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lim Brotherhood. 약칭은 MB다.
1 설명
이집트를 중심으로 하는 범 아랍권의 이슬람 극단주의 정치 조직, 정당 단체. 무려 500만~1000만 명에 이르는 회원 수[1]를 가진, 세계 최대이자 가장 역사가 오래된 이슬람주의 단체이다. 또한, 사우디 아라비아의 와하브파와 함께 모든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들의 모태라고 볼 수도있다.
2 역사
1928년 서구로부터의 독립과 이슬람 문화의 부흥을 내걸고, 하산 알 반나(Hassan al-Banna, 1906 - 1949)가 이집트에서 결성하였다. 1940년대 이슬람주의 운동이 성장하면서 요르단, 팔레스타인 등 주변 여러 지역으로 진출하였으며, 현재는 수많은 아랍 국가에서 폭넓게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을 확산시키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이슬람 원리주의 조직인 하마스의 모체가 되었다.
1952년 왕정 타도에 참가하였으나, 이집트 대통령 나세르의 암살을 꾀하다가 탄압되었다. 1970년 사다트 대통령 정권 아래에서 조직을 재편하여 테러 위주의 극단주의를 배제하고 국회를 통한 정치 활동을 시도하는 등 합법적인 이슬람주의 운동이 되었다. 하지만 이들이 극단주의적 사상과 이슬람 신정국가 건설 목표를 포기한건 아니었다.
무슬림 형제단은 대중을 대상으로 다양한 사회 활동을 전개하는 방식으로 이슬람주의의 성장을 도모하였는데, 종교 활동은 물론, 의료, 교육, 상호부조 등의 다양한 사회봉사 활동을 실시하였으며, 이러한 빈곤층 구제 활동을 통하여 굳건한 지지를 모으게 되었고, 이슬람주의 조직이나 단체들 중에서 가장 지지 기반과 조직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도 받았다.
2010년 말부터 2011년에 걸쳐서 일어난 아랍의 봄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2.1 집권
2011년 이집트 민주화 운동 이후, 무슬림 형제단은 정당 "자유공정당"을 결성하여, 무함마드 무르시가 당수로 취임하였다. 자유공정당은 의회 선거에서 약진하고,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무르시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2013년 3월, 무슬림 형제단은 공식적으로 NGO로 등록되었다. 하지만, 2013년 중반 엘시시 장군의 쿠데타 이후 수립된 이집트의 신군부 정권 하에서 NGO자격을 도로 박탈당했다.
2.2 탄압
2013년 정변으로 무르시는 대통령 권한을 잃고 이집트 군이 정권을 장악하였다.
2013년 8월 14일, 카이로 동부의 라바아 알 아다위야 광장에서 쿠데타에 항의하던 무슬림 형제단원들을 이집트군이 학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희생자는 최소 594명[2]에서 최대 2600명[3] .
2013년 12월 25일, 차량폭탄을 사용한 테러가 발생하여 이집트 임시 정권에게 '테러 조직'으로 지정되었다.
2014년, 무려 683명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지고, 지도부에게 사형, 종신형을 수없이 겹쳐서 날리고 있다. 현재 지도부는 망명하여 외국을 전전하는 등. 이집트의 형제단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기사
무슬림 형제단에 우호적이던 카타르가 형제단 지도부의 망명을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이집트로부터 송환 요구가 반복되고 사우디, UAE, 바레인 등에서 압력이 가중되자 결국 형제단은 재망명을 떠나기로 했다. 마찬가지로 군부독재를 무너뜨리고 집권한 문민독재자인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들의 망명을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다.기사
2.3 한계와 몰락
무슬림 형제단의 이집트 통치는 이슬람 근본주의 사회를 건설하려는 과격하고 성급한 시도 때문에 군부 + 이집트 민중의 반발을 불러오면서 파탄을 맞이했다. 현재, 이집트 국민들은 이전과는 반대로 무슬림 형제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며 형제단에 대한 지지도는 완전히 땅에 떨어졌다.기사 다만, 이것이 이집트의 민주화와 자유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며 사회 전반적으로는 오히려 보수화와 종교화가 강화되고 있어 형제단과 같은 조직이 좀 더 성향을 온건하게 바꿔서 부흥할 여지는 아직 적지 않다.
내정 측면에서 몰락의 가장 큰 원인은 무슬림 형제단은 야권 가운데서는 가장 큰 세력으로 상당한 시민 운동 경험이 있었지만, 행정 경험은 부족한 인사들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권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능력보다는 형제단에 충성하는 인물들만 발탁하다보니 친목질 논란이 일어났고, 형제단 내부에서도 분열이 일어났다. 더군다나 국가 문제를 해결할 인재는 세속주의자라는 이유로 등용하지 않고 이슬람 꼴통 인사들만 주요 요직에 배치하는 등 근본주의적인 친목질과 병크를 일삼았고, 당연히 하루종일 코란만 파는 인간들이 세속 행정에 대해 아는 게 있을 리가 없기 때문에 국가 능력 하락과 다양한 혼란으로 이어졌다. 즉, 갑작스런 혁명으로 집권한 탓에 전형적인 '준비되지 않은 정권'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냈던 것이다.
