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데미첼리스

RCD 에스파뇰 No.2
마르틴 가스톤 데미첼리스 (Martín Gastón Demichelis)
생년월일1980년 12월 20일
국적아르헨티나 (Argentina)
출생지후스티니아노 포스 (Justiniano Posse)
신체 조건184cm, 80kg
포지션중앙 수비수
등 번호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 15번
맨체스터 시티 FC - 26번
소속 클럽리버 플레이트 (2000~2003)
FC 바이에른 뮌헨 (2003~2010)
말라가 C.F. (2011~2013)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13)
맨체스터 시티 FC (2013~2016)
RCD 에스파뇰 (2016~)
국가대표
(2005~ )
49경기 2골

1 클럽

콤플레호 데포르티보에서 축구를 시작하였다. 1995년 헤나투 세사리니로 이적하였다가 1998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연고지를 둔 리버 플레이트로 이적하였다. 2000년에 1군팀에 데뷔하여 3시즌동안 51경기 1골을 기록하였다.

2003년 7월 1일 독일의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였다. 바이에른에 있어서 첫 아르헨티나 선수의 영입이었다. 9월 27일 FC 한자 로스토크 전에서 데뷔하였다. 2003-04 시즌은 부상으로 이탈한 토르스텐 프링스 대신 중앙 미드필드의 위치에서 출전이 많았다.

2004년 여름에 취임한 펠릭스 마가트 감독하에 주전선수로 정착하며 2004-05 시즌, 2005-06 시즌 2관왕 달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2007-08 시즌에는 자신의 기용방식을 두고 히츠펠트 감독과 충돌하였다. 히츠펠트 감독은 데미첼리스를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시키고 싶어 했지만, 데미첼리스는 중앙 수비수로 출장하기를 희망하였고 클럽에서 1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2009년 여름에 반 할 감독이 취임하였는데 그는 홀거 바트슈투버를 기용하며 데미첼리스의 출전 기회는 감소하였다. 2009-10 시즌 리그 및 컵 대회 2관왕에 올랐고 UEFA 챔피언스 리그 에서 결승에 진출했지만, 리그에서 21경기 밖에 출전하지 않았다. 2010-11 시즌 개막전 VfL 볼프스부르크 전에서는 소집을 거부하고 타클럽 이적을 원하였다.

2010년 12월 30일, 리버 시대의 은사 마누엘 페예그리니 감독이 이끄는 스페인의 말라가 CF로 이적하였다. 이적 후 센터백 주전으로 기용되었으나 팀은 11위로 마감하였다. 이듬해 2011-12 시즌은 계속 센터백의 주전으로 출전하고 있었지만, 제레미 툴라랑 부상 후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하였는데 좋은 기량을 발휘하며 팀의 4위 마감 및 사상 최초로 UEFA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 획득에 기여하였다.

2013년 7월 11일 자유 계약으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하였다.

1.1 맨체스터 시티 시절

9월 1일 아틀레티코에서 공식전 출전이 없는 채로 은사 마누엘 페예그리니가 이끄는 맨체스터 시티 FC로 이적하는 것을 결정하였다. 계약기간은 2년이다.

맨시티 이적 이후 초반엔 어찌어찌 잘 버티는가 싶더니, 머지 않아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10년 월드컵에 이청용에게 실수했던 것처럼 이미 그 시기부터 중앙수비로서 노쇠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거기에 프리미어리그 특유의 빠르고 거친 플레이에 적응해 내질 못하면서, 데미첼리스가 맨시티 수비의 구멍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리그에서도 불안불안한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 후반기 들어 대형 사고를 연달아 치면서 맨시티의 붕괴를 이끌었다.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서 PK + 퇴장을 당하면서 경기를 완전히 망쳐놓더니, FA컵 8강전에서도 PK를 허용하며 맨시티의 탈락에 크나큰 기여를 한 것이다.

