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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Manchester United F.C. | 맨체스터 시티 FC Manchester City F.C. |
맨체스터 더비(Manchester Derby) |
1 개요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의 더비 매치 중 하나이다. 일반적으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vs 맨체스터 시티.
넓게 보면 영국의 그레이터 맨체스터 주에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시티, 볼턴 원더러스, 베리 FC, 올덤 애슬레틱, 로치데일 AFC, 위건 애슬레틱간의 경기를 모두 그레이터 맨체스터 더비라고 하지만 사실 맨유 vs 맨시티를 제외하면 다른 팀들과의 라이벌 관계는 옅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첫번째로 리그 차이가 나서 만나기 어려운 점도 있고 두번째로 같은 그레이터 맨체스터 주라고는 하지만 사실 중심부 맨체스터 '시'에 '거점을 두고 있는' 프리미어 리그의 팀은 맨유와 맨시티 둘 뿐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팀들은 팀명대로 각각 볼튼, 베리, 올덤, 로치데일, 위건[1] 등에 위치해 있다. 그 외에도 그레이터 맨체스터 주의 축구팀들은 많고[2] 사실 계속 밑으로 내려가면 11부 리그부터는 맨체스터 자체 리그라 맨체스터 주 소속 팀들만 참여하지만, 이건 더비로써의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이 문서는 맨유 vs 맨시티만을 설명한다.
2 배경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산업혁명의 태동지였던 맨체스터에 빠르게 중산층 노동자가 생기면서, 여가생활로 축구가 인기를 끌게되면서 맨체스터 지역에 처음 생긴 축구 클럽이다. Lancashire Yorkshire의 뉴턴 히스 지사 근무자들이 쉬는 시간에 모여 만든 것이 그 유래며, 1878년 뉴턴 히스 LYR F.C.(Newton Heath LYR F.C.)란 이름으로 창설되었다. 1902년 4월 26일부터 새롭게 지금의 이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가지게 되었다.
- 맨체스터 시티: 처음 시작은 1875년 웨스트고던의 세인트 마크스라는 교회 크리켓 팀으로 시작한 선교 목적의 기독교 축구팀이었다. 프로축구를 위해 창단된 구단이 아니었다. 세인트 마크 교회의 팀은 Ardwick AFC로 이름을 바꿨고, 하이드 로드로 이동했으며 이탈리아 몰타 지역의 기사를 상징하는 십자가가 새겨진 검은 색 바탕의 첫 유니폼을 발표했다. 검은 색은 1880년대의 프리메이슨과의 관계를 상징하고 흰 십자가는 모태인 세인트 마크 교회가 여전히 시티의 정신 속에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을 의미했다. 1894년 상장을 하면서 맨체스터 시티로 바뀌게 됐다.
맨체스터 시티는 애초에 프로축구를 목표로 창단되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는 다른 목적으로 창단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1875년에 창단된 교회 크리켓 팀이 당시 치안 및 생활 수준이 낮은 편이었던 맨체스터 동부 지방에서 선교를 목적으로 1880년 축구로 종목을 바꿔 재창단한 것이다.
3 역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역대 순위 변화 출처 |
맨체스터 시티 FC의 역대 순위 변화 출처 |
첫 맨체스터 더비는 1881년 11월 12월. 맨유는 맨시티를 상대로 3:0의 승리를 기록하면서 그때 당시 신문에 '유쾌한 경기'라고 묘사되었고 첫 리그 더비 경기였던 1894/95 시즌에서는 맨유가 5:2로 맨시티를 이겼다. 2차 세계 대전 이전만 하더라도 많은 맨체스터 축구팬들은 맨유와 맨시티 경기를 번갈아가면서 두 팀을 모두 좋아하는 팬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이다. 원래 두 구단은 상당히 사이가 좋았으며 서로 선수 이적도 많이 할 정도였다.
