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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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빌 테리 (William Harold Terry)
생몰월일1898년 10월 30일~1989년 1월 9일
국적미국
출신지조지아 주 애틀랜타
포지션1루수
투타좌투좌타
소속 팀뉴욕 자이언츠(1923~1936)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영구결번
34112024
빌 테리멜 오트칼 허벨몬테 어빈윌리 메이스
2730364244
후안 마리샬올란도 세페다게일로드 페리재키 로빈슨윌리 맥코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빌 테리
헌액 연도1954년
헌액 방식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77.38% (14회)
1930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타격왕
레프티 오돌
(필라델피아 필리스)
빌 테리
(뉴욕 자이언츠)
칙 하페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 소개

내셔널리그 최후의 4할타자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前 야구선수.뉴욕 자이언츠에서 뛰었으며,초창기의 자이언츠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한명이다.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뛰었던 테드 윌리엄스와 함께 메이저리그 역사상 마지막 4할타자다.

2 선수 시절

1898년 애틀랜타에서 태어난 빌 테리는 1923년 뉴욕 자이언츠에 입단했다.입단 당시에는 투수로서 주목 받았지만,자이언츠의 감독이었던 존 맥그로는 투수보다는 타자로서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하지만,자이언츠의 1루에는 조지 켈리라는 준수한 1루수가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빌 테리는 1924년까지는 주로 대타로 기용되었다.하지만 조지 켈리가 2루로 이동한 1925년에는 주전 1루수로 기용되어 타율 .319 156안타 11홈런 70타점을 기록했다.하지만 조지 켈리가 다시 1루로 이동하면서 빌 테리는 다시 벤치 멤버가 되었다.빌 테리가 벤치에서 재능을 썩히고 있던것을 아쉬워한던 존 맥그로는 1926년 시즌이 끝나고 조지 켈리를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하고,빌 테리를 주전 1루수로 기용한다.빌 테리는 다시 주전 1루수가 된 1927년 타율 .326 189안타 20홈런 121타점을 기록하며 활약했다.

1928년에는 브루클린 다저스와의 경기에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으며,1929년에는 다저스와의 더블헤더 경기에서 9안타 6타점을 기록하는 등 활약했고,그 해 타율 .372 226안타 14홈런 117타점을 기록했다.1930년에는 단 한번도 2경기 연속 무안타를 기록한적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타격감을 보이면서 그해 타율 .401 254안타 23홈런 129타점이라는 MVP급의 성적을 낸다.[1]

1931년에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칙 하페이와 시즌 막판까지 타격왕 경쟁을 했다.시즌 마지막 경기를 앞둔 상태에서 하페이의 타율은 .353였고 빌 테리는 .349였다.하페이는 신시내티 레즈와의 경기에서 8타주 2안타를 기록하며 빌 테리와 동률인 .349로 떨어졌다.빌 테리는 브루클린 다저스와의 경기에서 1안타를 기록했으나 비로 인하여 노게임이 선언되었고,빌 테리가 친 안타도 무효가 되었다.결국 빌 테리는 0.0028이라는 아주 근소한 차이로 하페이에게 타격왕 자리를 내주었다.

1932년,빌 테리는 존 맥그로에 이어 자이언츠의 감독직을 맡아 감독 겸 선수가 되었고,1933년에는 부상으로 인해 4년연속 200안타 100타점에 마침표를 찍었지만,자이언츠를 리그우승으로 이끌었고,그 해 월드시리즈에서 월터 존슨이 이끄는 워싱턴 세네터스를 4승 1패로 격파하며 자이언츠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감독으로서의 지도력을 인정받았다.또한 1934년에는 처음으로 열린 올스타전에서 내셔널리그 최다 득표자를 뽑히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1935년에는 타율 .341 203안타 6홈런 64타점을 기록했고,1936년에는 시즌 절반도 출전하지 않으며 타율 .310 71안타 2홈런 39타점이라는 성적을 남기고 그 해를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3 은퇴 후

은퇴 후에는 1941년까지 자이언츠의 감독으로 있으면서 리그 우승 1번과 월드시리즈 준우승 1번을 이끌었고, 그가 감독시절 달았던 등번호인 3번은 자이언츠의 영구결번이 되었다.[2]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는 14수만에 턱걸이로 들어갔다. 일단 테리 본인이 언론과의 관계가 극도로 안 좋았고, 누적스텟도 좀 부족한 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4 여담

빌 테리는 언론과의 사이가 극도로 안 좋았는데, 테리는 자신의 사생활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 자신의 사생활이 언론에 거론되면 매우 화를 냈고, 야구가 아닌 개인사에 관심을 갖는것을 싫어했다. 또한 1934년 시즌 시작전, "아직도 다저스가 메이저리그에 있나?"라며 반농담으로 말했던 것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크게 다루어졌고, 그 해 자이언츠가 리그 2연패에 실패하자 언론이 "자이언츠가 리그 2연패에 실패한 이유는 빌 테리의 운영 때문이다!"라며 비난하며 빌 테리와 언론과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빌 테리는 "내가 야구를 하고 있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는 야구가 좋아서 한다기 보다는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이었던 것.
  1. 빌 테리가 그 해 기록한 타율 .401는 내셔널리그 최후의 4할이며 254안타는 역대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 안타 3위이다.
  2. 메이저리그에서 등번호를 쓰기 시작한것은 빌 테리가 은퇴한 이후인 1937년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