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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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이 의식무용 중 하나인 '무당춤'을 추고있는 사진.

명칭
한국어무교(巫敎), 무속(巫俗)
영어Muism, Korean shamanism[1]

1 개요

무교는 한국의 무속신앙을 타 종교와 대등한 종교 현상으로서 인식할 때 사용하는 명칭이다[2]. 무속(巫俗)에 무속신앙을 종교로 보지 않고, 미신으로 취급하는 역사적 천시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에[3], 해당신앙을 종교학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동시에 존중과 배려를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한다. 무교가 지칭하는 대상인 무속신앙은 다른 이름으로는 무속(巫俗)이나 무(巫)라고 일컫는 신앙으로, 무당을 중심으로 신행되는 한국의 민속신앙이다.[4]

무(巫)란 무속신앙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표현하기 위한 또 다른 용어이다. 무(巫)의 경우 해당 신앙에 대한 가치표현을 나타내는 표현이 부과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무교나 무속에 비해 가치중립적인 표현으로 해석되며, 무업에 종사하거나 무를 신봉하는 이들에게 주로 쓰인다. 무교가 해당 신앙의 모든 현상을 아우르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종교학적인 관점에 한정된 개념이라는 점에서, 무가 무교보다 좀 더 넓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5].

2 유래

한국 무교의 역사는 고조선 시기에서부터 시작한다. 단군신화에는 천왕환웅이 신시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신시는 제왕이 하늘에 제사하는 장소이자 굿당으로, 천왕환웅과 단군왕검은 제천의식을 주관한 무당으로 해석할 수 있다[6]. 상고시대의 무교는 권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었기에,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무당들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신라에서는 무당을 왕자의 호칭으로 삼았고, 고구려에는 사무(師巫)라는 명칭이 있었다. 가장 오래된 한국 제례나 풍속의 기록으로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기록이 있다. 마한의 천군·예의 무천·가락의 계욕·백제의 소도·부여의 영고·고구려의 동맹이 모두 당신의 제례이다[7]. 본래 그 위상이 높았던 무교는 후세에 문화가 진화하고 유교·불교·도교를 비롯한 외래 종교들이 들어오자, 점차 쇠락하며, 다른 종교와 융합하며 명맥을 이어간다.

삼국시대에서의 무속은 시조제(시조에게 드리는 제사), 농신제(풍년을 기원하는 제사), 산천제(산과 강에 드리는 제사)의 모습으로 나뉘어져 전승된다. 삼국통일 이후로도 신라의 왕들은 새해를 맞이하여 시조제를 지냈는데 이는 그들이 하늘의 자손임을 나타내는 의례였다. 고려에서도 왕실의 안녕과 복을 비는 공적인 제천의식과 예언적 기능을 갖춘 무속이 자리를 잡았다. 조선 전기에는 국무당을 비롯한 산천에서 국행 및 내행기은이 거행되었다.

3 참고 문헌

  • 최준식. 무교: 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 모시는 사람들. 2009
  • 박일영. 한국 무교의 이해. 분도출판사. 1999
  • 차옥승. 한국인의 종교경험 무교. 서광사. 1997
  • 이능화. 조선무속고. 창비. 2008
  • 박명희. 한국 무교 의례에 나타난 꽃의 의미와 상징성에 대한 연구. 한국화예디자인학회. 2004

4 무교 관련 성지

  1. 영문 위키피디아에서 "무속신앙" 을 지칭하는 표현.
  2. 차옥승. 한국인의 종교경험 무교. 서광사. 1997: 15~16.
  3. 조흥윤. 巫와 민족문화. 1994: 95
  4. 박일영. 한국 무교의 이해. 1999: 14.
  5. 차옥승. 한국인의 종교경험 무교. 서광사. 1997: 15~16.
  6. 박일영. 한국 무교의 이해. 분도출판사. 1999: 22
  7. 이능화. 조선무속고. 창비. 2008: 7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