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에스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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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1876년~1910년 4월 13일

한국 최초의 여성 양의사이다.

본명은 김점동으로 서울 정동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흔히 '언청이'로 불리는 구순구개열 증세가 있었는데, 외국인 의사의 외과 수술로 치료했다고 한다. 개신교 세례명으로 '에스더'라는 이름을 붙이고, 10세 때 이화학당에 입학하여 영어를 배운 뒤 한국 최초의 여성 전문 병원인 보구여관(保救女館)[1]에서 의사들의 통역을 맡았다.

1893년에 박유선과 결혼을 하였고 이 때 성을 박으로 바꾸었다. 보구여관에서 인연을 가졌던 선교사로제타 홀의 추천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1896년에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2]에 입학하였다. 1900년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나 남편 박유선이 사망하자 졸업 직후 박에스더는 한국으로 귀국하였다.

이후 약 10년 동안 주로 여성 환자들을 진료하였다가, 과로폐결핵으로 건강을 해쳐 1910년 4월 13일 그만 35세 한창 나이로 요절했다.

2006년 11월 16일 과학기술부에서는 그녀를 이임학, 김재근, 조백현 등과 함께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하였다. 또한 2008년부터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동창회에서는 박에스더상을 제정하여 시상하고 있다.

참고로 크리스마스 씰과 약간의 관계가 있다. 로제타 홀의 아들인 셔우드 홀은 박에스더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관계였기 때문이다. 즉 이후 셔우드 홀이 결핵 치료에 노력하고 크리스마스 씰을 도입한 것에도 약간의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1. 이화여자대학교의료원.
  2. 존스 홉킨스 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