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2012년부터 시행 중인 법률인 '국방수권법'에 대해서는 NDAA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한자 : 授權法;
독일어 : Ermächtigungsgesetz;
영어 : Enabling Act
파일:Attachment/Ermaechtigung-2.jpg
▲ 수권법에 대한 정부 요인들의 서명. 위에서부터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 아돌프 히틀러 총리, 빌헬름 프리크 내무장관, 콘스탄틴 폰 노이라트 외무장관, 루츠 그라프 슈베린 폰 크로지크 재무장관.
독일, 더 나아가 세계를 재앙으로 빠뜨리는 출발점이 된, 있어서는 안 되었던 법률.
1 개요
비상 시 입법부가 행정부에 입법권을 위임하는 법률. 일반적으로 이 단어는 1933년 독일에서 제정된, 국회를 배제하고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을 내각(실제로는 총리인 히틀러)에 부여한 법률을 가리킨다. 3월 24일 국회를 통과하였으며, 이 법률에 의해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는 무너지고 나치 독일 체제가 들어서게 되었다. 정식 명칭은 '민족과 국가의 위난을 제거하기 위한 법률(Gesetz zur Behebung der Not von Volk und Reich)'이다. 전권 위임법 또는 권리 부여법이라고도 한다.
2 조문
2.1 한국어(번역)
민족과 국가의 위난을 제거하기 위한 법률 독일 제국의회는 다음과 같은 법률을 제정한다. 이로써 상원의 승인을 선언하며, 이 법률의 하위 항들로 인해 헌법 수정의 요건을 채운 것으로 확실하게 인정받는다. 제1조 독일의 법률은 헌법에서 규정되고 있는 절차 이외에 독일 행정부에 의해서도 제정될 수 있다. 이 조는 바이마르 헌법 제85조 제2항 및 제87조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도 적용된다. 제2조 독일 행정부는 연방 의회 및 연방 참의원의 제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헌법에서 정한 것과 다른 내용의 법률을 제정할 수 있다. 다만, 대통령의 권한을 변경할 수는 없다. 제3조 독일 행정부에 의해 제정된 법률은 총리에 의해 작성되어 관보(官報)를 통해 공포된다. 다른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그 법률은 공포한 다음 날부터 그 효력을 발생한다. 헌법 제68조에서 제77조는 정부에 의해 제정된 법률에 대하여서는 적용하지 아니한다. 제4조 독일이 외국과 조약을 체결하는 경우 그 조약은 입법권을 가진 다른 기관과의 합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행정부는 이러한 조약의 이행에 필요한 법률을 공포할 수 있다. 제5조 이 법은 공포한 날부터 1937년 4월 1일까지 효력을 발휘하며 현 행정부가 다른 행정부로 교체될 경우에는 효력을 잃는다. |
2.2 독일어(원본)
Gesetz zur Behebung der Not von Volk und Reich Der Reichstag hat das folgende Gesetz beschlossen, das mit Zustimmung des Reichsrats hiermit verkündet wird, nachdem festgestellt ist, daß die Erfordernisse verfassungsändernder Gesetzgebung erfüllt sind: Artikel 1 Reichsgesetze können außer in dem in der Reichsverfassung vorgesehenen Verfahren auch durch die Reichsregierung beschlossen werden. Dies gilt auch für die in den Artikeln 85 Abs. 2 und 87 der Reichsverfassung bezeichneten Gesetze. Artikel 2 Die von der Reichsregierung beschlossenen Reichsgesetze können von der Reichsverfassung abweichen, soweit sie nicht die Einrichtung des Reichstags und des Reichsrats als solche zum Gegenstand haben. Die Rechte des Reichspräsidenten bleiben unberührt. Artikel 3 Die von der Reichsregierung beschlossenen Reichsgesetze werden vom Reichskanzler ausgefertigt und im Reichsgesetzblatt verkündet. Sie treten, soweit sie nichts anderes bestimmen, mit dem auf die Verkündung folgenden Tage in Kraft. Die Artikel 68 bis 77 der Reichsverfassung finden auf die von der Reichsregierung beschlossenen Gesetze keine Anwendung. Artikel 4 Verträge des Reiches mit fremden Staaten, die sich auf Gegenstände der Reichsgesetzgebung