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광

1 고구려의 장수

孟光

생몰년도 미상

436년, 갈로(葛盧)와 함께 북위의 공격을 받아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자 장수왕의 명을 받아 북연의 황제인 풍홍을 구원하기 위해 북연의 도읍인 화룡성에 들어갔다.

그러나 북위의 공격이 거세지자 화룡성을 약탈, 방화(청야전술)하고 북연 황제 풍홍과 북연 사람들을 탈출시켜 고구려까지 데리고 갔다. 이때 갈로와 맹광이 고구려로 데려간 북연 세력은 이후에 고구려에 완전히 흡수되어 버린 듯 하다.

한편 갈로와 맹광이 기껏 탈출시켜 주었던 풍홍은 고구려까지 와서 장수왕에게 대들고 깽판을 치다가 결국 장수왕이 쳐죽여버렸다(...).

곽재식의 소설 역적전에서는 백제와의 국경을 지키는 장군으로 등장한다. 처음에는 갈로와 함께 지키고 있었는데, 맹광은 다른 전투 때문에 차출된다. 이때, 백제에서 고구려 장군들에게 보내는 선물과 접대가 짭짤했기 때문에 매우 아쉬워한다. 성격은 갈로와 대립되는 열혈계의 놀기 좋아하는 성격. 아마 이름의 어감 때문에 그렇게 설정한 듯.

국산 RTS 게임인 천년의 신화에서는 고구려 측의 영웅 유닛으로 등장한다. 말을 타고 철퇴로 공격한다,

2 삼국시대 촉나라의 문관

孟光

생몰년도 미상

하남군 낙양현 사람으로 자는 효유(孝裕). 맹자의 16대 손이다.

후한에서 태위를 지낸 맹욱의 동족으로 영제 말년에 강부리가 되었으며, 헌제가 장안으로 천도하자 촉으로 들어가 유언 부자에게 빈객의 예로 대우받았다.

박학하면서 고대 문화에 상세한 지식이 있으면서도 모든 책을 독파해 그 중에서 사기, 한서, 동관한기 등을 전문적으로 연구했다. 한왕조의 옛날 제도에 정통했으며, 춘추공양전을 좋아하고 춘추좌씨전을 비난해 항상 내민과 함께 두 책의 의의를 다툴 때마다 큰 소리로 변론했다.

유비가 익주를 평정하자 의랑으로 제수되어 허자 등과 전장제도(典章制度)를 관장했으며, 유선이 제위에 오르자 부절령, 둔기교위, 장락부소로 임명되었다가 대사농으로 승진했다. 246년 가을에 대사면이 있을 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장군 비의에게 사면은 부득이한 상황에서 이익과 폐단을 따져야 해야 한다거나 가을이나 겨울은 형벌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질책했다.

비의는 단지 그 쪽을 돌아보고 죄를 빌어 불안해 할 뿐이며, 맹광이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탄하는 방식이 대부분 이와 같아 요직에 있는 중신들은 그를 좋아하지 않아 작위는 오로지 않았다. 항상 직언을 해 돌아 피해가는 일이 없어 그 당시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고 한다.

극정이 맹광을 자주 찾아가 의견을 구해 맹광이 극정에게 태자 유선이 공부하는 책, 성정, 좋아하는 것에 관해 물었는데, 극정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는 것이 극정이 신중하면서도 적당한 말을 해 방종한 말을 하지 않은 것을 알았다. 극정에게 자신은 직언을 좋아해 세상 사람들의 비난과 미움을 사지만 천하는 아직 평정되지 않아 지모를 제일로 필요로 해 태자의 독서로써 긴급한 지식을 배우게 하는데 힘써야 한다고 했으며, 극정은 맹광의 견해가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후에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면직되었다가 90여세에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