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탁음

鼻濁音(びだくおん)

1 개요

표준 일본어에서 탁음이 특정 조건에서 비음화한 소리를 비탁음이라고 하는데, 표준 일본어[1] 등 일부 방언에서는 が행(g+모음)에서 이런 변이음(變異音)이 출현한다.[2]이 항목에 일본어에 관한 설명만 있는 이유가 궁금하면 지는 거다.

が행의 자음은 원칙적으로 유성 연구개 파열음 /ɡ/인데 비탁음을 변이음으로 가지고 있는 발음 체계를 가진 화자의 경우, 특정 조건에서 연구개 비음 [ŋ]으로 발음한다.[3] 한국어 발음으로 설명하자면 が행의 자음은 본래 '농구'의 ㄱ 발음인데 비탁음화가 적용될 경우 '농구'의 ㅇ 발음으로 변한다. 더 쉽게 설명하자면, '나가사키'가 비탁음화되면 '낭아사키'로 변한다.

일부 일본어 화자가 が행을 코맹맹이 소리로 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게 바로 비탁음이다.

다만 위의 설명은 표준 일본어를 비롯한 일부 일본어 방언에 한정된다. 이런 방언에서는 음운상으로는 /ɡ/라는 하나의 음소가 상황에 따라 비탁음 [ŋ]으로 실현되는 식이다(이 문서에서도 주로 이 현상을 설명한다). 이런 경우는 원래 음운상 비음이 아니었던 탁음이 실제로 비음으로 실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비탁음화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위와 달리 몇몇 다른 방언들에서는 모음 앞에 오는 /ɡ/와 /ŋ/가 완전히 독립된 다른 음소로 취급되기도 한다. 이런 방언의 경우 모음 앞에서 [ɡ]를 넣어 발음할 때와 [ŋ]을 넣어 발음할 때 완전히 다른 단어로 인식된다.[4] 따라서 이런 방언의 경우 비탁음은 있다고 할 수 있어도(독립된 음소로서 존재) 비탁음화는 없다. 이런 방언에서 비탁음화가 이뤄지면 어휘 구분에 혼란이 생기기 때문에 비탁음화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용어 사용 시 주의가 필요하다.

2 표준 일본어의 비탁음화 조건

표준어의 경우, 일반적으로 が행은 어두에서는 그냥 탁음으로 발음되고 어중·어말에서는 비탁음화한다.

  • 어중·어말에 올 경우 (비탁음화 적용)
    • すいぎん(水銀) → [sɯiŋiɴ]
  • 어두에 올 경우 (비탁음화 적용 안됨)
    • がっこう(学校) → [ɡak̚koː]

か행에 연탁이 적용되어 が행으로 변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비탁음화를 적용한다.

音楽(おんがく)처럼 [ŋ]로 발음되는 ん 뒤에 が행이 오는 경우에도 역시 비탁음화가 이뤄져 [oŋŋakɯ] 식으로 [ŋ]이 2중으로 발음된다. 앞의 [ŋ]는 ん의 변이음이고 뒤의 [ŋ]는 비탁음화 된 /ɡ/의 변이음이다.

다만, 다음과 같은 경우는 어중·어말에 오더라도 비탁음화가 적용되지 않는다.

  • 외래어.[5]
  • 숫자 '5'(ご).[6]
    • 단, 숙어로서 익숙해진 경우나 수를 세는 본래의 의미에서 이탈하여 인명(人名) 등에 사용되는 경우는 비탁음화를 적용한다.[7]
  • 가벼운 접두사 뒤의 が행 음이나 접두어에 가깝게 사용되는 단어의 が행 음.
  • 의성어, 의태어, 반복어에 사용되는 が행 음
  • 복합어에서 후행 형태소가 が행으로 시작되는 경우.
    • 단, 두 형태소의 결합도가 강한 경우는 비탁음화를 적용한다.[8]

3 표기법

표준 일본어에서는 음운론적으로는 유성 연구개 파열음(/ɡ/)의 변이음이므로 が행을 보통 탁음으로 발음하나 비탁음으로 발음하나 의미상 큰 차이는 없다. 그래서 일반적인 표기에서 비탁음화된 が행을 보통 が행과 같이 が, ぎ, ぐ, げ, ご(ガ, ギ, グ, ゲ, ゴ)로 표기하여 구분하지 않는다.

