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경

1 일반적인 의미

2 삼국시대의 인물

謝景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오나라의 신하로 자는 숙발(叔發).

남양 완현 출신으로 고미의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 장승에게 발탁되어 229년에 손등이 태자로 임명되자 범신, 조현, 양도와 함께 손등의 빈객으로 들어갔으며, 손등의 명으로 호종이 빈우목을 만들었을 때 응변굉달(凝辨宏達)하고 언능석결(言能釋結)하다는 평을 받았지만 친구 양도는 여기에 대해서 사경의 말은 뜬구름만 잡는다고 비판한다.

241년에 손등이 죽을 때 유언으로 장휴, 고담과 함께 기민하고 식견이 있어 궁궐에서는 측근의 심복, 지방에서는 수족으로 부릴만한 인물로 평가받았지만 예장태수로 있던 사경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관직을 버려 자신을 탄핵하는 표를 올리는데, 손권

그대는 태자를 수행해 정사를 다스렸으므로 다른 관리와는 차이가 있다.

며 궁궐 안에 있는 사자에게 그를 위로하도록 하고 다시 본래의 직책에 복직시켜 그를 군으로 돌려보냈다.

사경은 군의 태수로 있으면서 치적이 있어 관리와 백성들은 그를 칭찬해 이전에는 고소, 이후에는 사경이 있다고 했지만 몇 년 후에 관직에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기록 중에 남양의 사경(射慶)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유이가 형벌을 우선하고 예절을 뒤에 해야한다는 견의를 했을 때 사경이 그를 칭찬하자 육손은 다음과 같은 말로 사경을 질책한다.

절이 형벌보다 앞선 지 매우 오래되었다. 유이가 번잡한 궤변으로 이전 성인들의 가르침을 왜곡한 것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그대는 현재 태자를 모시고 있으니 마땅히 인의를 존중해 덕음을 선양해야지 유이와 같은 말은 할 필요가 없다!

는 말이 육손전에 있는데, 같은 남양 출신에 음이 같은 걸로 봐서는 동일인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