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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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메시호날두를 제치고 발롱도르와 피파 올해의 선수상을 모두 수상한 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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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먹튀가 되어버린 레알 마드리드 시절. 그 와중에 미남이다. 부러운 녀석. 그래도 이 시즌에는 평타 쳤다.

232?

올랜도 시티 SC No.10
카카 (Kaká)
본명히카르두 이젝송 두스산투스 레이치[1]
(Ricardo Izecson Dos Santos Leite)
생년월일1982년 4월 22일
국적브라질
출생지브라질리아
종교개신교
신체 조건185cm, 82kg, A형
포지션공격형 미드필더, 세컨드 스트라이커
프로 클럽상파울루 FC (1990-2003)
AC 밀란 (2003-2009)
레알 마드리드 CF (2009-2013)
AC 밀란 (2013-2014)
올랜도 시티 SC (2014-)
상파울루 FC (2014) (임대)
국가 대표91경기 29골
2006 FIFPro World XI
FW
호나우지뉴
FW
티에리 앙리
FW
사무엘 에투
MF
카카
MF
지네딘 지단
MF
안드레아 피를로
DF
잔루카 참브로타
DF
존 테리
DF
파비오 칸나바로
DF
릴리앙 튀랑
GK
잔루이지 부폰
2007 FIFPro World XI
FW
호나우지뉴
FW
디디에 드록바
FW
리오넬 메시
MF
스티븐 제라드
MF
카카
MF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DF
카를레스 푸욜
DF
존 테리
DF
파비오 칸나바로
DF
알레산드로 네스타
GK
잔루이지 부폰
2008 FIFPro World XI
FW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FW
페르난도 토레스
FW
리오넬 메시
MF
카카
MF
스티븐 제라드
MF
사비 에르난데스
DF
카를레스 푸욜
DF
존 테리
DF
리오 퍼디난드
DF
세르히오 라모스
GK
이케르 카시야스
2007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카카
2위
리오넬 메시
3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2007 Ballond'or
수상
카카
2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3위
리오넬 메시
2007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
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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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리아 군단AC 밀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마에스트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리오넬 메시를 제치고 정점에 도달했었던 유일무이한 선수.[2][3]
호나우두 - 히바우두 - 호나우지뉴로 이어지는 브라질리언 발롱도르의 계보를 마지막으로 이어간 인물.[4]

1 소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넬 메시와 함께 세계 최고였던 축구 선수. 그리고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를 제외한 가장 최근에 발롱도르를 수상한 선수이며(2007년) 동시에 호날두와 메시를 제치고 1위에 랭크된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

대다수의 브라질계 축구선수들과는 달리 제법 유복한 가정[5]에서 태어나, 최초에는 축구가 아닌 테니스 선수를 꿈꿨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축구는 미래의 꿈이라기보단 취미생활에 가까웠다. 카카는 상파울루 정식 유스팀이 아닌 서포터즈 유스팀에서 볼을 차기 시작했고, 교사였던 어머니의 교육열 때문에 축구보다 공부에 더 많은 힘을 쏟아야 했다. 또한 어린 시절의 카카는 지나치게 깡마른 체구 탓에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고 한다.

2000년, 18세 때 수영장에서 머리부터 떨어지는 바람에 척추를 다쳐 축구생명을 접을 뻔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 기적적으로인체개조수술이 성공하여 재활에 성공한 카카는 향후 인생의 목표 10단계를 세운다.

1. 다시 축구선수가 된다.
2. 상 파울로 FC에 들어간다.
3. 상 파울로 1군 25 엔트리에 들어간다.
4. 거기서 다시 17명 엔트리에 들어간다.
5. 베스트일레븐이 된다.
6. 브라질 U-20에 선발된다.
7. 브라질 A팀에 선발된다.
8. A팀 주전으로 뛴다.
9. 월드컵 우승한다.[6]
10. 유럽 명문구단에서 뛴다.

...크고 아름다운 목표도 무섭지만, 저 대부분을 23살에 전부 달성했다는 게 더 무섭다.

2 클럽 경력

2.1 상파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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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그렇게 체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그였으나 10대 중반 성장기로 접어들며 카카는 크고 강한 몸을 갖게 됐고, 운동능력 면에서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 화려하진 않지만 간결한 테크닉으로 볼을 처리하는 플레이에 반한 상파울루 유스팀 코치는 카카가 15세 때 정식 계약을 제안했다.

이후 카카는 브라질 청소년 대표팀에도 발탁되어 2001년 세계청소년대회에 참가했다. 아드리아누와 함께 공격을 이끌었지만, 브라질가나에 발목을 잡혀 8강에 머물렀다. 이 대회의 주인공은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끈 사비올라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카카는 사비올라나 아이마르에 비해 크게 주목받는 유망주가 아니었다. 2002년 월드컵 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렸지만, 스콜라리 감독의 결정에 의문을 품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그러던 그가 AC 밀란으로 이적하게 되었을때 안첼로티 감독은 루이 코스타보다 포워드적인 성향을 지닌 카카가 피를로와 이상적인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낼 수 있다고 믿었고, 그 판단은 매우 정확했다.오오 안첼로티.

2.2 AC 밀란 : 카카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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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 최고의 전성기
밀란의 영원한 캄피오네

브라질리그 상 파울로에서 기반을 닦은 뒤 2003년에 세리에A의 AC 밀란으로 이적, 이적하자마자 리그 우승을 진두지휘하며 확고한 주전으로 자리매김한다. 이적 시즌에 시즌 MVP로 선정된다.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인데 2006~7년 셰브첸코가 나가고 인자기,질라르디노 등 밀란의 포워드진이 부진하자 원포지션에서 좀 더 위로 올라가 미드필더라기보단 쉐도우 스트라이커에 가까운 위치에 뛰기도 했다.

2003-04 시즌, 데뷔 첫 해 리그 10골을 터뜨린 카카의 활약은 대단했다. 리그와 챔스를 가리지 않고 맹활약을 펼친 카카는 2004-05 시즌에도 밀란을 챔스 준우승으로 이끌었고,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급부상했다. 비록 2006년 월드컵에선 호나우지뉴와 함께 실망스런 활약을 선보여 비판을 피할 수 없었지만, 밀란의 2006-07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 주역으로 활약하며 2007년 피파 올해의 선수상과 발롱도르를 싹쓸이했다.

뛰어난 개인기에 패스, 슛팅, 헤딩, 결정력도 갖추고 뛰어난 피지컬까지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는 만능형 선수였다. 당시 AC 밀란의 다이아몬드 4-3-1-2 시스템의 꼭지점에 완벽하게 부합하며 전방 투톱-그 유명한 에르난 크레스포안드리 셰브첸코에게 킬패스 쫙쫙 뿌려주다가 심심하면 자기도 뛰쳐올라가던 모습은 충격과 공포. 덕분에 카카가 뛸 자리에 뛰었던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루이 코스타가 밀려났을 정도다.특히 카카의 트레이드 마크인 치달은 그야말로 상대방 입장에선 공포스러울 정도였는데, 마치 미친 말을 연상케 하는 엄청난 속도로 중원을 치고 달리는 모습은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그 민폐 카카가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다.킬패스는 물론 본인의 주력을 이용한 수비라인을 붕괴시키는 활약으로 카카의 전성기와 함께 AC 밀란은 제 2의 밀란 제너레이션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굉장한 위세를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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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UEFA 챔피언스 리그의 득점왕을 차지하며 AC 밀란의 우승을 이끌었고, 그해 말 발롱도르의 수상자가 되었다. 결국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과 함께 세계 최고의 선수로 등극했다.

06/07시즌 챔피언스리그 올드 트래포트에서 맨유를 상대로 보여준 퍼포먼스는 정말 최고였다. 밀란의 두 골을 모두 책임졌는데, 첫 번째 골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번개같은 치달로 순식간에 수비벽을 허물며 골을 넣었고, 두번째 골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는데, 세 명의 맨유 수비수가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상태에서 발과 머리로 깔끔하게 돌파해서 득점에 성공했다. 거의 수비수들을 가지고 놀다시피 한 모습에 올드 트래포드가 얼어붙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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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2번째 골 장면. 터치 3번으로 당대 EPL 최강 백포라인 중 3명을 허수아비로 만들어버렸다.[7] 이 당시 맨유의 경기는 박지성의 존재로 한국에서도 많은 인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맨유를 응원하던 대부분의 한국 팬들을 그야말로 어처구니 없게 만드는 경악스러운 골이었다.

간결하고 날카로운 플레이 스타일과 선수 본인의 좋은 이미지 등으로 안티가 거의 없는 선수인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는 악연이 있다. 2007년 밀란과 맨유가 챔스 4강에서 만났을 때 카카는 1,2차전 모두 맨유를 탈탈 터는데 앞장 섰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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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시로에서 벌어진 2차전 중 맨유의 전설인 라이언 긱스의 멱살을 카카가 잡는 사건이 벌어져 "발린 것도 억울한데 우리 긱옹 멱살까지 잡냐!!!"라며 맨유팬들이 분노했으나 2011년 갑작스런 긱스의 막장행보를 거친 이후 긱스를 까는 타팀팬에게는 정의의 사자라고 찬양받았다(...). 불륜남을 응징하는 정의의 혼전순결이었지만... 한국시간으로 2014년 11월 4일에 이혼을 했다가 2015년 1월 5일, 즉 2달만에 재결합했다?!

결승전에서도 카카의 활약은 다르지 않았다. 끊임없이 환상적인 개인기와 드리블로 리버풀 미드필더와 수비진을 붕괴시켰다. 선제골은 박스 앞에서 카카가 얻어낸 프리킥에서 나왔으며 결승골 역시 카카의 어시스트에서 나왔다. 특히 결승골은 인자기의 귀신같은 오프사이드 붕괴도 있었지만 그 전까지 무지막지한 카카의 돌파를 의식한 수비진들이 볼을 잡은 카카에게 시선이 쏠려 인자기를 놓친 것도 컸다. 결과적으로 MOM은 두 골을 터뜨린 인자기에게 돌아갔지만 카카 역시 그에 못지 않은 활약을 보여주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그 결과 UEFA 선정 06-07 챔피언스리그 최고의 공격수, UEFA 선정 올해의 선수, IFFHS 선정 올해 세계 최고의 플레이메이커에 선정되면서 세계 최고의 선수임을 증명했다.

2007년부터 이어진 소위 발롱도르 트리오. - 카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넬 메시가 빚어내던 현대축구의 킹왕짱 가리기 3파전에서 다른 둘을 처참하게 쳐바른 전적이 있다. 물론 레알 이적 후에는 본인도 주전출장도 못하는 몸이 되어버렸고 전성기의 나이가 된 저 둘이 그 실력을 만개하며 지금은 비교조차 안되지만...

화려했던 시절 얘기인데, 호날두와의 맞대결에서는 호날두를 압도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04-05시즌에는 밀란 스쿼드가 워낙 압도적이었지만, 06-07 시즌에는[9] 상황이 역전되어 밀란 스쿼드는 노인정이라 조롱받았고 맨유의 위용이 쩌렁했다. 그런데 이 시기에 맨유는 카카의 원맨쇼에 완전히 발렸다.[10] 그 날 당시의 하이라이트 [11] 2008년에 포르투갈과 브라질의 친선 경기에서도 비록 브라질의 홈이었지만 2도움을 기록하며 포르투갈을 6:2로 발랐다. 이날 호날두의 거의 울 듯이 짜증내는 표정과 카카는 여유롭게 웃는 표정이 잘 대비되었다.

호날두와 다르게 메시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마주친 적은 없다. 하지만 두 선수의 본적이 축구에 죽고 못사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라서 국대 경기에서는 뻔질나게 만났다. 06 월드컵 직후에 런던에서 열린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카카는 그 유명한 '메시의 굴욕'을 선사하며 70m를 광속 질주하며 아르헨티나 수비를 초토화시키는 골을 득점하며 팀의 3:0 대승을 이끌었다. 이후에도 2010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양국과 양선수가 맞붙었었는데 아르헨티나의 홈임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이 3:1로 완승했다. 이때 카카는 2:1이라는 살얼음판 같은 우세 상황에서 아르헨티나의 숨통을 끊는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아르헨티나 홈팬들을 벙찌게 만들었다.

