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데뷔 전인 1972년,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 <스타 탄생>에 참가했는데, 예선부터 프로그램 사상 최고 득점 기록을 갈아치우며 심상치 않은 기운을 보여주더니, 결선에서는 계약을 원하는 연예 기획사들의 플랜카드 25개가 올라가고 (이 역시 최고 기록) 심사위원들의 압도적인 평가를 받으며 우승했다. 당시 프로그램 관계자가 남긴 “모모에[1]가 원석이라면, 준코는 보석 그 자체다.” 라는 말이 유명할 정도.
이후 1973년 데뷔, <스타 탄생> 출신의 야마구치 모모에, 모리 마사코와 함께 꽃의 중3 트리오 라고 불리었다.[2] 데뷔 곡은 ‘천사도 꿈꾸네 (天使も夢みる)’ 로 당시에는 귀엽고 청순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한 깜찍한 아이돌 노래였을 듯...하지만 지금 들어보면 솔직히 촌스럽다.
‘천사도 꿈꾸네’ 의 표지와 노래. 매우 촌스럽다.
그리고 노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데뷔 초에는 컨셉을 꽃, 천사, 첫사랑 등으로 70년대 연예계니까 잡았었는데 때문에 유독 제목에 ‘천사’ 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곡이 많다. 또한 같은 해에 발표한 ‘꽃 이야기 (花物語)’ 에서는 자신을 창가에 놓인 꽃에 비유하기도. 흠좀무[3]
좌우간 촌스러운 ‘천사도 꿈꾸네’ 가 오리콘 차트에서 12위를 기록하며 좋은 스타트를 끊었고, 같은 해 8월 발표한 ‘나의 파랑새 (私の青い鳥)’ 는 다수의 신인왕을 차지하는 등 히트를 쳤다. (오리콘 차트는 18위를 기록)
또한 다음 해 12월에 발표한 ‘첫 사건 (はじめての出来事)’ 으로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오리콘 차트 1위를 차지했고, 이후로도 ‘17세 여름 (十七の夏)’ ‘립스틱 (リップスティック)’ ‘행복 연극 (しあわせ芝居)’ 등의 히트 곡을 내면서 명실상부 70년대 톱 아이돌 중 하나로 군림했다. 이렇게 가수로서 활발히 활동하는 한 편, 1975년부터는 영화에도 주연으로 출연하는 등, 점차 여배우로서의 비중이 커지더니 결국 1983년 발표한 ‘초승달 밤 (眉月夜)’ 을 마지막으로는 완전히 여배우로 전향했다. 가수로서 쌓아둔 커리어 등을 바탕으로 여배우로서도 여러 가지 방송, 드라마, 영화, CM 등에 출연하며 상도 수차례 받는 등 여러모로 잘 나갔다.
그러나 1992년 6월, 돌연 기자 회견을 열고 통일교에 입교해 있었음을 밝히며 2달 후에 서울에서 열리는 통일교 합동 결혼식에 참가할 것임을 발표했다. 본인 스스로 밝힌 바에 따르면 통일교는 언니의 추천으로 19세 때부터 입교했다고 한다.[4]
합동 결혼식 1달 전의 사진. 왼쪽의 안경잡이가 남편
좌우간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의 톱 여배우가 통일교 합동 결혼식에 참가하러 내한한다는 식으로 보도가 되었으며, 이는 지금도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자 회견에서 밝힌대로 2달 뒤 서울 잠실 종합 운동장에서 열린 합동 결혼식에 참가한 이후, 1993년 개봉한 영화 ‘이사 (お引越し)’ 에 출연한 것을 마지막으로 어떠한 연예 활동을 하지 않아 사실상 은퇴한 것으로 보인다.[5]
결혼 이후 한때 서울 남산 아파트에서 살았었다 카더라. 최근에는 베스트 앨범을 내거나, 간간히 잡지사와 인터뷰 하는 등으로 근황 보고를 하고 있다. 2012년 현재는 도쿄 어딘가에서 1남 2녀의 평범한 주부로 살고 있다.
아래는 결혼 후 사진들
장남(94년생)의 100일 당시 야마구치 모모에처럼 더 예뻐진 듯?
2006년 통일교 행사 때의 모습
2006년 출판된 에세이 アイスル ジュンバン의 표지
2007년 모 잡지에 실린 사진
결혼 직전까지도 일본에서는 톱스타였기 때문에 아직도 그녀의 복귀를 바라는 사람이 많고 그녀 역시 한때 연예계 복귀를 진심으로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역시 통일교 신자라는 점이 발목을 잡아 포기했다고 한다.
2013년 5월 28일 옛 소속사 선뮤직의 사장이었던 아이자와 히데요시 사장이 별세하자 16년 반만에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같은 해 10월 23일엔 데뷔 40주년 기념 앨범인 『Thanks 40 〜青い鳥たちへ』(Thanks 40~파랑새들에게)를 발매하였다. 이후 한 달뒤 11월 26일 도쿄 긴자 하쿠힌칸 극장에서 팬미팅을 가졌다.
다운타운의 하마다 마사토시가 학창시절 사쿠라다 준코의 팬이었다고.
고향인 아키타 현 출신의 유명인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준코 이후 한동안 맥이 끊겼던 아키타 미인의 명맥은 사사키 노조미가 다시 잇고 있다.
홍백가합전에 9번 출장했으며, 이는 홍조 최다 출장 8위 기록이다. (엔카 가수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