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氏雜辨
1 개요
조선의 개국 공신으로 유명한 삼봉 정도전이 성리학의 관점에서 불교를 비판한 저서. 불씨란 유학자들이 부처를 낮춰 부르던 단어로, 어이 형씨 불씨잡변이란 제목을 우리말로 풀어쓰자면 "부처씨의 잡소리에 대한 반박 (辨)" 정도의 의미가 되겠다.
조선이 건국되며 불교보다 유교와 성리학이 강조되는 사회가 되며 불교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이에 정도전(즉, 삼봉)이 불씨잡변이라는 유명한 책을 쓴것이다.
2 내용
총 19개[1]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다.
- ① 불씨윤회지변(佛氏輪廻之辨)
- ② 불씨인과지변(佛氏因果之辨)
- ③ 불씨심성지변(佛氏心性之辨)
- ④ 불씨작용시성지변(佛氏作用是性之辨)
- ⑤ 불씨심적지변(佛氏心跡之辨)
- ⑥ 불씨매어도기지변(佛氏昧於道器之辨)
- ⑦ 불씨훼기인륜지변(佛氏毁棄人倫之辨)
- ⑧ 불씨자비지변(佛氏慈悲之辨)
- ⑨ 불씨진가지변(佛氏眞假之辨)
- ⑩ 불씨지옥지변(佛氏地獄之辨)
- ⑪ 불씨화복지변(佛氏禍福之辨)
- ⑫ 불씨걸식지변(佛氏乞食之辨)
- ⑬ 불씨선교지변(佛氏禪敎之辨)
- ⑭ 유석동이지변(儒釋同異之辨)
- ⑮ 불씨입중국(佛氏入中國)
- ⑯ 사불득화(事佛得禍)
- ⑰ 사천도이담불과(舍天道而談佛果)
- ⑱ 사불지근연대우촉(事佛至謹年代尤促)
- ⑲ 벽이단지변(闢異端之辨).
무려 19개나 되는 항목의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불교의 핵심 교리라고 볼 수 있는 윤회, 인과, 자비 등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불교를 민심을 현혹시키는 사교라고 단정짓는다. 성리학자였던 만큼 정도전은 불교의 교리를 비판하기 위해서 성리학의 필수적인 개념인 이(理)와 기(氣)를 활용한다.
대충 요약하자면 "세상 삼라만상의 보편적 원리에는 이(理)가 자리잡고 있다. 또한 인간의 마음을 주재하는 핵심 요소는 이(理)이다. 이(理)라는 것은 즉 만물의 원리인만큼, 인간의 마음이 곧 본성이다. 그런데 불교는 인간의 마음과 본성(心性)을 구분지으니 잡소리다." 정도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양나라와 같이 불교로 인해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진 역사적 사례를 보여주면서 이러한 주장에 근거를 더하고 있다. 즉 전체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불교는 그 근본에서부터 인간과 우주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어있고,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의(義)를 망각케 하여 사회를 무너뜨린다."이다.
3 비판과 의의
불씨잡변에 등장하는 비판은 불교의 교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당대 유학자들이 불교에 대해 지니고 있던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견강부회하는 내용이 많다. 즉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는 것. 그러나 성리학의 역사 속에서 이 불씨잡변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는데, 바로 성리학이 원나라로부터 전래한 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던 상황임에도, 경쟁상대였던 불교를 비판하고 이에 대한 유교적 대안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성리학의 핵심 관념인 이기론을 나름대로 훌륭히 구사했기 때문. 또한 역사적으로 보자면 조선왕조의 숭유억불 정책에 기여했으며, 동시에 삼국시대 이후 천 년 넘게 한반도에 존재해 온 불교 사회를 유교 사회로 변모시키는 신호탄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는 글이기도 하다.
4 여담
삼봉이 이 글을 탈고한 시점은 1398년이었지만 아시다시피 그 해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고 삼봉이 이방원에게 살해당하면서 이 글은 상당기간 동안 잊혀져 있었다. 그러다 수십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의 먼 친척이 이 글을 발견하면서 세상에 다시 빛을 보게 된다. 서문은 권근[2]과 신숙주가 작성했다.
현대 한국의 고고학자들에겐 한반도 고고학이 걷게 될 고생길의 신호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 이유는 이 서적에 나오는 정도전의 사상과 함께 조선의 강한 숭유억불 정책이 시작되어 그 이전까지 오랫동안 불교 국가들이 들어섰던 한반도 문화재들 중 버려지거나 손상된 것들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 현대에 와서 불씨잡변 자체가 그다지 좋은 평가를 많이 못 받는 것도 이거랑 어느 정도는 관련이 있다. 당대에 억불 정책을 시행하는 게 적절했느냐 아니냐를 떠나서 현대에 활동하는 고고학 연구자들 입장에선 숭유억불로 인해 소실된 유산이 너무 많다고 판단하는 것도 그다지 무리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