게다가 이집트의 군부 독재는 오랜 세월동안 견고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고, 형제단의 급격한 이슬람 극단주의 움직임은 세속주의 야권 세력들이 "이러다 이집트가 근본주의 신정국가가 되어 버리는 것 아니냐" 같은 두려움을 불러 일으켰다. 결국 민주화를 주도한 세속주의 세력들이 성급한 민주화를 포기하고 다시 과거의 앙숙이었던 군부와 결탁하게 만들었다. 거기다 무슬림 형제단 내부 역시 분열되면서 광신도 극단주의자들이 내부의 실권을 장악하여 악화되는 여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군부의 재집권과 몰락 이후에는 가까운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테러조직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의 발호가 무슬림 형제단의 이미지도 함께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4]기사 예비역 장성으로 보안전문가인 사예드 알 가브리는 중국의 신화통신에 "다수의 사람들이 IS와 무슬림형제단 및 기타의 살라피스트 성전주의자들을 동류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IS의 테러 활동으로 무슬림 형제단의 세력이 위축된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무슬림 형제단에 동조했던 일부 국민들도 IS가 이슬람의 이미지를 어떻게 왜곡시켰는가를 깨닫지, 등을 돌렸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이집트 혁명으로 호스니 무바라크가 실각한 후 2013년 1년간 들어선 무르시 문민정부를 뒤집고 재집권한 무바라크의 후계자격 군사독재자 압델 파타 엘 시시 전 장군, 현 이집트 대통령은 유엔총회에서 테러와의 전쟁은 IS에 국한돼서는 안 된다면서 IS와 무슬림 형제단을 묶어 "근본주의적 어두움"의 세력이라고 주장하며 무슬림 형제단을 IS와 연결시키려 하였다. 시시 장군의 쿠데타로 축출되었을 당시 여당이어었던 형제단의 주요 구성원들에게 있는 죄 없는 죄 이거 저거 씌워서 수백명에게 사형 선고를 때리는 병크를 저지른[5] 이집트 군부의 가혹한 조치 때문에 무슬림 형제단은 서구나 이집트에서 어느 정도는 동정을 받고 있었지만, IS가 악명을 떨치자, 무슬림 형제단도 이들과 똑같은 부류로 묶이면서[6] 동정의 시선이 증발했다. 심지어 이집트 인들 마저 무슬림 형제단을 이집트를 시리아나 이라크처럼 지옥으로 만들 테러단체로 인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집트에서 재스민 혁명이 발생한 것은 이슬람권 국가에 만연해 있는 궁핍한 경제 문제와 양극화 문제인데 무슬림 형제단은 이러한 경제에 대해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샤리아에 근거한 이슬람주의 정책 밀어붙히기와 외국기업 추방 등 경제를 살리기는 커녕 오히려 더 악화시키는 정책을 실시하여 일반 무슬림들도 무슬림 형제단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면서 몰락이 예고 되어있었다.
이집트의 정치평론가이며 중동정치연구소 소장인 암마르 알리 하산은 "IS의 출현으로 서방은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지지를 포기하고 이집트의 신 정부(압델 파타 엘 시시)에 미국 주도의 대IS 연합전선에 참가하도록 요청함으로써 무슬림 형제단은 큰 손해를 보았다"고 진단했다.
2.4 해외 전개
무슬림 형제단은 주로 범 아랍주의 정당인 바트당과 마찰을 빚었다. 극단적 살라피스트들은 서구적 민주주의를 인정하는 무슬림 형제단은 '반 이슬람적' 요소가 많으며 순수하지 않다고 여기고 있다. 걸프 왕정 국가들은 무슬림 형제단을 좋게 보지 않는다.
- 시리아 : 시리아의 무슬림 형제단은 아사드 정권과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정부에 대한 반란을 계속 시도했고 독재자 하페즈 알 아사드를 암살하려 했다가 보복으로 1982년 거점인 하마가 공격당하여 하마 학살이 일어났다.
- 카타르 : 무슬림 형제단의 강력한 지원자로 알려져 있다.
-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 무슬림 형제단의 팔레스타인 지부가 떨어져 나와 1987년 성립되었다. 하지만 무슬림 형제단과는 결별하여 독자노선을 걷고 있다. 특히 이집트와의 관계가 나빠지는 것을 원치않기에 무슬림 형제단과는 철저하게 선을 긋고 있다.
- 수단 공화국의 국민회의당(National Congress Party) - 악명높은 독재자 오마르 알 바시르가 이끄는 수단의 살라피즘-와하비즘 성향 여당이다. 독재자 바시르의 하수인들로 수단에서 악명높은 광신정책을 펴는 것으로 유명하다.