beziehen, bedürfen für die Dauer der Geltung dieser Gesetze nicht der Zustimmung der an der Gesetzgebung beteiligten Körperschaften. Die Reichsregierung erläßt die zur Durchführung dieser Verträge erforderlichen Vorschriften. Artikel 5 Dieses Gesetz tritt mit dem Tage seiner Verkündung in Kraft. Es tritt mit dem 1. April 1937 außer Kraft, es tritt ferner außer Kraft, wenn die gegenwärtige Reichsregierung durch eine andere abgelöst wird. |
2.3 영어(번역)
Law to Remedy the Distress of the People and the Nation The Reichstag has enacted the following law, which is hereby proclaimed with the assent of the Reichsrat, it having been established that the requirements for a constitutional amendment have been fulfilled: Article 1 In addition to the procedure prescribed by the constitution, laws of the Reich may also be enacted by the government of the Reich. This includes the laws referred to by Articles 85 Paragraph 2 and Article 87 of the constitution. Article 2 Laws enacted by the government of the Reich may deviate from the constitution as long as they do not affect the institutions of the Reichstag and the Reichsrat. The rights of the President remain undisturbed. Article 3 Laws enacted by the Reich government shall be issued by the Chancellor and announced in the Reich Gazette. They shall take effect on the day following the announcement, unless they prescribe a different date. Articles 68 to 77 of the Constitution do not apply to laws enacted by the Reich government. Article 4 Treaties of the Reich with foreign states which affect matters of Reich legislation shall not require the approval of the bodies of the legislature. The government of the Reich shall issue the regulations required for the execution of such treaties. Article 5 This law takes effect with the day of its proclamation. It loses force on 1 April 1937 or if the present Reich government is replaced by another. |
3 조문의 해설
- 제1조 : 입법권을 의회에서 히틀러 내각(정부)으로 이양한다.
법률을 히틀러 멋대로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의회의 존재 의미가 소멸되었다. |
- 제2조 : 대통령의 권한, 연방의회 및 참사원 제도를 제외하고는, 국가의 정부형태를 변경할 수 있다.
- 제3조 : 행정부가 입안한 법률은 행정부 수반인 제국수상이 공포할 권리를 가진다[1].
당시 대통령인 힌덴부르크의 권한을 일부 빼앗았다. 후술한 이유에 따라서 일단 한발 물러선 것으로, 나중에 힌덴부르크가 사망하자 히틀러가 대통령과 총리를 겸직하면서 양보한 부분을 되찾는다. |
- 제4조 : 외국과의 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국회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외교권도 히틀러 마음대로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
- 제5조 : 이 법률이 한시법안임을 보여준다.
이는 비(非)나치계 우파정당인 가톨릭 중앙당[2]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조항이다. 중앙당 내에서도 수권법에 대한 거센 반발이 있었으나 당 지도부는 수권법은 한시적이며, 중앙당은 건드리지 않겠다는 나치당의 약속을 믿고 법안 통과에 적극 협조하였다. 그러나 나치당은 수권법을 통과시킨 후 중앙당을 포함한 모든 정당을 강제 해산하고, 법의 유효 기간을 무기한 연장하였다. |
혹시 다른 당이 집권하면 수권법을 쓸 수 없는 효과도 있다
즉, 이 페이지까지 따라온 사람들은 다들 알듯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나치당 독재체제를 수립하는 법안이었다.