이렇게 메시나 호날두과의 맞대결에서는 카카가 이겼던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러나 호날두나 메시는 맞대결 상황에서 이미 세계 축구계의 거물이었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많이 어린 20대 초반이었다. 호날두의 경우 06/07시즌 당시 만 21세, 메시의 경우에는 06월드컵 직후에는 만 19살 배기의 유망주였고 2010 월드컵 당시는 만 22세로 두사람 모두다 상당히 어린 나이였다. 그리고 호날두나 메시가 당시의 카카 나이대가 되자 카카는 귀신같이 필드에서 퇴장...

밀란에서의 마지막 해 09년, 맨시티에서 카카에게 1억 파운드[12], 주급 한화 10억의 그야말로 역대 최고의 초고액을 제시해 온 바 있다.

당시 AC 밀란은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고 카카는 팀의 재정난 해결을 위해 이적에 동의했으나 밀란의 시민들이 카카의 집앞까지 찾아와 밀란을 떠나지 말아달라고 시위에 가까운(…) 요청을 하며 밀란의 베를루니코스 구단주의 정치적 입지마저 위협을 받는 상황까지 이르러 결국 이적을 하지 않았으나...

결국엔 2기 갈락티코를 천명한 페레즈의 레알 재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함께 레알 마드리드로 6천만 파운드[13]의 이적료로 이적하기에 이른다.

어쨌든 이제 호날두는 팀 동료로, 메시는 라이벌 팀 소속이니 앞으로 상황이 더 기대된다.

호날두-카카라는 두 세계 최고 스타들의 영입에 많은 레알 팬들은 이제 마지막 챔스 우승 이후 9년여간 들지 못했던 빅이어, 챔스 10회 우승인 라 데시마를 이뤄줄 구세주로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2.3 레알 마드리드 : 먹튀 전설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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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매니아 바이오그래피가 모든 것을 말한다. 또한,

카카가 나가자마자 엄청난 주급을 보전하게 된 레알이 무시무시하게 변모했음을 보면 카카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어떤 존재였는지는 불 보듯 뻔하다.

카카의 레알에서 첫 시즌인 09/10 시즌은 전반기는 분명 나쁘지 않았다. 특히 지금은 전설로 회자되는 FC 바르셀로나와의 엘 클라시코 1차전#은 사실상 카카 밖에 안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경기였는데 이날 카카는 중원과 2선을 오가며 넓은 활동량을 선보이면서 여러번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어 냈지만 결과는 아쉽게도 즐라탄의 뜬금골로 바르샤가 1-0의 승리를 가져가며 자신의 첫 엘클을 패배로 장식하게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카카는 이적하자마자 엘클에서 바르셀로나를 매순간 위협하며 자신이 만들어준 결정적인 찬스를 날려버린 호날두보다 더 대단할 활약을 해줄 것이라 믿었던 사람이 많았다.

이때 리그 전반기까지만 하더라도 카카는 적응기따위는 쌈싸먹고 레알의 전술에 잘 녹아드는 것처럼 보였으나 리그 중반기에 접어드려는 시점 부상을 통해 남은 경기들을 거하게 말아드시게 된다. 무엇보다 기대했던 챔스에서의 활약에서도 올림피크 리옹에게 졸전 끝에 16강에서 1무 1패로 탈락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첫시즌 활약에서는 낙제점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부상으로 시즌 절반 가량을 날려먹고 부상 복귀 이후 후반기에도 썩 좋은 활약을 보이지 못하면서 결국 09/10 시즌 레알은 무관으로 해당 시즌을 마감했지만 아무래도 이적 첫시즌이고 운나쁘게 부상을 당한 점을 감안하여 아직까지는 팬들의 본격적인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카카는 이런 팬들의 기대와 새로 부임한 무리뉴 감독의 신의를 저버리는 최악의 결정을 하게 되니 그것이 2010 남아공 월드컵 출전이다.

아직 무릎 부상이 완쾌되지 않았던 2010년 프리시즌, 그는 자신의 부상 사실을 레알 보드진 및 의료진 및 코치진에게 감추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무리하게 출전을 감행했고 그 결과 월드컵 종료 후 4개월 가량의 추가 진단을 더 끊게 되었다. 선수로서 몹시 안 좋은 선택이었고, 애국심과 프로의식 사이의 균형이 어긋난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다.[14]

간혹 일부 팬들은 '조국을 위해 억지로 아픈 것을 참고 뛰었는데 오히려 칭찬받을 일 아닌가'라는 적반하장식(..)의 논리를 펴고 있는데 프로구단에 소속되어 구단으로 부터 월급을 받는 프로선수가 자신의 몸상태를 숨기고 전력을 이탈하여 부상을 키운 것은 쉴드칠 그 어떠한 이유도 근거도 없다. K리그의 한 구단이 아챔과 리그우승을 목표로 J리그에서 뛰는 일본인 선수를 역대 최고 이적료에 연봉을 맞춰서 데려왔는데 부상사실을 숨기고 있다가 월드컵에 출전해서 부상을 키우고 온다음 시즌 내내 누워있다면, 과연 그것도 '일본을 위해 애국심을 발휘한 거니까 이해해야 한다'라고 할수 있겠는가? 변명의 여지가 없는 행동이었고 하물며 세계에서 가장 좋은 대우와 팀내 최고 연봉을 제공하는 클럽의 선수가 저런 짓을 했다는 것은 너무나도 아쉬운 결정이라고 밖에 더 표현할 길이 없다.[15]

결국 무리뉴 부임 첫시즌인 10/11에서도 리그 전반기는 거하게 말아드셨고 이후에 간간히 서브로만 나와서 스탯을 쌓는데에 그쳤다. 그리고 10/11 시즌 새로이 영입된 남아공 월드컵의 신성으로 떠오른 독일의 메수트 외질과의 주전경쟁에서 완전히 밀렸고 이후에는 벤치 멤버 내지 서브로서만 활약하고 있는데 그의 엄청난 주급과 이적료를 감안한다면 결코 만족스럽다고 볼 수 없는 성적이다.

부진의 원인에 밀란 시절 노예 혹사로 인한 부상과 이에 따른 신체능력 저하와 스포츠 헤르니아[16]가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카카는 개인기와 패싱, 득점력도 뛰어나지만 세계 축구계를 쥐락펴락하던 원동력은 결국 상대진영을 찢어버리는 경이로운 스피드였다. 워낙 스피드와 볼컨트롤이 뛰어났기에 상대편에서 진영을 찢어버리는 카카를 저지할 수가 없었고, 카카는 축구지능과 패스, 특히 마무리가 뛰어난 선수였다. 하지만 부상 이후 스피드로 찢어버리거나, 힘으로 버티거나, 볼컨트롤과 드리블, 혹은 킥 등으로 순간적으로 와해시키기는 어렵게 되어서 상대 높은 진영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과거 1기 갈락티코에서 지단이 왼쪽에서 뛴 걸 보고 카카도 그런가 싶은 사람도 있지만, 카카는 레알에서도 중앙 공미로 뛰고 있다. 오히려 호날두가 왼쪽 측면의 지배자로 확고히 자리 매김하며 1600억이 무색할 정도의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데 반해 카카가 자기 포지션에서 제대로 뛰고 있는데도 부진하다는 것과 카카가 부상으로 빠지고 중앙 1의 자리에 반 더 바르트가 들어왔을 때 오히려 레알의 경기력이 올랐다는 것은 거액으로 카카를 영입한 레알의 머리를 아프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무리뉴 부임 이후 그가 레알에서 펼쳤었던 모습은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먹튀의 전설을 써나아가고 있는 중이었으나 2013년 8월 부로 마감을 지었다.). 과연 현 안첼로티 체제에서도 그것을 이어 나갈까 관심이 지속되는 중이었으나 이어가지 못한 채 밀란으로 쫓겨났다 도망갔다 먹고 튀었다 자유계약으로 이적하였다. 다행. 카카: 안선생님, 축구가 하고 싶어요 ㅠㅠ//안:포기하면 편해...

2.3.1 무리뉴 체제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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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여름부터 인테르 이적설에 시달리고 있다. 본인의 트위터에 글을 올려 이적설을 일축했다고는 하나, 아직도 심심찮게 '카카의 거취, 이적설' 등의 제목을 달고 있는 기사를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아마도 2010-2011 시즌 레알 마드리드 선수진의 미드필더 과다 현상과 함께, 메수트 외질이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2010년 10월 메수트 외질레알 마드리드에서 점점 입지를 넓혀가는 반면, 부상 재활 치료중인 카카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때문에 카카의 이적설은 점점 커지고 있으며, AC 밀란, 인테르, 상파울루 뿐만 아니라 현시티맨체스터 시티, 리버풀, 첼시와 같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구단까지 영입 경쟁에 끼어들어 이적 논란이 커지는 데 한몫하고 있다.

2011년 1월 10일 라리가 리그에서 교체투입해서 호날두의 어시로 골을 넣었다. 2-2로 밀리고있다가 3-2로 역전후 4-2의 쐐기골을 만드셨다.

10/11시즌 리그 31라운드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경기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이고 2골을 넣는 등 서서히 살아날 조짐 역시 보이고 있어 여전히 레알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희망고문일수도 10/11시즌 리그 33라운드 발렌시아와의 경기에서 펄펄 날아다니면서 2골 3어시라는 미친 활약을 하며 클래스 인증과 더불어 부활절 부활멤버중 한명이 되었다.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 바르셀로나의 엘 클라시코 대결 1차전에서 부진하던 외질을 대신해 투입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으나 갑작스러운 페페의 퇴장으로 투입되지 못하였다. 많은 이들이 페페가 퇴장당하지 않고 카카가 들어갔으면...하고 아쉬움을 느꼈다.

그리고 적어도 2골이 필요하던 2차전에 마침내 선발출전! 그러나 폭발적인 모습은 역시나 보이지 않고 카카답지 않은 클로킹조용한 플레이를 하다가 외질과 교체되었다. 골닷컴은 매치 최악의 선수로 카카를 선정했다. 다만 카카의 잘못이라고 보기 힘든데 레알 후위 미들진이 이미 바르샤에게 처발린 상황에서 제대로 볼이 오지 않았다. 교체된 외질도 클로킹 모드는 마찬가지였다.

장기간 컨디션 난조 및 부상으로 인해 필드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기에 카카를 까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시즌 후반부 되어서야 복귀한 것도 있고 눈과 귀가 쏠리는 엘 클라시코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못 한 것은 사실이지만, 2010-11 시즌 카카의 스탯은 14경기 7골 4어시이다. 출전대비 시간에 비하면 나쁘지 않은 오히려 A급 스탯이다.[17][18]

이제 윗글들은 하나 하나 전설이 됐고...한때 70m 광속 드리블을 하시던 분[19]이 달리기도 못하는 잉여가 되었다.[20] 레알 이적할때만 해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카카 둘중 누가 더 뛰어난 활약을 펼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저 리오넬 메시를 둘이서 상대해낼 것인가 하는 설레발들까지 넘쳐났으나, 저 둘을 발랐던 무용담도 이제는 과거의 영광이 된지 오래... 지금의 카카는 저 둘을 쳐다볼수도 없을 만큼의 하락세에 직면하였으며 호날두와 에이스 자리를 두고 겨룰 선수 혹은 메시의 라이벌은 고사하고 레알팬들 사이에선 거의 꿔다놓은 보릿자루 수준의 취급을 받으며 제발 너 자신과 팀을 위해 이적하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고있다. 팬들 사이에서도 일부 카카팬을 제외하고는 큰 기대를 하고있진 않다. 벤제마와 같은 사례를 들면서 카카도 부활할 것이란 말이 있지만 2시즌 째 좋은 모습을 못 보여주고있어서 현재로선 힘들 듯 싶다. 돌아오지 않는 실력을 반영하듯 얼굴도 많이 후덕해졌다. 물론 여전히 미남 라인에는 들어간다.

