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육군의 특전사령관 | ||||
7대 육완식 | → | 8대 민병돈 | → | 9대 이문석 |
(육군사관학교 교장 시절의 프로필 사진)
1 개요
육군사관학교 15기로 하나회 일원이다. 전두환의 1공수여단장 시절 대대장으로 계파상으로는 전두환계에 속하나 민따로라고 불릴 만큼, 군내 불법 사조직 하나회의 인물치고는 특이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데 주저없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2 군인 시절
군사 정권 시절 상납이 문화였던 군대에서 상납을 하지도, 받지도 않았다고 하며 그 시절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란 원하는 사람을 찍는 것이다라며 군장병의 자유로운 비밀 투표를 독려했던 인물이었다. 하나회 15기의 대표주자이자 전두환의 총애를 받아 수도경비사령관으로 가는 코스였던 요직 20사단장을 역임했으나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병사들에게 현 정권에 대한 투표 독려를 거부하여 준장 보직으로 좌천당했다.
특전사령관 시절에는 서울 올림픽 대비 테러를 위해 방탄복을 입고 서로에게 실탄 사격을 하는 훈련이 있었는데 병사들이 주저하자 "나부터 먼저 쏴라"라며 방탄복을 입고 솔선수범하여 가장 먼저 '총알받이'가 자청하는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하나회 인물로 전두환의 총애를 받은 인물이지만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선배들에게도 소신있게 거부하였다. 6월 항쟁으로 인해 위기에 몰린 전두환이 군을 출동시켜 유혈 진압하려는 명령을 내리자 군 출동 시 핵심 부대인 특전사의 사령관이었던 그는 대통령에게 거부 의사를 밝히며 명령 취소 요청을 하기까지 했다.[1] 후일담에 의하면 전두환이 재고하지 않았다면 쿠데타를 일으킬 계획을 세우고 연습까지 마쳤다고 한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군부 내에서까지 제2의 5.18이 될 수 있는 군을 통한 강경진압에 대해 반대 의사가 터져나오자, 전두환은 군 출동 명령이 진심이었던지 민주화 세력에 대한 협박용 카드였던지 간에 결국 군 출동은 이뤄지지 않았고 6.29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그는 권력에 복종할 수 밖에 없었던 군대 사회에서 자신의 원칙과 소신을 지켜온 드문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행보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3 육사 졸업식 항명 사건
1989년 3월 21일, 육군사관학교 제45기 졸업식에서 당시 육군사관학교장이었던 민병돈은 대형 사고를 일으킨다. 바로 대통령 노태우를 공식 행사에서 무시하고 그의 정책을 강도 높게 비난한 것.
졸업식이 시작되고 교장 식사 순서가 되자 민병돈은 연단으로 나가면서 임석 상관이었던 노태우에게 경례를 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단순히 실수인 줄 알았는데 연설이 시작되면서, 민병돈은 노태우 대통령에게 더욱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단순 졸업 축하 식사를 한 것이 아닌 대통령을 뒤에 두고 노태우 정부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북방정책을 10분 동안이나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이다. 군 장성이 정부 정책을 비판 한 것도 전례 없는 일이었으며, 더욱이 대통령을 뒤에 두고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 상관인 대통령을 기다리게 하지 않기 위해 간단하고 짧게 해야 하는 교장 식사를 10분이나 하며 대통령을 비판한 것이다.
그리고 연설을 끝나고 돌아오면서도 노태우 대통령에게 끝까지 경례를 하지 않으면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방금 전 경례를 하지 않은 것은 실수가 아니라 나는 당신을 나의 상관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공표한 격으로, 제대로 작심하고 반항을 저지른 것이었다. 황당한 노태우는 대통령 치사를 하러 그를 지나치면서 "민 교장, 왜 이러는거야?"라고 했다고 한다.
다음날 당연히 당시 육군참모총장 이종구는 그를 강도높게 질책했고, 민병돈 장군은 즉시 사임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20일 후 육사교장에서 경질되었고 50일 후에는 예편당했다. 이 일은 보수파였던 민병돈이 적국이었던 공산권 국가들과 수교하는 노태우에 대한 강한 이의 제기라고 보는 시각이 있으며, 집권 후 전두환계 군맥들을 숙청한 것에 대한 전두환계의 불만이 섞여있다는 시각도 있다. 퇴임 후에는 경민대학교에서 석좌교수를 역임하기도 하였고, 아시아엔이라는 군소 인터넷 언론에서 글을 기고하고 있는 등의 주로 군사전문가로서 활동을 하고 있다. 일체의 공직 제의를 뿌리치고 40년 전 마련한 허름한 집에서 검소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여담으로 휘하 장병들을 엄하게 다루면서도 한편으로는 따뜻하게 다루었다고 한다. 원칙에 어긋나면 강하게 털면서도 가난한 병사가 휴가를 갈때면 돈을 쥐어주는 지휘관이었다고 한다. 여하튼 당시 대한민국의 실세였던 하나회의 대표 주자로 손꼽히면서도 2명의 대통령에게 항명하고 자신의 소신을 밝힌 한국군에서 가장 특이한 장군이었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하다.- ↑ 이 일화는 2005년 MBC 드라마 제5공화국 '6월항쟁' 편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