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첸조 몬텔라

2016-17 이탈리아 세리에 A 클럽별 감독
50px50px40px30px
마우리시오 사리
(나폴리)
시모네 인자기
(라치오)
루치아노 스팔레티
(로마)
빈첸조 몬텔라
(밀란)
30px45px40px35px
로베르토 도나도니
(볼로냐)
에우세비오 디프란체스코
(사수올로)
마르코 지암파올로
(삼프도리아)
지안 피에로 가스페리니
(아탈란타)
40px50px30px50px
지오바니 마르투시엘로
(엠폴리)
루이지 델 네리
(우디네세)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유벤투스)
스테파노 피올리
(인테르나치오날레)
50px50px
이반 유리치
(제노아)
마시오 라스텔리
(칼리아리)
다비데 니콜라
(크로토네)
롤란도 마란
(키에보)
40px35px35px
시니샤 미하일로비치
(토리노)
에우제니오 코리니
(팔레르모)
즈데넥 제만
(페스카라)
파울로 소사
(피오렌티나)
AC 밀란 감독
빈첸초 몬텔라
(Vincenzo Montella)
국적이탈리아
생년월일1974년 6월 18일
출생이탈리아 포밀리아노다르코
신체 조건172cm
포지션스트라이커
소속팀엠폴리 FC (1990~1995)
제노아 CFC (1995~1996)
UC 삼프도리아 (1996~1999)
AS 로마 (1999~2009)
풀럼 FC (임대) (2007)
UC 삼프도리아 (임대) (2007~2008)
국가대표20경기 3골
지도자AS 로마 감독대행 (2011)
칼치오 카타니아 (2011~2012)
ACF 피오렌티나 (2012~2015)
UC 삼프도리아 (2015~2016)
AC 밀란 (2016~ )
AC 밀란 역대 감독
크리스티안 브로키
(2016)
빈첸조 몬텔라
(2016~ )
현직

Roma_Montella(b).jpg
L'Aeroplanino(작은 비행기)[1]
로마 00-01시즌 스쿠데토의 주역
더비의 사나이[2]

1 선수시절

1.1 클럽

93년 엠폴리 시절 심장염으로 선수생명을 포기해야 할 위기도 있었지만 95-96시즌 세리에 B 소속이었던 제노아에서 득점랭킹 2위(21골)를 차지하고 시즌 직후 라이벌팀인 삼프도리아로 이적한다. 이 이적 이후 6년이 몬텔라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데 이적 후 첫시즌에 18경기에서 12골을 터뜨렸고 이적 후 2시즌간 61경기에서 42골을 넣은 삼프도리아의 간판 공격수로 활약하였다. 96-97시즌에 몬텔라의 잠재력이 폭발했는데 이 당시 몬텔라와 로베르토 만치니의 투톱이 합작한 골이 37골이었다. 탁월한 골결정력을 자랑하는 스코어러형 공격수였으며 원터치슛에 일가견이 있는 공격수였다.

하지만, 삼프도리아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98-99시즌에 부상으로 시즌 절반 가까이를 결장하였고 팀의 세리에 B 강등을 막지 못하게 된다. 여러 명문클럽팀에서 이적제의를 했지만 몬텔라는 당시 카펠로의 로마를 택하였고 99-00시즌부터 로마의 일원이 된다.

이적한 99-00시즌에 델 베키오와 함께 투톱으로 나서 18골을 넣으면서 팀 내 최다득점자가 되었고 그 다음시즌에도 중용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의 이적으로 출전시간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선수 본인에게도 험난한 시기가 될 것이라 예상되었으나 바티스투타의 백업으로 전환되어 교체로만 출장한 00-01 시즌에 13골을 넣는 저력을 보여줬다. 이후 무릎 수술 여파로 점점 추락하기 시작하였다. 04-05 시즌에 화려하게 부활하여 리그 37경기에서 21골을 넣었지만 선수생활의 마지막이었는지 이 시즌을 끝으로 타구단으로 임대를 전전하다 2009년에 선수생활을 마무리하였다.

1.2 국가대표팀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항상 2인자에 머물러 있었다. 상술했듯이 95-96시즌부터 폭발적인 모습을 보여왔지만 당시 대표팀의 공격진의 주축은 크리스티안 비에리, 필리포 인자기가 버티고 있었고 인자기와 플레이스타일이 겹치는 특성상 득점 능력은 물론 비에리와의 조합조차도 압도적으로 좋았던 인자기가 떡하니 버티고 있어서 도저히 몬텔라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어보였다. 결국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 끝나고 난 후 1999년 유로 2000 예선에서 처음으로 국가대표에 소집되는데 당연하게도선발 출전은 아니었다. 첫 선발 출전은 2000년 2월 23일 스웨덴과의 친선 경기였고 전반이 끝난 이후 교체되었다.