사실상 맨시티가 임하는 가장 큰 토너먼트 두 개를 말아먹으면서 엄청나게 욕을 먹고 있는 상황. 사실 페예그리니 감독과의 기나긴 인연이 없었다면 꾸준한 선발 출전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물론 백업이 레스콧인 탓이 크긴 하다 그런데 4월부터는 폼이 상당히 오르면서 상당히 안정적으로 변했다. 4월엔 팀내 이달의 선수로 뽑힐 정도로 크게 활약했고 덕분에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그리고 14-15시즌엔 팀과 함께 침몰하고 있다.(...) 노쇠화가 시작된듯노쇠화 시작이야 이미 오래됐다 경기마다 맥없는 플레이로 일관하는 중. 그래도 적당히 폼이 올라 적당히 뛰고는 있지만 빠른 시일 내에 센터백이 추가로 필요한 건 사실.

망갈라나 콤파니도 시즌 중반 시점에선 폼이 별로였는데 리그가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불안한 맨시티의 수비진에서 가장 일관성 있는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 전반기엔 클리시가 부활, 후반기에는 데미첼리스가 부활비록 팀은 패배하긴 했지만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나름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실제로 15-16 시즌의 부진으로 뭍혀서 그렇지 14-15 시즌 맨시티에서 가장 폼이 좋았던 수비수였다.

1.1.1 맨체스터 시티 15-16 시즌

평점 0점에 빛나는 맨시티 극악의 선수
맨시티 수비를 넘어 맨시티 전체에 해를 끼친 암덩어리
1부 리그 선두권 팀 사이의 3부 리그급 선수
상대팀 승리의 보증수표[1]


15-16시즌엔 오타멘디의 영입으로 확실한 백업으로 밀렸다. 경기 후반부에 수비강화를 위해 교체투입되며 거의 홀딩형 미드필더처럼 뛰는 정도. 그러다 토트넘과의 7라운드 경기에서 니콜라스 오타멘디 와 함께 암걸리는 수비력을 선사하며 4:1 패배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국대 듀오끼리 안맞으면 어쩌자는거야

그리고 13R 리버풀전, 짝인 망갈라와 같이 최악의 경기력을 선보여 망갈라와 함께 팀 패배의 주범으로 찍혔다. 이어 14라운드 사우스햄튼 전에서 또(!)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고, 수비역시 발암을 시전... 하이라이트는 타디치가 방향을 꺾을것을 예상했다가 실패하며 시전해버린 자동문(...) 이날 맨시티는 덕배와 오타멘디의 맹활약, 카바예로의 각성이 아니었다면 털렸을지도 모른다.[2]

그 다음 라운드 스토크 원정에서도 여지없이 가히 극혐급 경기력을 보였고, 보얀에게 처참히 털리는 모습은 데미첼리스의 기량하락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물론 이번 경기에서는 오타멘디도 못하긴 했는데 감독은 데미첼리스를 남기고 팀의 빅 유망주 중 하나인 제이슨 데나이어를 임대보낸 이유를 팬들에게 납득시켜야 할 것이다.[3]

일부 팬들은 은퇴를 앞둔 나이이기 때문에 기량 하락은 어쩔 수 없다고 쉴드를 치는데, 아직까지도 유벤투스의 수비진을 구성하는 안드레아 바르잘리는 데미첼리스와 1년 차이도 나지 않는다. 클래스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 밖에... 다만 같은 종목의 선수라도 전성기가 일찍 오는 선수가 있고 나이먹고도 롱런하는 선수가 있다. 기량이 하락하는 시기는 선수마다 다르며 2016년 현재 36살인 그가 기량이 하락한다고 이상할만한 나이는 아니다. 심지어 20대 후반에 퇴물이 되는 선수도 수두룩한 판에... 그의 전성기 실력을 생각해보면 클래스가 떨어지는 선수는 아니다. 단지 나이먹고 기량이 떨어졌을 뿐. 위의 논리라면 긱스는 40이 넘어서까지 뛰면서 챔스 올림피아코스 전에서 관록을 과시했는데 그럼 40살에 퇴물이 된 선수는 클래스가 떨어지는 선수인가? 36살이 아니라 40살에 기량이 하락했으면 더 클라스가 높은 선순거지 무슨 헛소리야

그러더니 1월달부터 어느정도 안정감을 되찾아가는 모습이다. 그러고보니 13-14시즌과 14-15시즌 모두 전반기엔 그렇게 욕먹다가 후반기엔 어느정도 안정화된 전력이 있는데 이거 혹시...?

