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매리너스 No.46 | |
마이크 햄튼(Michael William Hampton) | |
생년월일 | 1972년 9월 9일 |
국적 | 미국 |
출신지 | 플로리다주 크리스털 리버 |
포지션 | 선발투수 |
투타 | 좌투우타 |
프로입단 | 1990년 드래프트 6라운드 시애틀 매리너스 지명 |
소속팀 | 시애틀 매리너스(1993) 휴스턴 애스트로스(1994~1999) 뉴욕 메츠(2000) 콜로라도 로키스(2001~2002) 애틀란타 브레이브스(2003~2008) 휴스턴 애스트로스(2009)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2010) |
지도자 | 시애틀 매리너스 불펜코치(2016~) |
1 소개
마이크 햄튼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던 투수겸 타자다.
2 선수 시절
원래 시애틀 매리너스가 아마추어 드래프트 전체 5라운드에서 지명하였고 데뷔도 시애틀에서 했지만 "이건 아닌가벼"라 생각을 했는지 이듬해 휴스턴으로 트레이드 했다. 그리고 휴스턴에서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는 준수한 투수로 성장하였다. 1999년에는 22승 4패 2.9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여 사이영 2위와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이 시즌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역시 20승 이상을 올렸던 호세 리마(1999년 21승 10패 3.58)와 햄튼을 팀의 에이스로 두고 고민하다 결국 호세 리마를 잡는 것으로 선택했고, 이후 햄튼은 2000년에 뉴욕 메츠의 내셔널리그 우승멤버로 활약했다.[1]
그리고 2001년 FA 자격을 얻어 8년 1억 2,100만 달러의 미국 스포츠 전체 32위 규모의 초대형 계약[2]을 맺고 콜로라도 로키스에 입단하였다. 문제는 로키스의 구장 쿠어스 필드가 해발고도 1,600m에 위치하고 있는 악명 높은 타자친화 구장. 해발고도가 높은 곳에 있는만큼 공기저항이 적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공이 더 멀리 뻗는다. 그 때문에 구장을 크게 지었는데 외야도 넓어서 외야수가 어버버하면 바로 장타로 직결된다. 때문에 어깨가 매우 좋거나 다리가 빠르고 수비력이 뛰어난 외야수들로 외야를 채우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부터 먹튀의 전설이 시작된다.
여기에는 비화가 있는데, 1993년부터 리그에 참여한 콜로라도 로키스는 그 쿠어스 필드의 특성 때문에 타자들은 40홈런 슬러거들이 자주 배출되었고 평범한 타자들도 쿠어스필드에선 홈런을 뻥뻥 쳐냈지만, 투수들은 반대로 죽을 맛이었다. 매년 정규리그 팀 방어율 꼴찌를 도맡아 했고, 선발 투수 중 규정 이닝을 채우는 선수도 드물었으며 그중 방어율 3점대를 기록한 선수는 팀 창단 11년이 지난 2004년에야 최초로 나왔을 정도.(그 투수는 조 케네디이다.)
이때문에 매번 투타불균형으로 무너지던 팀의 밸런스를 개선하기 위해 고심하던중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FA자격을 얻었던 뛰어난 땅볼유도형 투수 마이크 햄튼이 시장에 나왔다. 거기다 그 당시 한참 세이버매트릭스를 통해 주목받던 땅볼유도형 투수의 가치가 날로 치솟고 있었다. 이 때문에 로키스는 쿠어스에서도 땅볼유도형 투수가 통할거라는 가능성을 믿고 과감하게 큰돈을 질렀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2년이 지나고 나서 알게 되었다(...).[3]
대체로 콜로라도 시절인 01년과 02년을 싸잡아서 까는 경향이 있지만, 01년은 마이크 햄튼 나름대로 선전한 편이다. 산에 올라간 효과로 안타나 홈런이 증가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대부분의 지표는 전성기 시절과 비슷했다. 사실 6월까진 덴버의 등불이라 불리며 꽤 긴 기간 2점대 방어율을 유지하는 등 로키스가 원한 에이스 역할을 제대로 해주는 듯 했지만, 6월말 그해 월드시리즈 우승팀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에서 3이닝 7자책으로 무너지면서부터 속수무책, 결국 시즌을 망쳤다.[4] 01년 성적이 너무 안나오자 자신감을 잃었는지 02년 시즌을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결국 더이상 안되겠다고 판단한 콜로라도는 햄튼을 애틀란타로 넘겼다.
