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코급 중순양함 | ||||
묘코 | 나치 | 아시가라 | 하구로 |
1 역사
1.1 전쟁 초기
필리핀 침공에 참가했으며, 1942년 1월 4일에 B-17의 폭격으로 가벼운 손상을 입고 사세보에서 수리를 받는다. 동년 3월 1일에 자바해 해전에 참가하였고, 아시가라와 구축함 아케보노, 이나즈마와 함께 영국 순양함 익세터와 구축함 2척 격침에 일조한다. 이후에는 사세보로 귀환했으며 둘리틀 특공대 추격에 참가하지만 실패.
5월에는 자매함 하구로와 함께 항공모함 쇼카쿠와 즈이카쿠를 호위, 산호해 해전에 참가한다. 해전 자체는 일본군의 승리였지만 포트 모르즈비 점령은 실패함으로서 전략적 패배를 당했다.
6월에는 전함 공고와 히에이, 중순양함 하구로와 아타고와 초카이, 경순양함 유라, 경항모 즈이호, 구축함 7척과 함께 미드웨이 해전에 참가하지만 전투에 참여하지는 못하고 귀환한다. 이후에는 알류산 열도 공격에 참가하여 아투와 키스가 섬을 점령하는데 일조하지만, 이 전투는 과달카날 전투에 묻힌다. 미국에서도 '잊혀진 전투'라고 불릴 지경. 이후 묘코는 트럭으로 진출하여 과달카날 전투에 가담하지만, 10월 15일에 마야와 함께 핸더슨 비행장을 포격한 걸 제외하면 특기할 만한 전과는 남기지 못했고, 과달카날 철수 작전의 성공에 기여한다.
1943년 5월, 묘코와 하구로는 카스가 섬 철수작전을 지원한다. 기무라 마사토미가 이끈 이 작전은 '카스가의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의 대성공이었고, 이것으로 묘코는 일본군이 벌인 두 차례의 성공적인 철수작전에 모두 참가한 군함이 되었다. 작전이 끝난 후에는 사세보에서 대공포를 증설했고, 이후 길버트 섬을 공격한 미군 함대를 찾아 오자와 지사부로의 항모전단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았지만, 미군을 찾아내는 데에는 실패하고 트럭으로 귀환한다.
1.2 엠프레스 오구스타 만 해전
1943년 11월 1일, 미군이 부겐빌 섬의 엠프레스 오구스타 만에 상륙하자, 묘코와 하구로는 역상륙을 감행하는 병력을 실은 구축함들의 호위를 맡게 된다. 그러나 전개가 늦어지면서 미군에게 발각되었기에, 묘코와 하구로는 미군 상륙지를 포격으로 쓸어버리는 것으로 작전을 변경한다. 미군은 제39기동부대를 출동시켜 이를 막으려고 했고, 엠프레스 오구스타 만 해전이 벌어진다.
일본 해군 | 미국 해군 |
* 제5전대 중순양함 묘코 중순양함 하구로 * 제1경계대 경순양함 센다이 구축함 시구레 구축함 사미다레 구축함 시라츠유 * 제2경계대 경순양함 아가노 구축함 나가나미 구축함 하츠카제 구축함 와카츠키 | * 제39기동부대 경순양함 몽펠리어 경순양함 클리블랜드 경순양함 콜롬비아 경순양함 덴버 구축함 찰스 오스번 구축함 다이슨 구축함 스탠리 구축함 클랙스톤 구축함 스팬서 구축함 태처 구축함 콘버스 구축함 푸트 |
구축함은 미군이 더 많았지만, 일본 함대에는 막강한 중순양함이 있었고 미군은 비행기가 모자라서 공습을 실시할 수 없었기에 전체적인 전력은 일본군이 우세했다. 그러나 미국의 모든 군함에는 막강한 SG레이더가 달려있었고, 일본군엔 그런 거 없다. 레이더인 척하는 21형 전탐은 있었지만 성능은 그냥 고철. 어쨌든 양측은 정찰기를 내보내 상대를 파악했는데, 미군 정찰기는 정확하게 상대를 파악했지만 일본군 정찰기는 수송병력만 있다고 보고한다.