그러나 그런거 없고 2월 6일 레스터전에서 3실점에 모두 관여하는(...) 도저히 수비수라곤 믿기 힘든 미친 구멍 수비력을 보이면서 팀의 대패를 혼자 이끌었다. 본격 맨시티 망신 제조기차라리 토신 쓰는게 훨씬 낫겠다

참고로 이날 골의 패턴을 살펴보면

프리킥 상황-공중볼에서 로베르트 후트에게 피지컬로 발린 후 왼발슛 허용-1:0

역습 상황-리야드 마레즈의 헛다리에 헛발질로 뚫림-2:0

코너킥 상황-또다시 후트에게 피지컬로 발리고 헤딩슛 허용-3:0

그리고 또 2월 22일 첼시와의 FA컵 경기에서 중앙수비수로 출전하였으나 경기력은 이건 뭐.... 전반부터 삐걱대더니 후반엔 실점으로 직결된 프리킥에 PK 헌납[4]에 아주 3부리그도 아니고 5부리그 선수급 활약을 펼치셔버렸다... 결과는 5:1 대패. 실수한 걸로만 몇줄을 채우는거야...대체 맨시티가 FA컵을 사실상 던진 상태에서 치룬 경기라 중원에 유스들이 대거 기용되어 수비적인 부담이 더해진것도 있다지만, 센터백 파트너로 성인팀 데뷔전을 치룬 토신 애더러바이오요의 경기력이 데미첼리스보다 몇 배는 좋았던걸 생각하면...

사실 이런 경기력에도 데미첼리스가 꾸준히 나오는데는 한가지 이유가 있는데, 선수단의 줄부상 때문. 페예그리니도 오타멘디를 영입하면서 데미첼리스는 거의 잉여자원 취급을 하고자 한 듯 하지만 콤파니와 망갈라가 자주 부상에 시달리며 어쩔수 없이 데미첼리스가 나오게 된 것. 다만 여기서 페감독이 욕먹는 부분은 제이슨 데나이어를 성급히 임대보낸 것과 유스를 안써먹는 점 때문. 물론 프리미어리그급에서 유스 센터백을 기용하기에는 위험부담이 따를 수 있겠지만, 데나이어는 전시즌 임대가서 스코티시 프리미어리그 최우수선수[5]에 뽑혔고 남아있는 유스 센터백중 가장 유망한 자원으로 꼽히는 토신 애더러바이오요는 퐈컵에 첼시상대로 나와 데미첼리스보다 몇배는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챔스 16강 1차전 디나모 키예프 원정에서 맨시티가 3-1로 승리를 거두자 데미첼리스가 안나왔기 때문이라는 댓글이 네이버 기사 베플을 먹었다.

그러나... 16강 2차전에서 콤파니와 오타멘디가 이른 시간에 모두 부상으로 빠져 데미첼리스-망갈라 센터백 라인이 강제 가동되고 말았다(...). 이 경기에서 실점은 하지 않았지만 당장 다음 경기가 맨체스터 더비인데 페예그리니 감독의 속이 많이 탈 듯...

결국 맨체스터 더비에 망갈라와 함께 선발 출전했는데 우려대로 시원하게 말아드셨다. 전반 초반에 돌파를 시도하던 마커스 래시포드에게 함부로 달려들다 한 번에 돌파를 허용해 선제골을 헌납했다. 답없는 맨땅에 헛발 이후에도 여러차례 뚫리며 자동문 노릇을 제대로 했다. 거기에 후반 초반 조 하트가 데미첼리스에게 패스한 것을 무난히 처리할 수 있었는데, 조 하트에게 너무 약하게 백패스를 한 탓에[6] 앙토니 마르시알이 공에 빠르게 달려들었고 이 상황에서 하트가 슬라이딩으로 급하게 걷어내다가 햄스트링을 다치게 하는 팀킬까지 작렬했다. 조하트의 해탈한 표정은 덤[7] 이러한 엄청난 활약에 힘입어 경기 중에 '데미첼리스'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에 등극했다. 거기에 경기가 0:1로 끝나면서 데미의 실수로 내준 선제골이 그대로 결승골이 되며 경기 최고의 역적 확정. 참고로 많은 팬들이 우려했던 망갈라는 이날 래시포드와 마타 등 상대선수들을 우수한 피지컬을 이용해 잘 막아내는 모습을 보여주며 데미첼리스와 더더욱 비교되었다(...).[8] 사실상 맨유 공격수

