 해태 | 선동열 P / 해태 | 장종훈 1B / 빙그레 | ||
김기태 DH / 쌍방울 | 이만수 C / 삼성 |
영광의 선수시절.
비운의 코치시절.
롯데 자이언츠 역대 주장 | ||||
공필성 (1998) | → | 박정태 (1999) | → | 강성우 (2000) |
이름 | 박정태(朴正泰 / Jung-tae Park) |
생년월일 | 1969년 1월 27일 |
출신지 | 부산광역시 남구 |
학력 | 대연초-부산중-동래고-경성대 |
포지션 | 2루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1년 롯데 자이언츠 1차 지명 |
소속팀 | 롯데 자이언츠(1991~2004) |
지도자 경력 | 밴쿠버 커내디언스 타격코치(2005) 롯데 자이언츠 2군 타격코치(2006~2009) 롯데 자이언츠 2군 감독(2010~2011) 롯데 자이언츠 1군 타격코치(2012) |
종교 | 개신교 |
역대 수상 | ||||
1996년, 1998년, 1999년 한국프로야구 2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1999년 한국프로야구 사랑의 골든글러브 수상자 | ||||
1998, 1999년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미스터올스타 |
1 소개
"알긋나? 오늘은 무조건 이기야 된다. 안그라몬 내가 다 지기삔다!"
앞으로 열 번쯤 연속으로 우승한다 하더라도 팬들의 성원에 다 값하지 못할 롯데 자이언츠가 부산 야구 팬들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 있다면, 아마도 박정태가 아닐까. 박정태는 단순히 독특한 타격 자세를 가진 선수가 아니며, 그저 야구를 잘 했던 선수도 아니다. 그는 자이언츠, 아니 부산 야구의 정신이라고 불리는 사나이다.ㅡ 김은식, '야구의 추억' 中
전 롯데 자이언츠의 야구 선수(내야수). 현재는 KBO 선수 육성 위원. 등번호는 14번 - 16번. 통산 1,167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96 / 1141안타 / 85홈런 / 638타점 / 531득점을 기록했다.
영원한 주장으로 기억되는 선수로, 아직도 근성의 이미지로는 박정태 이상인 선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분에 아직도 그를 그리워하는 롯데 자이언츠 팬들이 많다.
대표적인 강병철의 양아들로 동래고등학교와 경성대학교를 졸업한 후 1991년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하여 1990년대 최고의 2루수로 활약했다.
2 선수 경력
파일:/image/001/2005/06/15/072005061507100 1.jpg
박정태/선수 경력 항목으로.
3 지도자 경력
은퇴 후 2005년 3월부터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산하 싱글 A팀인 밴쿠버 캐내디언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다.#
2005년 1년 간은 롯데 구단이 연수 비용을 부담했고, 남은 기간은 자비로 머물면서 공부했다. 그 곳에서 자율 야구를 습득했다고. 해당기사
2006 시즌 종료 후 롯데에 복귀해 정영기 전 롯데 자이언츠 2군 감독 밑에서 타격코치로 지내다 2009 시즌 종료 후 양상문 2군 감독이 1군 투수코치로 선임되면서 롯데 자이언츠의 2군 감독으로 정식 취임했다.해당기사
2011년 시즌 종료 후 김무관 타격코치가 LG 트윈스로 이적함에 따라 공석인 롯데 자이언츠 1군 타격코치에 정식 임명되었다.해당기사
2012년 시즌 초반에 롯데 자이언츠경기가 우천 취소되었을때 나온 롯데 자이언츠의 혼 박정태라는 다큐가 나온 적이 있다. 맨 마지막에 나오는 장면은 동남 방언이 섞여 있어 매우 호응받는 중.bgm 조심 카더라에 따르면 박정태 코치가 다큐를 보고 우셨다고
하지만 2012 시즌 들어 양승호 감독 다음으로 무능하다고 까이는 코치가 되었다. 4월에는 성적이 좋아서 티가 나지 않았지만, 5월 들어 롯데 타선이 심하게 부진해지자 까이기 시작했다. 고질적인 약점으로 지적되던 (특히 바깥쪽) 변화구 공략의 어려움을 전혀 극복해 주지 못하고 있고, 컨택 위주로 짧게 밀어치는 타법을 주문하기는 했는데 장타는 고사하고 컨택조차 안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는 선구안의 실종. 타선 전체가 다 그렇지만, 특히 필요할 때 해 줘야 하는 클린업 트리오(전준우, 홍성흔, 강민호)의 부진이 너무 두드러져서 팬들의 걱정이 늘어만 가고 있다. 1군 타격코치가 된 이후로 그의 능력을 혹독하게 시험받는 중. 심지어는 아무리 독실한 개신교 신자라고는 하지만 덕아웃에서 기도만 하고 있다는 이유[1]로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서 주님태라는 별명으로 까이고 있다. 선수시절에는 강렬한 카리스마와 근성의 이미지로 사랑받은 선수였으나 타격코치로는 무능함으로 인해 명성이 희석된 인물.(공필성의 예도 있다.) 9월 들어서는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서 퇴출 릴레이 글까지 나오고 있다.
