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월터 존슨(Walter Perry Johnson) |
생몰년 | 1887년 11월 6일~1946년 12월 10일 |
국적 | 미국 |
출신지 | 캔자스 주, 훔볼트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1907년 자유 계약(워싱턴 세너터스) |
소속 팀 | 워싱턴 세너터스[1](1907~1927) |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월터 존슨 | |
헌액 연도 | 1936년 - 최초의 5인 |
헌액 방식 | 기자단(BBWAA) 투표 |
투표 결과 | 83.63% (1회) |
1913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MVP | |||||
트리스 스피커 (보스턴 레드삭스) | → | 월터 존슨 (워싱턴 세너터스) | → | 에디 콜린스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 |
1924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MVP | |||||
베이브 루스 (뉴욕 양키스) | → | 월터 존슨 (워싱턴 세너터스) | → | 로저 페킨퍼그 (워싱턴 세너터스) |
메이저리그 통산 ELO 레이팅 TOP 5 | ||||
월터 존슨 | 사이 영 | 레프티 그로브 | 피트 알렉산더 | 그렉 매덕스 |
2,169 | 2,138 | 2,114 | 2,105 | 2,104 |
1 소개
선수 시절의 월터 존슨 |
그라운드 위에 베이스가 놓여진 이래 최고라 불리는 투수가 있었다.
20살 남짓의 어수룩해 보이는 녀석이었지. 키는 엄청나게 컸고 팔도 무지막지하게 길었는데, 처음에는 사이드 암으로 던지는 투구 폼이 그다지 인상적이진 않았어... 우리 팀 선수 중 하나가 소 울음소리를 흉내냈고, 우리는 캔틸론 감독에게 외쳤지. '조, 쇠스랑을 준비해야겠어, 자네 시골뜨기가 외양간에 가는 중 같은데.' ...타석에서 처음 만났을 때, 존슨이 편하게 와인드업을 하더군. 그리고 잠시 뒤 뭔가가 휙 지나갔는데, 두려울 정도였어. 그건 공포 그 자체였다고... 그 순간 우리 모두는 역대 최강의 어깨를 가진 투수를 만난 거였구나 하고 깨닫게 됐지.ㅡ 타이 콥
처음 야구공을 잡는 순간, 마치 그것이 언제나 제 손바닥 위에 있어왔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걸 던졌을때 공, 손, 손목, 팔, 어깨, 등이 하나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죠.[2]ㅡ 월터 존슨
인류 역사상 최고의 투수.[3]
15경기 148.2이닝 평균 자책점 0.73의 전설
명예의 전당에 최초로 헌액된 5명 가운데 하나이다.
엄청나게 큰 키(186센티미터. 당시로서는 서양인 중에서도 장신)와 긴 팔을 지녔고, 그 팔로 마치 채찍을 휘두르듯이 사이드암으로 공을 던졌으며,[4]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광속구 하나로 전설이 된 투수이다. 게다가 월터 존슨이 던진 속구에서는 마치 기차 소리가 난다면서 "Big Train"이란 별명이 붙었을 정도이다. 인간 기관차다른 별명으로는, 아래에서 얘기하는 순둥이 같고 신사적인 성격 때문에 붙은 '백기사', '월터 경(Sir Walter)'이 있다. 백기사(White knight)나 기품 있는 월터 경(Lord)으로 불리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그가 1925년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실책에 이은 5자책 끝내기 패배를 당했을 때 행했던 행동 때문이다.(7-9패) 당시 그는 패전 직후 등을 돌려 실책을 범한 2루수를 껴안았다.
2 그의 능력
2.1 패스트볼
양팔을 뒤로 한번 돌리는 가벼운 와인드업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는데, 그를 처음 상대하는 타자들은 너무나도 간단한 그의 투구폼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구가 나오는게 믿겨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속구에 대해서는 오로지 비범한 소문들뿐인데 "공이 겁나게 빨라서 보이지 않아!"란 이야기는 기본이고, "그 자식 제구력이 형편없었으면 경기 때마다 줄초상 치렀을 것"이란 이야기도 있었다. 상대했던 타자들도 "뭔가 쉭 하고 지나가던데?"라는 반응을 보였으며, 당대에 이름 날리던 타자들도 "뭐 이런 공이 다 있냐"면서 멍 때리다가 삼진당하고 들어오기 일쑤였다. 또한 타자를 맞출까 봐 몸쪽 공을 던지는 것을 극도로 기피했는데도 타자들이 미처 피하지 못해서 통산 사구(死球)가 역대 4위인 205개(...)라고. 타자뿐 아니라 심판들도 "솔직히 존슨의 공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그래봤자 타자들도 못 보는 건 똑같기 때문에 항의는 없지."라는 어이없는말을 남기기도 했다. 어떤 경기에서는 그날따라 제구에 난조를 보인 월터가 심판에게 연거푸 실투를 직격(...)시킨 일이 있었는데, 이에 심판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대낮에 '일몰 콜드'를 선언해버린 일도 있었다.[5] 특히 클리블랜드의 레이 채프먼[6]이 2구 만에 타석에서 내려와버린 "2구 삼진" 기록[7]은 이미 전설이다. 그때는 타자들이 삼진 아웃당하는 것을 수치로 생각하던 시기였는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탈삼진 기록을 따내서 "스트라이크아웃의 제왕(Sultan of Strikeouts)"이란 별명도 얻었다.
