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승옥이 1964년 발표한 단편소설이자, 김승옥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현대인을 상징하는 주인공인 남자 "윤희중" 이 무진에 머무른 2박 3일 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편적인 해석을 따르면 다음과 같다. 무진은 탈일상적 공간이며, 서울에 아내를 두고 혼자 내려와 이곳(비록 참담한 어린 시절의 과거가 있는 곳이라지만)에 머무르는 그 짧은 기간 동안에 무진에 거주하는 음악 교사 하인숙[1]을 통하여 일탈을 꿈꾼다. 주인공의 이러한 행동은 현실과 일탈 사이에서 번뇌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투영했다고 해석되는 것이 보편적이다. 이러한 해석의 옳고 그름을 떠나, 안개로 뒤덮인 무진은 몽환적이며 비현실적이며 동시에 탈일상적인 공간을 대표하는 상징 매체가 된다.
김승옥의 문학은 1960년대 문학사에 대하여 공부할 때 굉장히 중요하다. 이는 당시 6.25 전쟁이 끝난 후 발표된, 즉, 최인훈의 『광장』으로 대표가 되는 한국 전후문학 특유의 무기력증과 엄숙주의 그리고 퇴폐성에서 벗어나[2] 당시 1960년대의 대표상들을 김승옥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 언어의 조응력, 효과적인 공간 선택과 동시에 어울러지는 캐릭터성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문학사 쪽으로 높다.
1967년에 안개라는 제목으로 흑백영화로도 나온 바 있다. 감독은 김수용. 사실 영화상에서 여럿 각색이 되어 달라진 점도 있다. 2010년대에 화질이 복원되어 DVD로 발매되었다.
가끔 퀴즈에도 나오고는 하는데, 무진은 실제로 없는 허구의 장소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60년대의 문학 청년들이 서울역에서 무진 (가는 거) 한 장 주세요!! 했다는 일화가 있다.[3] 다만 소설 초반부에 화자와 함께 탄 승객들의 대화[4]나 작품 자체에서 묘사하고 있는 '무진'의 풍경을 보다 보면 저자가 어린시절 살던 곳인 전라남도 순천의 풍경에서[5] 그 모티브를 따 왔을 가능성이 높다. 전라남도 순천시에서는 이 점과 순천이 저자의 고향이란 인연으로 인해 같은 순천 출신의 동화 작가인 정채봉 씨와 김승옥 씨를 기념하는 순천문학관을 설립했으며, KBS 순천 방송국에선 이름을 딴 '김승옥 문학상'을 제정하였다.
문학 평론가 유종호는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찬사를 이 작품에 바쳤다. 하지만 정작 김승옥은 이 작품을 구성이 좀 진부하다고 말했으며, 문학 평론가 김현은 그냥 찢어버리는 게 낫겠다고 혹평했다고 한다.[6]
여담으로 공지영이 소설 도가니의 배경으로 '무진시'를 택했다. 다만 여기서는 인화학교 사건이 벌어진 광주의 옛 이름이 '무진주'인 것을 착안해 작중 배경의 바탕은 광주다. 무진시라는 이름만 빌린 것은 아니며, 작중 초반부에 주인공이 읽는 책이 무진기행이기도 한 등 무진기행과 겹쳐 읽게 하려는 시도가 꽤 많이 보인다. 기본적인 플롯 자체도 비슷하게 짜여 있다. 꿈을 안고 향한 공간인 무진에서 현실에 패배하고 다시 현실적 공간으로 돌아온다는 구조다. 그란데 비평가들은 굳이 무진기행과 겹쳐 읽도록 할 필요가 있었냐는 지적을 많이 하는 듯하다.
- ↑ 하인숙은 무진을 탈출해 서울로 올라가기를 원하며, 주인공은 같이 올라가기로 마음을 먹지만......
- ↑ 하지만 이미 『무진기행』에서 드러났듯이, 환상(낭만)을 좇으나 결국에는 현실의 세계로 돌아온다는 측면만 볼 때에는, 현실에 대한 어쩔 수가 없는 패배의식 내지는 현실-환상(낭만)에 대한 허무의식 만큼은 적어도 보여주고 있기는 하다(최인훈의 광장 안 주인공이 중립국으로 향하는 배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것을 선택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는 기존의 전후문학에서 보여주는 무기력증을 서술하는 대체적인 방식과 마찬가지로 현실에 대한 도피->환상(낭만)의 세계 or 도피->다시 현실의 세계로 돌아옴->허무/무기력의 서술 구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가 있다. 비단 『무진기행』만이 아니라 『서울 1964년 겨울』 등에서도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구조다. 단, 명백하게 비교가 되어야만 할 것은 전후소설의 무기력증은 전쟁으로 인한 무기력증이고 김승옥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허무주의는 전쟁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일 뿐.
- ↑ 좀 다른 분야이긴 하지만 일본의 요코하마를 배경으로 한 일본가요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의 경우에도 이런 일화가 있다. 사자에상에서 요코하마행 기차표를 사려는 주인공이 무심코 블루 라이트행 한장 주세요 라고 했다고.
- ↑ 특별한 산업 시설이 없고 바다와 가깝다지만 얕은 갯벌로 이루어져 있어 항구 등 해양 산업 분야도 변변치 않은, 특별할게 없는 평범한 소비 도시로 묘사하고 있다. 실제로 1960년대의 순천 또한 마찬가지였다.
- ↑ 안개가 많이 끼는 순천만 인근 대대포구로 짐작이 된다.
- ↑ 김현과 김승옥은 서울대학교 불문과 동기이자 같은 동인인 《산문시대》의 일원으로 절친한 사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