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세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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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bap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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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독교의 한 종파로, 종교개혁 시대에 나타난 급진 종교개혁의 한 부류이며, 현재까지도 남아 이어지고 있다.

2 주요 주장

재세례(아나뱁티즘)란 개념이 나타나게 된 것은 기독교의 '유아세례'와 관련이 깊다. 사실 이 문제는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의 자유의지 논쟁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문제로 결국 이 논쟁으로 인해 유아세례를 인정하고 주는걸로 정리가 되었고 이는 중세 내내 가톨릭 신앙 내의 철칙으로 지켜져왔다.

그러나 제세례파는 아무런 자신의 의지가 없던 아기때 받은 세례가 의미가 있겠느냐라고 주장했고 이들은 자신의 의지로 신앙을 확고하게 받아들이겠다는 결단이 섰을때에야 세례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이들은 유아세례의 효력을 부인하고 다시 세례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재세례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된것이다.

이는 주류 로마 가톨릭은 물론이고 주류 종교개혁 세력인 루터파, 칼뱅파로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가톨릭 교회나 루터파나 칼뱅파나 위아더월드 똑같이 재세례파 신도들을 붙잡아서 발에 무거운 돌을 묶은 뒤에 니들 좋아하는 물이나 실컷 쳐먹어라라면서 그대로 강에 풍덩 집어던지는 식으로 죽였다고 한다. 17세기 초까지 살해된 재세례파 신도와 관련자만 1만명이 넘는다는 연구결과도 있을 정도.

2.1 사상

재세례파는 재세례를 주장한 것 외에도 여러 주장을 펼쳤다.

  • 엄격한 정교분리: 국가와 종교는 철저하게 분리되어야 하며 어느 쪽이 다른 쪽의 영향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피력한다. 이런 정교분리 사상은 재세례파가 종교와 정치가 결합된 로마 가톨릭 교회와 영주가 주교노릇을 하던 국가교회로 발전한 루터교회 및 칼뱅교회의 엄청난 핍박을 받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다.
  • 순수한 자기 결단에 의한 신앙: 재세례파는 철저하게 환경적인 요소나 다른 이의 강요, 혹은 국가의 법률에 의한 신앙의 강제가 아니라 순수하게 자신의 결단에 의해 갖는 신앙만이 올바르다고 보았다. 철저하게 자신의 의지로 신앙을 가지고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한다고 보았다.
  • 만인제사장주의: 초대교회에서 교권적인 사제가 없었듯이 재세례파는 교권적인 사제를 부정했으며 성직자가 있어도 교권적으로 군림하기 보다는 어디까지나 신도의 신앙에 관련한 도우미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모든 신도가 기본적으로 리더십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한다고 보았는데 이는 루터의 만인제사장설을 가장 문자적으로 실천하는 경우라고 볼수있다.
  • 평화주의: 신약성서의 평화에 대한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실천한다. 주류 기독교가 정당한 전쟁의 권리를 긍정하는 것과는 달리[1] 재세례파는 정당한 전쟁이라는 것도 없으며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위해 앞장서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이에 따라 재세례파는 병역을 거부하며 병역을 사회봉사로 대체하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한다.[2] 또한 예수의 산상수훈의 말씀을 실천하여 평화를 만드는자(피스메이커)의 적극적 역할을 주장하여 종교와 문화등을 초월한 분쟁 중재와 조정에도 앞장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 제자도: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히 의지하고 복을 비는 신앙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부족한 예수 이해이며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예수의 가르침을 철저하게 실천하려 하는 제자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런 제자의 삶도 철저하게 자발적으로 행해져야만 한다고 본다.[3]

3 역사

재세례파라고 해서 모두가 동일한 세력은 아니었다. 지역별로 스위스 일대에서 활동하던 스위스 형제단, 네덜란드와 프로이센 일대에서 활동하던 재세례파, 남부독일 일대에서 활동하던 재세례파로 나뉜다. 또한 과격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지상에 새 예루살렘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폭력 용인파와 신약성서에 입각해 폭력에 철저하게 반대한 비폭력주의자들로도 구분된다.[4]

3.1 뮌스터 반란

결국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지상에 새 예루살렘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 과격 재세례파들은 독일 뮌스터에서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이미 재세례파의 지도자였던 멜키오르 호프만이 성인에게 재세례를 베풀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들은 한때 뮌스터를 장악하고 신정국가를 시도했으나 결국 진압당하고 만다.

