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서』 「후비전(后妃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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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元皇后 郭氏
(? ~ 263년 12월)
성은 곽씨이며 서평군(西平郡) 사람으로서 대대로 하우(河右)의 호족이었다.
황초 연간에 그녀의 군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므로, 그녀는 신분을 박탈 당하여 관노가 되어 황궁으로 들어왔다.
조예가 황제에 즉위한 후 많은 총애를 받아 부인(여관의 지위)이 되었다.
명도황후 모씨가 조예의 명으로 자결한 후 조예의 병세가 위독해지자, 드디어 황후로 옹립되었다.
제왕 조방이 즉위하자 황태후가 되었고, 곽씨의 가족들은 작위와 영지를 받았다.
그때 세 명의 군주(조방, 조모, 조환)가 모두 어리고 유약했으므로 보좌하는 대신들이 정치를 했고[1], 국가의 큰 일은 우선 곽태후에게 물어 명이 떨어진 후에 시행하였다. 관구검과 종회 등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도 황태후의 명령에 따라 행하였다.
263년 12월에 죽고 264년 2월 고평릉[2] 서쪽에 묻혔다.
여담이지만 촉한이 멸망하고 종회가 난을 일으킬 때 그녀가 사망하기 전 사마소를 주살하라고 했다는 조서를 위조해 반란 명분에 사용했다(...). 물론 별 효과는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