이런 절망적인 경기력을 보여 주는 데미첼리스를 비하하는 별명이 국내에도 많이 있었지만 댐잇첼리스가 대표적이다 뭐 이제는 대부분의 팬이 펩이 부임하면 자연스레 짐을 쌀 거라고 예상도 하고 바라기도 하고하고 있다.[9]

경기후 영국 언론 미러에서는 데미첼리스에게 무려 평점 0점을 부여했다.마이너스 줘도 할말없다 실점 빌미 + 꾸준한 실책 + 팀킬 수비 발암 종합 선물세트

그리고 영국 국대에 선발되어 있던 조 하트가 이 부상 여파로 소집 제외되면서 본의 아니게 영국 국대에도 민폐를 끼친 셈이 되었다.

3월 30일 베팅 관련 혐의로 FA에 기소되었다(...).

이후 콤파니가 복귀하고 망갈라가 킹갓라로 각성하며 투명화되었다.아주 잘 된 일이다 4월 23일 스토크 시티 FC와의 경기에서 교체로 나섰는데, 센터백이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역할로 나섰다.어차피 팀이 스토크를 압살해서 의미는 없었지만

시즌 끝난 시점에서 이야기하자면 사실 본인은 전시즌이 끝나고 나갈 생각이었는데 감독이 굳이 잡아서 쓴 거라, 본인은 축구를 못 한 것 말고는 이렇게나 까일 만큼 큰 잘못이 없긴 하다. 쓴 페감독 탓이지...못해도 너무 못하긴 했지만

2016년 6월 11일 방출되었다. 아르헨 복귀가 점쳐지는 중. 8월 초에는 스페인 언론에서 에스파뇰과 계약협상 중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1.2 RCD 에스파뇰

8월 10일 프리메라리가의 팀 RCD 에스파뇰과 자유계약으로 이적료없이 1년계약을 채결했다.

2 국가대표

호세 페케르만 감독에 의해 아르헨티나 대표팀에 소집되어 2005년 11월 12일의 잉글랜드와의 친선 경기에서 데뷔하였다. 2007년 9월 11일, 호주 전에서 A 매치 첫 골이 되는 결승골을 넣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한국전에서 전반 종료 직전 어리석고 쓸데도 없는 볼 컨트롤 실수를 범하는 바람에 이청용에게 볼을 뺏기고 골을 허용해 2:1로 만들며 한국에게 추격의 희망을 심어주었다.[10] 당시 아르헨티나전을 시청하던 한국의 바이에른 팬들은 과연 명불허전 데미첼리스 실수 한 번 할 줄 알았다며 자못 기꺼워했다. 하지만 이후 그리스전 선제골로 만회했다.

이후 대표팀에서 탈락했으나, 13-14시즌 후반의 활약으로 월드컵 스쿼드에 턱걸이 재승선. 이후 초반엔 잘 나오지 않았으나 토너먼트로 가면서 출전하기 시작해 준수한 활약으로 팀의 준우승에 일익을 담당했다. 하지만 역시나 결승전 연장전에서 괴체한테 뚫리면서 독일한테 우승을 알아서 헌납했다.

3 플레이 스타일

184cm의 키로 중앙수비수로서 그리 큰 편은 아니며, 느리고 반사신경이 둔하다.[11] 또한 기복이 심해서 잘하는 날은 '데미신' 모드로 어느 월드클레스 공격수든 지우는 능력을 보여주나 반대로 못하는 날은 '데미레기' '뎀잇첼리스', 'Damn It 첼리스', '이미뚫리스'로 그냥 경기장에서 지워진다(.....).수비수가 지워지면 어쩌냐

사실 위에 언급된 것처럼 뮌헨이나 말라가 시절에는 수비형미드필더로 출장하였다. 사실 지금도 데미첼리스의 중앙수비수로의 수비가 많이 비난을 받을때가 있지만 젊을 때도 실수를 많이 했다.