그의 실제 구속에 대해서는 왈가왈부가 좀 있는 편인데, 1917년 브리지포트 연구소에서 측정한 바로는 약 147km/h정도의 구속이 측정되었다고 한다. 측정 위치에 따라 차이가 날 수는 있겠지만... 게다가 스피드건은 1950년대 도입되어 밥 펠러의 시대에도 존재하지 않았으니 진실은 저 너머에.[8] 그러나 이 정도의 구속 역시 당시로서는 던질 수 있는 투수가 거의 전무한 실정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의 구속에 관한 전설들이 헛소문은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다. 게다가 당시는 타자가 헬멧도 쓰지 않는 시기였으니, 그들의 공포가 얼마나 대단했을지 예상해볼 수 있겠다.
2.2 변화구
게다가 다른 투수들과는 달리 변화구를 거의 던지지 않았다. 말년에 가서 조금씩 섞어 던지기도 하였지만 팔팔하던 시절에는 오로지 속구만으로 리그를 제압(!)해 버렸다.[9] 이런 영향으로, 과거 투수들에 대해선 공이 빨랐다고 해도 140km대 중후반 정도로 보고 있지만, 월터 존슨은 어쩌면 꿈의 100마일, 즉 160km대 공을 던졌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이다. [10]참고로 공식적으로 160이라는 숫자가 등장하게 된 건 불꽃 같은 강속구를 던진 밥 펠러의 등장 이후이다.
3 성격
하지만 성격은 그야말로 부드러운 젠틀맨 그 자체. 정에 약해서 지인들의 표를 구해 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표를 구하러 사방팔방을 뛰어다녀야 했다. 또한 자신의 사인을 받으러 온 대통령 앞에서 벌벌 떨었다. 타자가 자기의 공을 맞고 죽을까 걱정이었으며[11] 실제로 레이 채프먼이 칼 메이스의 공에 맞고 사망하자 더욱 전전긍긍했다.
이런 성격을 두고 팀 동료가 평가하길 "월터 존슨이 남자라서 다행이야. 만약 여자로 태어났다면 평생 산부인과 신세를 졌을껄?"이란 말을 남겼다(....)
카리스마와는 한 100만 광년쯤 거리가 있는 사람. 당시엔 야구 선수들에게 방탕아, 무법자 이미지가 있었을 정도로 거친 사람이 많았기에 더욱 더 비교가 됐다. 이렇게 다른 동시대 선수들에 비해 임팩트가 부족한 탓이었는지, 저 우주굇수 같은 기록에도 불구하고 정작 명예의 전당 투표 당시에는 헌액된 5인 중 가장 득표가 낮았다. 하기야 다른 '최초의 5인'을 보면 우선 압도적인 메이저 리그 기록을 가진 데드볼 시대의 황제 타이 콥과 '야구의 신'이라 칭해지는 베이브 루스, 메이저리거 최초이자 최고의 특급 스타였던 크리스티 매튜슨, 그리고 메이저리거 사상 가장 완벽했다는 역사상 최고의 유격수 호너스 와그너이다. 투수는 단 2명이고 500승에 빛나는 사이 영이 초대 투표에선 투표율 50%도 안 나온 걸 생각하면 한 번에 통과한 것 자체가 대단한 위엄이다.[12]
4 레전드급 성적
바로 위에서 서술한, 최다 득표율을 기록한 레전드 타이 콥의 강력한 천적이 월터 존슨이었다. 야구에 대한 자만심이 하늘을 찌르던 타이 콥이었지만[13] 끝내 인정한 2명이 있는데 한 명은 자기가 생전에 못 이긴 선배이자 타격왕 8회에 빛나는 호너스 와그너,[14] 다른 한 명은 라이벌 월터 존슨이다. 그는 월터 존슨의 공 앞에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고 시인했다.[15] 심지어는 월터와 경기에서 처음 대결해본 직후부터 그를 탐낸 나머지, 구단 프런트에게 월터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빼내 와야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타이 콥은 그 굇쑤같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정작 월드 시리즈 우승을 해보질 못했는데, 당시 메이저리그 최약체 팀 소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승 반지를 껴 본 월터의 미래를 생각하면 뭔가 조짐을 느꼈던 것일지도...