4 투표와 통과
법률안의 투표는 나치 친위대(SS)와 돌격대(SA)가 독일 국회의사당을 둘러싼 상태에서 치렀다. 이미 독일 공산당 의원 81명은 나치당에 의해 전원 체포되거나 외국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 국회의사당에 들어오지 못한 상태였다. 독일 사회민주당 의원 중 26명, 중앙당 의원 중 2명, 독일인민당 의원들도 출석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과반수를 차지했지만 헌법 개정에 필요했던 의결 정족수인 2/3 출석에 2/3 찬성에는 모자란 나치당은 연립 여당들과의 협력을 통해 결석의원을 모두 기권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이런 꼼수를 쓴 이유는 당시의 나치당은 1933년 집권당시 제1당이긴 했지만 의석이 전체의 1/3에 불과했다. 따라서 바이마르공화국 체제를 존중한다는 약속을 하고 카톨릭 중앙당과 여타 군소우파정당을 끌여들여서 반좌파 연립정부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지금 당장 법률을 처리할 의석수가 부족했기에 독일 공산당 의원들을 전원 체포하여 기권표를 만들어내고, 우파 세력인 가톨릭 중앙당, 독일인민당과는 밀땅 거래를 해서 대통령과 주의 권한에는 손대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합의를 이끌어 낸다. 이때 독일 공산당을 금지하고 공산당 의원들을 체포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 유명한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이다.[3]
어쨌든 1933년 3월 24일 이 수권법은 나치당의 주도로 찬성 441 : 반대 94(출석 독일 사회민주당 의원)로 가결되었다. 의회 스스로 의회민주주의를 포기했다는 점에서, 형식적 법치주의의 자살이라고도 불린다. 참고로 당시 제국의회 의석은 총 647석이였고 2/3이면 431.3333...이므로 공산당과 사민당이 합심하여 반대했더라도 수권법은 통과된다. 정당별 의석수 및 찬반표
당시 사회민주당 당수였던 오토 벨스(Otto Wels)는 반대연설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 독일 사회민주당은 이 역사적 순간에 인간성과 정의, 자유,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을 밝힌다. 전권위임법(수권법)이 당신들에게 영원 불멸의 이념을 없앨 수 있는 힘을 주지는 못한다. … 또한 독일 사민당은 이 박해를 통해 새로운 힘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박해받고 억압받는 이들에게 안부를 전한다. 제국내의 동지들에게 안부를 전한다. 여러분의 의연함과 충직함은 존경받을 만하다. 여러분들의 확신에 찬 용기, 끊임없는 확신은 밝은 미래를 보장한다." 원문(독일어)
또, 최후의 한마디로 히틀러에게는 이 말을 남겼다.
"우리의 자유와 생명을 빼앗을 수 있지만, 우리의 명예를 빼앗을 수는 없다." 원문(독일어)
이 발언에 대해 히틀러는 "나도 당신들에게 찬성해 달라고 안 한다. 독일에는 자유가 필요하나, 당신들이 주도하는걸 바라지는 않는다."라는 망언을 내뱉는다.
5 결과
더 이상 설명이 必要韓紙?
수권법의 제정으로 거리낄 것이 없어진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당은 권력을 재빠르게 장악하고, 야당과 심지어 연립여당까지도 전부 해산하는 독재체제를 구축하였다. 그 뒤는 알려진 대로 제2차 세계대전.
이 모든 과정은 표면적으로는 합법적인 법률 제정과 이에 따른 통치 방식에 의해 유지되었다. 대통령의 권한을 불가침으로 해놓았으나 1934년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사망한 이후, 아돌프 히틀러 수상은 대통령 자리에 누구도 올라가지 못하게 하고 대통령 권한을 자신에게 부여하며 총통이 되었다.
6 이후
나치 독일이 무너진 후의 서독과 현재의 독일에서는 이 법률로 인하여 히틀러의 독재가 명목상 정당화될 수 있었던 과거의 역사를 반성하고, 헌법에 대한 충성 의무를 못박아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모든 정당을 인정하지 않게 되었다. 민주주의 체제를 이용해서 합법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제2의 나치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한 이른바 방어적 민주주의.