사실 투수에게 8년 계약을 줄 때부터 먹튀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했는데, 이 때부터는 리그 대표 먹튀(...)의 멍에까지 뒤집어 썼다. 이 와중에 플로리다가 뜬금없이 햄튼의 연봉을 뒤집어 썼는데, 원래 02시즌을 마치고 콜로라도와 플로리다가 4대2 트레이드를 감행해서 햄튼이 플로리다 소속이 되었는데, 시즌이 시작되기 전 다시 햄튼을 애틀랜타로 넘기고 투수 두명을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하면서 결론적으로 햄튼은 써보지도 못하고 햄튼의 잔여연봉 8500만 달러 중 5천만달러를 콜로라도와 분담해서 부담하게 된 것(...)
산에서 내려온 03년 기존의 충격에서 벗어난 듯 190이닝에 14승 8패, 3.84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였다. 준수한 편이라면 준수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1천만 달러를 넘게 투자하는 투수치고는 살짝 부족한 성적인데 2004년에는 평균자책점이 4.28로 치솟았다. 여담으로 그해 시즌 초 죽을 쓰다가 랜디 존슨이 퍼펙트게임을 기록한 경기에서 상대 선발투수로 등판, 9이닝 2실점 완투패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후에도 다시 죽을 쒔다. 명예회복에 나선 2005년 부상크리. 게다가 부상부위는 팔꿈치여서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았다.
2006년은 토미 존 서저리 재활로 인해 시즌아웃, 2007년에 복귀를 준비하다가 수술부위에서 통증이 가시지 않고 몇 가지 문제가 확인되어 다른 수술을 받는 바람에 다시 시즌아웃. 2008년에는 이제 복귀하나 했는데 이번엔 스프링캠프 막바지에 흉근 부상. 결국 2008년 7월 말에 전열에 복귀할 수 있었다(…). 긴 부상과 재활로 인해 과거와 같은 성적을 기대하기에는 무리였다.
장기계약이 만료된 2009년에는 친정팀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계약을 하여 로테이션에 뛰었으나 5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시망. 게다가 2009년 가을에 어깨 회전근에 문제가 생경하여 재건수술을 받는 바람에 2010년도 상큼하게 시즌아웃이다(…). 한 마디로 완전히 맛이 갔다. 다시 복귀를 한다고 해도 그의 나이는 40줄을 바라보고 있어 조용히 은퇴수순을 밟을 확률이 높다. 결국, 2011년 3월말 은퇴선언을 했다.
그야말로 먹튀계의 레전드. 사실 전설의 레전드 대런 드라이포트도 이 분에 비하면 양반이다. 진짜로 드라이포트는 한팀에서만 먹고 튀었지만 햄튼은 두 팀에서 먹튀했기 때문(...) 게다가 위에서 설명했듯 플로리다 말린스에서는 단 한 경기도 뛰지 않았음에도 돈을 받아냈다. 이건 뭐 먹튀도 아니고 그냥 먹(...) 경기 안 뛰고 돈 받기 vs 경기 뛰었는데 안 뛰는 것만 못하기 당신의 선택은?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타격 실력이 뛰어나 2001년 콜로라도 로키스 시절에는 홈런 7개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로 매년 한두개씩 때려주곤 한다. 2002년엔 당연히 규정 타석엔 못 미쳤지만 .344의 타율을 기록하기도. 여담으로 통산 타율이 .246 통산홈런 16개. 참고로 통산타율이 Big Z보다 높다! 뛰어난 타격실력은 투수 실버슬러거 최다수상(5회)으로 보답받았다. 베이스볼 레퍼런스 기준으로 그의 통산 타격 WAR은 자그마치 8.2이다. 참고로 투수로서의 WAR은 20.8
2015년 11월 24일 자신이 처음 데뷔했던 시애틀 매리너스의 불펜코치로 합류했다.
2016년 1월 6일 발표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는 첫해부터 단 한 표도 받지 못하고 0.00%로 일찌감치 광탈했다.- ↑ 1999년 겨울 데릭 벨과 함께 뉴욕으로 트레이드되었는데, 이때 휴스턴으로 옮긴 선수 중엔 최고의 자질(을) 가진 선수가 있다.
- ↑ 2011년 12월 기준
- ↑ 그리고나서 콜로라도 로키스는 아예 휴미더를 설치해 공인구의 습도를 조절하는 방식까지 채용하며 투수진 강화에 전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2000년대 후반부터 쿠어스필드는 이전처럼 탁치면 억하고 넘어가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타자에게 유리한 구장정도로 파크 팩터가 떨어졌다.
- ↑ 애리조나전 이전까지 11승3패 3.06, 애리조나전 이후 5승13패 7.56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