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리카르도 안토니오 라 볼페 과르초니(Ricardo Antonio La Volpe Guarchoni) |
생년월일 | 1952년 2월 6일 |
국적 | 아르헨티나 |
출신지 | 부에노스아이레스 |
포지션 | 골키퍼 |
신체 조건 | 188cm |
소속 클럽 | CA 반필드 (1971~1975) CA 산 로렌소 (1975~1979) 아틀란테 FC (1979~1982) CF 오아츠테펙 (1982~1983) |
지도자 경력 | CF 오아츠테펙 (1983~1985) 아틀란테 FC (1988~1989) CD 과달라하라 (1989~1990) 케레타로 FC (1990~1991) 아틀란테 FC (1991~1996) 클럽 아메리카 (1996) 클럽 아틀라스 (1997~2001) 클럽 톨루카 (2001~2002)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 (2002~2006) 보카 주니어스 (2006) 벨레스 사르스필드 (2007) CF 몬테레이 (2008) 클럽 아틀라스 (2009) 코스타리카 축구 국가대표팀(2010~2011) CA 반필드 (2011) 아틀란테 FC (2012~2013) CD 과달라하라 (2014) |
국가 대표 경력 | 8경기 |
목차
개요
아르헨티나의 축구인. 1978년 피파 월드컵에서는 비록 후보였으나 어쨌건 우승멤버였다.
은퇴 이후 주로 멕시코 클럽에서 감독으로 커리어를 쌓았다. 2002년 외국인으로서 멕시코 국대 감독에 선출되어 2006 독일 월드컵까지 멕시코 감독직을 수행했다. 이 때 공격적이면서도 유연한 포지션 변화를 바탕으로 한 축구를 선보이며 멕시코를 피파 랭킹 4위까지 올렸고, 2003년 콜롬비아와 브라질이 초청된 북중미 골드컵에서 결승전에서 브라질을 맞아 우승하기도 했다. 단 이 때 브라질은 U-23멤버들로 거의 다 국내파들이었다. 둘 있는 해외파가 당시 바르셀로나에서 뛰던 티아구 모타와 도르트문트 우승멤버인 에벨톤이었고, 나머지 국내파들이 루이장, 마이콘, 카카, 호빙요, 지에구, 알렉스, 에우렐류 고메스, 아드리아누 코헤이아, 니우마르[1], 나드손[2] 등이었다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멕시코 국대 감독을 역임하면서 뛰어난 전술로 많은 멕시코 축구인에게 깊은 영향을 남겼다고 한다. 스페인 언어권에서는 현재 축구계에서 일반적인 조류 중 하나인,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군 센터백 둘 사이로 깊게 내려서면서 공을 받아 스리백 형태로 공을 전개하는 전술을 라 볼페가 발명해냈다고 한다.[3] 또한, 이 시기 실력이 퇴보하는데 약물 복용 소송까지 휘말리면서 커리어가 막장에 치달아 흘러흘러 멕시코까지 표류해 온 펩 과르디올라와 교분이 있었는데 과르디올라가 멕시코 국대를 자주 관전하면서 라 볼페의 전술에 큰 감명을 받아 바르셀로나에 적용했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