밀란 컴백 루머가 솔솔 불지만 밀란팬들도 꺼려하는 상황. 과연 이대로 레알을 떠나 안드리 셰브첸코를 능가하는 유럽축구계 먹튀왕이 될 것인가.

시간당 찍은 스탯 자체는 좋은 걸 떠나서 '어째서 출장시간이 어째서 많지 않은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주된 이유는 카카 본인의 월드컵 출전 강행이다.
카카는 월드컵 전부터 이미 부상을 안고 있었고, 본인이 이를 알면서도 월드컵을 택했다. 특히 2경기째 치루고나서 부상이 악화했음을 느꼈으나 계속해서 경기를 출전했고, 브라질이 탈락한 이후에도 바로 클럽으로 돌아와 검사를 받는 대신 클럽에서 받은 한 달 휴가를 다 쓰고 와서야 수술을 받았다. 즉 리그 개막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아웃되어 버린 것. 결국 카카는 10-11시즌 전반기의 대부분을 날림과 동시에 전체적인 피지컬 저하, 그리고 외질이라는 새로운 스타에게 밀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몸관리도 축구선수로서 필수적으로 해야될 부분임에도 카카는 이를 실패했고 결국 이적설까지 나오게되고 말았다. 이같은 사실로 카카는 현재 많은 레알팬들에게 논란의 요소가 되어버린 상태.

하지만 본인의 잔류 의지도 강력하고 더불어 무리뉴 감독도 "카카는 4시즌째 프리시즌을 갖지 못했다"는 옹호발언으로 팬들을 희망고문을 하고있기 때문에 11-12시즌은 레알 마드리드에서 뛸 것으로 보인다. 카날레스가 없는 레알로선 외질이 부상당할 경우 마땅한 대체선수도 없기 때문에 카카가 후보라도 있으면 손해볼 것이 없는 상황이다.

클래스가 있는 선수고 멘탈도 좋기 때문에 꾸준한 몸관리만 따른다면 머잖아 부활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워낙 몸값이 비싼 터라 뭐 축구계 최악의 먹튀로 등극할 위험성도 그만큼 높다.FM에서도 더럽게 안 팔려

2011 여름이적시장이 일주일 남짓 남은 가운데 갖은 추측성 루머가 튀어나오고 있다. 가장 큼지막한 떡밥은 "AC 밀란으로의 복귀"와 "아스날 FC"로의 이적설. 카카 본인은 마드리드를 떠날 생각이 없다고 하지만 과연 어찌 될런지는... 그래 떠나도 부활하고 떠나줘.

하지만 결국 떠나지 않았고 2011-12 시즌 라 리가 개막전에서 선발출장해 1골 1어시를 찍어주는 좋은 활약을 펼쳤다.

11-12 시즌 초반 출전 시간을 늘려가면서 부활의 징조를 보이고 있다! 리그에서도 괜찮은 움직임을 보여주더니 챔피언스리그 레알 마드리드-아약스 전에서 3:0의 압승을 거두는 데에 호날두, 벤제마와 함께 각각 1골 1도움을 하면서 아약스를 실신시켰다. 예전만큼 미친듯한 빠르기로 치달을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패싱이나 슈팅같은 다른 부분은 여전한 것같은 모습을 보인다.

최근들어 폼이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며 밀란등에서 다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레알이 카카를 얼마 주고 사왔는데(...) 이제서야 진가 발휘하는 선수를 내보내겠는가. 무링요 감독이 "모든 선수들은 카카의 먹튀를 본받아라."라고 한 걸로 보아 이적할 가능성은 없을 듯 하다.

2011년 10월 16일 (한국시간) R.베티스와의 매치에서 선발출장하여 전반에 심심하게 뛰다가 골 찬스 하나 놓쳐먹더니 호날두의 패스를 받고 환상적인 중거리 감아차기로 이과인에 이어 골을 기록했다. 근데 골 넣고 바로 교체됐다(...). 무링요 감독에 의하면 아직 풀타임 뛰는 건 무리라는 모양. 팬들도 어중간하게 뛰다 나가느니 바로 나가서 코치진에게 칭찬도 받는 게 낫다라는 반응이고...조금씩 살아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근데 날려먹은게 더 많은데다 카카 나가자마자 들어온 디 마리아가 미친듯이 날뛰니까 문제...힘내라 카카 ㅠㅠ

2011년 10월 19일 챔스 32강 리옹과의 매치에서 60분 경 외질과 교체하여 출전해서 뛰기 시작했는데 최근 폼이 살아나고 있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교체 투입되자마자 밀란시절의 카카를 떠올리게 하는 치달을 보여주어 자신감이 생겼다는 걸 알리고, 환상적인 코너킥으로 라모스의 득점을 돕기도 했다. 킬패스도 두어번 정도 찔렀는데 이과인과 벤제마가 못먹어서 날렸을 뿐...팬들도 패스등의 능력은 80%까지 살아났다고 보는 상황. 안타까운 점이라면 호날두가 중거리슛으로 골을 넣었을 때 카카가 오프 사이드 위치에 있는 바람에 무효골이 되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카카는 공을 건드리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그래도 호날두는 웃었다.

윗 경기들에 이어 말라가, 비야레알과의 매치에서도 2어시를 기록하고 1골에 역습 시작의 발판을 마련하는 등 여전히 플레이 메이커로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며 비야레알과의 경기에선 부상으로 뛰기 힘들다던 풀타임 경기까지 뛰었다. 인터뷰에서 풀타임 경기에도 육체적 정신적으로도 아무런 무리가 없다고. 덧붙여 호날두가 득점을 하지 못해 답답해하는 걸 알아채고 호날두에게 공을 몰아주는 모습을 보였으나 결국 호날두는 득점을 하지 못했다.

소시에다드와의 매치를 승리로 끝낸 후, 며칠 후 카카가 타박상을 입어 별도로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는 무링요의 인터뷰가 나왔다. 오랜 부상 끝에 떨어진 폼이 살아나고 있는 와중에 다시 입은 부상이라 팬들은 모두 유체이탈 중. 1년 6개월만에 다시 소집받은 브라질 국가대표 참가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이다. 무링요의 인터뷰로는 완치에 15일 정도 걸릴거라고 하는데...일단 이전에 입은 부상과는 관련 없다고 한다.

대망의 엘 클라시코에선 외질이 선발로 나와 벤치에 있었으나 공미로 나온 외질이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면서 평소보다 이른 55분경 외질과 교체. 공격이 정체되던 공격팀의 활력소가 되었고 본인도 유효슛을 기록하며 득점을 노렸으나 발데스의 선방으로 득점은 하지 못했다. 그래도 준수한 활약을 보이며 아쉽게 엘 클라시코에서 패배. 09년 엘 클라시코 때 카카가 혼자서 바르샤를 털던 걸 생각하면 그저 세월이 한량없을뿐.

마요르카전에서 전반에 레알의 공격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은데다가 한 골을 얻어맞자 무리뉴 감독이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이과인, 코엔트랑과 함께 투입되어 외질과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외질과 카카가 함께 뛰니 킬패스가 쑴풍쑴풍 쏟아졌다(…). 중거리 슛을 차기도했는데, 축구공이 야구공마냥 도중에 뚝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으며 독수리슛 패스도 여전한 모습을 보였다. 피지컬은 죽었지만 발은 살아있는 모양.

외질과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며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기에 엘 클라시코 원정 경기에선 외질과 함께 선발로 출전, 상당히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으나 시간이 지나며 체력이 급격하게 저하되자 폼이 수직하락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며 70분에 교체. 팀은 2:2로 비겼다.

2012년 3월 5일 에스파뇰과의 경기에서 이과인의 2골에 모두 어시를 기록하며 자신도 한 골을 넣는 모습을 보이며 폼이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 날 레알은 5:0으로 대승.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줘.

하지만 카카는 레알 팬들의 기대와 신의를 저버리는 또 한번의 행동을 하게 되는데 그 것은 바로 챔피언스리그 4강 FC 바이에른 뮌헨과의 2차전. 카카의 부진이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지만, 교체로 투입되어 한 골이면 그대로 결승 진출인 상황, 그것도 연장 승부에서 훌륭한 찬스를 우물쭈물하다 날려 버렸고, 승부차기 키커로 선택되었으나 실축하여[21] 무리뉴의 마지막 믿음마저 저버리고 말았다. 거기다 경기 종료 후 라커룸에서 카시야스와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이 올라와 팬들에게 더 큰 실망을 안겼다.[22]

11-12 시즌이 끝나고 프리시즌 친정팀 AC 밀란과의 경기에서 후반 60분에 교체 출전하여 3어시를 올리는 미친 활약을 했다. 팔아야 되는건지 말아야 되는건지

언제나 이적시장이 열리면 이적설이 나돌던 선수였는데, 이전 이적시장은 무리뉴가 항상 카카를 보내지 않을 것이란 쉴드를 쳐왔고 실제로도 이적하지 않았으나 이번 시즌은 무리뉴도 카카가 원한다면 보내주겠다는 등의 발언을 하고있다. 게다가 레알이 모드리치를 영입하려는 시도에 더욱 더 입지가 좁아질뻔했으나 현재 모드리치의 영입이 원활하지 않아서 어떻게 될 지는 지켜봐야 할 듯.

2012년 8월, 시즌 첫 경기인 발렌시아와의 경기에서는 벤치에 앉았으나, 그 이후 이어진 스페인 슈퍼컵 경기에도, 2r였던 헤타페와의 경기에도 아예 소집이 되지 않았다.

정규 시즌엔 단 한 경기도 출장하고 있지 못는데, 외질이 너무나도 부진한 이 상황에서 카카를 한 경기도 내보내지 않는다는[23]무리뉴의 이해할 수 없는 로테이션[24] 시달리며 마음 고생하는 와중에도 프리시즌과 친선 경기에는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인다. 상대가 강팀이 아니라곤 하나 한 경기 60분 정도의 경기시간에 해트트릭엉덩이 골과 2어시는 가히 괴물같다.

그러나 그 이후 본 시즌에 들어온 이후 교체로 출전한 경기에서는 그야말로 막장의 모습을 보여주며 레알팬들은 일말의 기대도 다접어버렸다. 잘했던 경기는 아약스전과 같이 의미 없는 잉여 경기정도. 그나마도 카카가 스탯을 쌓아서 그렇지 경기력은 그다지였다. 현재 레알팬들은 카카팬들을 제외하고는 제발좀 카카 팔라는 소리만 한다.

특히 하부리그팀 상대로도 맥없는 플레이를 보여주고, 외질 대신 교체돼서 나가서는 외질보다 못하는 플레이를 보여주며 왜 무리뉴가 카카를 안쓰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애초에 프리시즌에 잘한다고 해봤자 레알팬들은 이미 3년동안 카카의 실망스런 모습을 봐왔기 때문에 거의 설레발 치지도 않았다. 카카팬들의 설레발에 부활만 여러번 했다고 예수급, 게임캐릭터급이라고 조롱했을뿐) 그리고 대망의 말라가전에서 그야말로 단체 막장테크가 뭔지를 보여주던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 [25]중에서도 교체로 나온 카카는 호무란을 날려버리면서 마지막을 장식했다. 주급을 호날두급으로 받는데 교체로 나가서도, 슈퍼서브로조차도 활약을 못하고, 다른 선수보다 나은 챔스 경험의 힘도 못보여주며, 나이조차도 이제 30줄에 접어드는, 이제는 내려가는 일만 남은 선수에게 레알팬들은 빨리 나가주길 바랄 뿐. [26]

교체로 출전했던 팜플로냐 원정에서는 그야말로 막장 오브 막장의 모습을 보이며 퇴장까지 당하는[27] 모습을 보여주며 토레스가 받았던 0.5점에 뒤지지 않는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야말로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최악의 영입과 함깨 금지어가 되어가는 중. 현재 레알팬들 사이에서는 대괄호가 붙여진 카캌, ㅋㅋ라고 불리는 실정... 현재 밀란 리턴설이 있는데 밀란팬들도 반대의견이 많고 찬성의견도 경기력에 대해 기대하기 보다는 그 외에 부수적인 이유로 찬성하는 경우가 더 많다.

