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테르 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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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현역 시절)


(그러나 감독으로는...)

울버햄튼 원더러스 FC 감독
발테르 쳉가[1]
(Walter Zenga)
생년월일1960년 4월 28일
국적이탈리아
출신지밀라노
신장188cm
포지션골키퍼
소속 팀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1978-1994)
살레르니타나(임대)(1978-1979)
사보나(임대)(1979-1980)
삼베네데테세(임대)(1980-1982)
UC 삼프도리아(1994-1996)
파도바 칼치오(1996-1997)
뉴잉글랜드 레볼루션(1997-1999)
국가대표58경기 0골
지도자뉴잉글랜드 레볼루션(1998-1999)
브레라 칼치오(2000-2001)
나치오날 부쿠레슈티[2](2002-2003)
슈테아우아 부쿠레슈티(2004-2005)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2005-2006)
가지안텝스포르(2006-2007)
알 아인 FC(2007)
디나모 부쿠레슈티(2007)
칼치오 카타니아(2008-2009)
US 팔레르모(2009-2010)
알 나스르 FC(2010)
알 나스르 두바이(2011-2013)
알 자지라 클럽(2013-2014)
UC 삼프도리아(2015)
알 샤바브 FC(2015-2016)
울버햄튼 원더러스 FC (2016~)

1 소개

Uomo Ragno(스파이더맨)

자타공인 인터 밀란 역대 최고의 골키퍼. 인터 밀란에서 커리어의 대부분을 보냈으며 트레블의 줄리우 세자르, 유러피언컵 2연패 당시의 줄리아노 사르티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끼고 인테르 역대 베스트에 이름을 심심찮케 올리는 편이다.

2 클럽

인터 밀란 유스팀 출신으로 1978년 살레르니타나로 임대간 것을 시작해 하부리그에서 임대 생활을 하다 1982년 클럽에 복귀했다. 인테르에서 첫 시즌 그는 이바노 보르돈의 백업 키퍼로 뛰었다. 시즌이 끝나고 보르돈이 삼프도리아로 이적하자 쳉가는 주전 골키퍼로 낙점되었다. 첫 시즌부터 23골만을 허용한 쳉가는 단숨에 리그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로 꼽혔다. 그러나 인테르는 그에게 많은 트로피를 제공해주지 못했다.

1986년 월드컵에 끝난 직후 인테르는 지오반니 트라파토니를 신임 감독으로 선임하며 우승에의 의지를 다졌다. 쳉가는 30경기에 나서 17골만을 허용했다. 그러나 1986-87 시즌 팀을 기습한 부상 악령 때문에 웬 땅딸막한 아르헨티나인이 이끄는 클럽이 우승을 차지했고 쳉가의 첫 트로피는 뒤로 미뤄졌다.

1987-88 시즌 인테르는 부침을 겪었고 알도 세레나와 알토벨리의 부조화, 마테올리, 엔조 시포의 부조화 등 5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쳉가는 계속되는 부진에 나폴리로의 이적을 결심했었으나 무산되었다. 새옹지마라 했는가, 1988-89 시즌 인테르는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로타어 마테우스안드레아스 브레메를 영입한 것은 팀을 이전과는 다른 팀으로 만들어주었고, 쳉가는 이에 보태 19골만을 실점하며 사상 첫 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이 시즌을 기점으로 쳉가는 세계 최고의 골키퍼로 떠올랐고 1991년 UEFA 컵 우승을 거머쥐기도 했다. 1994년 두번째 UEFA 컵을 들어올린 쳉가는 시즌 종료 후 UC 삼프도리아로 이적했다. 1996년 파도바로 이적한 쳉가는 이후 1997년 MLS의 뉴잉글랜드 레볼루션으로 적을 옮겼고 연기를하기 위해(?!) 팀을 잠시 떠났다. 이듬해 쳉가는 감독겸 선수로 팀으로 돌아왔고 시즌 종료 후 그라운드를 떠났다.