3.2 메노나이트(Mennonite)의 등장

이런 가운데 본래 네덜란드의 가톨릭 신부였던 메노 시몬스는 가톨릭에 실망하여 가톨릭을 떠나 프로테스탄트로 전향하는데 이 과정에서 재세례파의 입장을 지지하게 된다. 메노 시몬스는 재세례파중 비폭력주의자인 오비파와 폭력 용인파인 멜키오르 호프만파 사이에 고민하다가 "그리스도인이 어찌 영적인 무기를 내버려두고 세속적인 것을 취하겠는가"라는 입장에 따라 오비파 쪽으로 돌아섰다.

결과적으로 메노 시몬스의 선택은 옳았다. 멜키오르 호프만파는 뮌스터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혹독하게 진압당해 파멸하고 말았던 것. 메노 시몬스는 오비파의 지도자가 되어 비폭력 평화주의노선을 강조했고 이들이 후대에 메노나이트로 불리게 되었고, 미국에서는 신약성서 마태복음서의 인권사상으로써 노예제에 반대하는 인권운동을 실천했다.

참고로 메노나이트와 그 분파인 아미시(Amish, 밑 문단 참조)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심지어 미국 내에서도 메노나이트와 아미시를 혼동하는 경우가 꽤 많다(당장 구글로 Mennonite라고 치면 아미시 사진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둘은 엄밀히 말해서 약간 다르며, 아미시가 아닌 메노나이트들의 상당수는 그냥 일반인과 다를 것 없는 삶을 산다.(맨해튼에 사는 메노나이트 이야기) 물론 'Old-Fashioned'라고 해서 정말 아미시처럼 사는 사람들도 있긴 하나 생각보다 그리 흔하지 않다.

다만 이들도 분파가 많기에 아미시와 같은 방식의 삶을 고수하는 사람들도 있다.이들은 미국, 캐나다,브라질, 볼리비아, 파라과이 ,아프리카 등지에도 존재한다. 계속된 탄압과 문명의 접근을 피해 도망치고 도망치고 또 도망친 것. 그래서 이 경우에는 후술할 '닫힌 사회'로서의 문제점이 자주 발생한다. 물론 도시지역의 평범한 메노나이트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주류 사회에 녹아들어간 메노나이트 분파들은 크게 진보파와 보수파로 나뉘는데, 아미시가 아닌 재세례파 교회들(MCUSA 등)은 대개 진보파에 속한다.[5] 보수파 메노나이트(CMC)라도 평화주의를 아주 버린 건 아니고 쉽게 말해서 현대문명을 받아들인 아미시들이라고 보면 된다.

3.2.1 네덜란드에 잔류한 재세례파들은?

미국으로 가지 않고 계속 네덜란드에 남아있던 소수의 메노나이트들은 'Doopsgezinden'이라고 해서 마을 헛간이나 창고, 혹은 대도시의 경우 맨 윗층 다락방 등을 빌려서 몰래 예배를 드려야 했던 역사가 있었다.[6] 이는 네덜란드 특유의 관용 정책 때문이라고 한다. 눈칫밥은 좀 먹긴 했어도 크게 탄압받는 형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들도 일반인들처럼 금융업, 상업등에 종사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에 가면 자주 볼수 있는 'Albert Heijn'이라는 슈퍼마켓도 창업자가 재세례파 가문 출신이라고 한다.(번역기 필요) 물론 종교의 자유가 완벽히 인정된 지금은 다른 교파들처럼 공개적으로 교회를 짓고 평범하게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들에 대해서는 영어 위키 항목도 참고할 것.

또한 미국의 재세례파들과 달리 자유주의(Vrijzinnig)적인 성향이 강한 편이다.

4 오늘날의 재세례파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재세례파는 메노나이트(Mennonite), 아미시(Amish) 공동체[7], 후터라이트(Hutterite)등이 있다. 재세례파는 종교개혁 이후 근현대에 와서도 이단적이라는 이유로 주류 개신교의 배척과 비난을 받기도 했으며 후터파의 경우에는 미국으로 건너와 신앙의 자유를 찾으려 했지만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로 미국정부와 충돌한 끝에 캐나다로 이주하기도 했다.