허나 안첼로티 감독이 오면서 공식적으로 카카의 잔류 요청을 함으로써 이적을 할것같지는 않고 카카의 마지막 기회가 될듯 싶다.

어쨌든 현재 그를 보는 시선은 2가지다. 하나는 카카는 이제 끝났다. 물론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마따나 그의 감각이나 클래스는 여전히 그의 안에 남아있겠지만 더 이상 그가 과거의 카카처럼 호날두나 메시 위에 군림하거나 그들과 세계 축구판을 나누는 그런 존재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따져봐도 이미 그 둘을 따라잡기에 카카는 이제 나이도 들었고 전성기 시절의 기량도 아니다. 그리고 이런 시선이 거의 80% 정도 된다.

또 하나의 시선은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 펠레도 66년도에 다리가 아예 아작 났지만 70년도를 그의 대회로 만들며 축구황제가 되었고 마라도나도 바르샤에서 다리가 아작 났지만 결국 아르헨티나와 나폴리의 신이 되었다. 지단도 02년 이후에 이제 지단의 시대는 끝났다고 했지만 결국 06년도에 영원한 클래스를 보여주면서(비록 결승전은 박치기였지만...) 06년도 대회를 그의 대회로 만들었다. 또한 호돈 역시 98월드컵 이후 무릎이 아작 났고 02년도 월드컵에 참가 못할 뻔 했지만 결국 참가하여 월드컵 최다골 갱신, 득점왕, 그리고 우승을 차지하며 그 시대를 지단과 양분했다.

카카 역시 이런 이들 처럼 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브라질 선수들 중에서 경기의 유무형 가치를 다 따졌을 때 카카의 품격을 뛰어넘는 선수는 존재하지 않는다.[28][29]
만약 2014년 월드컵에서 카카가 주장 완장을 차고 브라질의 주전으로서 06-07시즌 급의 활약으로 우승을 차지한다면 그의 평가가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는 일이다. 골수팬들의 신앙에 가까운 믿음이 카카가 브라질을 이끌고 우승을 할 수도 있다는 이 문장을 낳았었다. 레알에서 하던 걸 보면 뻔한데. 이건 마치 국대에서 1년 내내 깽판치던 걸 보면서도 홍명보가 브라질에서 16강 가면 평가가 뒤집힌다는 소리.

라는 두가지 시선.

우선 그에게 가장 시급한 목표는 소속팀에서의 주전 확보. 그리고 2014년 월드컵을 앞둔 국대 복귀다. 레알이든 이적해서 어디든 그의 소속팀에서 주전을 확보해야한다. 그래야지 국대에 다시 차출될 수가 있다.[30] 과연 그가 그저 한 시대를 풍미했던 10년의 선수가 될지 100년이 넘는 축구사에서 역대로 남을지는 2014년 전후로 결정날 것이다....라고 서술되어 있는데 팬들이 알던 카카는 진작에, 이 진작을 하나 더 넘어선 진작의 진작에 끝났음은 누가 봐도 명확했다! 이 서술도 하도 카카 팬들이 간절해서 균형을 맞추느라 최대한 온정적으로 서술했을 뿐이지 당시 몇 년간 보여줬던 카카의 모습에는 부활의 ㅂ자도 비치지 않았고 ㅂ자를 보려는 시도 자체가 말도 안 되고 허망했을 뿐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이니 만큼 당장 이 문서만 봐도 알겠지만 그의 부활을 기원하는 팬들의 바람은 안쓰러울 만큼 간절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카카는 이미 끝이 났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며 사실상 지금 부활해도 이미 너무 늦었다(...) 카카의 이적료는 그렇다치더라도 주급이 호날두와 동급이기 때문에 레알팬 입장에서도 좋게 봐줄 여지가 사라진 편.[31]

그러니까 레알 이적후의 카카를 한줄로 정리하자면 페르난도 토레스만한 먹튀라고 정리할 수 있다.[32]

2.3.2 VS 메수트 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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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1314유니폼을 둘다 입어본적이있구나
카카 (이적료 65m/ 연봉 10m)

09/10 33경기(29선발 4교체) 출전 9골 11어시 공격포인트 20개
10/11 20경기(12선발 8교체) 출전 7골 5어시 공격포인트 12개
11/12 40경기(25선발 15교체) 출전 8골 16어시 공격포인트 24개
12/13 27경기(15선발 12교체) 출전 5골 5어시 공격포인트 10개

메수트 외질 (이적료 15m/ 연봉 4.5m)

10/11 54경기(46선발 8교체) 출전 10골 29어시 공격포인트 39개
11/12 52경기(44선발 8교체) 출전 7골 29어시 공격포인트 36개
12/13 52경기(40선발 12교체) 출전 10골 25어시 공격포인트 35개

1100억짜리 서브의 위엄. 원래 주급과 스탯은 반비례 하나보다.

간혹 경기 출전 시간대비 스탯만 보고 '그래도 카카 스탯은 괜찮네요. 서브로썬 괜찮은 활약임ㅇ' 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세상에 누가 서브로 쓰려고 1100억을 주고 영입한단 말인가. 에펨에선 하던데 자기 몸값의 4분의 1도 안되는 외질에게 주전자리를 밀린다는거 자체가 이미 카카가 먹튀라는 것을 인증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과거 AC 밀란 시절 만을 기억하고 있는 팬들은 '원래 카카는 큰 경기에서 잘 함. 큰경기에서 못하는 양민학살 외질 따위 ㅉㅉ. 무리뉴가 기회만 꾸준히 줬었으면 레알은 진작 챔스 우승했음.' 라는 주장을 하는데

무리뉴만큼 꾸준히 중요한 경기에서 카카를 중용했던 감독도 드물다. 실제로 무리뉴 이전부터 카카가 출전했던 모든 경기에서 레알은 챔스에서 탈락했었다. [33]

그리고 레알이 우승을 차지했던 순간, 혹은 우승을 확정 지었던 중요한 순간들에는 카카가 없었다는 점 역시 특기할 만한 부분. [34]

위와 같은 주장으로 인해 카카가 큰 경기에서 기회를 못받았다는 말은 전혀 설득력이 없으며 특히 큰 경기에서 강하다는 주장은 더더욱 그렇다. 특히나 동일 포지션의 경쟁자인 외질이 강팀과의 경기에서 기복있는 점을 거론하며 양학밖에 못하는 외질대신 큰 경기 작은 경기 가리지 않고 일관된 카카의 경기력을 찬양하는 이들이 있는데 외질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이후 가장 많은 스탯을 뽑아낸 상대는 다름 아닌 FC 바르셀로나다.[35] 이러다가 외질한테 공격포인트 8개 헌납한 바르셀로나도 양민이라 할 기세

오히려 카카가 레알에서 뽑아낸 스탯이야말로 팀이 4~5점 차 이상 크게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몰아쳐서 넣었던 영양가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며 정말로 큰 경기에서 믿고 내보낸 경기들에서는 여지없이 버로우 타기 일쑤였다. 특히나 11/12 챔스 4강 승부차기에서 PK 실축 했던것은 레알팬들에게 있어선 두고두고 기가 차는 부분인데 날두는 두골이라도 넣었지 넌 대체 한게 뭐냐 이 지경까지 와서는 레알 팬들에게 그는 완전히 신용을 잃었다고 보는 것이 무방하다. 애초에 연장전에 찾아온 천금 같은 기회를 어물쩡거리다 놓치지 않았더라면 그냥 승부차기까지 가지도 않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엄청난 주급인 1년의 10m은 2년이면 외질의 이적료를 뽑고도 남을 금액이요. 입단 이후 현재까지 레알에서 4년간 파먹은 주급만 40m. 한화로 600억이다. 가히 역대 최고 먹튀라 칭하기에 과함이 없는 수준. 과거에 멘디에타 등의 사례도 있었지만 카카는 이미 이적료와 주급에서부터 그 정도를 달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36]

레알 수뇌부도 더 이상 그에 대한 인내가 바닥이 난 것인지 올 여름 이적시장에 말라가의 신성 이스코를 영입하면서 2선을 더욱 강화하였고 그로 인해 주전 경쟁은 더더욱 힘들어진 상태. 이제는 정말로 자신과 무엇보다 제발 팀을 위해서라도 새로운 팀을 찾아 나서는 것이 요구되는 상황.

하지만 새로 부임한 안첼로티가 카카를 중용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에 향후 행적이 기대된다. 이미 프리시즌에 출전해서 골을 넣었기 때문에 카카빠들에게는 벌써부터 "움직임 등이 무리뉴때와는 다르다" 등등 부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과연 이번에야말로 부활 할 수 있을지? 그래봤자 무리뉴 시절에도 프리시즌은 날라다녔으니 희망고문일 것이다. 안첼로티도 외질에 이스코까지 있는 마당에 카카를 쓸 이유도 없고. 예수드립이 흥하고있으나, 그분은 사흘만에 부활했다치고 이 분은 4년째인데 부활할 생각을 안한다(...)

그리고 둘 다 레알을 나가게 되었다. 한명은 계약기간이 남았으나 레알이 공짜로 쫓아냈고(...), 한명은 레알에게 700억을 주고 떠났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4 다시 AC 밀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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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AC 밀란으로 돌아오다

연례행사처럼 나오던 카카의 AC 밀란 리턴설이 2013년 여름에도 걍 나오다 지나가나 했으나... 갑자기 이적시장 마감 이틀을 남겨놓고 급전개를 하기 시작하였다. 카카가 이적 요청을 하였고 레알은 그를 자유계약으로 놓아주었다. 결국 연봉을 10M에서 4~5M으로 줄이는 조건으로 이적료 없이 밀란과 2년 계약하며 산 시로로 컴백하였다. 레알빠들은 자유계약으로 풀어줬음에도 선수를 내보냈는데 전력이 상승했다며 앓던 이가 빠진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밀란빠들은 일단 환영하지만 실력에는 반신반의하는 묘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쨌건 밀란에서 주전 자리를 얻을 기회가 생긴 카카가 부활을 할지, 아님 이대로 끝날 지는 본인에게 달려있다.

그리고 가자마자 부상. 그런데 밀란에선 부상기간동안 주급을 안받는다고 하는, 레알팬들의 피가 거꾸로 솟는 소리를 했다. 밀란은 집, 레알은 직장입니다 아무래도 먹튀 레알 시절에 대한 죄책감이 큰 듯하다. 자신도 어떻게든 부활하려 했지만 결국 먹튀로 전락하고 부상은 부상대로 겪고 팬들에게 지지도 못받고.. 겨우 복귀했더니 다시 부상 당해 먹튀 소리 듣게 생겼으니 울면서 주급을 받지 않겠다고 한 것도 이해는 간다
그리고 13-14 챔피언스 리그 조별예선 바르샤와의 1차전 직전에 귀신 같은 타이밍으로 복귀하였다. 앞서 리그의 라치오전에서는 특유의 감아차기로 복귀골을 넣으며 신고식을 치렀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골을 넣고 엄청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부상기간 동안 체력 증진에 중점을 두고 특훈을 실시하여 상당한 감량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바르샤와의 챔스 조별 예선 1차전 경기 초반에는 국가대표 최고의 파트너였던 호비뉴와 그림 같은 원투 패스를 주고 받아 호비뉴의 골을 어시스트했다. 후반 중반에 교체될 때 까지 엄청난 활동량과 수비 가담으로 다니 알베스의 공격가담을 억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카카가 호비뉴에게 어시스트를 하자 서형욱 해설 위원은 '역시 카카는 AC 밀란이죠!' 라며 외치는 등 경기내내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상황을 보며 마드리드 지맥이 카카와 안맞는 거 아니냐는 등... 또 부활했다는 등.. 온갖 드립이 향연했지만 어쨌든 이 한 경기만 보면 준수한 활약을 한 건 사실. 꾸준히 다시 지켜봐야할 듯 싶다.

