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올란도 세페다(Orlando Manuel "Peruchin" Cepeda Pennes) |
생년월일 | 1937년 9월 17일 |
국적 | 푸에르토 리코 |
출신지 | 폰스 |
포지션 | 1루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1955년 뉴욕 자이언츠 입단 |
소속 팀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1958~1966)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1966~1968) 애틀랜타 브레이브스(1969~1972) 오클랜드 애슬레틱스(1972) 보스턴 레드삭스(1973) 캔자스시티 로열스(1974)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영구결번 | |||||
3 | 4 | 11 | 20 | 24 | |
빌 테리 | 멜 오트 | 칼 허벨 | 몬테 어빈 | 윌리 메이스 | |
27 | 30 | 36 | 42 | 44 | |
후안 마리샬 | 올란도 세페다 | 게일로드 페리 | 재키 로빈슨 | 윌리 맥코비 |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올란도 세페다 | |
헌액 연도 | 1999년 |
헌액 방식 | 베테랑 위원회 추천 |
1958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신인왕 | |||||
잭 샌포드 (필라델피아 필리스) | → | 올란도 세페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 | 윌리 맥코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
1961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홈런왕 | |||||
어니 뱅크스 (시카고 컵스) | → | 올란도 세페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 | 윌리 메이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
1967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MVP | |||||
로베르토 클레멘테 (피츠버그 파이리츠) | → | 올란도 세페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 | 밥 깁슨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1 소개
푸에르토 리코의 베이브 루스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前 야구선수. 로베르토 클레멘테와 더불어 히스패닉계를 대표하는 강타자로 신인왕과 MVP수상,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된 위대한 선수다. 전성기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시절이다.
통산 성적은 17시즌 동안 타율 .297, 379홈런, 2351안타, 출루율 .350, 장타율 .499, OPS .849, 순장타율 .203, BB/K 0.5, wRC+ 131, 1365타점
2 유년시절
1937년 태어난 세페다는 자국리그의 야구선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야구를 접했지만, 세페다는 야구보다는 농구를 좋아했다.하지만 16살에 무릎부상을 당한 세페다는 농구선수의 꿈을 접고 야구에 전념한다. 이후 세페다는 18살에 뉴욕 자이언츠와 계약을 하며 프로생활을 시작한다.
3 선수시절
3.1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3년간 마이너리그에서 뛰면서 준수한 활약을 한 세페다는 1958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세페다는 데뷔타석에서 당대 최고의 투수였던 돈 드라이스데일로부터 홈런을 치면서 데뷔전을 화려하게 장식했고,이후로도 꾸준히 활약하며 그 해 타율 .312 25홈런 96타점으로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수상했다.다음해인 1959년에도 세페다는 소모포어 징크스를 비웃듯이 타율 .317 27홈런 105타점을 기록했다.
1961년,세페다는 타율 .311 46홈런 142타점이라는 화려한 성적과 함께 내셔널리그 홈런왕과 타점왕을 수상했다.하지만,MVP 투표에서는 신시내티 레즈를 월드시리즈 진출로 이끈 프랭크 로빈슨에 밀려 2위에 그쳤다.
1962년에도 세페다는 타율 .306 35홈런 114타점으로 윌리 메이스등과 함께 자이언츠의 8년만의 지구우승을 이끌었다.하지만 뉴욕 양키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는 타율 .158을 기록하는 등 부진했고 팀도 1승 4패로 무기력하게 패배했다.이후에도 세페다는 데뷔 이후 7년연속 20홈런 90타점을 기록하며 꾸준히 활약했지만 1965년,경기도중에 상대팀 포수와 부딛치며 부상을 당하며 33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했다.다음해인 1966년,세페다는 구단과 연봉인상을 놓고 갈등을 보였으며,스프링캠프에서도 불성실한 모습을 보이다가 시즌 중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트레이드 된다.
3.2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카디널스로 이적한 후,세페다는 카디널스에서 타율 .303 17홈런 58타점을 기록하며 약간은 아쉽지만 작년의 부진을 씻었다.1967년에는 타율 .325 25홈런 111타점을 기록하며 타점왕 수상과 함께 MVP 투표에서 만장일치로 MVP를 수상하며 영광을 누렸다.세페다와 밥 깁슨,루 브록등의 활약으로 카디널스는 지구우승을 차지함과 동시에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여기서도 세페다는 타율 .103으로 부진하지만 카디널스는 밥 깁슨의 3완투승을 거두는 활약에 힘입어 보스턴 레드삭스를 4승 3패로 누르고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3.3 이후
하지만 이후 세페다에게 다시 무릎에 부상이 찾아오며 세페다는 성적이 하락했고,1969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트레이드 된다.애틀랜타로 이적한 후인 1970년,세페다는 타율 .305 34홈런 111타점으로 부활의 날갯짓을 했으나 1972년 다시 무릎부상이 재발하면서 세페다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 이적했고,1973년에는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한다.보스턴에서도 세페다는 타율 .289 20홈런 86타점을 기록하며 부활을 하는듯 했으나 1973년 시즌이 끝난 이후 세페다는 다시 캔자스시티 로열스로 이적했다.하지만 세페다는 캔자스시티에서 타율 .215 1홈런 18타점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그 해를 마지막으로 은퇴한다.
4 은퇴 후
은퇴 후 사람들은 세페다가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하지만,1975년 공항에서 마리화나 소지혐의로 세페다는 9달간 감옥살이를 하는등의 모습을 보이며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것이 힘들어졌다.안그래도 매 시즌마다 연봉협상으로 구단과 마찰을 일으키면서 점수가 깎인데다가,여기에다가 마약복용 혐의까지 드러나며 명예의 전당 입성은 소원해졌고,1994년 마지막 투표에서도 73.47%로 75%에 미치지 못하며 탈락하면서 명예의 전당 입성에 실패하는 듯 했으나 1999년 베테랑위원회의 추천으로 명에의 전당에 입성했다.[1]
세페다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달았던 등번호 30번은 영구결번 되었다. 좋게 헤어지지는 않았지만 전성기 시절의 공로를 인정 받은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