2.4.1 러시아에선 러시아인이 인질범을 납치합니다
일단의 괴한들이[7] 1985년 9월[8] 30일 베이루트 소련 대사관에 침투해 외교관들을 인질로 잡았다. 테러범이 인질 하나를 살해하자 한발 늦게 도착한 KGB 스페츠나츠[9]들은 KGB 첩보망을 이용, 테러범의 가족들을 납치해 그 중 한명의 고환을 절제하여 대사관에 보낸 뒤 살해했다. 남은 외교관 인질들은 무사석방되었으며 2006년 이라크에서 발생한 대사관 직원 납치 살해 이전까지 해외에서 러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납치 시도는 없었다.
2.5 테러 단체 지정국
무슬림 형제단은 러시아, 시리아, 이집트, 사우디 아라비아,아랍 에미리트에서 테러 단체로 지정되어 있다. 사우디의 경우 내세우는 가치관이 무슬림 형제단 뺨을 칠 정도로 심각하다는 점에서 웃기는 일이지만, 사실 사우디를 비롯한 걸프 국가에서 이슬람은 대단히 근본주의적이지만 동시에 관변 종교의 성격이 강해서, 정권에 위협이 되면 이슬람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잡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종교가 아닌 정치적인 결정인 것.
3 이념과 비판
"이슬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콥트 정교회 기독교인 소년들을 붙잡아 집단폭행하고 있는 무슬림 형제단 단원들.
이념은 일단 민주주의 매커니즘과 이슬람의 권위를 동시에 내걸고 있다. 민주주의 제도를 견지하면서, 궁극적으로 샤리아의 전면적인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샤리아의 형태에 반하지 않는 형태로 삼권분립, 의회민주주의, 평화적 정권 교체 등을 주장한다. 때문에 비이슬람권에서는 온건 이슬람 민주주의 정당으로 분류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과정이나 방법이 민주적이든 아니든 간에 궁극적으로 샤리아 법에 의해 통치되는 체제를 만들겠다는 당의 강령부터 진정한 의미의 자유민주주의와는 억만 광년 떨어진 이념이라는 것. 게다가 이러한 극단적인 사상 때문에 끊임없이 비이슬람 종교에 대한 차별[10], 성차별적 요소가 심각하다.
무슬림 형제단은 권력을 잡자마자, 샤리아를 이집트 헌법보다 우위에 두었고 샤리아를 기준으로 삼아 자유주의 탄압/언론탄압/여성차별/현대식 교육 제재/타종교 차별 정책을 실시하였으며 정작 아랍의 봄을 일으킨 경제적 어려움은 해결하기는 커녕 해외자본 추방, 이슬람 문화가 아닌 타 학문과 기술 탄압 등 사회문제 해결 의지는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고 시대의 변화를 거슬러 오르는 근본주의 정책만을 실시하였다.
게다가 오랜시간동안 이슬람과 공존해왔고, 이집트 혁명에서도 이슬람 세력과 연대하고 함께 시위에 나섯던 콥트 정교회 등 이집트 토착 기독교인을 뒷통수치고 노골적인 탄압 정책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결국, 서구권에서 군부 쿠테타를 지지할 정도로 반감을 사게 되었다.
결론적으로는 의회민주주의를 이용하기만 할 뿐, 실제로는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반인권적 이슬람 신정국가를 건설하려는 전체주의적 목표를 가진 정당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 대표적인 이슬람과격주의단체들도 많아봐야 10만단위 규모다.
- ↑ 이집트 보건부 집계
- ↑ 무슬림 형제단 자체 집계
- ↑ 참고로 이 집단은 그 악명 높다는 탈레반과 알 카에다가 등을 돌리고, 소말리아에서 활개치며 수시로 케냐에 테러 원정을 나가는 그 알 샤바브조차 서로 무시하고 살자고 말할 정도의 악질 테러 단체다.
- ↑ 실제로 재판 과정이 막장이었다고 한다. 특히나 세속 세력과 형제단이 같이 충돌해서 수십명이 죽었는데, 형제단은 법을 FM대로 적용해서 사형을 수십건씩 때리는 반면에 세속 세력 쪽은 주동자 몇 명 빼고는 적당히 몇 년 가둬두는 불공평한 형 집행도 이뤄지고 있다.
- ↑ 묶인다는 표현을 하나 무르시가 집권하고 한 일들을 보면.. 이들이라고 별로 나을 것도 없다. IS가 워낙 인간 이하의 만행을 저지르고 다녀서 그렇지..
- ↑ 국내에는 헤즈볼라로 알려졌지만, 영어판 위키백과는 무슬림 형제단 과격파라고 되어있다. 드루즈 민병대라는 기록도 있다.
- ↑ 9월이라는 기록도 있고 10월이라는 기록도 있다
- ↑ 국내에는 '빔펠'로 알려졌으나 영판위키는 '알파'로 표시하고 있다
- ↑ 일례로 무슬림 형제단이 잠시 집권했다 물러났던 이집트에서는 정당 고위 인사들이 정권이 실각했다는 이유로 비이슬람 토착 기독교에 대한 증오와 공격을 선동하거나, 이슬람을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한 한 여성이 징역 15년을 받는 등 도저히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는 심각한 인권탄압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