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흔

司馬欣
진한 교체기 진, 초의 장수. 생몰년은 ? ~ 기원전 204년.

역양에서 옥리를 한 적이 있었고 항량에게 덕을 베푼 적이 있다고 하며, 반진 봉기 진압을 위해 장한을 따라 종군했다. 승승장구하던 장한이 항우에게 거록대전에서 패하자, 후퇴해 전열을 재정비하기 위한 허가를 받기 위해 장한은 사마흔을 함양으로 파견하나, 당시 진의 조정을 지배하고 있었던 조고는 3일 동안이나 사마흔을 만나주지 않았다. 사마흔은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가던 길과 노선을 달리해 장한에게 돌아오는데 실제 조고는 사마흔을 잡으려고 했었다.

전세는 밀리고 조정에서도 의심받게 되자, 사마흔은 갈 데가 없어진 장한을 동예와 함께 설득해 항우에게 항복했다. 이 공로로 장한은 옹왕, 사마흔은 상장군에 봉해졌다. 항우가 20만 진병을 갱살해버린 신안대학살에서도 장한, 동예와 함께 살아남았다.

옹왕 장한, 적왕 동예와 함께 색왕에 봉해져 역양을 도읍으로 했고 장한, 동예와 함께 유방을 견제하나 한의 관중정벌 당시 동예와 함께 한에 항복했다가 팽성 대전 이후 다시 초에 투항했다. 기원전 204년 대사마 조구, 적왕 동예와 함께 성고를 지키다가, 항우가 팽월을 치러 나간 사이 치고나온 유방에게 패해 자결했다.

초한전기에서는 주로 장한과 같이 등장한다. 장한 사후에는 등장이 뜸하다가 66화, 67화에서 진평의 이간계에 희생된다. 이간계에 속은 항우의 압박에 몰려 자신의 행적을 정리하는 글을 쓰다가 회한에 젖어 칼도 아니고 젓가락으로 자살한다.

고우영 초한지에서는 동예와 단짝 친구로 나오는데, 강직한 군인의 이미지로 나온다. 장한의 명을 받고 함양으로 갔을 당시 조고가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후한 대접을 하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면서도 '전우들과 함께 누렸으면 더 좋았을텐데... 전우들에게 미안하구나.'라고 아쉬워한다.[1], 관중정벌 때도 한신이 '사마흔은 함부로 항복할 사람은 아니지.'라고 말하고 계책을 써서 포로로 잡은 뒤에도 번쾌가 '이런 장수는 포박을 풀고 예의를 갖추는게 도리가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할 정도.

팽성 대전 이후 다시 초에 투항했다가 배신자는 역겹다며 항우가 사마흔과 동예를 처형시키자, 살려달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동예와는 달리 말 없이 담담하게 죽음을 맞는다.
  1. 사마흔이 탈출한 계기도 그의 시중을 들던 시녀가 조고의 음모를 알려줘서 가능했다. 여기서 은근슬쩍 작가의 자기 자랑이 나오는데, 사마흔을 보고 '어쩜 저렇게 점잖으실까......마치 여행하는 만화가 같으셔!'라고 말한다. 이 초한지를 연재할 당시 고우영 화백은 잠시 연재를 중단하고 중국을 여행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