이후, 밀란의 경기들을 보면 역카밀(역시 카카는 밀란이죠.)을 여실히 보여주며 가장노릇을 하고있다. 레알팬입장에서는 더더욱 복장 터질 노릇... 바르샤와의 챔스 조별리그 2차전에서는 아예 치달을 시전하며 알베스의 수비를 돌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골대 앞으로 찌른 패스가 피케의 발에 맞고 들어가면서 어시스트...를 기록.


밀란에서의 100번째 득점 기념

그러나 사실 냉정하게 바라보면 반으로 깎은 주급과 나름대로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주급 대비 가격효율이 밀란에서도 영 좋지 않은 건 사실이다. 물론 카카의 기량이 전성기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13-14시즌 이후 AC 밀란이 폭망하고 있는 상황에서 카카가 있어 어느 정도 버티고 있다고 볼수 있다. 카카가 대부분의 경기에 풀타임으로 출장하고 있다는 것이 그 반증. 3월 12일 열린 AT마드리드와의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서도 헤딩골을 넣는가하면 밀란이 탈탈 털리는 와중에도 분전하여 호비뉴에게 절묘한 패스를 찔러 기회를 만드는 등등 여러번 해설진의 찬사를 받았다. 매경기마다 걸출한 활약을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카카 정도의 통솔력과 경기조율능력, 패싱능력이라면 준수하다고 볼 수 있으며 몰락한 밀란에게는 몇 남지 않은 인재이다. 3월 말에 카카의 MLS 이적설이 뜨자 AC 밀란 팬 커뮤니티가 발칵 뒤집혔던 것만 봐도 현재 밀란에서 카카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드러난다.

3월 30일에 열린 키에보전에서는 멀티골을 넣었다. 혼다의 크로스를 문전에서 받아 가볍게 밀어넣은 첫번째 골에 이어 측면에서 감아찬 중거리슛이 들어가면서 멀티골을 달성. 감상해보자.# 이 경기는 카카의 300번째 출장경기였기 때문에 의미가 더욱 크다. 후반 74분 호비뉴와 교체될 때 관중은 카카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갈리아니 단장은 카카에게 기념메달을 수여하며 카카의 지난 공로에 감사를 표했고, 카카는 앞으로 밀란에서 300경기를 더 뛰고 싶다고 화답하였다.
코치랑 감독으로 뛰면 되겠네 밀란 레전드출신감독 줄줄이 짤리는건 안비밀

전성기 시절 환상의 콤비였던 셰브첸코는 밀란을 방문하여 "카카의 부활을 확인했다"며 기쁨을 표하였다.

2014년 6월 29일, AC 밀란은 카카와의 계약을 상호협의하게 해지하였음을 발표하였다. 애초에 카카 본인은 밀란에 남기를 원하였으나 개인적인 사정[37]으로 인해 브라질로의 귀국, 혹은 MLS 이적을 고려하였다고 한다. 카카의 이적으로 밀란에서 영구결번을 지정했다는 헛소문이 퍼졌는데, 우리나라 기자가 멋대로 오역한 것이다. 구단 측에서는 22번의 영구결번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고 (영구결번이었으면 공식 홈페이지에 난리가 났을 것이다.) 단지 카카가 "앞으로는 22번을 달지 않을 것이다," 라고 인터뷰 했을 뿐인데 어찌 22번이 영구결번이 됐는지 기자의 자질이 의심스러울 뿐이다.

2.5 MLS와 상파울루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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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여름 MLS의 올랜도 시티 SC로 이적하면서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올랜도 시티 SC 등번호는 10번으로 배정받았다.[38] 올랜도 시티는 2015년 3월에 시즌이 시작하므로 MLS 시즌 전까지는 처음 몸담았던 상파울루 FC로 임대된다. 그리고 피파3 유저들은 눈물을 흘린다.

반 시즌짜리 임대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카카의 친정인 상파울루에서는 홈 구장에서 행사까지 열며 카카를 성대하게 환영하였다. 이에 보답하듯 현재까지 좋은 폼을 보여주고 있다. 9월 5일에 열린 남미 클럽컵인 수다메리카나 16강 2차전에서는 결승골을 뽑아내며 팀의 8강 진출을 이끌어내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올랜도 시티에서 716만 7500달러 (약 82억1,538만)의 연봉을 받아 MLS 선수 중 가장 높은 연봉을 받게 되었다.

올랜도 시티 복귀 이후에는 팀의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하며[39] 축구 레슨을 시켜주고 있다. 인기도 여전한지아님 얼굴 때문인지 2015 시즌 MLS 내 유니폼 판매량 10위 안에 들고 토트넘 핫스퍼와의 MLS 올스타전에서 선발되어 1골 1도움을 하여 MLS 올스타가 이기는데 큰 도움을 하였고 MLS 올스타전 MVP를 수상했다. 이제 나이도 35이 되었으니 미국에서 말년을 보내고 브라질로 복귀하거나 그대로 은퇴할 것으로 보인다.

3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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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 엔트리 중 한 명으로 월드컵 우승을 경험했다. 물론 본인은 당시 어렸기에 2002년 월드컵 때는 30분가량 뛴 게 전부지만, 저 나이에 브라질 국가대표에 차출됐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듯. 카카 본인도 어느 정도 의식하고 있는지 다음 목표는 자신이 국가대표 주장 완장을 차고 월드컵을 우승하는 것이라 한다.

원래 FIFA 월드컵에 출전하는 선수구성이 23명인데 모두 잘하는 성인 선수로만 채워넣는 게 아니라 22명만 정예로 짜 넣고 나머지 한 명을 유망주 중에서 제일 뛰어난 선수로 뽑는 경우[40]가 있다. 물론, 감독의 성향에 따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큰 대회의 경험을 쌓은 유망주가 후기대회 월드컵에서도 출전하여 팀을 이끌어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1994년 미국 월드컵때의 호나우도[41]가 있으며 우승까지 경험을 했지만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2002 한일 월드컵 때 독일미로슬라프 클로제를 이 포지션으로 투입했는데 점점 제대로 대박이 터졌고 브라질의 경우는 카카를 이 포지션에 넣었던 것이다. 이 외에도 그 직후기 월드컵인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는 이 포지션에 리오넬 메시를 넣었다. 물론, 꼭 그렇지도 않고 아무리 나이어린 유망주 취급을 받는 선수들이라 해도 처음부터 실력이 좋아서 맹활약을 펼치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으로 펠레마라도나라던지, 마이클 오웬이라던지... 물론, 나이와 관계없이 실력으로 뽑히는 국가대표에서 나이가 어린 선수는 필연적으로 유망주 취급을 받는 것이기도 하다.

2005년 컨페더 컵에서 브라질의 우승을 견인했다.

2006년 월드컵에서는 호나우두-아드리아누라는 최전방과 당시 세계 축구계를 씹어먹었던 호나우딩요와 더블플레이메이커 체제를 형성하며 판타스틱 4로 불리면서 엄청난 포스를 보여주었지만 정작 월드컵 본선에서는 빛좋은 개살구. 제라드-램파드 공존 논쟁에 버금 갔던 딩요-카카 공존은 완벽한 동선의 불협화음을 보여줬다.[42] 거기다 과거의 활동량을 완전히 상실한 호나우두와 뼛속까지 타겟이었던 아드리아누의 공간 창출은 완전히 꽝이었다. 물론 어느 수준의 양민학살에서는 선수들의 개인능력으로 상대를 압살했지만... 이러한 문제점이 제대로 튀져나온 것이 바로 대 프랑스 전. 마케렐레와 비에이라라는 걸출한 홀딩들이 저 4명을 효율적으로 억제했고 거기다 최후방의 튀랑 역시 엄청난 방어로 공격을 차단했다.
거기다... 그 경기는 지단이 전성기에 육박하는 플레이를 보여주었기에...

06월드컵 이후에 호나우지뉴의 막장화와는 반대로 카카는 말그대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며 세계축구의 중심에 올라갔고 자연스럽게 둥가 감독이 이끄는 브라질의 에이스로 올라간다. 에이스의 배번 10번 역시 그가 달았다. [43]

2009년 컨페더레이션스 컵에서 브라질의 우승을 이번에는 명실상부한 에이스로서 이끌었고, 아마 카카의 국가 대표 커리어중에 가장 전성기가 이 시기였을 것이다. 06-07시즌으로 대표되는 주력과 활동량은 아니었지만 감각 그 자체가 빙의 된 것 마냥 결정적인 순간마다 골과 어시를 하며 국가를 우승으로 이끌면서 대회 MVP를 수상하며 기대를 높였다.

그리고 2010년 월드컵. 둥가의 브라질팀에서 카카는 에이스 중의 에이스였다. 카카-파비아누-호빙요로 이루어진 브라질의 공격진이 모두 가동되었을 때 월드컵 8강전에서 네덜란드 전 직전까지 패배하지 않았다. 당시 브라질은 브라질 색채를 버렸다고 할정도로 실리 축구를 추구했지만 진작에 스페인과 1,2위를 엎치락 뒤치락하는 명실상부한 강팀이었고 카카는 그런 둥가 브라질의 핵심이었다. 아마 카카가 무리를 해서 까지 월드컵에 출전한 것은 에이스로서의 강박 때문이 아니었을 까 유추할 따름이다. 그리고 8강에서 멜루의 화려한 활약(...)으로 광탈했다.

희한하게 코파 아메리카 출전 경험이 없다. 팀 상황이나 부상등으로 참가하지를 못했었다. 03년 부터 10년 까지 브라질의 주축이었던 선수로서 조금은 독특한 부분.

2012년에 1년 10개월만에 브라질 국대에 차출되었다. 당시 최악의 상황을 달리던 카카로서는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을듯.

국대 복귀 이후에 이라크 일본과의 2연전에서 말 그대로 날아다니면서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라크와의 경기에서 1골 1어시, 일본과의 경기에서 1골을 때려 박으며 성공적인 국대 복귀전을 치뤘다.

2015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예비명단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8월 14일 국대에 재승선하였다.

여전히 한창의 나이의 선수이고 아직 현역 생활이 꽤 남은 선수지만 이 친구, 현재 브라질 국가대표 역대 득점 순위가 80년대 레전드 카레카와 함께 12위다. 그 위에 있는 선수들은 우선펠레(...)옹을 정점으로 해서 호돈신, 호마리우, 지쿠, 베베투, 히바우두, 자이르지뉴, 호나우지뉴, 히벨리누, 아데미르, 토스탕, 지지뉴 등. 이미 브라질 내에서도 전설이라고 추앙받는 선수들, 그 중에서도 현역은 히바우두호나우지뉴 밖에 없다. 거기다 히바우두는 사실상 국대 승선 가능성이 0에 수렴하는 상황[44]이고, 브라질 리그에서 활약 중인 호나우지뉴 정도나 국대에 소집 될 가능성이 있을 정도.

이미 브라질 축구계에서는 딩요와 함께 살아있는 현역 레전드 취급 중. 괜히 네이마르나 오스카 같은 선수들이 카카가 국대 복귀하고 나서 ‘오오 카카 오오..’ 이런게 아니다. 이 페이스로 꾸준히 국대에만 승선한다면 센추리 클럽과 국대 득점 순위 10위권 안에도 바라볼 수 있다.

본인이 2014년도 브라질 월드컵에 참여하기를 간절히 원하였고 스콜라리 감독도 카카에게 몇차례 관심을 보이는 발언을 하기도했지만 결국 이번엔 국가대표로 선발되지 못했다. 하지만 예상외로 브라질이 독일에게 아주 처참하게 박살나고 3,4위전에서도 네덜란드에게 털린 뒤 여러가지 문제점[45]이 드러나자 오히려 카카의 공백이 아쉬울 정도다.