9월 23일, 용덕한의 수훈 인터뷰에서 양준혁 해설이 코치의 특별한 지시가 없었냐는 말에 용덕한이 특별한 지시는 없었다고 답한데다 선수들끼리 미팅을 가져 초구는 골라내고 치자는 의견을 서로 주고받았다라는 말을 하고 양준혁 해설이 재차 물어보자 "코치님께서는 적극적으로 치라고 하셨습니다."라고 하여 선수들에게마저 신뢰를 잃어 가는 모습이 은연중에 비추어졌다.
아시아시리즈 종료 후 11월 10일, 결국 구단에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박정태가 사의를 표시한 직후 김시진 감독이 마무리 훈련을 지도중이던 넥센 히어로즈 박흥식 타격코치를 바로 빼온 것 때문에 논란이 되기도 했다.[2] 타 팀 팬들은 박흥식 타격코치를 넥센에서 빼낸 것과 레전드를 그냥 사퇴하게 뒀다는 것에 대해 반발하기도 했으나 롯데 팬들은 박흥식 타격코치가 타선의 답답함을 해소해줄 것이라 생각하여 대체적으로 반기는 분위기이다. 일단 한 팀의 중심 선수였던 코치이므로 언젠가 복귀할 가능성도 없진 않을 것으로 보였지만....[3]
타이중 참사의 숨은 주역으로 꼽히며 복귀는 개뿔이라는게 대체적인 시각.왜 롯데 팬들이 퇴출하라고 했는지 들었어야 했는데
롯데 코치에서 물러난 이후 KBO의 육성 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사퇴 1년 뒤의 근황. 롯데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드러냈다.
2014 시즌을 마치고 사임한 김시진 감독의 후임으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롯데는 이종운을 후임으로 선임했다. 박흥식 코치 부임 2년차에 독기 빼는 데 1년 걸린롯데 타선이 좋아지면서 그의 타코 시절은 흑역사에 가깝게 되었지만,하지만 투수진이 폭발 투수코치로 그보다 몇 배 심한 흑역사를 썼던 양상문이 LG 감독으로롯데가 승리 대줘서 성공[4]하는 것을 씁쓸하게 지켜본 롯데 팬들 사이에서는 감독 박정태를 한 번 바라는 목소리도 분명히 꽤 늘어났다. 그만큼 기술적인 면과 별도로 그의 인격과 리더십은 아직 확실하게 롯데 팬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고 보아야 할 듯. 특히 2014년 롯데의 DTD는 객관적인 전력의 문제보다 프런트와 코치진의 갈등으로 선수단 분위기가 망가진 탓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 박사 과정에 전념하고 있는 그는 음지에서 주로 활동 중이다. 리틀야구단과 다문화 어린이 야구단, 그리고 아동보육시설 야구 지도, 새터민 출신 청소년들에 대한 야구 지도, 사회인 야구 지도 등을 하고 있다. 따라서 몇 년 동안 박정태를 프로에서 보기 어려울 듯하다.
2016년 9월 오랜만에 한 방송에 출연해 현재 진행중인 야구 봉사활동의 현황과 더불어 선수시절을 전반적으로 회고했다. 그리고 이 방송에서 향후 계획의 1순위는 '프로 무대로 돌아가는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롯데의 감독이 교체될 때 마다 항상 새 감독 후보군에서 박정태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만큼, 본인 또한 당장은 아녀도 언젠가 한 번은 롯데 감독을 맡아보고 싶은 생각은 품고 있는 듯 하다.
