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무르시

역대 이집트 대통령
7~11대12대13대
호스니 무바라크무함마드 무르시압델 파타 엘 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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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1 개요

이집트의 전 대통령.

광신으로 이집트의 민주화 운동을 시원하게 말아먹은 인물

2 생애

1951년 8월 20일, 이집트 북부의 사르끼야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1975년 카이로대학 재료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미국 남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재료공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85년 이집트로 돌아와 자가지크대에서 교수를 지냈다. 학력과 이때까지의 경력만 보면 전형적인 이공계 엘리트. 그대로 계속 강의를 하다가 잘 풀려서 과학 기술 관련 부처의 고위직 공무원이나 대학의 총장, 연구소장 등이 되어 이집트의 발전에 헌신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랬던 사람이 1991년 무슬림 형제단에 입당해서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이후 2000년부터 2005년까지 무슬림 형제단 소속으로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2010년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IAEA 사무총장과 함께 "변화를 위한 국민행동"을 조직해 활동했는데 2011년 이집트 혁명 이후 열린 대통령 선거에서 뒤늦게 후보가 되었다. 사실 무슬림 형제단은 당초 카이라트 샤티르를 후보로 선정했으나 샤티르가 테러 사주 혐의로 체포되어 대선 출마가 불가능해지자 부랴부랴 무르시가 대체후보로 선정되었고 2012년 6월에 열린 대선에서 군부 출신의 샤피크 후보를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이때는 정상적이고 민주적인 놈인 줄 알았지만

그러나 무르시의 취임 후 행보는 초반부터 격렬한 논란과 혼돈을 불러왔다. 무르시의 성향이 골수 이슬람주의인 탓에 세속주의적 성향에서는 무르시에게 반감을 드러냈다. 한편으로 이집트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군부를 통제하려고 하니 이에 반발한 군부의 압박도 만만찮았다.[1]

이런 가운데 무르시 정권은 새 헌법을 제정하는데 이 헌법이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만다. 새 헌법은 대통령령과 선언이 최종적인 권한을 지니며 어떤 기관도 대통령령을 폐지할수 없고, 사법부의 의회 해산권을 폐지하며 국가 운영의 근간은 이슬람법인 샤리아를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한마디로 이집트를 사우디, 이란과 같은 신정국가로 만든다는 것. 이 때문에 반 무르시측에서는 네가 무슨 파라오냐라면서 격렬하게 반발했다.파라오 + 호메이니가 되려는 욕심 무르시는 이런 반발에도 결국 무슬림 형제단이 대부분을 장악한 의회에서 새 헌법을 통과시켜버렸다. 이후 국민투표에서도 새 헌법이 통과되었지만 샤리아로 인한 광신정치가 일으키는 폐단이 워낙 심하다보니 무르시 정권에 대한 반감은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경제상황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결국 이집트 국민들의 반감은 극도에 달한 가운데 군부가 움직였다. 2013년 7월 5일, 압델 파타 엘 시시 국방장관이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 권한정지를 선언하고 무르시를 구금했다고 발표했다. 이집트는 이후 무르시 복귀를 촉구하는 찬성파와 무르시 반대파가 나뉘어 격렬한 시위끝에 군부가 반대파 시위대는 놔두고 찬성파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진압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무르시 축출이 옳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무르시가 분명 잘못한 부분은 아무리 군부를 견제하기 위함이었다지만 파라오 헌법을 강행했다는데 있고 또한 세속주의적 성향의 반대파와 기독교인, 여성을 포용하지 않은 부분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무르시가 파라오 헌법을 만들긴 했으나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이뤄진 일이고 국민의 투표로 뽑힌 대통령을 다시 군부가 쿠데타로 밀어내면 이집트 민주주의의 발전은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수권법도 합법적으로 통과됐다 그러나 법이 늘 정의일 수는 없다는 것이 우리가 역사에서 배운 교훈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한편으로 무르시 축출 직전까지 고조된 경제 위기가 갑자기 해소되었다는 점에서 이집트 군부가 무르시를 축출하기 위해 장난질을 한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으며 이스라엘도 이집트 군부를 도와서 장난질에 가세한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한 상황이다.

2015년 5월 16일, 이집트 대법원은 무르시에게 2011년 이집트 혁명당시 탈옥한 죄로 사형을 선고했다. 2011년 당시 무르시는 1월 28일 체포되어 수감되었으나 이틀만에 교도소를 탈출해 혁명에 가담했는데 이집트 검찰은 무르시를 탈옥시킨게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라면서 하마스와 공모해 탈옥하고 경찰서를 습격하는등의 행동을 보였다면서 기소했고 이집트 대법원은 이에 사형을 선고한 것. 2016년 6월 18일에 이집트 법원은 무르시에게 종신형을 선고했다.#
  1. 특히 이집트 군부는 세속주의를 추구하는데 이슬람주의인 무르시가 더욱 싫을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