다만, 학술적으로 비탁음화된 が행을 표기상으로 변별시켜야 할 때는 は행(/h/)의 반탁음(/p/)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반탁점(゜)을 붙여 기존에 쓰이던 기호로 대충 땜빵했다 か゜, き゜, く゜, け゜, こ゜(カ゜, キ゜, ク゜, ケ゜, コ゜)로 표기한다.[9]

4 지역별/세대별 분포

전국 여러 지역에서 비탁음이 두루 쓰이고 있다. 북일본 지역(도호쿠, 홋카이도 등)에서는 비탁음화도 잘 이뤄지고 있다. 일부 방언에서는 아예 /ɡ/와 /ŋ/가 음운론적으로 다른 음소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10] 그러나 서일본으로 갈수록 비탁음이 사용되지 않는 경향이 있으며 특히 주고쿠나 시코쿠, 큐슈 등에서는 비탁음화 현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표준어의 기준인 도쿄 방언은 원래 [ŋ] 발음이 /ɡ/의 변이음으로 존재하여 비탁음화가 활발하게 나타났었는데 근래에는 소멸되는 추세다.

비탁음의 적용/비적용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일본어 화자들이 꽤 있다고 한다. 비탁음을 적용하는 화자는 비탁음을 적용하지 않는 발음에 거부감을 느끼고, 반대로 비탁음을 적용하지 않는 화자는 비탁음을 적용하는 발음에 거부감을 느끼는 식이다. 내가 사용하는 발음 체계가 좋고 다른 발음 체계는 싫다는 심리

정말 '표준어스러운' 일본어 발음에서는 원칙적으로는 비탁음을 적용하지만, 젊은 세대로 갈수록 비탁음을 발음하지 않는 경향이 강해져서 전국적으로 비탁음 사용자가 줄어가는 추세이다. 이러한 추세로 볼 때 일본어 음운 체계에서 비탁음화 현상은 짧으면 수 년, 길면 십수 년 후에 아예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 정부 내에서 일본어의 표준어 규정을 정하는 문화청 문화심의회 국어분과회에서는 소멸돼 가는 비탁음을 유지·재보급을 시도하지는 않고 있는 듯하다. 다른 부분은 몰라도 변이음까지 일일이 정책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비탁음화는 NHK 아나운서의 발음에서 잘 들을 수 있다. 성우의 경우 사람에 따라 비탁음을 발음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한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등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들은 성우의 변동에 따라 비탁음이 있었다 없었다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역전재판 시리즈의 나루호도 류이치는 연기한 성우가 누구냐에 따라 비탁음이 있었다 없었다 하는 캐릭터가 되었다. 상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고.

대한민국이나 대만의 고령층 중 일제시대에 태어나 일본어 교육을 철저히 받은 어르신들도 일본어를 할 때 비탁음화를 대체로 잘 지키는 듯. 그래서 일제시대 이후로 일본인들의 발음을 들어보지 못한 어르신들은 비탁음화를 하지 않는 일본어 발음을 들으면 잘못됐다거나 이상하다고 여기는 경우도 있다. 비탁음이 소멸된 최근의 발음을 거의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 심지어 제2외국어로서 일본어를 배운 손자, 손녀 세대의 발음을 들으면 잘못 발음했다며 비탁음을 넣은 발음으로 교정시키려고 드는 모습도 가끔 볼 수 있다! 혹시 일본어를 익힌 위키러 중에 주변에 일제시대에 일본어를 완벽하게 배우신 어르신을 알고 있다면, 한 번 그 분께 비탁음이 안 들어간 본인의 일본어 발음을 들려 드려 보자. 아마 발음이 이상하다고 여기실 수도 있다. 혹은, 비탁음화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젊은 층은 가족이 아니라 업무 관계상 얽힌 중년층이 사용하는 비탁음을 단순히 이상한 옛날 한국 일본어 교육 발음으로 치부하는 경우도 있다. 본인의 경험 안쪽에선 일본인이 그렇게 발음하는 경우가 없었다는 것.