4 타격폼
파일:Attachment/박정태/6b.gif
근성과 함께 박정태 하면 생각나는 것은 바로 그의 독특한 타격폼. 보기에도 어지럽게 배트를 이리저리 돌리고, 왼손은 타격 직전까지 배트에 데었다 뗐다 한다. 박정태 스스로는 배트스피드를 늘리기 위해 고안한 동작으로 철저히 순서를 지키는 동작이며, 하다못해 매일 거울을 보며 한시간씩 연습하기까지 했다고 한다.[5] 은퇴한 지금 이벤트 매치같은 경기에서 본인조차도 재연이 불가능할정도로 난이도가 높은 타격폼인건 확실하다(..)
박정태가 인기를 끌 당시에는 부산, 경남 지역의 초등학생들이 전부 배트를 들고 박정태 흉내를 내는 바람에 초등학교 야구 팀 감독들이 제발 폼 그렇게 하지 말라고 박정태에게 부탁하기도 했다고... 이것 때문에 박정태는 언론을 통하여 어린이들에게 자기 폼을 따라하는건 좋은게 아니라고 했지만, 애들이 말을 들을리가 있나. 사실 본인도 왜 그렇게 극단적인 자세를 취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고 그저 자신에게 맞는 폼을 계속 연구하면서 3년 정도 시행하다 보니까 어느 사이에 그런 형태가 되었다고 한다. 박정태 본인은 자연스러운 무게이동을 통해서 자신의 작은 체구를 극복하게 해준 폼이 아니였나 추측한다.
2009년, 정수근이 음주폭행사건 이후 복귀하고 몇경기 지나 이 폼과 유사한 폼으로(정수근은 좌타라 우타인 박정태와 반대의 폼으로) 결승타를 쳤는데, 언론서 타법이 이사람처럼 변했다고(본인은 부인했다) 기사에서 띄워진 적이 있으나, (위에 언급한 팬서비스와는 당.연.히 다르다. 정규시즌 경기였으니) 그후 OME!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혹자는 이에 대해 '박정태 말고 다른 사람이 저런 타법을 쓰면 저주가 걸린다'라는 것을 제시했다. [6]
한일 슈퍼게임 당시 출전했던 박정태의 타격 폼을 보고 당시 일본 올스타 팀 감독이었던 호시노 센이치가 깜짝 놀랬다는 일화도 있다. 이날 경기 성적은 3타수 2안타.
아시아 게임당시에도 중국인 선수가 자신의 타격폼을 보고 비웃자 만루홈런을 날려주셨다. #
5 기타
- 현역시절 유난히 초구를 안 치기로 유명한 선수였다.
초구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윤덕규나 김주찬과는 정반대하일성이 롯데 경기 중계하다가 정말 징그러울 정도로 초구 안친다고 혀를 내둘렀을 정도. 본인은 이에 대해 그만큼 공을 오래 보겠다는 의지였고 실제로 삼진을 잘 안당하고 배트스피드도 자신이 있었던지라 언제든지 좋은 타구를 날릴 수 있었기 때문에 초구는 치지 않고 지켜보는 버릇이 생겼다고 한다.
- 1993년에 당한 발목 부상이 선수 생활 동안 계속해서 영향을 미쳤다. 예전과 같은 주루 플레이는 고사하고 피가 잘 통하지 않아 수시로 통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선수시절 왼쪽 발목에 늘 보호대를 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발목 부상을 당했기 때문에 차고 있는 것이다. 부상 당시 수 차례의 수술로도 발목 부상이 회복되지 않고 골수염으로까지 전이되어 재기는 커녕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선수 생활을 더 이상 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펜글씨학원, 컴퓨터학원 등을 전전하며 강사 자격증을 따려고까지 했었다고.
- 중장거리형 타자라 통산 홈런은 많지 않지만, 의외로 만루홈런을 많이 쳤다. 역대 통산 4번의 만루홈런을 쳤는데, 1998년 한 차례, 1999년에 2차례, 2002년에 한 차례 각각 기록했다. 99년 9월 7일, 02년 4월 9일. 그리고 한국프로야구 300번째 만루홈런을 박정태가 기록했다.
- 홈런타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통산 OPS가 8할이 넘어간다. 혹자는 이 부분이야말로 박정태의 진짜 위엄을 보여준다고 평하기도.
