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가수. 1973년 4월 10일생. 본명은 박진형. <느낌만으로>라는 곡으로 유명하다.
삼성그룹 산하의 광고회사 제일기획이 음반시장에 뛰어들면서 발굴한 2명의 가수(김원준, 박지원) 중 한 사람. 1995년, 경희대학교 건축설비과에 재학 중 가수로 데뷔, 20대 초반의 나이지만 나름 힘을 갖추기 시작한 라이브와 곱상한 외모, 제일기획의 광고전략(의류 브랜드 카운트다운)이 배합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그 뒤 한창 치고올라가야 할 3년차(1997년)에 눈길 교통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고 뇌출혈에 이은 사흘간의 뇌사 상태, 경추 2,3번 골절, 광대뼈 함몰과 팔다리 골절 등을 입었다. 경추의 신경을 건드렸다면 하반신 마비도 각오했어야 할 정도로 위중했던 상황. 침대 위에서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한 5개월 간의 입원과 1년간의 재활 치료에 매달림으로서 사실상 가수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이후 상명대 음악대학원에 진학해 정식으로 음악을 공부하여 다른 가수들의 앨범수록곡을 작곡해주는 등 음반제작 일에 뛰어들었다.
초창기에는 제작자들에게 작곡비를 떼이는 경우도 적지 않았으며, 서울예대 등지에서 강사로 일하며 얻은 수입으로 근근히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러던 중 대학원 재학, 대학 강사 활동 중 만난 젊은 학생들이 의외로 장르를 편식하지 않는다는걸 파악, 트로트 노래를 작곡해 요즘의 밴드 연주로 반주를 넣는 시도를 하게 된다. 특히 장윤정에게 준 이따이따요, 박현빈에게 준 오빠만 믿어가 인기를 끌게 되면서 가수 박지원이 아닌, 작곡가 박지원으로 중앙일간지와 인터뷰를 하는 등 재조명을 받았으며, 흠집이 아물어져 특급품으로 거듭난 바둑판처럼 유명 음반제작자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외 중국어에 매우 능통한 편. 1990년대에는 방한한 중화권 연예인의 통역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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