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시절.
1999년 디트로이트의 홈구장을 방문한 피드리치.
이름 | 마크 피드리치(Mark Steven Fidrych) |
생몰월일 | 1954년 8월 14일~2009년 4월 13일 |
국적 | 미국 |
출신지 | 매사추세츠 주 우스터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1974년 드래프트 10라운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 지명) |
소속 팀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1976~1980) |
1976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신인왕 | |||||
프레드 린 (보스턴 레드삭스) | → | 마크 피드리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 → | 에디 머레이 (볼티모어 오리올스) |
1 소개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前 야구선수.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서 뛰었으며 특이한 행동과 화려한 쇼맨십,긍정적인 성격으로 인기가 많았던 선수 였다.신인 시절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디트로이트의 미래로 기대를 받았으나 부상으로 인해 젊은 나이에 은퇴한 비운의 선수다.
선수 시절 별명은 The Bird
2 선수 시절
2.1 1976 시즌
1974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 입단한 피드리치는 1976년이 되어서야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가졌다.4월 20일 고 1개만 던지고 교체되며 데뷔전을 치루었고(...),5월 5일 9회에 등판해 1이닝을 던졌다.
5월 15일 미네소타 트윈스전에서 등판예정이었던 선수가 독감에 걸림으로 인해 대신 선발투수로 등판했다.이 경기에서 피드리치는 2피안타 1실점으로 완투승을 거두며 메이저리그 첫 승을 완투승으로 장식했다.
다음 경기인 5월 25일 보스턴 레드삭스전에 등판한 피드리치는 8이닝 2실점을 했으나 타선이 침묵하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5월 31일에는 11이닝 4실점으로 완투승을 거두며 시즌 2승째를 거두었다.
6월 5일에는 텍사스 레인저스전에서는 버트 블라일레븐과 맞대결을 펼쳤다.피드리치는 11이닝 2실점으로 완투승을 거두며 시즌 3승째를 챙겼다.
6월 11일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전에서는 놀란 라이언과 맞대결을 펼쳤고,9이닝 3실점으로 완투승을 거두었다.
6월 16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전에서도 9이닝 3실점으로 완투승을 거두었다.
6월 20일 미네소타 트윈스전에서는 7.1이닝 3실점으로 시즌 6승째를 챙겼다.
6월 24일,피드리치는 자신에게 프로 첫 패배를 안긴 보스턴과의 경기에 등판,3실점 완투승으로 설욕함과 동시에 시즌 7승을 올렸다.
6월 28일,타이거 스타디움에 5만명이 모인 가운데,피드리치는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1실점 완투승을 거두었다.이 경기는 전국에 생중계 되었으며,이 경기를 계기로 피드리치는 전국구 스타가 되었다.
7월 3일 볼티모어 전에서도 역시 5만명의 관중이 모인 가운데,피드리치는 자신의 데뷔 첫 완봉승을 거두며 시즌 9승을 올렸다.
7월 9일 캔자스시티 전에서는 9이닝 1실점으로 완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패전투수가 되었다.
피드리치는 전반기를 9승 2패로 마무리하며 아메리칸리그 올스타에 뽑히며 올스타전에 선발투수로 등판했으나 2실점하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7월 16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전에 등판한 피드리치는 11이닝 완투승을 거두었다.
7월 20일 미네소타전에는 3실점 완투승을 따내며 시즌 11승을 기록했다.
7월 24일,피드리치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등판했으나 4.1이닝만 던지고 내려왔다.
7월 29일 볼티모어전에서는 완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승리투수가 되지 못했다.팀은 2루수 페드로 가르시아의 실책으로 인해 1:0으로 패배했다.
8월 7일,피드리치는 클리블랜드로부터 1실점 완투승으로 시즌 12승째를 따냈다.
8월 11일 텍사스전에서는 게일로드 페리와 맞대결을 펼쳐 시즌 13승을 기록했다.