일본 내에서는 비탁음의 쇠퇴를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1982년에 '비탁음을 지키는 모임(鼻濁音を守る会)'이라는 단체를 만들기도 했고 2005년에 고토바 살롱(ことばサロン)이라는 이름으로 변경했다.[11] 2010년대에도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지만 지금은 홈페이지가 호스팅된 사이트의 서비스가 종료되면서 홈페이지가 없어졌다.[12] 아직도 이 단체가 존재하는지는 확인바람.
  1. ↑ 단 모든 표준어 사용자의 발음에서 비탁음이 나타나진 않는다. 근래에는 사라져 가는 추세이다. NHK 아나운서들은 비탁음을 정확히 발음한다.
  2. ↑ 변이음으로서 존재하는 경우, 특정 조건에서 が행의 발음이 바뀌는 것을 가리키지만 몇몇 방언에서는 비탁음이 원래부터 が행과 별도의 음소로 존재하기도 한다. 표준어 이외의 방언에 대해서는 뒤에서 따로 설명한다.
  3. ↑ 여기서 / / 안에 쓴 것은 음운론적으로 인식되는 음소를 나타낸 것이고 [ ] 안에 쓴 것은 음성학적으로 분석되는 실제 발음을 나타낸 것이다. 언어학에서는 양자를 구분하니 이 문서에서도 맥락에 따라 구분해서 표기한다.
  4. ↑ 가령 아키타 방언에서는 아게루[aɡeɾɯ̈]는 '열다'(開ける)라는 뜻이고, 앙에루[aŋeɾɯ̈]는 '올리다'(上げる)라는 뜻이다.
  5. ↑ 단 イギリス(이기리스: 영국)처럼 들어온 지 매우 오래된 외래어는 고유어나 한어(한국어의 한자어에 대응되는 일본어 어휘)처럼 되어 버렸기 때문에 비탁음화가 이뤄진다. 만약 비탁음화를 포함한 표준 일본어 발음을 익히고자 한다면, 외래어임에도 비탁음화가 이뤄지는 단어들이 어떤 경우가 있는지는 따로 외워야 한다.
  6. ↑ 숫자를 하나하나 일일이 나열할 때는 5라는 숫자가 각각 독립적인 지위를 가져야 한다. 그래서 전체 단어를 이루는 음절에 불과할 때만 나타나는 비탁음화가 수반되지 않는다.
  7. ↑ 이 경우 ご라는 음이 의미상 완전히 독립된 의미를 가진 하나의 단어처럼 취급되지 않고 전체 단어에 포함된 음절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 경우에는 비탁음화가 이뤄진다.
  8. ↑ 예를 들어 中学校(ちゅうがっこう: 중학교)는 中와 学校라는 두 형태소가 결합되었긴 하지만 中이 접두사처럼 쓰였기 때문에 결합도가 높아서 비탁음화가 이뤄져서 츄웅악꼬오처럼 발음된다(물론 비탁음을 발음하지 않는 사람한테는 이 규칙과 무관하여 그냥 '츄우각꼬오'처럼 발음한다). 하지만 高等学校(こうとうがっこう: 고등학교)의 경우, 高等이 접두사처럼 쓰인 게 아니라서 高等와 学校의 결합도가 낮다. 그래서 반드시 '코오또오각꼬오'처럼 발음해야지 '코오또옹악꼬오'처럼 발음하면 안 된다.
  9. ↑ 일부 일본어 방언 중에 /ɡ/와 /ŋ/이 음운론적으로 다른 음소로 있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다음 단락에서 설명). 이런 방언의 발음을 정확히 기재하고자 할 경우 か 행에 반탁점을 붙인 비탁음 기호는 이런 방언의 발음을 정확히 표기하는 부호로 사용하기도 한다.
  10. ↑ /ɡ/와 /ŋ/가 음운적으로 대립되는 방언의 경우 비탁음'화'는 없는 셈이다. 비탁음'화'는 원래 비탁음이 아닌 음소 /ɡ/가 특정 조건에서 비탁음 [ŋ]으로 실현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ɡ/와 /ŋ/ 발음이 음운적으로 대립되는 방언에서는 /ɡ/ 음소를 [ŋ]로 발음하면 완전히 다른 단어로 인식돼서 혼란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이런 방언들은 비탁음'화'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11. ↑ 이 단체의 홈페이지가 있었던 시절 그 홈페이지에 적힌 연혁에 따르면 이 단체가 홋카이도에서 결성되었다고 한다. 역시 비탁음이 잘 보존된 지역 출신이라 이 발음에 애착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12. ↑ http://www16.ocn.ne.jp/~bmk/enkaku/enkaku.html가 본래 홈페이지였으나 현재는 이 주소로 접속하면 홈페이지 서비스가 종료됐다는 안내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