3 국가대표

1987년부터 1992년까지 58경기에 나섰다. 인테르에서의 활약으로 지오반니 갈리, 프랑코 탄크레디의 뒤를 이은 3순위 골키퍼로 1986년 월드컵에 참가했으나 1경기도 뛰지 못했고 유로 1988부터 주전 골키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유로 1988 서독과의 경기에는 쳉가는 비난을 받았는데, 후에 팀 동료가 될 안드레아스 브레메의 프리킥을 잘못된 위치선정으로 인해 실점했기 때문이다.

1990년 월드컵에서도 쳉가는 주전 골키퍼로 나섰고 수비진들과 함께 월드컵 역대 최장기간 무실점인 518분 무실점 기록을 달성했다. 이 기록은 2010년 월드컵 우승의 주역인 스페인의 주전 골키퍼 이케르 카시야스에 의해 위협받았으나 카시야스가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예선 첫경기 네덜란드전에서 5실점을 허용하며 무너지며 2016년 현재까지 월드컵 최장기간 무실점 기록으로 남아 있다.

4 감독

영광스러운 모습이 가득 찬 현역 시절을 보낸 반면, 쳉가의 감독 생활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1998년 선수겸 감독으로 뉴잉글랜드 레볼루션을 이끈 것으로 코칭커리어를 시작한 쳉가는 2000년 세리에 D의 브레라 칼치오의 감독을 맡았고 2002년 루마니아의 나치오날 부쿠레슈티의 지휘봉을 잡으며 루마니아와의 연을 맺기 시작했다.

2004-05 시즌 슈테아우아 부쿠레슈티의 감독으로 내정된 쳉가는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끌며 자신 코칭커리어에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2005-06 시즌에는 세르비아의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로 이적해 다시금 리그 우승을 맛보았다.

시즌 종료 후 터키의 가지안텝스포르의 감독이 된 쳉가는 17경기에서 5승만을 거두는 등 부진했고 알 아인에서 오퍼가 오자 자진 사임했다. 그러나 알 아인에서의 생활 역시 순탄치 못했고 5개월만에 경질당한 쳉가는 디나모 부쿠레슈티의 감독으로 다시 루마니아로 돌아왔다. 그러나 2개월만에 슈타아우아와의 더비전에서 패배한 뒤 사임했고 해설가로 잠시 활약하다 2008년 4월 카타니아 칼치오의 감독으로 내정되면서 처음으로 세리에 A 팀을 지도하게 되었다.

카타니아에서 첫 시즌 쳉가는 좋은 성적을 냈고 계약을 1년 연장했다. 시즌 종료 후 라치오와 링크가 있었던 쳉가는 팔레르모[3]와 3년 계약을 맺었고 승승장구하는 듯 싶었다. 알다싶이 팔레르모의 구단주인 마우리치오 잠파리니는 괴악한 성격으로 유명한 인물이고 쳉가가 카타니아와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두자 그를 13경기만에 해임했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알 나스르와 계약을 맺은 쳉가는 알 나스르 두바이, 알 자지라를 지도했다. 2015-16 시즌이 시작되기 쳉가는 AC 밀란으로 떠난 시니샤 미하일로비치의 후임으로 전 친정팀인 UC 삼프도리아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유로파리그 예선전에서몇 수 아래의 클럽으로 여겨졌던 보이보디나에게 0-4로 대패하는 등 광탈하고 리그에서 끔찍한 성적을 낸 탓에 해를 넘기지 못해고 빈첸조 몬텔라에게 지휘봉을 넘겨주었다.

삼프도리아에서 경질된 이후 쳉가는 다시 중동으로 건너갔고 알 샤바브의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부진해 2016년 2월 상호협의 하에 계약을 해지했다.

중국 자본이 인수하며 옷을 벗게 된 케니 자켓 울브스 감독의 후임 감독으로 임명되어 잉글랜드 무대에 도전하게 되었다.

5 트리비아

루마니아 시민권을 보유하고 있다. 루마니아와 연이 많은데 루마니아 시민권도 있고, 루마니아에서 감독생활을 했고, 세번째 부인(...), 즉 현재 부인이 루마니아인이다.
  1. 국내에서는 왈테르 젱가로 더 많이 알려져있다.
  2. 現 AFC 프로그레술 부쿠레슈티
  3. 팔레르모는 카타니아와 라이벌 관계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