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담요 남자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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赤毛布の男 殺人事件

사건 개요(일본어)

1 소개

1906년 2월 12일에 벌어진 살인사건. 붉은 담요를 둘러쓴 한 남자가 일가족 전부를 살해한 사건이며, 그 방식이 매우 독특해 일본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사건이다. 진범이라고 자수한 이가 있으나, 그가 정말 범인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2 상세

1906년 2월 12일 새벽 5시에 한 목수가 당시 가설중인 다리에서 작업하던 도중, 다리 중앙에 쌓인 눈 위에 새빨간 피가 엄청난 양으로 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이를 살인사건으로 보고 조사를 시작했는데 다음과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

2월 11일 밤 9시경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후쿠이현의 운송선 도매상에 붉은 담요를 뒤집어쓰고 등불을 든 한 남자가 등장했다 그는 점장인 다카키 쇼이치(高木昭一, 당시 30세)를 불러 "바로 옆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인데, 친척 할머니가 갑자기 쓰러져서 그러니 도와달라"는 말을 했고 다카키 쇼이치는 그 말을 듣고 그 남자를 따라갔다. 그리고 2시간 후에 푸른 담요를 뒤집어 쓴 남자가 다가와, "우리 할머니가 위급해서 그러는데 당신이 보고 싶다고 해서 데리러왔다."며 다카키 쇼이치의 어머니 키쿠(キク: 당시 50세)를 데리고 떠났다. 그리고 또다시 1시간이 흐른 후, 붉은 담요를 뒤집어쓴 남자가 운송선 도매상에 찾아와 같은 수법으로 다카키 쇼이치의 아내(당시 25세)를 데려 갔으며, 그 후 40분이 지나서 또다시 다카키 쇼이치의 둘째 딸(당시 2세)에게 같은 제안을 했으나, 이를 수상하게 여긴 이웃집 여자가 이를 막았다.[1]

이후 붉은 담요를 둘러쓴 남자를 따라간 3명의 행방이 묘연하자 마을 사람들이 찾아 나섰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다음날 12일 새벽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인근을 뒤지던 중, 마을 뒤쪽 하천에 떠있던 작은 배의 뱃전에 핏자국이 묻어 있는 것을 발견했고, 그 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의 강바닥에서 사망한 아내의 시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13일에 하천에서 모친의 시신을 발견했으나, 끝끝내 다카키 쇼이치의 시신만은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은 다리에 있던 피가 한사람에게서 나올 양의 피가 아니기 때문에, 다카키 쇼이치와 그의 모친을 다리에서 살해한 후, 다카키 쇼이치의 부인을 배에 태운 후 익사시킨 것으로 판단했다.

살해 방법이 매우 잔인하고 가족의 딸까지 살해하려고 했던 점을 감안해, 원한 관계에 의한 살인이 아닌가에 중점을 두고 수사를 했으나 결국 찾지 못했으며, 1921년에 공소시효가 만료된 채 마무리되었다.

3 범인의 자수

사건이 일어나고 20년이 지난 1926년 12월 12일에 교토에서 절도혐의로 체포된 하시모토 신이치(橋本信一, 당시 49세)가 이 사건의 진범임이라며 자수했다. 하지만 공소시효 기간이 지났기에 이와 관련된 처벌은 받지 않았다.

3.1 의문점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가 진범인지에 대해서 의문을 표했는데, 절도범이었던 그가 위와 같은 방식으로 살인을 저지를 이유가 없었으며, 또한 절도로 체포된 용의자가, 당시 그 집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않았던 점, 또한 시체를 어디에다 유기했는지는 자신도 모른다고 하며, 자수를 하긴 했지만 이후 경찰 수사에서 하시모토가 자신이 저지른 다른 사건에서도 오락가락 이야기를 하는 등 "저자의 말을 믿을 수가 없다."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1. 장녀도 있었지만, 이웃집에서 자고 있었기에 화를 피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