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선 초기의 무장 박순
朴淳
?~1402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일으키기 전, 회군 승인을 받기 위해 이성계의 명을 받고 우왕에게 갔었다.
조선이 세워진 후에는 상장군이 되었다.
조사의의 난이 일어나자 이들을 무마하고자 조정에서 파견되었으나 피살되었다.
조사의의 난을 모티브로 한 함흥차사 전설에도 등장한다. 아들 태종 이방원이 보내는 차사들을 오는 족족 죽여버리던 이성계도 자신과 친분이 두터운 박순을 죽이기가 꺼려져,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박순이 강을 건넜으면 더 이상 쫓지 말라고 명을 내렸는데, 박순은 마침 병에 걸려 강을 건너지 못했던 터라 그대로 살해당했다는 이야기지만 실제로는 이성계가 함흥에 도착하기전 죽었다.
2 조선 중기의 문신 박순
朴淳
1523~1589
자는 화숙, 호는 사암. 시호는 문충이다.
젊을 적 서경덕의 밑에서 학문을 배웠고 이황, 기대승과도 교분이 있었다.
을사사화의 원흉 중 한 명인 임백령이 죽자 그의 시호 짓는 일을 맡게 되었는데, 공소(恭昭)라는 시호를 지었다가 도성 밖으로 쫓겨나기도 했으며, 이후 윤원형의 탄핵에 앞장섰다.
이이를 매우 높이 평가하며 그의 지지자가 되었다.
동서분당 당시에는 서인의 영수가 되었으며, 본래 동문으로 친분이 두터웠던 동인의 영수 허엽과는 사이가 갈라졌다.
저서로는 《사암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