2014년 월드컵 이후, 다시 감독을 맡은 둥가에 의해 국가대표에 재승선했다. 원래 뽑혔던 멤버인 히카르도 굴라르트가 부상으로 대체 선수로 선발되었는데 어느 정도 예상된 상황인게, 둥가가 다시 지휘봉을 잡고나서 카카에 대해서 지금과 같은 경기력을 유지하면 그에게도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러니 저리니 해도 브라질 월드컵 국가대표 탈락이 새옹지마가 되었다. 그리고 일본과의 경기에서 네이마르의 골을 어시스트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했다.

2015년 9월 5일 코스타리카와의 경기에서 교체 출전하며 90경기를 출장했다. 과연 그에게 브라질의 많은 선수들이 실패한 센추리 클럽 가입의 기회가 올 것인가.

2016년 4월 30일, 코파 아메리카 예비명단에 선발되었다 더글러스 코스타의 부상으로 인해 결국 최종명단에 포함되었다. 그런데... 부상을 입어 코파 아메리카 최종 명단에는 결국 낙마하였다. 센츄리 클럽 가입도 점점 가까워지는 중.

4 카카의 포지션

오늘날 축구계는 미드필더진에 철저한 역할 분담을 요구하고 한 선수에게 전권을 맡기지 않는 추세인데, 이에 반하는 플레이메이커들 중 하나였다.[46]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 이적 후에는 전성기의 폼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유일하다는 부분을 자세히 설명하자면, 2010년 당시 같은 리그에서 뛰던 리오넬 메시가 제2의 마라도나 라고 불리나 전형적인 플레이메이커인 마라도나와는 다르다. 메시는 측면 지향적이고 득점을 노리는 플레이를 펼쳐왔고, 10-11 시즌부터 13-14시즌까지는 중앙에서 뛰면서 펄스 나인(false 9) 역할을 했다가 14-15 시즌부터 중앙 공격수 자리는 루이스 수아레스(우루과이)에게 내주고 다시 측면으로 돌아갔다. 강팀 상대로 플레이메이커 롤도 맡긴 하나 펩 과르디올라 체제에서는 차비+이니에스타와, 2016년 현재는 라키티치+이니에스타와 분담하는 형태다. 다만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플레이메이커로 뛴다. 차비 에르난데스는 필드 중앙에서 패스에 주력하는 케이스고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와 공격 작업을 분담한다. 웨슬리 스네이더도 공격 전권을 위임 받는 플레이메이커는 아니다.

다만 카카가 현대 축구 흐름에 반하는 플레이메이커였다고 하는 진술은 엄밀하게 말하면 오류다. 왜냐면 플레이메이커가 사라진 이유는 그들의 능력 때문이라면 때문이겠지만,마라도나는 아니니까. 전술 변화와 축구 규칙의 개정, 경기수의 증가 등의 이유로 전통적인 플레이메이커가 살아남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카카가 공격의 전권을 쥐게 된 것은 카카의 능력과 더불어 당시 밀란의 상황이 맞아 떨어진 까닭이지, 결코 카카가 전통적인 플레이메이커 롤을 능숙하게 소화해 내서는 아니다. 차라리 비슷한 시절의 호나우지뉴프랑크 리베리가 비록 측면에서 뛰더라도 훨씬 더 전통적인 플레이메이커 상에 가깝고, 카카 자신도 전통적인 플레이메이킹은 훨씬 우월한 루이 코스타를 주전에서 밀어낸 전력이 있다. 만약 카카가 전통적인 플레이메이커였다면 당시 밀란의 공격수를 맡고 있던 질라르디노의 득점이 훨씬 늘어났어야 한다. 마치 뮌헨 시절의 토니 크로스마리오 고메즈처럼. 그러나 질라르디노는 충실히 카카를 위한 미끼 역할을 수행하며 카카의 스피드와 득점력을 이용할 공간을 창출해 줬다. 풋볼 매니저 식으로 말하면 카카는 2선에서 최전방으로의 침투와 드리블 돌파로 직접적인 득점을 노리는 섀도우 스트라이커라고 할 수 있다.

밀란에서 플레이메이커로 뛰던 카카가 현대 축구에 반하던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카카의 능력이라기보단 AC 밀란과 안첼로티 감독의 능력이다. 다이아몬드를 사용함으로 중원의 밀집도를 높이고, 카카의 실책이나 컨디션의 하락을 보조해 줄 미드필더들이 중원에 산재하게 만듦으로써 플레이메이커를 기능시켰다. 실제로 카카는 여타의 플레이메이커처럼 플레이에 기복이 꽤 존재했지만, 중앙 미드필더 동료들의 조력에 힘입어 밀란과 카카는 둘다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밀란에서까지의 이야기. 그는 레알 이적함과 동시에 전성기때의 모든 기량을 상실하고 축구 역사상 최악의 먹튀로 전락하고 말았다.

5 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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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달 끝판왕
전설로 회자되는 스피드를 이용한 드리블 능력,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어내는 찬스 메이킹과 높은 득점력을 모두 가진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와 세컨드 스트라이커의 꽃

최전성기인 AC 밀란에서는 위의 수식어에 볼수 있듯이 치달의 임팩트가 부각되지만 다른 능력도 뛰어났다. 04-05 시즌의 리버풀과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즉 이스탄불의 기적 혹은 악몽에서 리버풀을 초죽음으로 몰고 갔던 건 카카의 공격 전개와 날카로운 킬패스였다. 또한 전성기 시절을 돌이켜 보면 득점력도 무시무시했다. UCL에서 86경기 동안 30골을 넣어서 지금도 역대 득점 기록 20위 안에 들어가고, 특히 06-07 챔스에서는 10골을 넣어 득점왕이 됐다. UCL 득점왕이 발롱도르를 타는 징크스는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이어졌는데, 이 징크스를 시작한 선수가 바로 카카라는 것은 유념할 만하다. 카카의 능력이 가장 빛이 나는순간은 바로 역습상황인데 좌우 측면과 중앙을 가리지 않는 역대급 치달과 뛰어난 킬패스와 골결정력으로 커리어 대부분의 공격포인트를 역습상황때 쌓았다. 정교한 드리블과 중거리슛 능력도 뛰어나 역습상황에서만 쓸수있는 반쪽짜리선수도 아니었다.[47] 전성기 때는 헤딩과 수비가담을 제외하면 완벽한 선수였다. 물론 이러한 장점들 중 가장 독보적이고 또 다른 장점들을 잘 받쳐준 건 카카의 경악스러운 스피드였다. 달리기가 아닌 능력이 카카의 진가였다면 부상으로 신체능력이 죽은 다음 개먹튀가 된 것이 전혀 설명되지 않으므로. [48] 때문에 카카의 전성기를 지켜보던 세리에 팬들은 스피드를 바탕으로 이지선다[49]의 플레이를 펼치던 정상급 선수였는데 스피드가 죽으니 다른 능력들 마저도 어정쩡해져서 폭망했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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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 카카의 위용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장면. 최대순간속도 32.5km를 자랑하는 리오넬 메시를 드리블을 하면서도 여유롭게 따돌리는 장면을 보면 전성기 시절 카카가 얼마나 무지막지한 스피드를 가지고 있는지 알수 있다.

2016년 현재 유명한 선수 중에서는 가레스 베일이 전성기 카카와 가장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역대급을 논할 만한 스피드에 골 결정력, 기회 창출 능력, 드리블 등 다양한 능력을 탑재했다는 점에서. 심지어 레알 마드리드 이적 후 부상과 부진으로 휘청댄 것까지도 비슷한데, 베일은 카카와 대조적으로 잘 극복해서 다시 레알 마드리드와 웨일스 축구 국가대표팀의 에이스가 되었다.

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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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계에서 가장 잘생긴 선수 중 하나인데다가 엄친아인생의 승리자 기믹까지 붙어있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조각같은 외모와 축구 실력은 물론이고 파파라치들도 포기했다 할 정도로 신실하고 가정적인 성격, 여신 미모에 브라질에서도 내로라하는 자산가의 딸인 첫사랑이었던 여자를 부인으로 얻은데다, 본인을 빼닮은 자식들까지 있으니 거의 전 인생을 엄친아로 살아온 격.. 축구외 다른 분야에도 관심있다고 발언한 적이 있는데 MBA 석사과정을 밟았으며 주식에도 관심이 있다고 한다.

디강이라는 동생이 있는데, 형과 마찬가지로 축구선수로 뛰고 있으며 빼어난 조각외모를 자랑한다. 다만 실력은 현시창 수준으로 카카에 비하자면 안구에 쓰나미가 몰려올 정도라고...그럼에도 불구하고 2005년 형과 같은 팀인 AC 밀란에 입단했는데, 이는 감독인 안첼로티와 구단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카카의 마음을 붙들어 놓기 위한 도구로 데려온 것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대다수다. 결국 2008년 벨기에 리그 스탕다르로 이적했는데, 1년 뒤인 지금 카카가 레알마드리드로 옮긴 현실을 감안하면 무조건 방출이 예상됐던 바 오히려 미래를 예견한 선견지명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임대복귀해서 아직도 밀란에 적을 두고 있다. 09/10시즌에는 하부 리그에 적을 둔 팀에 임대되었지만 제대로 경기조차 나오지 못하고 있다.

여담으로 결혼했다가 이혼했다가 재결합했다. 전 부인을 약 15살 때부터 사귀어왔다는데 서로 혼전순결[50]이었다고 한다. 카카가 AC 밀란에서 뛰고있었고 캐롤라인은 밀라노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을 때, 카카는 그녀에게 일이 있으니 베니스에 가자[51]고 했고 캐롤라인은 별 생각없이 따라갔는데 레스토랑에서 반지를 꺼내 프로포즈 했다고...오오 로맨티스트 오오 그리고 이 부인은 크리스챤 디오르 브라질 지부 부사장의 영애. 한 마디로 인생의 승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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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루카는 아빠를, 딸 이사벨라는 엄마를 많이 닮았다.

그러나 2014년 11월 5일 부인과 이혼했다.# 카카가 AC밀란 - 레알 마드리드 - AC밀란 복귀 - MLS 올랜도 시티 계약 - 상파울루 임대 라는 꽤 복잡한 커리어를 이어가는 동시에 부인 역시 브라질 내 패션 사업이나 기타 영리 단체를 운영하는 등, 서로 만날 시간이 없었고 그 과정에서 관계가 틀어진 모양이다. 축구선수들 중 가장 이상적인 워너비 커플이었기에 충격이 크다.

그런데 이 두 사람 이혼하고서도 계속적으로 만나고 있다. SNS등을 통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있다. 가족 모임에도 같이 참가하고 있고. 그것도 어느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올리는게 아니라 카카와 캐롤라인 두 사람의 SNS에서 쌍으로 올리고 있다. 크리스마스 부터 새해까지 이어지는 연말이 압권이었는데 카카가 캐롤라인의 목덜미에 입맞춤을 하는 사진까지도... 뭐야, 이 커플.

그러더니 2015년 1월 5일에 재결합을 선언했다(......) 이혼 파문은 순간적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일어난 해프닝으로 마무리 되는 듯.

그런데 2015년 8월 캐롤라인이 SNS에 이혼을 알리는 글을 올렸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재결합 후 인스타에 올렸던 닭살돋는 사진들도 전부 삭제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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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카카가 사진 속 여인인 바네사[52] 와 만나고 있다는 뉴스가 터졌다. 처음부터 카카의 첫 이혼에 불륜 루머가 있긴했었다. 캐롤라인의 글을 보고 팬들은 '응?또 헤어지고 만나고 또 헤어졌어?' 그런데 취향 알겠네라는 반응을 보이며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후 카카와 바네사가 함께 찍힌 사진이 공개되었고 현재 캐롤라인과는 완전히 끝난듯 하다. 자녀는 캐롤라인이 키우는듯하다.

이탈리아 방송에 나와서 진행자가 '님은 대체 못하는게 뭐임?'이라고 질문했더니 춤을 정말 지독하게 못춘다고 밝혔다. 역시 신은 공평한가?