- 1999년 연속경기안타 기록이 31경기로 중단되었는데 32경기째인 마산 두산전에서 9회말 2아웃 주자없이 마지막 타석에 박정태가 들어서 좌전안타성 타구를 날렸으나 당시 두산 3루수 홍원기의 다이빙캐치 호수비 덕택에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에도 불구하고 간발의 차로 아웃되며 기록 갱신이 중단되었다. 일본프로야구 기록이 33경기 연속 안타였고 당일 경기가 이미 0-6으로 롯데의 패배가 99.9% 확정된 시점이었던지라 홍원기가 굳이 그렇게까지 억지로 잡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매우 아쉬웠을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 후 박정태가 밝힌 기록 중단 소감이 홍원기 선수한테 너무 고맙다 였다. 홍원기가 최선을 다 해줬기 때문에 자신의 연속경기안타 기록 또한 그만큼 가치가 있는 것라는 소감으로 이 당시 박정태의 대인배적 면모가 극찬을 받았다.
- 본인이 꼽은 가장 약했던 투수로는 조웅천, 자신이 가장 잘쳤던 투수로 절친 조규제를 꼽았다. 조규제를 상대로 너무 잘치다보니 나중에는 조규제가 아예 포기하고 박정태만 나오면 그냥 가운데로 살살 던져주고 박정태도 알아서 단타만 치고 나갔을 정도라고.#
- 국대 기록은 롯데 입단 전에 참가한 1990년 아시안 게임과 1999년 제20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으며[7] 2002년 아시안게임 예선에 참가했다.
- 별명으론 '탱크', '악바리' 등이 있다. 그의 악바리는 유명했기 때문에 롯데의 코치-2군 감독 트리를 타면서 여타 훈련을 열심히 하는 선수가 있으면 박정태 조차 혀를 내두를 만큼 악착같이 훈련한다 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그러다 보니까 1년에도 몇번씩 혀를 내두르는 일이(...). ex: 박정준, 이인구 등등;;;
- 독실한 크리스천으로[9] 발목 부상으로 재활하던 당시 6개월 동안 입원한 병원 내에 있는 교회에 꾸준히 다녔는데 이 당시에 깊은 신앙심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성격도 많이 온순해지고 후배들에게 따뜻하게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고. 그래서 코치가 된 이후에는 선수들을 다그치기보다 칭찬을 많이 하는 쪽으로 지도방향을 잡았다고 한다.
- 현역시절부터 가진 것에 비해 팬들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는 선수라고 자신을 낮추며, 선수는 무엇보다 팬들에게 잘 해야 한다고 많이 강조하던 타입. 그래서 선수생활 후반부에는 의도적으로 팬서비스에도 많이 신경을 썼고 후배들에게도 팬서비스에 대해 많이 조언을 했다고 한다. 심지어 은퇴 후에는 현역시절 입었던 유니폼들조차 모두 팬들에게 줘버려 집에 남아있는게 한 벌도 없다고(...)[10]
- 잘 알려져 있듯이 추신수의 외삼촌이기도 하다. 추신수의 어머니는 박정태의 누나이다. 추신수가 쓴 책을 보면 박정태는 조카 추신수가 야구하는 걸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고 한다. 추신수의 아버지가 "우리 신수 잘 하나?"라고 물어 보자 "야구선수 너무 힘들다면서 그걸로 성공하기도 장담못하고 솔직히 다른 걸 하게 하세요...재능이야 있습니다만. 야구나 스포츠란게 재능이 있어도 성공할지 장담 못 합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물론 추신수 본인이 야구가 너무 좋다고 하자 그럼 어쩔 수 없지...라며 야구에 대한 걸 가르쳐 줬다고 한다. 이런 인연으로 2013년 7월 28일 코리안 데이 매치인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신시내티 레즈의 3차전 경기 류현진과 추신수 맞대결 경기에서 김인식과 함께 특별 해설로 초대됐다.
- 프로야구 30주년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 박정태뿐만 아니라 각 포지션별 최다 수상자가 모여 2011년 7월 23일 잠실 야구장에서 올스타전 식전행사로 반지 수여식을 했다.
6 역대 기록
- 한국야구위원회 기록실에 표기되는 리그 TOP 10위 이내 기록은 순위가 등재.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진한 표시는 리그 5위내 입상성적.