맨체스터 시티의 하이드 로드 근처 탄광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23명의 광부가 사망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Ardwick과 Newton Health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 이름)는 지역 주민들을 돕기 위한 기금 마련 자선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맨체스터의 축구 팬들은 시티와 유나이티드 양 팀 모두를 응원할 정도로 팬의 구분이 없었고 심지어 2차 세계대전 중 맨유의 홈 구장인 올드 트래포드가 독일공군에 의해 파괴되자 4년간 맨체스터 홈구장 메인로드를 공유했다. 잉글랜드는 이탈리아와는 다르게 구장이 구단 소유라 공유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걸 생각하면, 어느 정도로 친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과거 두 구단이 친했던 시기부터 축구를 봤던 나이 지긋한 맨체스터의 노인들은 여전히 두 팀을 다 응원하기도 한다.[3]
하지만 70년대에 들어서면서 관계에 변화가 생겼다. 더비에 얽힌 에피소드로는 1970년 12월에 일어난 맨체스터 더비에서 조지 베스트가 거친 태클로 글린 파도의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줬고, 73-74시즌 전성기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누리고 말년에 시티로 이적한 데니스로가 맨유가 이겨야만 했던 더비전에서 골을 기록했다. 경기가 끝나고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골로 인해서 너무나 우울했고 수많은 골을 넣었지만 가장 원하지 않는 골을 넣었다고 밝히면서 그대로 축구계를 떠났다. [4]
이후 맨유는 1시즌 만에 1부리그로 승격을 하고 다시금 잉글랜드 리그의 강호로써 군림한 반면 맨시티는 80년대부터 20여년을 1부에서 3부까지 오가는 별볼일없는 팀이 되어 버렸다. 이처럼 두 구단은 실력차가 좀 있었기 때문에 더비가 더비 같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2008년 맨시티에 구단주 만수르가 들어오고 오일머니를 이용해 폭풍영입을 하면서 맨시티의 전력이 급상승하고 리그 우승까지 차지하자 예전보다 주목받는 더비가 되었다.
4 더비 매치
2011년, FA컵 4강에서 맨유와 맨시티는 만났다. 경기가 시작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분위기를 잡았지만, 후반 마이클 캐릭의 실책으로 공이 야야 투레에게 가게된다. 야야 투레는 그 찬스를 날려먹지않고 골로 연결시켰고, 맨체스터 시티가 승리하게 된다. 맨체스터 시티로선 이 경기가 사실상 거의 우승이나 마찬가지였고, 그렇게 맨체스터 시티는 기세를 이어나가 스토크시티를 1:0으로 이기고 FA컵 우승을 하였다. 한 편, 그 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리그 우승을 했다. 그리하여 다음 시즌 시작 전 커뮤니티 실드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는 또 한 번 맞붙었는데 역전과 재역전 끝에 맨유가 3:2로 역전승을 거둬 우승했다.
그리고 퍼거슨도 이제 조금은 맨체스터 시티를 인정하는 분위기라 맨체스터 시티도 이젠 무시 못 할 상대라고 만치니에게 말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맨유가 홈에서 1974년 이후로 져 본 것은 2008년 1번 뿐이었다. 그런데, 2011년 10월 23일 리그 9차전 안방경기에서 21분 발로텔리 골로 맨유 0 - 1 맨시티 상황에서 조니 에반스가 퇴장당했다!!! 더비를 망친 조니 에반스의 퇴장으로 1명이 없는 상태에서 후반전 경기하게 된 맨유. 중앙 수비를 보던 에반스의 퇴장이 발단이되어 6:1이라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경기 주심은 마크 클라텐버그. 이는 1989년 9월 맨시티 안방에서 맨유를 5-1로 꺾은 이후 가장 큰 점수 차이다. 역사적으로 봐도 맨시티가 맨유를 6-1로 이긴 건 1926년 1월 맨시티 안방 경기 뒤로 85년 만이자 5골 차 승리도 1955년 2월(5-0) 뒤로 56년만이다. 마리오 발로텔리의 "Why always me?"가 나온 그 경기. [5]
2012년 1월에 열리는 FA컵 3차예선(64강전)에서부터 또 맨체스터 더비가 이뤄졌다! 결과는 3:2로 맨유승. 맨시티는 1명 퇴장당했다. 같은 해 둘 다 챔피언스리그에서 32강 3위로 탈락하면서 유로파리그에서도 맞붙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일찌감치 16강에서 맨시티는 스포르팅 CP에게 패배, 맨유는 아틀레틱 빌바오에게 패배해서 두 팀 다 떨어졌다.