다만, 그의 소속 팀이 만년 꼴찌였던 워싱턴 세너터스(현 미네소타 트윈스)였던 까닭에 굇수와도 같은 평균자책점과 탈삼진 기록에도 불구하고 500승을 넘기지 못하였으며(그 대신, 한 팀에서 거둔 승수로는 부동의 1위), 동시에 완투패를 가장 많이 기록(그 중 0:1 완투패도 28번이나...)한 투수로 남았다.
- 사실상 500승을 달성한 사이 영과 비교하기는 이른 게, 사이 영 시절의 투수는 'throwing'이 아니라 'pitching'이었다. 즉 공을 허리 위로 던지지 못하였고 마운드와 타자 사이 간격은 15미터보다 조금 멀었다. 사실상 15미터에서 100km 공을 던지면 18미터에서는 140 정도의 속도로 다가온다고 하니 투수가 유리한 환경이었다. 게다가 허리 아래로 던지는 경우에는 어깨의 부담이 적어 등판 간격과 이닝 이팅 면에서 용이하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그러나 1924년 워싱턴 세네터스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우승 반지는 하나 건졌다.[16]
1924년 뉴욕 자이언츠와의 미국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현재 '월드 시리즈'에 해당되는 시리즈)에서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는데, 3:3으로 8회까지 팽팽하게 맞서고 9회가 된 상황에서 갑자기 관중들이 월터의 이름을 연호하며 그의 등판을 요청했다. 감독은 월터가 이전 경기에서 부진했던 까닭에 등판시키길 망설였지만 그 사이에 월터가 자진해서 등판했고, 이후 매 회마다 주자를 내보내는 불안한 피칭 속에서도 12회까지 무실점으로 4이닝을 막아냈다. 그리고 12회 말에 행운의 불규칙 바운드(그것도 2번이나!)에 힘입어 세너터스가 우승을 거두었다. 이를 두고 자이언츠 선수들도 "신께서 월터에게 승리를 주길 원하신 거다"라면서 분루를 삼키면서도 월터의 승리를 축하했다.
그리고...
다른 건 몰라도, 그는 야구 역사상 유일무이한 세 자리수 완봉승의 주인공이다.[17] 그의 다른 기록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뛰어넘은 선수들이 있지만, 현대 야구의 특성상 이 기록은 앞으로도 아무도 깨지 못할 불멸의 기록.[18]
5 평가
빌 제임스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수로 우완 월터 존슨을 꼽고 두 번째로 좌완 레프티 그로브를 꼽았다. 이 둘의 업적에 대해서는 지금의 전문가들 사이에도 은근히 불꽃 튀는 최강자 떡밥이 전개되는데, 이는 바로 데드 볼 시대와 라이브 볼 시대의 커다란 간극 때문. 일단 가장 간단하면서도 쉬운 투수 비교 방법인 조정 평균자책점에서는 근소하게 레프티 그로브가 앞선다(역대 1~5위: 마리아노 리베라, 페드로 마르티네즈, 짐 데블린, 레프티 그로브, 월터 존슨) 하지만 승 수 자체를 놓고 보면 417승과 300승이라는 넘사벽의 차이가 존재하니 월터 존슨이 밀리는 것은 딱히 없다.
야구 평론가 레너드 코페트는 가장 위대한 투수로 월터 존슨을 꼽았다. 그가 위대한 투수로 꼽은 기준은 누적 성적, 구위, 제구력, 투구 요령, 배짱으로 보았다. 누적 성적으로 인하여 5년간 강력한 임팩트를 보여준 샌디 쿠팩스, 심지어 통산 260승에 그쳤지만(?) 2차 대전에 참전하여 조국에 '100승'을 바친 밥 펠러도 제외되었다. 구위를 통하여 짐 파머와 같은 제구력 피처가 제외되었고, 제구력으로 '강철 팔' 놀란 라이언 또한 제외되었다.[19] 상기된 레프티 그로브는 누적된 성적은 좋으나 실제로 강속구를 잃어버린 시점부터 평범한 투수로 전락하여 투구 요령이 없다고 보아 제외되었다. 이런 식으로 많은 투수들이 떨어졌고 남은 선수는 트리플 크라운 3회의 피트 알렉산더와 월터 존슨.