대표팀에서는 인자기와 비에리에 밀려 풀타임 출장을 단 두경기밖에 하지 못했으며 그마저도 중요하지 않은 경기들이었다.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축구역사에서는 항상 최전방 공격수들이 모자라서 2선 공격수 판타지스들이 팀을 지휘했던 역사가 대부분이었는데 하필 이시기는 비에리,인자기는 물론 전천후 공격수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프란체스코 토티까지 이탈리아 축구 역사에 남을 공격수들이 몰려있던 시대라 몬텔라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비운의 스트라이커가 되고 말았다.

국가대표팀 경기는 총 20경기 3골이지만, 말이 20경기지 선발출장은 4경기였고 풀타임을 뛴 경기는 2번밖에 없었다. 출전 시간을 90분으로 환산하여 한 경기로 친다면 대략 9경기를 뛰었는데 3골 3어시를 기록하였으니 기록상으로는 절대 나쁜 기록이 아니다. 다만 운이 따라주지 않는 스트라이커였다고 할 수 있다.

2 플레이스타일

위 항목에도 서술되어있지만 공격수치고는 키가 작은 편이다.(172cm) 하지만 그 작은 키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스피드가 있었고 드리블 능력이 준수하여 빠른 발을 이용해 수비진을 휘젓는 플레이에 능한 선수였다.
골 결정력이 굉장히 좋은 선수인데, 여러 자세에서도 슈팅이 위력적으로 나오는 선수이다. 중거리슛도 상당한 수준이었으며 골을 상당히 많이 넣었는데 잘나가던 7시즌(96년부터 02년)동안에 245경기 139골을 기록한 공격수였다.

3 감독 커리어

몬텔라는 은퇴 직후 로마 유스팀의 감독직을 수락하여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다. 유소년 팀 코치로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그에게 감독의 기회가 빠르게 찾아오는데 2011년 2월 당시 로마의 감독이었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가 사임한 감독직을 대행하면서 감독으로서의 첫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2011년 시즌 종료 후 칼치오 카타니아로 부임한 몬텔라는 강등권으로 지목되던 팀을 11위에 올리는 능력을 보여주고 시즌 종료 후에 시니샤 미하일로비치의 후임 감독으로 ACF 피오렌티나의 감독을 맡게 된다.

피오렌티나 감독으로 온 첫 시즌에 팀을 4위에 올려놓으면서 감독으로서의 능력을 입증해나가기 시작했다. 피오렌티나 감독직을 수행하는 3시즌 동안 리그 순위를 4위로 마무리지었으며 13-14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 우승컵을 들어올릴 뻔 했으나 나폴리에게 패해 준우승을 하였다. 마지막 시즌이었던 14-15시즌이 끝나고 해임되었다. 해임 사유로는 몬텔라 감독이 구단 보드진과 바이아웃으로 갈등이 있었는데 지정된 시간까지 답변을 주기로 해놓고서 무통보 휴가를 간 것에 대한 경질이었다. 피오렌티나 팬들이라면 매우 화가 치밀 상황이다. 사건의 전말에 대한 내용은 추가바람

15-16시즌에 유로파리그 조기탈락에 리그 4승 4무 4패로 부진하여 경질된 왈테르 젱가를 대신하여 UC 삼프도리아의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성적이 더 하락하여 26라운드가 지난 현재 리그 17위에 랭크되어 있다.

16-17시즌 AC밀란의 감독으로 내정되었다. 몰락한 명가인 밀란을 다시 부활시킬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3.1 전술

본인이 공격수 출신이었고 골을 잘 넣는 스트라이커였기 때문인지 공격적인 전술성향을 보인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 변칙적으로 전술운용을 가져가기도 한다. 기본적으로는 공격적인 전술을 선호하며 점유율을 중시하는 축구를 구사한다. 그 때문에 이탈리아 내에서는 이탈리아의 과르디올라라는 별명이 있다고는 하는데 정작 본인은 그 별명을 부담스러워한다.

칼치오 지와 가진 몬텔라의 인터뷰:링크
  1. 별명의 유래는 위 사진에서처럼 두 팔을 벌리고 비행기처럼 뛰는 골 셀레브레이션에서 유래하였다.
  2. 특히 SS 라치오와의 더비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다. 01-02시즌에 혼자서 4골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