11-12시즌 36차전에서 맨시티 원정으로 더비가 벌여졌다. 초반에는 막강 화력을 자랑하며 맨유 원정을 대승한 맨시티이지만 중후반부에 가서 사그러들면서 하위팀 원정도 고전 끝에 리그 1위를 맨유에게 5달만에 빼앗긴 상황. 게다가 맨유는 맨시티 원정만 빼면 남은 경기들이 죄다 중하위권 팀들 뿐이라 리그 우승이 유리하게 되었다. 반대로 맨시티는 아스날 원정을 비롯하여 중하위 원정을 무시못하기에 어려운 상황. 4월 22일 맨유가 에버튼에게 비기면서 맨시티는 자력우승이 가능하게 되었다. 맨체스터 더비 이후 맨유는 탄탄하게 조직력을 다지고 있는 마틴 오닐 감독의 선더랜드와 시합을 해야 하고, 맨시티는 11-12시즌 돌풍을 일으킨 뉴캐슬과 시합을 해야 한다. 즉, 우승을 향한 여정은 맨체스터의 두 팀이 비슷한 조건이 된 셈. 결국 실질적으로 맨체스터 더비가 결승전이 되었다고 축구팬들은 신나하는 그 탓인지 맨체스터 더비 표 값이 급등했다고 한다. 경기는 맨시티가 1:0으로 이겨 순위가 뒤바뀠고 결국 맨시티는 44년만에 리그 우승을 달성하게 된다
12-13시즌에선 리그에서만 2번 만나 올드 트래포드에서는 맨시티가 이기고 CoMS에서는 맨유가 이기는 뭔가 알쏭달쏭한 결과가 나왔다.
13-14시즌 두 차례의 맨체스터 더비에서 맨시티가 이겼다. 모예스의 작품. 에버튼 시절에 맨시티를 잡았던 게 신기할 뿐이다. 첫번째 대결 스코어는 4 : 1 로 맨시티가 승리. 그리고 두번째 대결인 맨유 홈에서는 나스리가 문전 앞에서 기회를 잡아 골대를 맞추는 슈팅을 쐈고, 여기서 튕겨나오는 볼을 제코가 손쉽게 밀어넣으면서 채 1분이 되기전에 선제골을 터뜨린 것이다. [6] .후반 시작 후 얼마 되지 않아 나스리가 올려준 크로스를 제코가 골대 상단에 완벽히 박아 넣으면서 2:0으로 맨시티가 앞서 나갔다. 야야 투레의 박스에서의 슈팅이 나오면서 3:0으로 맨시티 승.
14-15 시즌 열린 첫 맨체스터 더비에서는 크리스 스몰링이 어이없는 반칙들로 인해 퇴장당해서 결국은 세르히오 아구에로의 골로 1:0으로 맨시티가 승리했다. 조니 에반스에 이어 또 퇴장당하는 수비수 스몰링 2번째 경기에서는 경기 초반 아구에로의 선제골로 시티가 앞서갔으나 애슐리 영이 동점골을 기록했고 곧바로 펠라이니의 역전 헤딩골을 어시스트하며 경기를 뒤집었다. 후반 마타의 추가골과 스몰링의 헤딩골로 사실상 더비전의 승기는 맨유가 가져오게 되었다. 아구에로가 만회골을 넣었지만 이미 승부의 추는 기울었고 맨유는 맨시티를 4-2로 꺾고 서로 1승 1패를 주고 받았다. 이날 영은 1골 2도움을 기록하며 MOM 활약을 기록했다.