여기에서 레너드 코페트가 월터 존슨을 위로 놓은 이유는 바로 완봉승의 질이었다. 월터 존슨은 110완봉, 피트 알렉산더는 90완봉을 기록하여 아주 큰 차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완봉 중 완봉이라 불리는 1:0 완봉에서 38완봉과 19완봉으로 2배의 격차를 벌렸기에 월터 존슨의 배짱, 즉 유연하면서 자상하고도 강철 같은 멘탈이 인정받게 되었다.
6 참고 자료
- ↑ 미네소타 트윈스의 전신. 현재의 워싱턴 내셔널스와 텍사스 레인저스의 전신인 워싱턴 세너터스와는 상관이 없다. 하지만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옮겨온 워싱턴 내셔널스는 워싱턴 연고임을 들어 워싱턴의 역사로서 레전드 대우를 하고 있다.
- ↑ http://sabr.org/bioproj/person/0e5ca45c
- ↑ 통산 fWAR 3위, bWAR 2위. fWAR도 약쟁이를 제외하면 2위이며, 이 선수 위엔 사이 영 뿐이다. 이 둘의 통산 이닝은 무려 1441이닝이나 차이나는데, fWAR은 11.1, bWAR은 2.8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이 양반의 위대함을 알 수 있다.
- ↑ MVP 베이스볼 시리즈의 MVP 베이스볼 2005에서 그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실제 투구 영상
- ↑ 당시 메이저리그 경기는 주간 경기였기 때문에 날이 어두워지면 경기를 끝냈다.
- ↑ 뉴욕 양키스 소속 투수 '칼 메이스'가 던진 공에 머리를 맞고 사망한 걸로 유명한 선수로, 월터가 더더욱 몸쪽 공을 기피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 ↑ 심판이 아직 투 스트라이크라 지적하자 "나는 공이 보이지 않으니 심판께서 잘 보고 알아서 처리하세요"라고 하고 내려갔다! ㅎㄷㄷ
- ↑ 다만 기반 기술은 이미 개발되어 있었다. 도플러 효과 역시 19세기 말에 발견된 것으로, 국가 등급의 연구소에서라면 높은 정확도로 측정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 ↑ 13년 동안 속구만 던지다가 부상당해서 속구 위력이 약간 줄어들자 커브를 배웠다. 정확하진 않지만 "야 이거 괜찮네 좀 더 일찍 배워놓을걸"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데 만일 그랬다면 타자들은 그저......
- ↑ 김형준 기자의 레전드 스토리에 따르면 평균(!)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 ↑ 당시 강속구 투수로는 스모키 조 우드와 월터 존슨이 유명했다.
- ↑ 하지만 사이 영도 이듬해 투표에서는 76.1%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데 성공한다. 사이 영의 동료급 선수들이 대부분 베테랑 위원회에 의해 헌액되었고, 또 그러라고 베테랑 위원회를 만들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투표로 2번 만에 들어간 사이 영의 위엄 역시 대단한 것이다. 또다른 레전드 투수들인 피트 알렉산더, 레프티 그로브도 삼수, 사수를 거쳤다.
- ↑ 타이 콥은 그 천하의 베이브 루스조차 우습게 봤다. "그가 어떻게 야구를 잘한다고 할 수 있지?"라고.
- ↑ 역대 NL 최다에 해당한다. 타이 콥은 11회로 AL 및 MLB 역대 최다.
- ↑ 타이 콥의 통산 타율은 .366으로 역대 메이저리그 선수 중 1위이다. 2위인 로저스 혼스비가 .358. 하지만 타이 콥의 월터 존슨 상대 통산 타율은 .233이며 이를 제외하면 .368로 올라가게 된다. 그나마 몸쪽 공을 제대로 던지지 못했던 월터 존슨의 심리를 이용, 홈 플레이트에 바짝 붙어 타격을 해서 나온 성적이 이 정도...
- ↑ 그의 말년에 워싱턴은 꽤 강팀으로 성장한다
- ↑ 110완봉승. 그 중 38번이 1:0 완봉승으로 이 부문에서도 1위. 2위는 피트 알렉산더로 각각 90완봉승, 1:0 완봉 19승이다. 야구 평론가 레너드 코페트는 이 점이 피트 알렉산더와 월터 존슨의 차이라고 피력하였다.
- ↑ 이 110완봉승이 얼마나 현대 야구에서 넘사벽급 기록인지를 알고 싶다면, 로저 클레멘스, 그렉 매덕스, 랜디 존슨 3명의 완봉승 기록을 합쳐야 118완봉승이라는 걸 알아두자.
- ↑ 오히려 놀란 라이언은 가장 화려한 투수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