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

Bhimrao Ramji Ambedkar
1891.4.14 ~ 1956.12.6
(향년 만 65세)

사진흔히 걸려있는 암베드카르의 초상화 PSY?[1]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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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헌법이 오용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면, 나는 그것을 태우는 첫 번째 사람이 될 것이다.

암베드카르, <Writing and Speech>

인도 헌법의 아버지, 불가촉천민의 해방자, 인도 불교의 중흥자.

마하트마 간디와 더불어 인도에서 존경받는 사람. 간디가 인도를 영국이라는 외적인 위협으로부터 해방시켰다면, 람지는 인도를 카스트 제도, 노동 문제, 교육 문제 등 내적인 고민들로부터 해방시킨 존재이다. 인도의 학교에는 독립운동의 영웅이 마하트마 간디, 자와할랄 네루, 찬드라 보세와 함께 이 사람의 초상화가 걸려있다고 한다.

2 생애

데칸 지방 마드야프라데시주 모우에서 불가촉천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의 교육열과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봄베이대학교 엘핀스톤칼리지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경제학 석, 박사 학위를, 영국의 런던정경대학교에서 석,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 그레이법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였다. 독일 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에서 연구 후, 인도에 귀국하였다.

귀국 후, 관리가 되었으나 신분이 높은 자들의 천대를 받고 사직, 변호사와 하층민들의 지도자로 활동하였다.

1920년에 '벙어리의 소리'를 발간하고, 1930~1932년에 영국 인도 원탁회의에 달리트[2]의 대표로 참석하는 등 불가촉천민의 힌두사원 입역 금지 철폐운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불가촉천민의 분리선거구를 주장하면서 마하트마 간디가 이끄는 국민회의파의 민족운동을 비판, 대립하다가[3] 결국은 양보하였다. 실제로 간디는 독실한 힌두교도였기에 불가촉천민에 대해서는 차별적인 말들도 많이 쏟아냈다고 한다. 1936년 독립노동당을 결성하였는데, 이것은 후에 등록카스트연합으로 발전하였다.

1947년 인도 독립 후에는 헌법기초위원장, 법무장관을 역임하여 공화국 헌법제정에 있어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그의 최대 공헌은 헌법적으로 카스트 제도를 폐지한 것이다. 또 인도의 삼색기 중앙의 법륜도 그가 제안한 것이다.

'신도 버린 사람들'을 쓴 나렌드라 자다브의 부모도 그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노동자 복지 대책을 수립하는 등 노동 문제 해결에 기여했고, 민중교육협회를 설립하여 교육에 힘썼다. 결혼과 상속과 입양과 재산권 등에서 여성 권리도 보장하는 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3 개종

"힌두교도로 태어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나는 힌두교도로 죽지는 않겠다." - 개종 연설에서의 발언

그의 카스트 폐지운동에는 석가모니가 설법한 자비와 평등 정신이 바탕을 이루고 있었다. 죽기 두 달 전인 1956년, 불기 2500년을 기념하여 10월 14일 나그푸르에서 불가촉천민 50여 만명과 함께 힌두교를 버리고 수계를 받아 불교개종하였다. 그래서 인도에서 보이는 그의 초상화에는 석가모니와 나란히 그려지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그가 귀의한 불교는 상좌부 불교(소승불교)로, 대승 불교가 아닌 상좌부 불교를 택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추정되는데 먼저 상좌부가 붓다의 원래 가르침과 가장 가깝다는 것[4], 그리고 상좌부에서는 그 어떠한 화신(化身)의 현현을 믿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5]

하지만 이 개종식은 카스트 제도를 지지하고 인정하는 힌두교에 반발하는 식의 개종이었기에, 그가 정말로 불교 교리를 깊게 이해하고 불교로 개종했는지에는 의문이 생긴다. 암베드카르를 따라 개종한 신도들의 교단을 보면, 불교에서 가장 기본적인 교리이자 신앙의 대상인 삼보(三寶; 부처, 가르침, 승가)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실례를 들면 부처인 불보를 말 그대로 불상(!)인 불보로 이해하고 있다든가... 또 정작 그의 사후에는 이러한 대형 집단 개종식이 없어지고, 불가촉천민들 중 개종하는 사람들도 적어졌다고.

그 외에도, 암베드카르 본인은 미얀마 승려 찬드라마니를 통해 수계하였으나, 자기를 따라 개종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기를 통해 수계하도록 하기도 했다. 상좌부의 율장에서 이러한 일은 허락되지 않기 때문에 이 또한 문제점이었다.
  1. 싸이 또한 종교가 불교다. 환생했냐 한군두도 모자라서 인생을 한번 더 사는 패기
  2. 암베드카르가 제안한 불가촉천민의 명칭. 간디는 하라잔(신의 아들)이라고 부르고 싶어 했지만 암베드카르는 반대했다. 실제로 그 뜻이 무색하게 현대 하라잔은 불가촉천민을 비하하는 명칭으로도 악용된다.
  3. 이 때 암베드카르는 "간디 선생님, 저에게 조국은 없습니다!"라는 폭탄 발언까지 했다고 한다. 간디가 기겁했다고.
  4. 대승불교에서는 힌두교의 영향으로 여러 가지 의례가 포함되어있다. 찾기 쉬운 예를 들자면 천수경을 들 수 있는데, 경전에 포함된 신묘장구대다라니의 범어 해석을 하면 힌두교 신 시바를 찬미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
  5. 암베드카르의 '불교입문맹세 22항' 중 제 4항에서 "나는 그 어떠한 화신의 현현을 믿지 않는다"라고 한다. 힌두교에서 화신은 신의 또다른 모습이라고 하며, 신은 여러가지 모습으로 인간들 앞에 나타나 이끈다고 한다. 이는 힌두교에서 "신님은 너희 같이 더러운 인간들 사이엔 안 나타나심ㅋ 우리 같은 브라만들로 나타나시고 그걸 알아보는 것도 우리 브라만임. 그러니까 하위 카스트는 깝ㄴㄴ"와 같이 해석되었다. 그러나 대승불교에서는 이를 "화신은 중생들을 돕기 위해 나타나는 부처의 여러 모습"으로 해석하였고 이에 따라 부처는 남자로도, 여자로도, 심지어는 짐승이나 벌레로도 나타날 수 있다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암베드카르는 화신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더더욱 상좌부를 선택한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