8월 17일 캘리포니아전에서 피드리치는 팀의 3:2승리를 이끌었고,시즌 14승을 올렸다.
8월 25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전에서 피드리치는 1실점 완투승을 따내며 시즌 15승을 올렸다.
9월 3일 밀워키 브루어스전에서는 3.2이닝 동안 9실점을 하는 최악의 모습을 보였다.팀은 11:2로 패배했다.
9월 12일 양키스전에서 피드리치는 5피안타 완봉승을 거두었다.
9월 18일 클리블랜드전에서도 완봉승을 거두며 시즌 18승을 올렸다.
10월 1일,피드리치는 밀워키전에서 1실점 완투승을 따내며 시즌 19승째를 올렸다.
피드리치는 1976년 시즌을 19승 9패 방어율 2.34로 마무리했고,그 해 아메리칸리그 신인왕을 차지했다.피드리치의 성적은 사이 영 상도 충분히 노릴만한 성적이었으나,안타깝게도 짐 파머에 이은 2위에 그쳐 수상에 실패했다.
1976년 시즌이 끝나고 피드리치의 인기는 하늘을 찔렸으며,그가 등판하는 날이면 경기장은 만원 사례였다.피드리치가 등판한 홈 경기에 모인 관중 수는 그 해 디트로이트 관중 수의 절반에 달했다.심지어는 원정경기를 갈 때는 상대 팀이 피드리치가 나오도록 로테이션을 조정해주면 안되겠냐고 요청하기까지 했다.디트로이트 팬들은 경기에서 승리하면 '더 버드를 원한다'고 외쳐댔다.이전까지 16500달러를 받던 피드리치는 시즌이 끝나고 25000달러의 보너스를 받았으며,3년 25만 5000달러 게약에 합의했다.
피드리치는 1976년 이후 메이저리그의 인기스타가 되었으며,디트로이트의 미래로 주목받았다.팬들은 피드리치가 앞으로 꾸준히 활약하며 디트로이트의 스타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하지만...
2.2 날개 꺾인 천재
1977년 스프링 트레이닝 도중 무릎연골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는다.이로 인해 피드리치는 5월 27일이 되어서야 첫 경기를 가졌다.이 경기에서 피드리치는 2실점 완투패를 당했고,다음 경기에서도 6이닝 5실점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하지만 이후 6경기를 모두 완투하며 6연승을 달렸고,전년도의 모습을 이어갔다.하지만 7월 4일 볼티모어 전에서 피드리치는 팔꿈치 부상을 입었고,데드 암 증세가 나타났다.회전근이 찢어진 상태였지만 피드리치는 이를 전혀 알지 못했다.이 경기에서 5.2이닝 6실점을 했으며,다음 경기에서도 5.2이닝 6실점을 하며 무너졌다.결국 피드리치는 올스타전을 앞두고 시즌아웃되었다.
1977년 이후 피드리치는 81이닝을 소화하는데에 그쳤고,재활에 매달렸지만,결국 재기에 실패하고 1980년을 끝으로 은퇴했다.당시 피드리치는 고작 29살이었다.
3 은퇴 후
은퇴 후 피드리치는 1986년 결혼해 딸을 낳았으며,도로 정비와 관련된 일을 하다가 2009년 4월,고장난 트럭을 수리하다 옷이 회전축에 들어가 질식사로 사망했다.
4 기행의 사나이
선수 시절 수많은 기행으로 유명했는데,항상 마운드에 올라와서 마운드의 흙을 정리하는 행동을 했으며,자기자신과 공에게 뭔가를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렸다.또한,삼진을 잡으면 화려한 리액션을 선보였으며,완투승을 거두면 마운드에서 폴짝폴짝 뛰어다녔고,홈 팬들과 일일히 악수를 하기도했다.이러한 행동들은 디트로이트 팬들을 열광시켰으며,피드리치를 개성넘치는 캐릭터로 만들어주었고,그를 인기스타로 발돋움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