역대기록 | |||||||||||||||
년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
1991 | 롯데 자이언츠 | 122 | 463 | .285 | 132 (4위) | 29 (1위) | 6 | 14 | 74 (6위) | 69 (9위) | 3 | 48 | .464 (10위) | .346 | |
1992 | 124 | 445 | .335 (2위) | 149 (2위) | 43 (1위) | 3 | 14 | 79 (5위) | 91 (4위) | 7 | 74 | .539 (5위) | .424 (6위) | ||
1993 | 31 | 103 | .359 | 37 | 8 | 1 | 1 | 18 | 10 | 1 | 19 | .485 | .459 | ||
1994 | 1군 기록 없음 - 부상으로 시즌 아웃 | ||||||||||||||
1995 | 50 | 178 | .337 | 60 | 16 | 1 | 2 | 34 | 21 | 2 | 22 | .472 | .408 | ||
1996 | 94 | 366 | .309 (6위) | 113 | 25 (10위) | 1 | 5 | 61 | 49 | 2 | 35 | .423 | .367 | ||
1997 | 102 | 341 | .229 | 78 | 10 | 2 | 3 | 40 | 33 | 2 | 33 | .296 | .293 | ||
1998 | 113 | 406 | .318 (3위) | 129 | 24 | 2 | 13 | 79 (10위) | 56 | 1 | 56 | .483 | .394 (6위) | ||
1999 | 127 | 456 | .329 (7위) | 150 | 17 | 3 | 11 | 83 | 83 | 0 | 69 | .452 | .409 (6위) | ||
2000 | 107 | 386 | .285 | 110 | 15 | 2 | 6 | 53 | 51 | 3 | 48 | .381 | .362 | ||
2001 | 118 | 356 | .247 | 88 | 25 | 1 | 7 | 59 | 35 | 1 | 48 | .382 | .331 | ||
2002 | 103 | 267 | .262 | 70 | 14 | 1 | 7 | 38 | 26 | 0 | 39 | .401 | .356 | ||
2003 | 50 | 72 | .278 | 20 | 2 | 0 | 2 | 17 | 5 | 0 | 10 | .389 | .349 | ||
2004 | 26 | 18 | .278 | 5 | 0 | 0 | 0 | 3 | 2 | 0 | 9 | .278 | .519 | ||
KBO 통산 (14시즌) | 1167 | 3857 | .296 | 1141 | 228 | 23 | 85 | 638 | 531 | 22 | 510 | .433 | .373 |
역대수상 | |
년도 | 수상내용 |
1991년 | 골든글러브 2루부문 수상 |
1992년 | 골든글러브 2루부문 수상 |
1996년 | 골든글러브 2루부문 수상 |
1998년 | 골든글러브 2루부문 수상, 미스터올스타 |
1999년 | 골든글러브 2루부문 수상, 미스터올스타 |
- ↑ 타격코치라면 슬럼프를 해결하기 위한 조언이나 해결책을 제시해야하는데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는 식의 말을 하는 바람에 더더욱 까이는중(...)
- ↑ 일명 '런흥식 사건'으로 특히 넥센 팬들이 격렬하게 반발하였다.
- ↑ 실제로 과거에 잘려나갔던 김응국이나 윤학길, 이종운 등의 코치들도 다시 복귀한 적이 있었다.
- ↑ 사실 롯데 감독 시절에도 8888과 77 사이에서 5위를 찍고 리빌딩의 초석을 다졌다는 점에서 최소 평타는 쳤다고 여겨진다.
문제는 그 뒤 투수코치 시절이지만 - ↑ 출처 : 이성득 해설위원의 자이언츠네이션
- ↑ 정수근은 두산시절이던 2001년에 잠실구장서 벌어진 올스타전에서도 박정태 타격폼을 흉내낸적이 있었다. 7월 17일에 열린 올스타전에서 6회초 1사후 타석에 들어선 정수근이 초구를 기다리면서 박정태 특유의 타격폼을 흉내낸것. 그때 덕아웃에 있던 박정태도 박장대소했던 게 TV에 잡히기도 했다. 여담으로 이후 정수근은 6구째에 갑자기 당시 LG선수였던 양준혁의 만세 타법을 흉내냈다.당시 영상
그놈의 술만 아니었으면 - ↑ 중국과의 개막전에서 만루홈런을 쳤다. #
- ↑ 중간 앞부분부터 나온다. 잘 찾아보시길
- ↑ 불교의 영향력이 강한 부산광역시에 위치하고 있는 만큼 역대 롯데출신 선수들 중 개신교 신자는 최동원, 박정태, 조성환, 최대성이 전부. 이마저도 최대성이 kt wiz로 트레이드되면서 롯데 자이언츠 현역 선수 중 개신교 신자는 없다.(...)
- ↑ 은퇴식을 치를 때 받은 동료들 사인이 들어간 유니폼 액자만 소장중. 코치와 2군감독 시절 유니폼도 모두 팬들에게 증정하고 있다고 한다...
- ↑ 역시 싸움에서는 안밀린다 1년 선배 강병규마저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