15-16 시즌은 EPL 10라운드에서 첫 맨체스터 더비가 열렸는데, 올드 트래포드에서의 1차전은 지리한 공방전 끝에 0-0 무승부로 끝났다. 그리고 시티 홈에서 열린 2차전은 마커스 래시포드의 결승골로 맨유가 1-0으로 승리하면서 더비전은 1승 1무로 맨유의 우세로 끝났다. 이날 마르틴 데미첼리스는 최악의 경기력을 선보였는데 래시포드의 골장면에서도 어이없는 수비로 한번에 벗겨졌으며 후반에는 조 하트를 보내버리며 결국 보다못한 페예그리니 감독에 의해 교체 아웃당하면서 이번 맨더비 패배의 1등공신이 되었다. 한편 래시포드는 이번 골로 역대 맨체스터 더비 최연소 득점자라는 기록을 갱신했다. 종전 기록은 2005년에 웨인 루니가 넣은 19살 112일(2-0 팀승리)에 넣은 1골이었는데 래시포드는 18살 141일 나이로 골을 기록했다. 공교롭게도 2경기 모두 맨시티 안방인 에티하드 스타디움에서 맨유가 이긴 기록이다.
16-17시즌에는 맨유에 조세 무리뉴 감독이, 맨시티에는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부임함에 따라 더욱 더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될 모양이다. 현재 세계 최고의 감독들이자 라이벌리티를 갖는 두 감독이기 때문. 게다가 과르디올라 와는 원수지간인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맨유로 이적하면서 또다른 재미까지 생겼다. 또한 현재 맨시티의 핵심 멤버로 자리잡은 케빈 더 브라위너가 첼시 시절 무리뉴의 눈 밖에 나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했던 것을 생각하면 볼거리가 상당하다. 그리고 맨시티가 2:1 승리를 거두며 시즌 첫 맨체스터 더비는 맨시티의 승리로 끝났다. 이후 리그컵에서 다시 더비 대진이 나왔으나 맨시티가 대놓고 2군을 낸 탓에 맥없는 경기 끝에 맨유가 1:0으로 이겼다.
5 기타
- 최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 두 팀을 다 뛴 선수는 가장 친한 선수는 박지성이라고 했던 테베스이다. 후에 그는 만치니와 불화가 생겼고, 지금은 다른팀으로 이적했다.
- 세르히오 아구에로는 2008년 세계 베스트 11을 꼽았는데, 3명의 맨유 선수를 포함시켰다. 그들은 리오 퍼더낸드, 에브라, 호날두. 그가 선택한 감독은 알렉스 퍼거슨. "난 알렉스 퍼거슨 경에게 경외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젠틀합니다. 그는 절대로 방향을 잃지 않죠. 그리고 그의 밑에서 뛰었던 나의 팀메이트 말에 의한다면, 그는 피치 위에 있을 때 항상 그의 선수들에게 올바른 지시만 내린다고 하더군요"라고 말했지만, 아구에로는 에이전트가 고가의 몸값을 정해놓는 바람에 맨유행은 성사되지 못했고 맨시티로 이적했다.
- 아야투레는 바르셀로나에서 맨시티에서 이적제의가 왔을 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인줄 알았다라고 밝혔다.
- 두 팀 중 시티가 긴 기간 언더독이었기에 시티 팬들의 유나이티드 팬들에 대한 악감정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 ↑ 사실 위건은 직선거리 상으로 맨체스터 시보다 리버풀에서 더 가깝다.
- ↑ 8부리그까지 20팀이다. 그중 한팀이 6부리그중 하나인 내셔널리그 노스에 있는 FC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다.
- ↑ 70년대 초의 영국 사회를 묘사한 드라마 'Life on Mars'를 보면 맨시티 팬과 맨유 팬들이 사이좋게 경기를 보러 간다.
- ↑ 하지만, 경기 종료 후에 맨유를 강등시킨 것은 데니스 로의 골이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다른 구장에서 펼쳐졌던 버밍엄 시티의 경기에서 버밍엄이 승리를 거두면서, 로의 골(맨유의 경기결과)과 관계없이 맨유는 강등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 ↑ 이 시즌에 결국 맨유가 맨시티에게 우승을 빼앗겼는데 승점은 같고 득실차에서 밀렸다. 6:1경기가 우승을 갈랐다고 볼 수도 있는 부분
- ↑ 맨유가 OT에서 경기시작 1분전에 실점한 것은 1910년 개장이래 처음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