11월 2일 새벽 1시 30분, 하구로는 미군기 1대의 공격으로 약간의 피해를 입었고, 정찰기로부터 순양함 1척과 구축함 5척의 적함대를 발견했다는 보고를 받는다. 이후 구축함 4척이 추가로 발견되지만, 일본 정찰기는 수송선을 발견했다고 보고한다. 아니잖아! 이후 양측은 서로에게 접근했고, 미군은 2시 30분에 SG레이더로 일본함대를 포착, 선제공격을 준비한다. 일본군 경순양함 센다이가 2시 45분에 미군을 발견하지만, 미군은 어뢰 25발을 발사한다. 그런데 이거 다 빗나간다(...) 미군 경순양함들은 2시 50분부터 포격전을 개시했고, 일본군도 산소어뢰를 발사, 구축함 푸트에 명중한다. 그러나 미군 경순양함들의 화력은 워낙 압도적이었으므로 센다이는 순식간에 5발을 맞고 키가 망가져서 기동력을 상실한다. 이 와중에 포격을 피하려던 일본 구축함 사미다레는 구축함 시라츠유를 들이받았고, 두 구축함은 포탄을 맞으며 후퇴한다. 미군 역시 구축함 스팬서와 태처가 충돌사고를 일으켰지만, 이쪽은 전투를 계속했다.
당시 일본 함대는 3개로 나뉘어져 항진하고 있었으며 북쪽은 센다이, 중앙은 묘코, 아래쪽은 아가노가 맡고 있었다. 그런데 아래에 있던 아가노급 경순양함 아가노와 구축함 3척은 아무 것도 안하고 그냥 직진하다가 오른쪽으로 선회했고, 미군의 포탄을 맞은 후 그냥 집에 갔다. 기동력을 상실한 센다이가 계속 포격전을 벌인 것과는 천지차이. 그냥 죽어라 아가노
중앙 함렬의 묘코는 3시 7분, 미군의 포격을 피하다가 구축함 하츠카제를 들이받아 대파한다. 묘코와 하구로는 피격당하면서도 산소어뢰를 발사했으나 모두 빗나갔고, 경순양함 덴버에 명중탄을 냈지만 포탄이 장갑을 그냥 관통하고 수중에서 폭발했다. 장갑이 너무 얇았습니다 일본군 지휘관인 오모리 제독은 자신이 미군 중순양함을 격침시켰고, 날이 밝으면 미군 항공모함의 공습을 당할 것이라고 판단하여 3시 37분에 철수명령을 내린다. 마지막까지 분투하던 센다이는 미군의 집중공격으로 격침되었고, 묘코에게 들이받힌 하츠카제 역시 미군에게 잡혀서 침몰했다. 일본군은 라바울에서 18대의 99식 함폭과 80대의 제로센을 출격시켜 제39기동부대를 공격했지만, 미군의 피해는 경순양함 몽펠리어가 피격되어 10명의 부상자를 낸 게 전부였다. 공습으로 인한 사망자는 제로.
이 해전으로 일본군은 경순양함 센다이와 구축함 하츠카제를 잃었고, 부겐빌 섬 지원에도 실패했다. 반면에 미군은 상륙부대 보호에 성공했으며, 구축함 푸트 1척만이 대파되는 손실을 입었다. 미군의 완승.
오모리 제독은 졸렬한 지휘로 패배를 불러왔다는 이유로 제5전대 사령관직에서 해임되었고, 얼마 후에 예편했다.
묘코가 패배한 내용만 자세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이다
1.3 최후까지
사세보로 돌아온 묘코는 대공화기를 추가로 장착했고, 미국 잠수함 퍼밋의 어뢰 공격을 받지만 모두 피한다. 이후에는 구축함 시라츠유와 함께 팔라우에서 보르네오로 가는 빈 유조선을 호송했고, 잠수함 USS 데이스에게 6발의 어뢰 공격을 받지만 모두 피한다. USS 다터가 묘코를 포착했지만 공격위치에 도달하는데에는 실패한다.[1]
1944년 6월, 묘코는 필리핀 해 해전에 참가했지만 이 해전의 결과는 망했어요.
레이테 만 해전에서는 구리다 함대의 일원으로 참가했고, 무사시가 침몰한 시부얀 해전에서 묘코도 어뢰를 맞고 대파당한다. 15노트의 속도로 싱가포르로 돌아간 묘코는 응급수리를 받은 후 일본으로 돌아가 본격적인 수리를 받기로 결정했지만, 캄란 만을 지나던 도중 미군 잠수함의 공격으로 어뢰 한 발을 더 맞고 속도가 6노트로 떨어진다. 미군 잠수함을 쫓아낸 구축함 우시오와 다른 배들의 도움으로 싱가포르로 귀환하지만, 부품 부족으로 수리불가 판정을 받고 타카오급 중순양함 타카오와 함께 나란히 정박해서 대공포대가 되었고, 싱가포르에 정박한 채로 패전을 맞이한다. 전후에는 타카오와 함께 로열 네이비에 넘겨졌고, 로열 네이비는 묘코와 타카오를 표적함으로 삼아서 침몰시켰다.
자세한 내용은 영문위키 묘코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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