이에 따라 헌법에 위헌정당해산제도 제도를 도입하였으며, 독일 연방헌법수호청을 신설하여 반민주적 행위와 사상을 감시하고 있다. 현재의 주요 감시대상은 민족 민주당(NPD) 등 네오 나치를 포함한 극우 세력과 좌파당 내 극좌 인사들[4]. 실제 서독 시절에는 나치당의 후신인 극우 정당 사회주의 제국당(SRP)과 막강한 세력을 자랑하던 극좌 정당 독일 공산당(KPD)[5][6]이 헌법재판소의 위헌정당 해산 결정에 따라 해산된 전례도 있다.[7]
그 외에도 정치적 극단주의 세력이 정치권에서 세력을 떨치기 어렵도록 방지장치를 여럿 두고 있다. 예를 들면 연방 하원 총선에서 정당 명부식 비례대표 의석 배분 기준이 무려 5%나 된다. 즉 5% 미만의 지지를 얻는 정당은 연방 하원에서 비례대표 의원을 한 명도 당선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괴상한 극단주의 정당이 지지를 조금 받는다고 의원을 당선시킬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시도이다.[8] 정당 명부식 비례대표를 도입한 다른 나라와 비교해봐도 이례적으로 높은 기준치이다.[9][10]- ↑ 법률제정권과 법률공포권이 분리된 국가에서는 법률공포권은 곧 법률안거부권으로 이어진다. 법률이 효력을 가지는 것은 법률이 공포되는 시점부터인데, 공포권자가 공포를 거부하면 법률이 효력을 가지지 못하는 것으로 되어버리는 것이다. 수권법이 입법권을 행정부에 위임하는 내용을 담은 이상, 그 목적을 완전히 달성하고 대통령의 견제를 회피하기 위해서는, 제국수상에게 법률안공포권을 맡기는 것은 필연적이다.
- ↑ 2차 대전 패배 이후 서독의 경제 재건을 이끌었던 콘라드 아데나워와 기독교민주연합 인사 대부분이 이곳 소속이었다.
- ↑ 중요한 것은 시기이다. 방화사건은 1933년 2월 17일에 일어났다. 재판은 9월 21일에 열렸고 판결이 나오는데 3개월이 결렸으며 결과도 5명 중 4명이 무죄를 받았는데, 괴벨스와 괴링, 히틀러는 재판을 시작하기도 전에 공산당의 음모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화재가 일어난 날 밤에 사법부의 체포령 없이 체포가 가능하며 무한정 구금할 수 있는 긴급조치를 제안하고 여기에 힌덴부르크가 서명을 하면서 단 며칠 사이에 4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체포되었다. 그리고는 3월 24일에 수권법을 날치기 통과시킨다.
- ↑ 좌파당은 동독 공산당 출신 인사들과 기타 좌파 계열의 정치인들이 합쳐진 정당이다. 구 동독 지역 내 지지율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인데다가 정당내의 스펙트럼이 상당히 다양하기 때문에 정당 자체가 위헌적이라고 판단하기가 애매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당원의 3분의 1 가량을 연방헌법수호청이 주시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 ↑ 혼동을 막기 위해 '서독 공산당'이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 ↑ 단 이 독일공산당 해산 결정은 독일국내외를 막론하고 큰 논란이 되었다. 실제 1968년도에는 다시 독일공산당이 재창당해서 현재도 활동중이다. 원외군소정당이긴 하지만.
- ↑ 근래에 민족 민주당도 해산 청구가 되긴 했으나 무산됐다. 헌법수호청 요원이 신분을 감추고 입당하여 당 지도부까지 들어갔는데, 이러다 보니 당 강령의 어디서 어디부터가 민족민주당 주동 세력의 것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신분을 감추고 입당한 요원들의 것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헌법재판소가 해산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지금도 이 정당이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그래도 다행히 연방의회에는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 ↑ 단, 유럽의회 선거(회원국마다 지역구와 의원 선출 방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음)에서는 이 '5% 룰'이 위헌이라는 독일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그래서 201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부터는 이 기준이 사라져 극우 민족민주당이 1석을 당선시키기도 하였다(...).
- ↑ 참고로 대한민국 국회의 비례대표 의석 배분 기준은 3%이며,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보통 1~2% 정도이다. 지역구가 없고, 모든 국회의원을 정당명부 비례대표로 선출하는 네덜란드는 0.67%이다. 독일의 5%는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중에선 상당히 높은 기준이다.
- ↑ 듣보잡 정당으로 출발했다가 언제부터인가 이 5% 컷은 늘 넘겨 주요 정당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독일 녹색당의 사례가 정치학계의 연구 대상이 되기도 한다. 거대 정당은 아니지만 사민당과의 연립 정부를 구성하는 등 장관들을 배출하기도 하는 등 완전히 주요 정당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