여기서부터가 차별점. 옛날옛적의 호마리우도 그렇고 최근에 아드리아누, 호비뉴같이 브라질엔 멘탈이 영 썩어들어간(...) 선수들이 오히려 더 많은데 어째 카카는 기분 나쁠 정도로 멘탈이 좋다. 위 선수들 덕에 애국자 줄리우 밥티스타 장군[53]과 더불어 돌연변이(...)가 아닐까? 하는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AC 밀란 시절에 있던 유명한 이야기가 있는데, 오랜만에 훈련 후의 뒷풀이가 있다는 소식을 접한 기자들이 선수들의 소위 X파일을 잡으려고 이리저리 추적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여러 선수들이 술집에서 놀다가 여자를 하나씩 끼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모습들이 포착되었고, 카카 또한 매의 눈으로 노려지고 있던 상황. 아무리 사생활이 깨끗하다해도 남자가 이럴 때는 놀거라고 생각한 기자들이 포착한 것은.....

  • 선수들과 그냥 헤어진 뒤 공원 벤치에서 성경을 읽는 카카
  • 성경 책을 접어 가방에 넣고는 공원을 산책하며 성경 구절을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카카

이런 세상에 맙소사

소문으로만 듣던 카카의 진짜 모습(?)을 똑똑히 지켜본 기자들은 잔뜩 질려서 바로 철수해버렸고 그 날로 카카는 기자들의 관심 따위 못 받게 되었다. (...)

실제로 카카는 워낙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정평이 나 있으며 은퇴 후에는 성직자의 길을 걷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고. 뿐만 아니라 매춘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적도 있다. 심지어 존경하는 사람이 한국의 정바울이라는 목사라고 한다.

카카 자신이 올스타를 뽑았다.


2016년 6월 27일 기준으로 페이스북 팔로워가 3223만여 명(축구선수 중 6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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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드리블만으로 상대 수비수의 십자인대를 파열시킨(…) 경력이 있다. 상대는 왓더 월터 사무엘. 그는 밀란 더비에서 카카의 드리블 테크닉을 무리하게 쫓아가려다 경기 도중 생방송으로 그의 몸 방향과 무릎의 방향이 다른 꽤나 소름 끼치는 장면을 연출해냈다.센카쿠? 십자인대 파열로 쓰러졌음에도 불구하고 공에 대한 집념으로 다시 일어나 공을 보다가 같은 팀의 수비가 공을 취득한 걸 보고 그제서야 쓰러졌다.

아무래도 전성기 시절에 비하면 스타일이 많이 변했다. 광속 드리블 실력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오른발은 위협적이고 무엇보다 활동량이 후덜덜하게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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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는 어딜가고 료토 마치다가 레알 유니폼을 입고있다.

또한 레알 입단 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망가졌다. 옛날과 비교해보면 같은 얼굴은 같은 얼굴인데 마음 고생이 심해서 그런지 뭔가 많이... 분위기랄까 인상이랄까 하여튼 나쁜 의미로 달라졌다.브루스 배너? 특히 레알시절에는 안 기르던 수염까지 기르고, 광대뼈가 튀어나올정도로 어딘가 수척해보이는 인상.그런데 스페인에만 가면 많은 선수들이 외모 관리를 하지 않기 시작하고, 유독 수염을 잔뜩 기르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근데 그 인상도 밀란와서 감량과 심적 안정등으로 꽤나 돌아와서 정말로 마드리드 지맥이 카카랑 맞지 않는 건가...
여담이지만, 많은 탑급 선수들이 유독 레알 마드리드에만 들어가면 버로우 타는 경우가 많긴하다. 선수들 뿐만 아니라 감독들 역시 모두 모두 희한하게(?) 다른 곳에서는 날라다녀도 레알에서는 죽상 쓰는 경우가 많아서.. 오죽했으면 선수 장악력이 강하다는 '스페셜 원' 무리뉴조차도 락커룸 장악에 실패하고 감독 시절 끊임없이 불화에 시달렸다. 스페인 언론에 시달리고서 EPL로 돌아갔던 것만 보더라도 그 압박이 EPL보다도 심했다는 판단이 들 수 밖에 없다. 아무래도 레알마드리드라는 큰 구단에 대한 부담 뿐만 아니라 매일 압력을 주는 언론, 팬들, 그리고 보드진까지(..) 여러가지 레알이 갖는 특수적 상황이 선수들과 감독들을 괴롭게 하기는 하는 모양. 하긴, 회장이 직접 여론몰이 하는 곳은 드물긴하다!
지네딘 지단 마저도 레알마드리드 입단 초반에는 몸값 하지 않는다는 팬들 및 언론의 압박에 못이겨서 때려치고 싶었고 고통스러웠다고 말한 바 있다.물론, 그는 그것을 이겨내고 현재 레알의 감독까지!
어쨌든 카카는 그 부담감들을 이겨내지 못했다.

한국에서 열성팬이 많은 선수다. 인기 구단인 AC 밀란의 마지막 전성기를 대표하는 인물이고, 전성기에는 플레이메이커로서 모든 공격전권을 부임받은 상태에서 화려하고 역동적인 플레이로 유럽을 석권했다. 이 때는 한국에서 해외 축구 중계가 도입기를 지나 최초의 전성기를 맞이할 무렵이라 그 퍼스트 임팩트가 대단했다. 게다가 박지성 선수의 맨유 입단으로 관심이 모아지던 시기에 06/07시즌 맨유 상대로 보여준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였기 때문에 해축팬들에게 상당히 깊은 인상을남겨준 것도 컸다.[54] 상술되다시피 젠틀한 사생활과 얼굴로 브라질 귀공자 이미지까지 더해 인기가 폭발했다. 아무튼 좋은 것만으로 가득 끌어모은 팬들이고 퍼스트 임팩트가 너무 대단한 탓이었는지 많은 열성팬들의 애틋한 팬심으로 카카에 대한 미련을 일찍 떠나보내지 못했다.

7 카카에 대한 말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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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시차 때문에 피곤해 보이는 소년이 필드에 들어갔다. 그리고 곧 천국의 광경이 우리의 눈 앞에 펼쳐졌다.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이렇게 엄청난 선수를 내려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 카를로 안첼로티[55]
"그와 같은 세계적인 선수가 맨시티로부터의 이적에 대해 언급하는 일은 항상 흥미롭고 흥분된다. 우리는 그를 영입하고 싶다." -마크 휴즈
"그는 완벽한 선수다." -펠레[56]
"카카가 밀란을 떠나서 아쉽다. 2~3년 동안 카카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였다." -안드레아 피를로[57]
"전에도 카카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를 직접 지도하고 나니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뛰어난 선수다. 카카를 지도해 행복하다." -마누엘 펠레그리니
"내가 보기에 카카는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다. 그의 축구 능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카카의 재능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는 축구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팀원들의 자신감을 올려준다."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모든 걸 다 갖춘 엄친아같은 선수다. 잘 생기고, 공도 잘 차고 돈도 잘 번다. -차두리

8 어록

절대 두렵지 않다. 나를 믿는 10명의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닮고 싶은 선수는 있지만 되고 싶은 선수는 없다.
강한 팀이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팀이 강하다.
노력을 인정받는다는 것은 항상 즐거운 일이다.

9 기록

9.1 대회 기록

  • 상 파울루 (2001 - 2003, 2014)
    • Torneio Rio-São Paulo (1) : 2001

9.2 리그 기록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대륙대회
경기득점도움경기득점도움경기득점도움
2001상 파울루브라질 세리에 A2712-71-50-
2002상 파울루브라질 세리에 A229-96----
2003상 파울루브라질 세리에 A102-50----
2003/04AC 밀란이탈리아 세리에 A301044001041
2004/05AC 밀란이탈리아 세리에 A36751001325
2005/06AC 밀란이탈리아 세리에 A351432001252
2006/07AC 밀란이탈리아 세리에 A318620015105
2007/08AC 밀란이탈리아 세리에 A301510000932
2008/09AC 밀란이탈리아 세리에 A31169101402
2009/10레알 마드리드스페인 라 리가2586100712
2010/11레알 마드리드스페인 라 리가1475300301
2011/12레알 마드리드스페인 라 리가2759400835
2012/13레알 마드리드스페인 라 리가1933210611
2013/14AC 밀란이탈리아 세리에 A3074100621
2014상 파울루브라질 세리에 A1921000000
2015올랜도 시티 SC미국 메이저리그 사커2897110---
2016올랜도 시티 SC미국 메이저리그 사커835000---

