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두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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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sviri 혹은 Triumviri.

로마 제국에서 황제 체제가 만들어지기 직전의 3인 관료 체제를 지칭한다. 대표적인 과두제이다.

형식적으로는 집정관을 3인으로 늘린 것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호민관원로원의 업무까지 대부분 실행했기 때문에, 사실상 견제 불가능한 최고 통수권을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단, 1차 삼두정치는 공인된 것이 아니었으며 그냥 세 사람 사이의 협정에 불과했다.

총 2차에 걸친 삼두정치 체제가 있었으며, 두 번 모두 실무담당자/얼굴마담/돈줄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최후의 1인이 전부 실무담당자였다는 점도 공통. 그리고 돈줄이였던 한 명은 듣보잡 신세가 되는 것도 공통점이라고 흔히 알려져 있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크라수스레피두스는 사정이 서로 다르다.

크라수스의 경우는 시작될 당시엔 본인은 물론이고 당시 로마인들 대다수가 폼페이우스와 함께 삼두정치의 중요인물로 여겨졌었지만[1] 크라수스 항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신의 능력 부재로 점차 곁다리로 밀려났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무리한 원정을 감행했다 스스로 자멸했다.

반면 레피두스는 처음에는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보다 강력한 세력이었고 다른 두 사람 사이를 중재해 삼두체제 성립을 주도했으며 삼두체제가 출범한 직후에도 갈리아 지역 노른자위 땅을 차지한 안토니우스와 비슷한 세력에 자신에게 분배된 시칠리아가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지배하에 있었던 옥타비아누스보단 훨씬 강력했다. 그러나 옥타비아누스의 압도적인 정치력과 술수에 필리피 전투 이후 별다른 전투 한번 없이 점점 세력이 줄어갔다. 그리고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와의 쓰러뜨린 이후 팽당한다. 레피두스가 처음 약속된 자신의 영역인 아프리카[2]시칠리아를 요구했을 때 옥타비아누스가 당당히 레피두스의 캠프로 가서 레피두스의 눈 앞에서 레피두스의 부하에게 직접 배반을 권유하자 레피두스 부하 모두가 옥타비아누스에게 가 버린 것이다.

1~2차 삼두정치 모두 외형적 형태와 결과가 거의 똑같이 나왔기 때문에 각각의 구성 인물들의 능력이나 성격, 그리고 사건의 진행 과정 역시 비슷하다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두 사건의 상세한 진행 과정과 인물들은 서로 매우 다른 측면이 많으므로[3] 밑에 나온 각각의 인물들의 항목을 살펴보는 쪽을 권한다.

  1. 물론 삼두정치를 최초로 기획한 카이사르의 생각에선 분명 크라수스가 곁다리였을것이다. 실제로도 그렇게 됐고. 카이사르의 생각을 짐작해 보자면 사병을 동원한 전투를 마지막 수단으로 삼는 것이 일상화된 당시 로마 정계에서 군사적 능력이 부족한 크라수스가 최종 승리자가 될 가능성은 무척 낮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2.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아프리카 대륙이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 중 지중해와 맞닿은 지역을 말한다. 오늘날로 말하면 시리아, 레바논, 이집트 같은 곳.
  3. 1차 삼두정치는 원로원과 대립했을지언정 원로원 자체는 건드리지 않았던 반면 2차 삼두정치는 결성 직후 원로원을 숙청해버렸다.