커맨더 타입으로 경기 흐름을 읽는 수비보다는 직접가서 부딪히는 파이터형의 수비를 더 선호하였고 그런 탓에 바이에른 뮌헨 입단 초창기 중앙수비수로 실수를 너무 많이 저질러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강제 기용된 케이스였다. 최종수비수보다는 그래도 조금의 실수가 용납되는 이 위치에서는 굉장히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일단 수비력 자체가 워낙 좋아서 상대방의 볼을 탈취하는데에 뛰어났고 그것이 실패하더라도 뒤에 중앙수비수가 있기에 볼 탈취를 실패해도 티가 별로 안났는데 본인이 워낙 너무 중앙수비수를 확고히 선호하는 바람에 결국은 계속 이적을 반복하였다.

2010년 즈음에 노쇠화가 진행되면서 더욱 두드러져서 빠른 공격수들에게 어려움을 겪곤 한다. 그래도 체구가 좋아서 몸싸움이나 공중볼 경합에 큰 문제는 없다. 그리고 바이에른 뮌헨 초창기에는 중미나 수미로 주전으로 뛰었던 선수였던 만큼 볼 다루는 능력과 볼을 옮기는 감각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맨체스터 시티에서도 여러 단점이 부각되지만, 이런 기본역량과 더불어 쌓인 경험치로 2010년대 중요하게 여겨지는 볼을 옮길 수 있는 센터백으로서의 능력은 확실하다. 그러나 2016년 3월 현재 기준으로 기량은 이미 떨어질대로 떨어진 상태로 확실히 펩시티에서는 볼 수 없을 듯 하다
  1. 데미첼리스가 공을 뺏으러 가면 팀 동료 표정이 일그러지고....정신차리면....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뭔데?!
  2. 참고로 데미의 자동문 이후 나온 타디치의 슈팅을 카바예로가 막고, 세컨볼을 2차선방까지 했다.
  3. 물론 결과론적인 해석이 좀 끼어있고 페감독의 결정이 아주 이해 못 할 결정은 아니다. 오타멘디는 새로 영입한 선수라 성공할지 알 수 없고, 망갈라는 다들 알다시피 최악의 시즌을 보냈으며 콤파니는 예상이든 실제든 부상이 아주 많다. 그런 상황에서 신인 데나이어를 믿고 가기 불안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최악의 결정이 되었지만.
  4. 그나마 이건 골키퍼 카바예로가 막았다....지만 카바예로도 이날 2번의 결정적 선방 빼면 답이 없었다는건 함정.
  5. 최우수 수비수도 아니고 최우수 선수였다.
  6. 하트도 데미첼리스가 무난히 처리할거라 생각하고 다소 물러나있었다.
  7. 본래 마르시알과의 충돌이 있었다고 서술되어 있었으나, 충돌한것은 아니고 슬라이딩 과정에서 근육을 다친 듯 하다.
  8. 특히 래시포드는 전반전에 득점상황과 PK 논란이 있던 두 상황을 빼면 망갈라에게 꽁꽁 묶여 거의 아무것도 못하다시피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두 상황은 전부 데미첼리스쪽에서 벌어진 일이다(...).
  9. 어차피 이번 시즌을 끝으로 계약만료이고 본인도 시즌내내 고향팀으로 돌아간다고 밝힌지라 과르디올라 감독과 만날 일도 없어보인다.
  10. 그러나 이는 당시의 응원도구였던 부부젤라 때문에 주변의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던 탓이다. 물론 실수에 대한 책임을 소음에게 떠넘길 수는 없겠지만.
  11. 유소년 선수 시절 교통사고로 아킬레스건에 이상이 생긴 이후로 잘 뛰지 못했다고 한다.그럼 유소년 때는 월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