9.3 개인 수상

  • Maracana Hall of Fame : 2008
  • Samba D'or : 2008
  • Time 100 : 2008
  • 옹즈도르 (Onze D'or) : 2007
  • FIFA 클럽 월드컵 골든볼 : 2007
  • IFFHS 세계최고의 플레이메이커 : 2007
  • IAAF 올해의 라틴 스포츠맨 : 2007
  • Kicker 지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선수 : 2006-07
  • 세리에 A 올해의 외국인 선수 : 2004, 2006, 2007
  • 세리에 A 올해의 축구 선수 : 2004, 2007
  • 골드컵 BEST 11 : 2003
  • 세리에 A 올해의 유망주 : 2003
  • 콘카카프 베스트 11 : 2003
  • Bola de Ouro : 2002
  • Bola de Placar : 2002
  • UEFA 클럽 풋볼 어워드 : 최우수 공격수상 (2006-07), 최우수 미드필더상 (2004-05)
  •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 : 2006-07
  • UEFA 올해의 팀 : 2006, 2007, 2009
  • 발롱도르 : 2007
  • FIFA 올해의 선수 : 2007
  • FIFPro 월드 베스트 XI : 2006, 2007, 2008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골든볼 : 2009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베스트 11 : 2009
  • 2006년 FIFA 월드컵 맨 오브 더 매치 : vs. 크로아티아 (조별리그)
  • 2009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맨 오브 더 매치 : vs. 미국 (결승전)
  1. 외래어 표기 규정에 따르면, 로망스제어 및 게르만어권(영어 제외) 인명의 전치사 및 관사는 뒤 요소와 붙여 적는다. 이때 발음의 변화는 반영하지 않는다.
  2. 이 기록에 도전했었던 선수들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이 최종 후보에 올랐지만, 을 제치고 정점에 오른 것은 오직 카카 한 명 뿐이다.
  3. 다만 당시의 리오넬 메시는 지금처럼 미친 활약을 펼치는 괴물이 아닌 성장 가능성이 무한한 유망주로 평가 받았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팀의 핵심이었지만 지금의 레알 마드리드에서 보여주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펼치기 전이었기 때문에 전성기를 달리는 카카가 둘을 제치고 발롱도르를 수상할 수 있었던 것은 시기적인 운도 따라줬다. 물론 혼자 힘으로 망해가는 밀란에게 빅이어를 선사해준 당시의 포스라면 어떠한 이견 없이 발롱도르를 수상할 수 있는 선수임은 분명하다.
  4. 발롱도르는 탔지만 셀레상의 전성기는 호나우두가 아니라 호마리우와 둥가 세대로부터 시작하며, 마지막으로 대표한 것은 엄밀히 말하면 호나우지뉴라고 할 수 있다. 카카가 주축이 된 후 브라질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또 후계자로 네이마르가 있긴 하지만 지금 브라질 상황으론 예전만 못하고 있다. 발롱도르도 두 명의 신계가 버티고 있는 상황.
  5. 본인 말로는 중산층이라고 하지만 상당한 부자로 알려져있다. 부모님 인심이 넉넉하신 건지 10대 시절 카카는 돈이 없거나 집이 너무 멀어서 귀가하기 어려운 팀 동료 선수들을 자기 집에 데려가 재워주기도 했고, 카카가 없을때도 동료 선수들이 찾아갔을때 잘 대접해줬다는 일화가 있다.
  6. 비록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우승 했지만 큰 의미를 두긴 어렵다. 카카가 뛴 시간이라고는 코스타리카전 잠깐, 그것도 브라질이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으니까 들어간 게 전부다. 사실상 자기 이름만 올려놓고 월드컵 우승멤버가 된 셈이다.호나우두도 94월드컵엔 엔트리에 이름만 올리고 우승멤버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 당시 브라질 국가대표팀은 지금이랑 달랐다. 정말 세계 최고만이 들어갈 수 있던 팀이었다. 그 나이에 브라질의 월드컵 국가대표선수로 발탁 되었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업적이라 할 수 있다.
  7. 이는 다소 잘못된 말이다. 당시 맨유 수비진이 통곡의 벽으로 불렸던 건 사실이지만 AC밀란과의 1차전에는 그 핵심인 비디치, 퍼디난드가 모두 결장했고 풀백인 에인세가 브라운과 함께 센터백을 보고 있었다. 실제로 저 영상에서 카카에게 털리는 선수는 순서대로 대런 플레처, 가브리엘 에인세, 파트리스 에브라로 전문 센터백은 단 한명도 없다. 물론 퍼디난드 비디치가 정상적으로 나왔다고 해도 막을 수 있었을지는 장담하기 힘들정도로 그 당시 카카의 퍼포먼스가 무지막지했던 것은 사실이다. 무리한 복귀였다곤 하지만 2차전에 선발 출장한 비디치 역시 탈탈 털린 건 똑같으니..,
  8. 맨유 홈에서 벌어진 1차전은 맨유가 3-2로 승리했으나 밀란의 2골은 모두 카카가 기록했다. 그리고 2차전에서도 1골을 기록하며 5-3 스코어중 3골을 마무리했다.
  9. 이 때의 카카는 혼자서 경기 판도를 뒤집어 놓을 수 있는 선수였고, 정말 공격진에서 혼자 활약을 하며 팀을 챔스 리그에서 우승시켰다.그런 말 들으면 섭섭할 밀란 공격진 일동 - 대표 질라르디노.
  10. 혼자서 맨유 수비수들 네명을 관광보내고 기록한 골은 정말로 압권 그 자체.
  11. [1]
  12. 당시 한화 2000억
  13. 당시 역대 3위의 이적료. 한화로 약 1100억
  14. 이에 당연하게도 무리뉴는 '난 솔직히 그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라고 반응했다.
  15. 메시와의 비교가 있는데 메시의 경우 08 올림픽 때 팀의 명령을 거부하고 출전한 경력이 있지만, 카카처럼 부상을 숨기고 간 것도 아니었고, 아르헨 협회와 바르셀로나가 법적 분쟁까지 갈 정도로 다투다가 바르샤가 승소한건 맞지만 그당시 감독에 오를 예정이었던 펩 과르디올라가 메시의 편을 들며 올림픽 참가를 허락하라고 팀과 보드진을 설득했다. 거기다 올림픽 금메달까지 땄으니 해피하게 마무리 되었다만 카카는 부상을 숨긴데다 감독의 믿음도 배신했고 월드컵은 8강에서 떨어졌고 게다가 그 이후 완전히 먹튀로 전락하고 말았다.
  16. 이는 완벽하게 치료할 수 없는 부상으로 레알 의료진은 경기전 후 30분씩 운동하는 것으로 문제를 막을 수는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근본적 해결은 불가능하다.
  17. 같은 시즌 EPL 최상급 플레이어 나니가 38경기 9골 18어시였다는 걸 생각하면 클래스는 여전했다. 경기에 못 나와서 그렇지.
  18. 클래스는 물론 여전하지만, 공격쪽에 포진한 선수들 전부 미친 것처럼 스탯 올리는 레알 마드리드 선수라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반면 맨유는 1:0 꾸역승의 본좌.
  19. 덤으로 이 때 볼 트래핑 실수로 카카에게 공을 넘겨주고 뒤에서 빨빨거리면서 쫓아가다가 끝내 GG친 루저바로...이 때 카카는 교체 투입된 상황이라 체력적으로 우위에 있긴 했다. 간혹 메시 팬들중 메시가 카카보다 빠른데 체력 때문에 따라잡지 못했다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스피드면에선 원래부터 카카가 메시보다 뛰어났다.게다가 체력 문제가 있다 치더라도 뒤따라 달려가는 메시를 보면 체력이 떨어져 설렁설렁 가기보다는 정말 공을 뺏게다는 집념으로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그럼에도 공을 드리블하는 카카를 따라잡기는 커녕 뒤로 서서히 밀리니 당시엔 속도 면에선 카카가 우위라고 할수 있었다
  20. 일단 스포츠 탈장이라는 부상의 특수성상 예전같은 치달 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힘들다고 한다.
  21. 다만 승부차기에서의 패배를 카카의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첫번째 키커였던 호날두도 실축했고 마지막 키커였던 라모스는 아예 나로호를 쏘았다.
  22. 카시야스는 '괜찮다'는 격려와 응원의 말과 함께 올린 것이었지만 다른 선수도 아니고 탈락의 일등 공신 카카의 너무나 해맑은 표정에 마드리드 팬들은 황당...
  23. 심지어 교체조차 하지 않는다. 이번 시즌엔 라리가 경기 중 그라운드를 밟아본 적도 없다.
  24. 덕분에 카카 팬들에겐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다. 카카가 몸값을 하지 못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나 현재 외질의 폼을보면 카카를 교체카드로도 써보지 않는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그러나 정작 교체나 선발로 나왔을 때에는 외질이나 카카나 다를바 없었다.
  25. 이 경기에서는 아무도 잘한 선수가 없었다.
  26. 애초에 엄청난 주급을 받으면서도 이정도 활약밖에 못한 선수가 3년 이상씩이나 레알 마드리드에 남아있는 건 전례가 없다. 대부분 1년에서 2년 사이에 다 팔려나갔지. 오직 카카라서 그나마 믿었을 뿐...
  27. 이 부분은 오심이라는 이야기도 나오는등 논란의 여지가 있다.
  28. 네이마르나 간수가 요즘 치고 올라온다고 하지만 아직 더 익어야한다.
  29. 뭐 당시 결과적으로 이 서술에 어울리는 선수는 2013년 남미 올해의 선수였던 호나우지뉴였다.
  30. 2012/2013 정규 리그에 한 경기도 나오지 않았음에도 차출되어 버려 해결되었다. 2014년까지 국대로 남아있을까 하는 문제는 두고봐야 알겠지만..
  31. 카카 주급이 조금만 적었어도 무리뉴시절이나 현재 안첼로티의 레알은 더 많은 선수를 살 수 있었다.
  32. 14-15시즌 기준 카카는 상파울루에서 에이스 놀이, 토레스는 밀란에서 스트라이커 말고 얼굴마담으로 활동 중. 첼시랑 레알 입장에선 두 선수 모두 희대의 먹튀.
  33. 09/10 챔스 16강 대 리옹 2차전. 10/11 챔스 4강 대 바르셀로나 2차전. 11/12 챔스 4강 대 뮌헨 2차전. 12/13 챔스 4강 도르트문트 대 2차전
  34. 10/11 코파 델레이 결승 대 바르셀로나전. 11/12 프리메라 리가 35라운드 대 바르셀로나 전, 12/13 수페르코파 대 바르셀로나 전 2차전
  35. 대 바르셀로나전 16경기 출전 4승 6무 6패. 1골 7어시. 카카는 대 바르셀로나전 12경기 2승 4무 5패 0골 0어시
  36. 뭐 라치오의 멘디에타 영입의 경우는 라치오의 재정상태가 레알보다 확실히 열세에 있으므로 타격은 더 컸겠지만 그건 팀 환경의 차이고 순수하게 누가 더 최고의 먹튀인가로 치면 당연 카카의 우위
  37. 가족문제라고 한다. 자녀들의 교육문제가 큰 것으로 보이는데 이때문에 아내와도 불화를 겪었다는 설이 있다.
  38. 여기서 카카는 밀란이 아닌 팀에선 22번을 쓰지 않겠다고 밝혔다.
  39. 2015 시즌 29경기 9골 7도움 기록.
  40. 실제 2002년 한일월드컵 대표팀에 당시 2003 U-20 월드컵 대표였던 정조국, 여효진, 최성국, 염동균이 훈련 파트너로 참가했고, 벤치멤버로서 형님들의 경기를 지켜보는 행운을 누렸다.
  41.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브라질 대표팀 벤치멤버로 19세라는 어린 나이에 호나우도가 뽑혔다. 그리고 당대의 레전드급이었던 베베토, 호마리우 등에 활약으로 월드컵에서 우승을 하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비록 쟁쟁한 선배들에게 밀려서 직접 경기를 뛰지는 못했지만, 상당한 경험을 쌓았다고 이야기를 했다.
  42. 둘의 플레이 스타일이 거의 비슷하니 안 맞는게 당연하다. 여기에 수비가담이 좋지 않다는 공통점까지...
  43. 독일 월드컵에서는 8번을 달았다. 당시 브라질 대표팀의 10번은 호나우지뉴
  44. 39세까지 국대에 승선했던 로타어 마테우스와 같은 경우도 있으나, 마테우스의 경우는 그래도 포지션이 수비수였고, 그 때까지 꾸역꾸역 국대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그나마 그 마테우스도 마지막 국대였던 유로 2000에선 1무 2패 광탈이라는 흑역사에 기여(...)하는데 그쳤다.
  45. 특히 팀을 다 잡아 줄 베테랑의 부재가 가장 컸다. 4강 전까지는 치아구 시우바가 주장을 맡으며 팀을 잘 이끌어 드러나지 않았지만. 시우바가 경고누적으로 출전을 못하고 다비드 루이스가 주장을 맡자...
  46. 유럽 주요 1부 리그에서. 아르헨티나 같은 경우는 여전히 플레이메이커가 판친다. 그리고 유럽 주요 1부 리그 내에서도 여전히 플레이메이커 쓰는 구단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47. 이 부분이 2000년 후반대에 세리에 정상급 공미로 활약한 웨슬리 스네이더와 확실히 대조되는 부분. 자세한 비교는 항목 참고
  48. 로시츠키는 커리어 내내 수많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최정점의 능력을 자랑해 왔다. 카카의 몰락을 단순히 불운으로 치부하기는 어려운 이유. 또한 카카와 비슷한 코스를 밟은 선수가 있다. 마이클 오언
  49. 킬패스 혹은 직접 돌파 후 득점
  50. 카카의 나이 23세, 캐롤라인의 나이 18세 때 결혼했다.
  51. 물론 일이 있다는 건 뻥이다.
  52. 국내에는 이름이 올리비에라 라고도 알려져있는데 이전에 열애설이 난 상대가 미스 브라질 올리비에라다.
  53. 멘탈 하나만큼은 카카에 버금갈 군자급이며 국대에선 잘하는 애국자다. 최근엔 장군이란 별명도 얻었지만...클럽에서는 먹튀. 세리에의 4대 먹튀 콰밥만훈 가운데 밥이 바로 밥티스타다.
  54. 그리고 이 해에 챔스 우승을 견인하고 발롱도르까지 수상한다. 관심을 안받을래야 안받을 수가 없다...
  55. 자서전에서 카카가 처음 훈련장에 출근했을때를 회고하며. 참고로 카카가 처음 영입될 당시 정보가 없어서 그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기자회견 당시 기자들이 이번 영입에서 기대하는 강점을 말해 달라고 했는데 카카에 대해토니누 세레조와 비슷한 타입의 선수라고 설명했다고.. 그리고 첫 연습날에도 실력에 대한 기대는 크게 없었는지 "부모님이 차로 데려다 줘야 찾아올 것 같은데"란 생각을 하거나 "부모님께 학교 안 간다고 말씀드렸니?" 같은 시답잖은 농담이나 던졌는데, 필드로 들어가서 공을 만지자 그 플레이 하나하나에 엄청난 충격을 먹었다고.
  56. 2007년 카카의 발롱도르 수상 이후 펠레의 발언.
  57. 2009년 카카가 밀란을 떠난 후 한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