오늘날에 주류 개신교 안에서는 비록 유아세례 문제가 있기는 해도 재세례파의 자발적 신앙관과 교권주의 배척, 철저한 제자도 사상, 평화주의등의 유산을 가진 재세례파의 사상들이 신앙의 강요와 예수의 가르침에서 멀어지는 개신교의 현실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자신들의 교회에서 총기를 난사해 가족과 형제들을 죽였음에도 그런 범인의 선처를 탄원한 아미시 공동체의 이야기가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참고로 성경침례교를 비롯한 몇몇 독립침례교도들이 자신을 이들의 계통적 후신이라고(그들 자신은 '재침례파'라는 명칭을 쓴다)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을 지계석주의(Landmarkism)이라고 부르는데[8] 헛점이 너무 많아서 모든 독립침례교도들이 받아들이는 주장은 아니다. 되려 교인과 개교회를 과격함과 교만함에 빠지도록 만들 수 있다[9]며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독립침례교회도 많다.

4.1 관련고리

  1. 정당한 전쟁의 권리는 이미 고대의 아우구스티누스가 설파했던 개념이기도 하다. 도나투스파가 교회를 공격하고 배교자 출신 주교들을 마구 살해하는 상황에서 공권력을 투입해 도나투스파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개념. 살인은 안되나, 국가와 신앙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방어적으로 치루는 전쟁은 정당하고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살육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보는 개념. 일반적인 기독교의 전쟁에 대한 관점이라고 볼수있다.
  2. 때문에 여호와의 증인만큼이나 현 대한민국 상황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교파들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점과는 별개로 대한민국에서도 메노나이트 혹은 재세례파를 표방하는 진보 성향의 침례교회들이 극소수 존재한다.
  3. 흥미롭게도 이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 이해와 관련이 깊은 문제이다. 예수의 신성이 강조된다면 예수는 의지할수 있는 신앙적 존재가 되지만, 인성이 강조된다면 예수는 그가 보여준 가르침을 실천해야 하는 모범적 존재가 된다. 물론 재세례파가 신성을 무시하는것은 아니다. 참고로 말하자면 대부분의 그리스도교는 전자가 매우 우세하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기독교에서는 교파에 상관없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구원의 유일한 길로 삼는 것이 기독교 교리의 첫번째 원칙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먼저 신앙이 있어야 예수의 삶을 모범적으로 따르는 일이 구원의 가치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4. 비폭력주의자들과 관련해서 재미있고도 슬픈 일화가 있는데 한 재세례파 신도가 박해를 피해서 도망치고 그 신도를 잡으려고 도시의 관리가 쫓아오는데 그만 얼어붙은 강의 얼음이 깨져서 관리가 강물에 빠지고 말았다고 한다. 이 신도는 그냥 도망칠수도 있었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곤경에 처한 사람을 외면할수 없다 하여 강에 빠진 그 관리를 구해주었다. 자기를 잡으러 쫓아오던 그 사람을 말이다!. 훈훈하게 이 관리도 자신을 구해준 신도를 그냥 놔줬다는 결말이었다면 좋았겠지만 이 관리는 재세례파 신도를 그대로 붙잡아서 처형했다고 한다.(...)은혜를 원수로 갚네 비폭력주의 재세례파가 얼마나 성경의 정신대로 살려고 애썼는지를 알려주는 일화로 인용되곤 한다.
  5. 다른 진보성향 개신교 교단들처럼 동성애자를 포용하는 교회들까지 있다.
  6. 이는 네덜란드의 가톨릭, 알미니안주의자들도 비슷했다.
  7. 해리슨 포드 주연영화 위트니스에서 다루어지는 종교집단이 바로 이들이다.
  8. 링크를 보면 알겠지만, 과거에는 주류 침례회에서도 주장했던 이론이었다. 하지만 20세기 이후로는 폐기한 상태.
  9. 실제로 랜드마키즘을 고집하는 교회들은 재세례파의 평화주의는 씹어버릴 정도로 폭력적이고 과격한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